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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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의 판타지를 좋아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On Your Mark>나 제임스 카메론의 <Avatar> 같은 영화나 소설에서 한 번쯤 읽어 봤을 법한 설정이지만, 각자가 속한 사회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자신이 속한 경계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는 볼 때마다 설레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이런 설정이 반복되지만 쉽게 질리지 않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경계에 얽매여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테다. 소속과 경계를 넘어서면 우리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닌 하나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을...

열사의 대지라도 한밤중에는 기온이 5도까지 떨어진다.

- 그건 오래전의 이야기고 우리는 우리지. 신화는 우리를 있게 했지만 우리가 신화를 따라갈 수는 없어. 그로부터 몇천 년이나 세월이 흘렀는지 모르는데, 우리와는 모습도 능력도 달랐을 초원조의 행적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도 없고. - 17

익인들은 나와 미래의 발걸음을 함께해 달라는 의미로, 청혼 상대에게 자신의 가죽신을 벗어 내민다. 대개는 꼭 맞지 않게 마련인 상대방의 신을 신고, 훗날 고난이 닥쳤을 때 배우자의 입장에 서서 한 번 더 고민하고 이겨 내겠다는 다짐을 부탁하는 과정이다. 신체적 특성상 날개를 꺼내서 깃털이라도 한 장 뽑아 주는 게 더 어울리겠지만, 하늘을 자유로이 날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고 땅에 발을 디뎌야 해서다. 땅에 두 발을 내려놓고 걷는다는 것은 날 줄 아는 인간들에게도 각별한 의미다. - 72, 73

나는 그 사람이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어. 우리에게 귀한 것은 이름뿐이었으니까. 서로를 부르고 대답할 수 있는 이름. 부르는 순간 세상에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평화와 친밀감과 흥분을 동시에 주는 이름. 단지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체취를 상기할 수 있는, 동시에 서로의 껍질 안쪽에 자리한 영혼이 돌출되고 마는, 그런 이름 말이야. - 107

세상의 모든 엄마가 자식을 낳아 놓은 것에 대해 일일이 죄책감을 느끼거나 사죄하면서 사는 건 부당하고도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사람은 누구나 그날그날의 감정에 충실할 권리가 있고, 그 결과로 인한 짐을 제 것이 아님에도 나눠서 져야 할 때가 있지. - 113

사람은 왜 자기와 다른 것이나 알지 못하는 것이나 알지 못하기에 비로소 아름다운 것의 비밀을 캐내려는 본능을 타고난 것인지. - 197

동정이어서 안 될 건 또 뭐란 말인가. 동정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가질 수 있는 무수한 현실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동정이 아니라면, 전폭적으로 그 삶을 끌어안고 그 존재를 지지하는, 진실하며 불순율 영에 육박하는 무공해의 애정이라는 게 혹시 존재한다면, 그것이 평생 변질되지 않고 보존되기라도 하나. 그 감정에 영원히 끝이 오지 않기ㄷ라도 하나. 어차피 이 감정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 간에,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최초는 변색 내지 탈색될 운명이라면. - 326, 327

