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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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의 판타지를 좋아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On Your Mark>나 제임스 카메론의 <Avatar> 같은 영화나 소설에서 한 번쯤 읽어 봤을 법한 설정이지만, 각자가 속한 사회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자신이 속한 경계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는 볼 때마다 설레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이런 설정이 반복되지만 쉽게 질리지 않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경계에 얽매여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테다. 소속과 경계를 넘어서면 우리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닌 하나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을...

열사의 대지라도 한밤중에는 기온이 5도까지 떨어진다.

- 그건 오래전의 이야기고 우리는 우리지. 신화는 우리를 있게 했지만 우리가 신화를 따라갈 수는 없어. 그로부터 몇천 년이나 세월이 흘렀는지 모르는데, 우리와는 모습도 능력도 달랐을 초원조의 행적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도 없고. - 17

익인들은 나와 미래의 발걸음을 함께해 달라는 의미로, 청혼 상대에게 자신의 가죽신을 벗어 내민다. 대개는 꼭 맞지 않게 마련인 상대방의 신을 신고, 훗날 고난이 닥쳤을 때 배우자의 입장에 서서 한 번 더 고민하고 이겨 내겠다는 다짐을 부탁하는 과정이다. 신체적 특성상 날개를 꺼내서 깃털이라도 한 장 뽑아 주는 게 더 어울리겠지만, 하늘을 자유로이 날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고 땅에 발을 디뎌야 해서다. 땅에 두 발을 내려놓고 걷는다는 것은 날 줄 아는 인간들에게도 각별한 의미다. - 72, 73

나는 그 사람이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어. 우리에게 귀한 것은 이름뿐이었으니까. 서로를 부르고 대답할 수 있는 이름. 부르는 순간 세상에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평화와 친밀감과 흥분을 동시에 주는 이름. 단지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체취를 상기할 수 있는, 동시에 서로의 껍질 안쪽에 자리한 영혼이 돌출되고 마는, 그런 이름 말이야. - 107

세상의 모든 엄마가 자식을 낳아 놓은 것에 대해 일일이 죄책감을 느끼거나 사죄하면서 사는 건 부당하고도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사람은 누구나 그날그날의 감정에 충실할 권리가 있고, 그 결과로 인한 짐을 제 것이 아님에도 나눠서 져야 할 때가 있지. - 113

사람은 왜 자기와 다른 것이나 알지 못하는 것이나 알지 못하기에 비로소 아름다운 것의 비밀을 캐내려는 본능을 타고난 것인지. - 197

동정이어서 안 될 건 또 뭐란 말인가. 동정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가질 수 있는 무수한 현실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동정이 아니라면, 전폭적으로 그 삶을 끌어안고 그 존재를 지지하는, 진실하며 불순율 영에 육박하는 무공해의 애정이라는 게 혹시 존재한다면, 그것이 평생 변질되지 않고 보존되기라도 하나. 그 감정에 영원히 끝이 오지 않기ㄷ라도 하나. 어차피 이 감정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 간에,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최초는 변색 내지 탈색될 운명이라면. - 326, 327

그 어떤 새도 영원히 허공에서만 살 수 없고 언젠가 땅에 내려앉아서 두 발을 더뎌야 한다면, 네가 그의 유일한 영토이니까. - 340

그가 내려앉을 유일한 땅 한 뼘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의 휴식처로 남을 마음이 없어. 그래서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땅을 떠나기로 한 거야.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그럼에도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유한한 인간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라고 생각하니까. -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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