대한민국 부동산 투자 - 시장을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부동산 투자서
김학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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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입지다. <대한민국 부동산 투자>에서는 입지와 관련하여 먼저 지하철 노선을 이야기한다. 목동이 제2의 대치동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5호선이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지하철 노선과 관련하여 특히 9호선을 강조하고 있다. 9호선을 '알짜 일자리 노선', '진정한 강남권 노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9호선으로 강서구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고 동작구 지역의 재개발이 활성화되었으며 나아가 서초구 반포동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고 평가한다. 이 지하철 프리미엄은 서울, 부산은 유효(일자리 노선)하지만, 지방(생활 노선)은 그렇지 않다고 부연 설명한다.
 
<심정섭의 대한민국 학군 지도>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대한민국 부동산 투자>에서도 중학교 학군을 중요시한다. 특목고를 많이 보내는 중학교가 있는 지역이 좋은 학군이 되는 것이다. 잘 아는 대로, 강남구, 서초구, 양천구가 교육 프리미엄이 있는 지역이다. 추가로 남녀공학보다 남학교 프리미엄이 더 높다.
 
다음으로 상권 프리미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권의 확장 여부이다. 특히 대형 유통시설이 들어오면 상권 프리미엄은 올라간다. 주거 프리미엄은 올라가지만 상가 프리미엄은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연환경 프리미엄이다. 최고의 입지 중 하나가 용산구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미군 부대 대부분이 평택으로 이전하기 때문에 용산을 더 눈여겨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광진구(아차산, 한강), 강남구(한강, 청계천, 중랑천)가 풍수적인 장점이 있다.
 
모든 물건이 그렇듯, 아파트도 최대한 싼 가격에 매입해야 한다. 문제는 이 아파트가 싼지 비싼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느냐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고자 하는 지역의 시세를 최소 10년간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야 싼지 비싼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조건의 다른 아파트와 가격 비교를 통해서도 판단할 수 있다.
 
1기 신도시(분당, 평촌, 산본, 중동, 일산)와 관련해서도 입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지역의 아파트는 이미 준공된 지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상품 경쟁력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지의 구성 요소인 교통, 상권, 교육, 환경을 분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 중에서 가장 고려해야 할 요소는 교육이다. 교통과 상권은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당, 일산, 평촌이 교육 환경으로 인한 경쟁력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부동산 시세에도 심리적 가격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평당 1,000만 원이다. 저자에 따르면 강남에서 1,000만 원이 넘는데 거의 30년이 소요되었는데 1,000에서 2,000으로 2,000에서 3,000으로 가는 데는 소요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다고 한다.
 
또한 저자가 양적 시장과 질적 시장을 구분하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양적 시장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인 반면, 질적 시장은 명품, 즉 고급 시장의 수요층이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서울(200년대)과 부산(2010년 전후부터), 대전, 대구 등이 이러한 질적 시장에 진입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대표적인 지역이 해운대구에 있는 마린시티와 센텀시티이다. 
 
저자는 현재, 소형 아파트가 대세지만, 이러한 경향이 계속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간단한 예로, 소형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계속 소형에 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중형, 대형으로 이사하기를 원한다. 또한, 가격에 영향을 주는 부동산 투자층도 조금씩 소형에서 중,대형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입지와 시장에 따라, 중, 대형에서도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시장이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끝으로 다세대, 빌라는 시세 차익으로 접근하면 안 되고 월세 수익이 1차 목표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앞으로 재개발 또는 신축으로 리뉴얼 가능한지 체크하고 매매에 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경매와 공매를 통해 매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부언한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는 매수해도 좋은 아파트를 찍어준다. 송파구는 어느 아파트, 양천구는 어디 이렇게.  아파트들이 그 지역의 랜드 아파트이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 확신에 찬 어조로 찍어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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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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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회사를 옮긴 지인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회사 적응은 잘 하고 있어?"라고 묻는다. 여기서 회사는 단순히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회사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포함하는 내용이고 어떻게 보면 사람이야 말로 이 질문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하면, 회사 일이라는 것은 사실, 그렇게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회사에서 하는 일이나 저 회사에서 하는 일이나 매한가지인 경우가 많다. 간혹, 사용하는 회사 내부 시스템이 달라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금방 적응이 가능하다. 정작 문제는 사람인 것이다. 사람은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가끔은 과연 사람이 적응 가능한 대상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만큼 어렵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고 그 변수로 인해 여러 갈등과 다툼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고 다투기도 하지만, 정작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아예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은 거리를 두고 외면하라고 한다. 상종하지 않는 것이 산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를 피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관계를 오히려 끊는 것이다. <담론>에 따르면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애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그 문제는 평생 그 사람을 따라다니게 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은 수많은 관계로 이루어져 있고 가장 기본 단위는 바로 나와 너의 관계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땅에 평화가 오기를 바란다면 먼저 나의 관계에 평화가 임해야 마땅하다.  