그 어떤 새도 영원히 허공에서만 살 수 없고 언젠가 땅에 내려앉아서 두 발을 더뎌야 한다면, 네가 그의 유일한 영토이니까. - 340

그가 내려앉을 유일한 땅 한 뼘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의 휴식처로 남을 마음이 없어. 그래서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땅을 떠나기로 한 거야.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그럼에도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유한한 인간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라고 생각하니까. -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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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공부법 - 모든 공부의 최고의 지침서
고영성.신영준 지음 / 로크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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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제목 처럼 완벽한 공부법을 표방하면서, 믿음, 메타인지, 기억, 목표, 동기, 노력, 감정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자들이 참고한 많은 서적들의 이야기를 잘 정리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자들이 '창의성'편에서 스티브 잡스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창의성은 단지 사물을 잇는 것"이라고 한다면, 기존의 교육학, 인지심리학, 행동경제학, 뇌과학의 지식들을 이 한 권에 담아 요약하고 정리한 것도 새로운 시도이자 성과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부법'이라고는 했지만, 흔히 말하는 전략이나 공략법은 아니며, 저자들이 중시하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통해 지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시험이라는 단기간의 목표가 없는 사회인들에게는 어쩌면 이러한 근본적인 사고의 확립이 스스로를 성장시켜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열거했던 목차 중 믿음, 메타인지, 기억, 목표 외에도 사회성, 몸, 환경, 창의성을 강조한 것도 눈에 띈다. 공부라는 것이 단지 한 자리에 앉아 열심히 파고드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마지막 3개의 장인 독서, 영어, 일은 앞서 설명한 공부법의 실천편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는 저자 중 한 명인 고영성의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요약한 것이고, 영어는 이들과 함께 팟캐스트에 등장했던 필립이라는 사람의 영어공부 방법이다. 책을 두 명이 공저로 썼고, 그 둘이 각각의 장점이 있는 부분을 집필한 것은 알고 있으나, 매 챕터 말미에 '신박사의 통찰', '고작가의 심화'를 굳이 구분해 놓은 것이나 "고작가는~", "신박사는~"이라는 주어가 너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또 자화자찬이 적지 않아서) 그다지 좋은 편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을 굳이 다 읽고 소화할 필요 없이 이 두꺼운 책 한 권을 통하여 보편적인 방법에서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공부법을 찾는다면 꽤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차려 놓은 것은 많다. 무엇을 취하고, 그걸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는지는 각자가 노력해야 할 사항이다.

기대를 잃어버리는 가장 큰 이유는 성공의 경험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패가 누적되면 자신의 미래에 비관적인 관점을 가질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공의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기대수준을 낮춰 작은 성공에 도전하는 것이다. - 22

몰입이 주는 행복감은 순간적인 쾌감이라기보다 몰입한 뒤 느끼는 감정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하는 만족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몰입하는 순간 자의식이 사라지지만, 몰입 이후에는 더 큰 자아존중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과업 수행으로 자기 성장을 느끼기 때문에 더 행복하다. 최대한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이 숙련되면서 어느 순간 그 일이 쉬워지고 지겨워진다. 그래서 몰입 상태에 다시 들어가려면 과제 난이도를 더 높여야 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실력이 느는 것이다. - 117, 118

하지만 그 꿈이, 비전이, 원대한 목표가 ‘위험한’ 이유는 우리에게 ‘포기’를 수시로 종용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보지만 그 노력을 다 모은다 하더라도 가고자 하는 목표에 비해서 너무나 작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순간이 위험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해도 될 것 같지 않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위험을 극복할 수 있을까? 바로 ‘단기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 156

외재적 보상이 단순히 과제를 수행했다는 사실 자체로 주어질 때는 내재적 동기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지만 ‘성장’의 증거로 주어진다면 내재적 동기가 오히려 더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1등 상이나 우등상을 주기보다 개인 최고 기록상, 성장상 같은 보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자신이 성장하고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에 외재적 보상으로 자신의 능력 향상을 느끼고 자신의 잠재력에 대해 기대감을 품게 된다면 외재적 보상이 사라진 다음이라 할지라도 동기부여가 지속될 가능성이 커진다. 왜냐햐면, 한두 번의 외재적 보상이 <믿음> 장에서 살펴보았던 기대, 성장형 사고방식, 자기효능감 등을 선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매우 강력한 내재적 동기를 수반한다. - 166

"큰 영향을 미치거나 성공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해 낼 확률은 창출해 낸 아이디어의 총수가 많을수록 높아진다."
"아이디어 창출에서는 양이 질을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이다." - 345

