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도정일.최재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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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한다, 타자를 이해한다. 우리말로 하면 역지사지, 바꿔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건데, 기본적으로 타자를 긍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것은 내가 나의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를 열어서 타인을 받아들이거나 내가 나를 버리고 타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책의 서두에 나오는 인문학자 도정일 선생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다. 갈등과 다툼을 넘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바로, 나의 울타리 열기, 그리고 상대방 울타리 열기, 마지막으로 상대방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 이다.

 

'나의 울타리 열기'는 바로 질문에서 시작된다. 

 

몇 주 전에 우연히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더니 자기는 질문하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왜냐고 물어보니 질문하는 것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이고 그건 부끄러운 것이란다. 그래서 질문하지 않을거라고 했다.  

 

이 짧은 대화는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가기 쉽다. 그러나, 단순히 여기서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만 더 연장해서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만약에 이 아이가 질문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럼,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 중에 궁금한 점이 또 생기면 아이는 이어서 대화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나와 아이는 결국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모든 갈등과 다툼을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은 바로 '대화'이다. <대담>은 인문학자 도정일과 자연과학자 최재천의 만남이다. 만나서 이야기가 제대로 진행이 되려나 싶은데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모든 대화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각자의 입장에서 가지고 있는 의문을 상대방에게 던지는 것이다.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거나 상대방의 생각을 궁금해하지 않으면 이 대화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먼저 질문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나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라는 입장을 가진 사람은 상대방에게 질문할 필요가 없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은 사실상은 동의를 구하는 질문이 될 수 밖에 없다. "맞지 않나요?", "그렇지 않나요?" 등 겉으로는 의문형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동의를 구하는 단답형들이다.

 

다음으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고, 이는 악수를 건내는 제스쳐에 해당한다. 다투거나 싸웠을 때 먼저 악수를 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다. 거절당하면 창피와 수모를 당하게 되는데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의사표현이 된다.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질문을 하면 상대방은 대립의 각을 가지고 있다가 누그러뜨리며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전달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물론, 질문을 던질 때 중요한 것이 나의 진심을 담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꼬리를 물기 위한 질문이나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질문하는 것은 화해의 제스펴가 될 수가 없다. 상대방도 이를 바로 알아차린다. 이런 질문은 오히려 불신을 키우고 갈등이 고조시키는 마치 불난집에 부채질하는 것 같은 효과를 일으킨다.

 

다음 단계인 '상대방 울타리 열기'는 바로 질문에 이은 상대방의 답변이다. 진실된 질문을 받게 되면 그에 대한 진실한 답변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곧 상대방이 자신이 울타리를 여는 과정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나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개방하는 것이다. 이는 악수를 내밀었을 때 악수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내밀어 그 손을 맞잡는 행위와 같다. 

 

나의 울타리를 여는 것과 상대방의 울타리를 여는 것은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갈등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울타리를 다시 닫으려는 행위로 이어질 수도 있다. 대화가 단절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담>에서 두 학자가 4년에 걸쳐 대담을 하며 서로의 울타리를 열었더 것처럼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대화의 장을 마련해가면 점점 서로의 울타리를 열게 된다.

 

마침내, 마지막 단계인 '상대방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이다. 상대방의 울타리를 여는 것만으로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이 울타리는 언제라도 닫힐 수가 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나의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마음을 열게 되면 그 다음으로 향할 힘을 얻게 된다. 상대방이란 거울을 통해 나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게 되고 상대방도 동일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의 울타리 안에 그리고 상대방이 나의 울타리 안에 들어올 때 그 힘은 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평화를 만드는 에너지이다. 평화는 아무 것도 없는 조용한 상태, 진공 상태가 아니다. 평화는 다음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 만드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평화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마침내 함께 발전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질문이다. <대담>에서 두 학자의 대화는 특정 이슈와 학문과 관련된 내용 같지만 사실은 바로 이 평화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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