 

신영복 선생은 <담론>에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공감'이다. 공감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주입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이 생각만큼 독단적이고 완고한 생각이 없다. 이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관계에서의 화쟁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공감은 단순히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넘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상대방과 나를 이어주는 하나의 끈이 된다. 이 끈을 놓치지 않고 함께 끌어갈 때, 관계 가운데 평화가 찾아오게 된다.  

 

그렇지만, '공감'은 한순간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감'을 위해서는 먼저 '나'를 알아야 하고 '세계'를 알아야 한다. 흔히 다른 사람을 넓은 아량으로 받아주고 품어주는 사람을 대인배라고 하는데 대인배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물의 이치,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 상대방이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 나의 상황 등 여러 요소들로 이루어진 큰 그림 안에서 상대방을 바라볼 때 그런 아량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대인배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한 법이다.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누구이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부모님을 이해해야 한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친한 친구들까지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는 그 모든 관계 속에서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론>에서는 '성찰'은 자기중심이 아니라 시각을 자기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기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를 깨닫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정체성은 외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다. 

 

나아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사람과도 관계를 맺고 있지만 환경과도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은 없다. 결국,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반드시 외부에 대한 이해로 향하게 되어 있다. 

 

신영복 선생은  20여 년 동안 감옥에서 이러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였다. 그는 끊임없이 재소자들과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을 최고의 '독서'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몇 번에 나누어서라도 그 사람의 인생사를 끝까지 듣는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을 이해한 것은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으로 연결이 된다. <담론>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바로 세상의 원리와 이치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원리는 바로 자신을 이해하고 돌아보는 거울이었다. 그 원리에 비추어 자신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 사회는 진정한 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학교를 마치면 동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개울가에 가기도 하고 뒷산에 가기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많은 추억을 쌓았다. 당연히 시간이 지나도 그 관계는 지속되었다. 그래서 아버지 시대에만 해도 몇십 년 지기 친구가 흔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끈끈한 관계는 사라진지 오래다. 아이들은 학군을 따라 이사를 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학교를 마치면 학교 앞에는 아이들을 태워가려는 학원버스와 부모들의 차가 길게 줄지어져 있다. 서로를 알아갈 시간도, 공감할 시간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 가운데 나를 정의해야 하는데 그 '관계'가 너무나도 빈약한 현대 사회가 되어 버렸다. 피상적인 관계와 만남만이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사회가 되었다. <담론>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지하철에서 앞에 할아버지가 서 계서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나의 친할아버지였다면, 혹은 이웃집 친구네 할아버지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통신과 인터넷의 발달로 서울에서 미국에 있는 이들과 손쉽게 통화할 수 있는 시대인데 역설적이게도 의미 있는 관계는 더 좁아진 세상이다. 관계의 거울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이해해야 하는데, 이런 현대 사회에서는 나를 성찰하기가 어렵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자신의 이윤만을 추구하려고 한다. 심지어 연구 결과까지 돈으로 조작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고 유아에게 유해한 온갖 상품을 소비하게 만든다.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위한 상품은 결코 그렇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폭력이며 갈등인 것이다. 그리고 화해의 시작은 바로 관계인 것이다. 
  