우리는 독서하는 뇌가 아니다. 그래서 독서가 어렵다. 하지만 뇌의 가소성으로 독서하는 뇌로 변할 수 있다. 어떻게?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가능하다. 처음부터 양서를 정독하려고 하지 말자. 자신이 초보 독서가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손이 가는 대로 책을 읽자. 하지만 다독을 하자, 매일 한 시간 이상 2~3달 꾸준히 독서를 하면 습관이 형성되는데 이때부터는 서서히 독서가 삶의 일부분처럼 느껴진다. 책 권수를 늘려 나가면서 자신감을 얻자. 그리고 그렇게 만나 본 책 중에 소위 씹어 먹고 싶은 책이 등장하면 정독을 하도록 하자. 처음에는 계독으로 시작해 한 분야의 준전문가가 되고 그다음 남독을 통해 비판적 사고, 창의성, 겸손을 배우도록 하자. -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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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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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이 자자한 책이어서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자는 통계라는 도끼로 독자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편견을 여지 없이 깨버린다. 이런 저자의 노력은 주로 서양인들의 사고에 박혀 있는 서양과 비서양(아시아, 아프리카)의 이분적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고 그 간격 차이에 무수히 많은 중간층을 직시하도록 하는데 할애되었지만, 아시아에 사는 나도 서양인들과 유사한 관점의 편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자가 서두에 제시한 13가지 문제들을 풀다보면, 우리 스스로도 얼마나 많은 편견과 편향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편견을 일종의 '본능'으로 치부하고,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한 본능의 10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논리학에 포함되어 있는 오류의 유형을 현실적으로 변환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이분법적 사고의 틀인 간극 본능 외에도, 숫자와 통계를 보고도 믿으려 하지 않은 부정 본능, 이대로 가면 다 망한다라며 겁을 주는 공포 본능, 그 나라는 어차피 안돼라고 인식하는 운명 본능, 사고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비난할 대상을 찾는 비난 본능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해악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세계는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라는 장미빛 환상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오히려 너무 부정적인 편향성을 없애고 미래에 대한 정확한 대비를 하기 위해서라도 항상 현상 이면의 것을 보도록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자원의 배분, 정책의 수립, 역량의 집중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핵심적 내용은 갈등, 반목,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던지는 시사점이 있다. 현상의 이면을 추적하지 않고 현상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인 줄 알고 이를 전분야에 적용하는 이들, 뉴스와 기사를 읽는 그대로 지식으로 저장하는 많은 이들이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그 지식을 재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름들은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추측하고, 학습할 때 끊임없이 그리고 직관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참고한다. 그래서 세계관이 잘못되면 체계적으로 잘못된 추측을 내놓는다. 한때 나는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이 낡은 지식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람조차 세계를 오해하는 걸 보면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악마 같은 언론이나 선전 선동, 가짜 뉴스, 엉터리 사실 탓도 아니라고 확신한다.
수십 년의 강연과 테스트 경험 그리고 사람들이 사실을 눈앞에 두고도 그걸 잘못 해석하는 방식을 관찰한 경험을 토대로, 나는 마침내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은 우리 뇌의 작동 방식에서 나오는 탓에 바꾸기가 너무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 27, 28

우리에겐 모든 것을 서로 다른 두 집단, 나아가 상충하는 두 집단으로 나누고 둘 사이에 거대한 불평등의 틈을 상상하는 거부하기 힘든 본능이 있다. - 38

한마디로, 세상은 더 이상 예전처럼 둘로 나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다수가 중간에 속한다. 서양과 그 외,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부자와 빈자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간극을 암시하는 이쪽 또는 저쪽이라는 단순한 분류는 쓰지 않는 게 옳다. - 46

사람들은 세계가 점점 나빠진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보기에는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생각이 아닌 느낌을 말할 뿐이다. - 99

언론과 활동가들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려고 극적 상황에 의존한다는 점을 기억하라. 부정적 이야기는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더 극적이다. 장기적으로는 개선되고 있지만, 그중 일시적으로 후퇴하는 상황을 골라 위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게 얼마나 쉬운가. 우리는 서로 연결된 투명한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런 세계에서는 고통을 보도하기가 그 어느 때보다 쉽다. - 104

