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러브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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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아버지를 죽였다. 작가는 살인사건의 결과를 먼저 공개한다. 결과를 먼저 공개하고 그 결과 속에 숨어 있는 이유를 살펴 나가는 소설이다. 스릴러나 추리극에 많이 나오는 기법으로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으니, 그 인과를 한 꺼풀씩 벗겨내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피의자(칸나)의 상태를 보여주고 다시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이래도 이 사람을 비난할 것인지.


기막힌 서스펜스나 반전이 있지는 않다. 딸(여성)이 아버지(남성)를 죽였다는 것에서 막연한 성적(性的) 연유를 추정해봄직 한데, 작가는 일종의 성적 트라우마로 인한 살인이라는 범죄의 연유를 차근차근히 밝히면서 피의자와 관련된 사람들(변호사, 임상 심리사, 그의 남편) 사이에 얽혀 있는 관계도 조명한다. 살인사건을 변호하기 위해, 그녀와 상담을 하면서 책을 쓰기 위해 엮인 이들의 과거를 드러내면서, (1) 숨겨진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풀고 (2) 사건의 의문점을 해소함에 따라 주변인들의 얽힌 관계도 풀어가는 방식이다.


그런데 제목이 왜 '첫 사랑'일까. 그건 아이였던 칸나가 친모에게 느꼈어야 할 사랑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이 사건의 원인으로 본 것은 아니었을까.

스튜디오로 이어지는 길은 길고 지나치게 하얗다.

"있죠, 나나미 씨, 전에 본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었어요.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다, 더 많은 것을 잃는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 18

고독과 성욕과 사랑을 구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젊으면 더욱 그렇다. 다만 나나미가 또 큰 상처를 입기 전에, 스스로 그 상황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랐다. - 19, 20

불현 듯, 엉엉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처럼 울어서 마음속에 고인 감정을 털어 내고 싶었다.
그러나 감정은 거기까지 치닫지 않은 채 잠과 피곤함에 떠밀려 깊숙이 가라앉고 만다. 우는 데도 젊음과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 67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책임 전가도 아니거니와 도피도 아니다. 지금을 바꾸려면 단계와 정리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것에 뚜껑을 덮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 척 처신해봐야, 등에 들러붙은 것의 지배가 계속될 뿐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지금 속은 물론이고, 과거 안에도 있기 때문이다. - 258,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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