정상적인 관계는 서로 깨닫게 하고 서로 키워주는 관계이다. 즉, 나 혼자만의 성장은 없다. 같이 성장하는 것이다. 겸손과 진실, 배려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할 때 그 가운데 공감을 일으키고 진정한 관계가 성립된다. 나아가, 그 시대와 시회를 포용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것이 곧 내 안의 평화이자 세상의 평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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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7-12-20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

데굴데굴 2017-12-20 14:32   좋아요 1 | URL
저도 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도정일.최재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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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한다, 타자를 이해한다. 우리말로 하면 역지사지, 바꿔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건데, 기본적으로 타자를 긍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것은 내가 나의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를 열어서 타인을 받아들이거나 내가 나를 버리고 타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책의 서두에 나오는 인문학자 도정일 선생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다. 갈등과 다툼을 넘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바로, 나의 울타리 열기, 그리고 상대방 울타리 열기, 마지막으로 상대방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 이다.

 

'나의 울타리 열기'는 바로 질문에서 시작된다. 

 

몇 주 전에 우연히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더니 자기는 질문하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왜냐고 물어보니 질문하는 것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이고 그건 부끄러운 것이란다. 그래서 질문하지 않을거라고 했다.  

 

이 짧은 대화는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가기 쉽다. 그러나, 단순히 여기서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만 더 연장해서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만약에 이 아이가 질문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럼,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 중에 궁금한 점이 또 생기면 아이는 이어서 대화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나와 아이는 결국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모든 갈등과 다툼을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은 바로 '대화'이다. <대담>은 인문학자 도정일과 자연과학자 최재천의 만남이다. 만나서 이야기가 제대로 진행이 되려나 싶은데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모든 대화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각자의 입장에서 가지고 있는 의문을 상대방에게 던지는 것이다.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거나 상대방의 생각을 궁금해하지 않으면 이 대화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먼저 질문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나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라는 입장을 가진 사람은 상대방에게 질문할 필요가 없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은 사실상은 동의를 구하는 질문이 될 수 밖에 없다. "맞지 않나요?", "그렇지 않나요?" 등 겉으로는 의문형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동의를 구하는 단답형들이다.

 

다음으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고, 이는 악수를 건내는 제스쳐에 해당한다. 다투거나 싸웠을 때 먼저 악수를 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다. 거절당하면 창피와 수모를 당하게 되는데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의사표현이 된다.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질문을 하면 상대방은 대립의 각을 가지고 있다가 누그러뜨리며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전달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물론, 질문을 던질 때 중요한 것이 나의 진심을 담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꼬리를 물기 위한 질문이나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질문하는 것은 화해의 제스펴가 될 수가 없다. 상대방도 이를 바로 알아차린다. 이런 질문은 오히려 불신을 키우고 갈등이 고조시키는 마치 불난집에 부채질하는 것 같은 효과를 일으킨다.

 

다음 단계인 '상대방 울타리 열기'는 바로 질문에 이은 상대방의 답변이다. 진실된 질문을 받게 되면 그에 대한 진실한 답변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곧 상대방이 자신이 울타리를 여는 과정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나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개방하는 것이다. 이는 악수를 내밀었을 때 악수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내밀어 그 손을 맞잡는 행위와 같다. 

 

나의 울타리를 여는 것과 상대방의 울타리를 여는 것은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갈등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울타리를 다시 닫으려는 행위로 이어질 수도 있다. 대화가 단절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담>에서 두 학자가 4년에 걸쳐 대담을 하며 서로의 울타리를 열었더 것처럼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대화의 장을 마련해가면 점점 서로의 울타리를 열게 된다.

 

마침내, 마지막 단계인 '상대방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이다. 상대방의 울타리를 여는 것만으로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이 울타리는 언제라도 닫힐 수가 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나의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마음을 열게 되면 그 다음으로 향할 힘을 얻게 된다. 상대방이란 거울을 통해 나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게 되고 상대방도 동일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의 울타리 안에 그리고 상대방이 나의 울타리 안에 들어올 때 그 힘은 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평화를 만드는 에너지이다. 평화는 아무 것도 없는 조용한 상태, 진공 상태가 아니다. 평화는 다음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 만드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평화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마침내 함께 발전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이다. <대담>에서 두 학자의 대화는 특정 이슈와 학문과 관련된 내용 같지만 사실은 바로 이 평화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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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각 - 아이디어 소설
이헌영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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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책을 읽으면 저자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에 읽은 이헌영의 <한 생각>이 바로 그런 책이다. 올해 1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 손 꼽힐만큼 좋은 책이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만나는 사람에게 주저없이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저자를 꼭 만나보고 싶다.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비록 책에 다 나와 있지만), 그리고 실제 어떠한 분인지 만나서 듣고 싶다.