공포는 유용할 수 있다. 단, 실제로 위험한 것에 공포를 느낄 때라야 그렇다. 공포 본능은 세계를 이해하는 형편없는 지침이다. 공포는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것에 주목하게 하고, 실제로 매우 위험한 것은 외면하도록 한다. - 172, 173

수치보다 눈에 보이는 피해자 개개인에게 지나치게 주목하면 우리 자원을 문제의 일부에만 모두 쏟아부을 수 있고, 따라서 훨씬 적은 목숨을 구할 뿐이다. 이런 원칙은 부족한 자원을 어디에 쓸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경우에 모두 해당한다. 목숨을 구하는 문제나 삶을 연장 또는 개선하는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자원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매정한 사람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자원이 무한하지 않은 한(자원은 절대 무한하지 않다) 머리를 써서 지금 있는 것으로 가장 좋은 일을 하는 게 오히려 가장 인간적이다. - 181, 182

율을 왜곡하기는 매우 쉽지만, 다행히 그것을 막을 쉬운 해결책이 있다. 나는 많은 수를 비교해야 할 때,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을 골라야 할 때 가장 쉬운 생각 도구를 이용한다. 가장 큰 수를 찾는 방법이다.
이것이 ‘80/20 법칙’의 전부다. 우리는 나열된 모든 문제를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그중 더 중요한 문제가 몇 개 있다. 사망 원인에 관한 문제든, 예산에 관한 문제든 나는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문제에 먼저 주목한다. 더 작은 문제에 시간을 쓸 때는 먼저 이렇게 자문한다. 80%는 어디에 있지? 왜 이 문제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할까? 그것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 191

나는 국가별 ‘총’배출량을 기초로 중국과 인도를 기후변화의 주범이라고 조직적으로 비난할 때면 더러 오싹하다. 그것은 중국 전체 인구의 몸무게 합이 미국보다 크다고 해서 미국보다 중국에서 비만이 더 심각하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국가별 총배출량을 문제 삼는 주장은 나라마다 인구가 크게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된다. 이 논리대로라면 전체 인구가 500만 명인 노르웨이는 1인당 이산화탄소를 아무리 많이 배출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국가별 총배출량이라는 큰 수치를 해당 국가의 인구로 나눠야 의미가 있고, 비교 가능한 수치가 된다. - 199

우리는 비교 불가능한 여러 집단을 일반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우리 논리에 숨은 광범위한 일반화를 찾아내려고 또 노력해야 한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언제든지 예전의 단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재평가해 우리가 틀렸다는 사실을 기꺼이 시인해야 한다. - 231

"아이한테 망치를 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가치 있는 전문성을 지닌 사람은 그 전문성을 활용할 곳을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전문가는 더러 어렵게 얻은 지식과 기술을 본래의 활용 영역을 넘어선 곳에도 적용할 방법을 고민한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수에 집착하고, 기후 활동가는 틈만 나면 태양에너지를 강조한다. 의사는 예방이 더 나을 법한 경우에도 치료를 장려한다.
훌륭한 지식을 해결책은 찾는 전문가의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 여러 해법이 모두 그 나름대로 특정 문제를 훌륭히 해결할 수 있겠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해법은 없다. 따라서 세계를 다양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 273

비난 본능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중요성을 과장한다. 잘못한 쪽을 찾아내려는 이 본능은 진실을 찾아내는 능력,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방해한다. 비난 대상에 집착하느라 정말 주목해야 할 곳에 주목하지 못한다. 또 면상을 갈겨주겠다고 한번 마음먹으면 다른 해명을 찾으려 하지 않는 탓에 배울 것을 배우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문제를 해결하거나 재발을 방지하는 능력도 줄어든다.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지극히 단순한 해법에 갇히면 좀 더 복잡한 진실을 보려 하지 않고, 우리 힘을 적절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295

우리 언론은 자유롭고 전문적이며 진실을 추구하겠지만, 언론의 독립성과 그들이 보도하는 사건의 대표성은 다르다. 모든 보도가 그 자체로는 전적으로 진실이라도 기자가 세상에 알리기로 선택한 진실 이야기를 여럿 모으면 오해할 만한 그림이 나올 수 있다. 언론은 중립적이지도 않고, 중립적일 수도 없으며, 그걸 기대해서도 안 된다. - 301

데이터는 진실을 말하는 데 사용해야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행동을 촉구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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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5-21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생각하는 진리는 언젠가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 불필요한 논쟁을 줄일 수 있거든요. 나와 다른 주장에 맞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a먼저 내 주장이 진실에 근접한지 검토하는 데 집중해야겠습니다.

붉은눈 2019-05-27 19:3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보려는 부분만 부각해서 보고, 미리 결론을 내고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거나, 상대방의 합리성을 속으로는 감지하였으면서도, 제 마음속으로 철벽을 쳐놓은 채 절대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온갖 이유를 대며 논쟁했던 적이 꽤 많이 있었네요. 말씀처럼 내가 확고하게 믿고 있던 진리조차도 틀릴 수가 있다는 유연성이 필요한데 말이죠.
 
퍼스트 러브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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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아버지를 죽였다. 작가는 살인사건의 결과를 먼저 공개한다. 결과를 먼저 공개하고 그 결과 속에 숨어 있는 이유를 살펴 나가는 소설이다. 스릴러나 추리극에 많이 나오는 기법으로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으니, 그 인과를 한 꺼풀씩 벗겨내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피의자(칸나)의 상태를 보여주고 다시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이래도 이 사람을 비난할 것인지.


기막힌 서스펜스나 반전이 있지는 않다. 딸(여성)이 아버지(남성)를 죽였다는 것에서 막연한 성적(性的) 연유를 추정해봄직 한데, 작가는 일종의 성적 트라우마로 인한 살인이라는 범죄의 연유를 차근차근히 밝히면서 피의자와 관련된 사람들(변호사, 임상 심리사, 그의 남편) 사이에 얽혀 있는 관계도 조명한다. 살인사건을 변호하기 위해, 그녀와 상담을 하면서 책을 쓰기 위해 엮인 이들의 과거를 드러내면서, (1) 숨겨진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풀고 (2) 사건의 의문점을 해소함에 따라 주변인들의 얽힌 관계도 풀어가는 방식이다.


그런데 제목이 왜 '첫 사랑'일까. 그건 아이였던 칸나가 친모에게 느꼈어야 할 사랑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이 사건의 원인으로 본 것은 아니었을까.

스튜디오로 이어지는 길은 길고 지나치게 하얗다.

"있죠, 나나미 씨, 전에 본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었어요.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다, 더 많은 것을 잃는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 18

고독과 성욕과 사랑을 구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젊으면 더욱 그렇다. 다만 나나미가 또 큰 상처를 입기 전에, 스스로 그 상황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랐다. - 19, 20