 

한 생각은 주제는 두 가지이다. 바로 '경제 양극화 해소'와 '대통령 추첨제'이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가 느꼈겠지만 실제로 이 두 가지 아이디어인 한 생각1과 한 생각2를 실현해보고 싶은 욕구가 막 생겨난다. 소설책인데도 읽는 내내 긴장하게 되고 조마조마하게 되고 설레기도 했다. 이런 책이 있을 수 있다니!

 

줄거리는 간단하다.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정관영은 정치에 입문하고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이유는 단 하나이다. 바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그 만의 아이디어도 준비해두었다. 그러나, 정치판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자신의 아이디어는 실현되기 어려워 보였다. 정치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탄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대학도 나오지 못했다. 분명, 미디어와 엘리트들이 비판할 것이 뻔했다. 

 

 

그의 라이벌은 야당의 후보 허장훈. 허장훈이라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시켜줄 적임자라고 정관영은 판단한다. 그리고 물밑 작업과 십여차례 이상의 비밀 만남을 통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자신은 막판에 후보지을 사퇴할 게획을 세우게 된다. 과연 이 계획은 성공할 것인가? 허장훈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과연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한 생각1은 전체 국민을 100분위로 나누어서 상위 20분위가 하위 30분위를 하위 70분위와 똑같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바로 '직접 지원'이다. 간접 지원은 공무원들이 생색내기에는 좋지만 실제 빈곤층에게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간접지원은 중간에 있는 여러 단체들만 살찌우는 경우도 많다. 중간에 낭비되는 것 없이 100% 온전히 전달되도록 직접 지원을 해서 빈곤층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즉, 부유층 30%, 중산층 70%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기술적인 문제들이 많이 발생한다. 부유층이 아무 이유없이 도와 줄 것인가? 빈곤층이 지원에 기대어 더 일을 안하는 경우는 어떻게 하는가? 재산을 숨기는 경우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몇 년에 한 번 시행할 것인가? 등등. 수많은 문제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시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생각2는 바로 대통령 선거시에 국민 직접투표로 2명을 결선에 올리고 최종 선택은 추첨으로 뽑는 것이다. 1,2위의 싸움이 피터지지 그 밑으로는 그만큼 치열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감정도 줄어들 수 있다.

 

  
엄청 간단해 보이는 '아이디어' 2가지이다. 그러나, 정말로 이 아이디어로 이 나라가 변화될 수 있고 모두가 희망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속는 셈치고 시도해봐야 한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양극화 해결에 대한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다. 특히 부유층, 가진 자들의 책임감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들이 쌓아올린 부는 그들의 능력으로만 된 것이 결코 아니다. 국민이 없이 그들의 부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책에 나오는 기업인들처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언제 이러한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컬쳐300 으로 부터 제품을 무상으로 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솔직하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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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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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아직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농장에서 탈출하려는 소녀 코라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설에는 실제 지하철도를 통해 소녀 코라가 탈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지하철도'는 사실 그 당시, 남부의 노예들을 북부나 캐나다로 탈출하는 것을 도왔던 비밀 조직을 일컫는다. 저자인 콜슨 화이트헤드는 이 비밀조직을 소설에서 실제 지하철도 부활시킨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휴가철 읽은 책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이야기의 첫 장면부터 인종 차별에 대한 그의 묘사는 아무런 포장 없이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미국에서 신기한 것은 사람이 곧 물건이라는 점이었다. 바다를 건너는 여행을 견뎌내지 못할 노인이 있다면 일찌감치 손을 떼는 것이 최선이었다. 건장한 부족 출신의 젊은 사내에게는 구매자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노에 소녀는 조폐국, 돈을 낳는 돈과 같았다."

 

당시, 미국의 자본가들은 목화 재배에 집중하고 있었다. 문제는 노동력이었다.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사 와서 자신들의 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공장의 부품처럼, 끊임없이 젊은 노동력으로 갈아 끼우는 것이다. 따라서, 흑인들 중에서도 젊은 사내, 혹은 소녀를 선호하였다.