불현 듯, 엉엉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처럼 울어서 마음속에 고인 감정을 털어 내고 싶었다.
그러나 감정은 거기까지 치닫지 않은 채 잠과 피곤함에 떠밀려 깊숙이 가라앉고 만다. 우는 데도 젊음과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 67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책임 전가도 아니거니와 도피도 아니다. 지금을 바꾸려면 단계와 정리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것에 뚜껑을 덮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 척 처신해봐야, 등에 들러붙은 것의 지배가 계속될 뿐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지금 속은 물론이고, 과거 안에도 있기 때문이다. - 258,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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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다식한 경제학자의 프랑스 탐방기 - 아들이 묻고 경제학자 아빠가 답하는 아주 특별한 수업
홍춘욱 지음 / 에이지21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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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저자가 썼던 경제서적과는 다른 종류의 책이라서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여행기'가 아닌 '탐방기'로 제목을 단 것으로 보아, 목적이 여행 자체보다는 무엇을 알아내기 위한 방문으로 읽혔는데, 그것은 아들과 함께한 여행이었으나 아들의 물음에 답을 했던 주제로 추후 다시 글을 썼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중2 아들과 여행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데, 아들이 호기심과 궁금증이 이리 많다니, 그리고 아빠가 그걸 답해주기 위해 노력한 결과를 이렇게 책으로 엮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많은 질문들 중에 일부를 선정하고 그것을 써나갈 내용에 맞게 재편한 것일테지만, 프랑스의 도시 형성, 파리의 높은 지가, 베르사유궁전의 화려함, 도시마다 위치한 상징적인 성당, 그림, 프로방스 지방 도시의 위치, 파리의 맛집, 유색인종(외국인)의 노동 분야 등 흥미로운 주제로 엮여 있고, 이러한 주제에 대해 역사적 배경과 비교를 통하여 쉽게 설명해준다. 읽다보면 설명이 무척 매끄러워 당연하게 느껴지는 대목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깊이의 낮음을 비판할 정도는 아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목차에 역거된 11가지 질문 중 즉시 대답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었는지, 저자처럼 설명을 할 수 있을지를 자문해보면 그런 비판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2015년 말 예전 직장을 그만두고 큰아들 채훈이와 프랑스 여행을 계획하면서 많은 역사책을 읽었습니다.

파리의 주택난과 비싼 주거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의 신도시 건설을 주장하는 쪽도 있지만, <르몽드>지 칼럼니스트는 정반대의 입장입니다. ‘파리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박물관입니다’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파리 시민의 자긍심을 감안하면 대대적인 주택 건설은 힘들어 보입니다. - 45

유럽은 알프스 산맥과 피레네 산맥 등 아주 큰 산맥이 각 지역을 갈라놓는데다 다뉴브 강, 라인 강, 엘베 강처럼 거대한 강이 여럿 존재하며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런 지리적 특성상 여러 개의 중심권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와 같은 다(多) 중심성이야말로 중국 문명과 달리 유럽이 여러 개의 나라로 분열된 원인이라고 봐야 합니다. - 71

중국이 아주 적은 생산량 증가를 위해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는 동안 영국에서는 전혀 다른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원래 인구가 적고 1인당 소득도 높으니 저축 수준도 높습니다. 이처럼 높은 소득수준은 ‘기계’ 투자의 저항감을 낮춥니다. 왜냐하면 사람 몸값이 비싸니까 대신 기계를 써서 고용을 절약하는 게 남는 장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옥스퍼드 대학교 로버트 앨런 교수는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하려면, 영국의 발명가들이 많은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하는 기계를 만드는 데 몰두했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증기기관을 비롯한 값비싼 기계는 노동을 절약할 수 있었죠. 워낙 영국의 인건비가 비쌌기에 기계는 충분히 값을 했습니다. 반면 베이징에서는 이익이 나지 않습니다. - 97

중국은 인건비가 싸고 사람도 넘치니까 웬만한 일은 그냥 사람을 쓰는 방향으로 갑니다. 반대로 영국은 사람도 적고 인건비도 비싼 편이니 인건비를 절약하는 종류의 기계를 사용하는 데 거침이 없고. 특히 영국은 발명 특허권이 잘 발달되어 있어 발명가가 큰돈을 벌 수 있었다는 것도 한몫했습니다. - 97, 98

중국산 도자기 못지않게 자신의 ‘감식안’을 드러내는 방법은 미식이었습니다. 지금 마시는 와인이 어디에서 생산된 것인지, 요리가 어떤 면에서 독창적인지 파악하는 것은 상류 계급 사교의 핵심 요인으로 부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심은 미쉐린 가이드 덕분에 더욱 확대되고 재생산되었습니다. -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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