 

코라는 할머니 때부터 농장 생활을 하였고 코라의 어머니 메이블은 농장을 탈출하였다. 농장을 탈출하는 일이 발생하면 농장 주인은 노예사냥꾼을 고용해서 추적을 시작하는데, 코라의 어머니 메이블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잡혀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그들은 잔인한 고문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는 남아 있는 노예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당시, 백인들은 노예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위에 나오는 것처럼 물건 매매하듯이 사고팔았으며, 주인이 부도가 나면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팔려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기분이 나쁘면 이유 없이 때리기도 했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주인의 소유였기 때문이었다. 물건을 쓰다가 버려도 그 물건은 버린 사람한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런 시대였다. 그 시대 백인들은 흑인들을 경멸하였다. 지적인 능력이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흑인들이 글을 읽으려고 하거나 배우려고 하면 무자비하게 때리곤 하였다.

 

결국 목장에서 노예로 있으면 일하다가 죽거나 맞아 죽거나 둘 중 하나인 신세였다. 그래서 코라는 시저가 자신에게 함께 탈출을 제의했을 때 받아들이게 된다. 탈출은 죽음을 각오해야만 했다. 그들이 탈출한 사실이 밝혀지면 바로 말을 탄 추격대가 쫓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상수배를 내걸게 되면 그들은 함부로 밖으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흑인에게 관대한 북부나 캐나다로 최대한 도망가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이었다.

 

물론, 그 탈출을 도와주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흑인의 탈출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 발각되면 그들도 죽음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일인 양 물심양면으로 코라와 시저를 돕는다. 인종차별로부터 벗어나, 한 인격체로서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탈출을 돕고 주거를 마련해주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탈출이 가능했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미국에서도 남부 지방이 인종차별이 심했다는 사실이다. 북부에 있는 지역으로 조금씩 이동할 때마다 코라는 그 사실을 직접 피부로 경험하게 된다. 흑인들도 차별받지 않고 일자리를 구하고 길거리를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는 주가 있는 반면, 흑인들이 보이면 잡아 죽이고 매달아 놓는 주가 있었다. 두 지역 모두 같은 시대, 한 나라에 존재하는 아이러니한 역사적 상황이었던 것이다.

 

물론, 인종차별이 적은 북부 지역도 완전히 평등한 것은 아니었다. 그 예로 코라는 탈출 중간에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일을 했는데, 그 일이 박물관 유리 안쪽에서 선원의 밧줄 매듭과 씨름하는 연기였다. 지금으로 치면 인간 모양의 마네킹이 전시관에 있는 것인데, 그 당시에는 마네킹 기술이 없어서 실제 사람이 들어가 그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흑인의 몫이었다. 

 

또한 시대적으로, 해부학 연구가 제대로 인정을 받으며 시체가 부족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흑인들의 시체들은 그나마 백인들의 시체보다 구하기가 쉬웠다. 무덤에도 따로 보초를 세우거나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죽고 나서야 오히려 더 인간 취급을 받는 모양이었다. 이에 대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 친구들이 수업 시간에 흑인의 시체에 칼날을 갖다 대는 것은 여느 고매한 노예제 폐지론자들 못지않게 흑인의 발전이라는 명분을 위한 것이었다. 죽으면 검둥이도 인간이 되었다. 그때에야 그들은 백인과 동등해졌다."

 

코라는 여러 번의 이동 끝에 자유를 찾는다. 그 자유는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목화 농장 일이 기쁘고 즐거운 일이 되었다.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선생님이 될 수도 있고 시인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녀가 찾은 터전도 결국 백인들에 의해 파괴당한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자유를 찾아 지하철도를 따라 여행을 떠나며 이야기가 끝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에 맞서 자유를 찾아 끝이 도주하는 소녀 코라. 자유를 손에 잡았다고 생각할 때마다 백인에 의해 그 자유는 무참히 파괴되지만 소녀 코라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이동을 한다. 거대하고 차갑도록 냉정한 자본주의와 백인에 맞서는 가냘프고 여린 소녀 코라의 대조를 통해 그 당시의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를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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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7-12-18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슴 아픈 이야기네요 ㅜㅜ

데굴데굴 2017-12-18 10:41   좋아요 0 | URL
네 미국의 노예제도에 대한 가슴 아픈 내용이네요 불과 100년전에 일어난 일이라니 지금은 도저히 상상이 안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