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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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프롤로그 때문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학회 뒷정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다가 문득 정이현의 소설 <안녕 내 모든 것>이 떠올라, 펑펑 울었다. 읽은 지 오래되어 주인공의 이름이 세희인지 세미인지도 어렴풋한 그 책의 짧은 제목이 너무나 아프게 가슴을 헤집었다. '교수', '연구자'라는 알량하고 모호한 이 한 단어의 인간이 되기 위해 무엇과 작별하며 살아왔는가, 생각하니 비로소 한없이 부끄러웠다." - 10

듣고 보니 그랬다. 나는 항상 예전과 같이 그대로인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 살고는 하는데, 나도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잃은 채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책은 90년대 청소년기를 그린 소설이다. 아마도 작가가 겪었을 법한, 혹은 견뎌냈을 법한 시기의 사건들 - 김일성의 죽음, 외환위기, 삼풍백화점 붕괴 등 - 이 세미, 준모, 지혜라는 세 명의 친구들에 의해 그려진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세미의 이야기로 할애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기억을 독자들에게 끌어내는 존재는 세미가 아닌 지혜인듯 하다. 그는 "한번 듣거나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 특별한 기억력의 소유자이기도 하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세미와 조우하는 화자의 역할을 하는 것도 지혜이다. 그 외의 에피소드들은 세미나 준모가 스스로를 '나'로 칭하는 1인칭으로 전개되지만, 나는 어째 이러한 이야기들이 모두 지혜의  기억이 이들로 변모되어 재구성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의 죽음, 대학진학이라는 그 시기에 이들에게 닥친 큰 사건을 시점으로 이들은 뿔뿔히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게 된다. 학창시절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혹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친구와의 헤어짐과 사회인으로의 삶이 시작되고 익숙해지면서, 우리와 같이 이들도 아마 잊은 것 같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무언가와 점차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이런 상황에서 잊고 있던 것이 드러난다. 바로 지혜의 갑작스런 방문이다. 세미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중형차를 몰고, 차 뒤에 놓인 카시트에 앉힐만한 애를 키우고 있는 모습으로 지혜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가 세미에게 요청한 것은, 그들이 죽을 때까지 비밀에 부쳐야 했던 사건(할머니의 죽음)에 관한 기억이었다. 


지혜의 그 '특별한 기억력'에 의해서도 찾을 수 없었던 할머니의 무덤, 그 무덤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결코 훼손될 것 같지 않았던 친구들과의 우정(이 사건에서만큼은 '의리')과 비밀은 아니었을까. 성장과 함께 잊은 채 살고 있었던 그들이 회상하게 된 유년시절은 더이상 예전과 같지 않은 느낌의, 혹은 이미 잃어버린 기억의 부스러기였던 것은 아닐까. 지혜와 세미가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어찌보면 더이상 지금과 같지 않은 예전의 그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새는 가끔 내 인생의 목표가 오로지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용히 닳아가는 것. - 8

어른들은 원래 그런 일을 할 때 애들이 있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어떤 일인지 애들은 당연히 모르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애들은 그럴 때는 서로서로 짐짓 모르는 척해주어야 한다는 삶의 지혜를 자연스레 습득하게 된다. - 42

시간이 초 단위로 줄어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일초보다 더 정밀한 시간의 단위에 대해 생각했다. 5, 4, 3, 2, 1…… 0. 줄어든다는 것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는 의미였다. 사라진다는 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 151

우리는 각각 삼각형의 다른 끝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 164

서툰 희망이 생 전체를 서서히 좀먹어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단호하게 체념하는 법을 배우기에 적절한 밤이었다. - 168

불행은 틈을 주지 않고 들이닥친다. 해석하거나 납득하려 들 필요는 없다. 해석되지도 납득되지도 않는 것, 그것이 불행이 가진 본성이니까. 이상한 낌새를 채고 어, 어, 어쩌지, 하는 순간에 불행은 토네이도처럼 사정없이 휘몰아친다. 정신을 차려보면 움푹 꺼진 구덩이와 그 주변에 어지러이 널린 일상의 잔해뿐이다. 잔뜩 물때가 끼어 있는 불투명 욕실 슬리퍼 한쪽. 그런 것만이 우리가 간신히 목격할 수 있는 불행의 실체이다. - 174

조금씩 방치된 부주의는 곧 더는 숨길 수 없게 된다. - 202

바늘만한 구멍이 뚫려 점점 허룩해져가는 설탕 자루를 질질 끌며 돌아오는 가난한 가장처럼 나는 자구만 헛헛했다. - 203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 명제는 참이며, 그렇다고 해서 그게 꼭 부모가 행복하다는 뜻은 아님을 나는 알게 되었다. - 213

당분간이란 잠깐과 얼마나 비슷한 단어이고 또 다른 단어일가. 얼마의 틈을 당분간이라고 하는 걸까. 그 당분간이 지나간 뒤에 우리가 다시 모인대도 우리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 길 위를 나란히, 서로의 등을 밀려 걷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 215

내가 끔찍이도 두려워했던 것은 혼자 남겨지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혼자인 사람이 오직 나 혼자뿐인 거였다. 준모도 지혜도 어딘가에 혼자 있을 거라 생각하면 아무리 우스운 영화를 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어른들은, 어른이 되면 원래 다 그런거라고들 말했다.
‘너의 아이가 살고 있는 아침의 집에 너는 꿈에도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른을 며칠 앞둔 어느날,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려보았다. 안녕, 아침의 집. 안녕, 내 모든 것. - 228, 229

진심이라는 단어에 영원성이 내포되어 있지 않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때의 나에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와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건, 혼자만 배제되는 것이었다. 비겁하다고 낙인찍히는 것이었다. - 233

내 안의 구덩이에 뒤죽박죽으로 저장되어 있다가 별안간 용솟음쳐오르는 기억의 파편들. 그 파편들을 되는대로 잡아채 줄줄 써내려갔다. 튀어나오는 대로 다 붙잡고 싶은데, 손의 속도가 기억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손의 속도는, 기억의 속도보다도 말의 속도보다도 느렸다. 그 틈새에 깃든 고요함에 대해 나는 아주 천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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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지음 / 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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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다보면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까워 한 장 한 장 아껴 읽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단숨에 읽어버린다. 책의 내용이나 작가의 글 자체가 재미가 있어서 그럴수도 있고, 빨리 읽고 치워버리고 싶어서 일 수도 있고, 기대했던 부분을 아직 발견하지 못해 허겁지겁 숨겨져 있을 법한 대목을 찾느라 그럴 수도 있다. 이석원의 에세이는 출간 즉시 사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 어떤 이유에서인지 - 책을 빠르게 읽어 버렸다.


지난 두 권의 에세이에서는 어찌보면 나약하고 감성적인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동질감이나 사랑과 이별에 관한 아련한 감정의 공유, 또는 나보다 한층 더 깊고 섬세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니, 이석원도 늙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것은 그가 늙어가는 만큼 그가 쓴 책의 독자인 나도 늙어간다는 점이었다. 세월의 지남이나 나이 듦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글의 분위기와 소재, 그가 - 굳이 -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려는 바가 예전처럼 신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40대 중반에 철없는 사랑이야기만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독자인 내게 저자에게 바랐던 것은, 언제고 그대로 일 것 같은 그의 서툰 감정과 그것을 반추함으로써 깊어지는 사색이었다. 


제목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은 역시나 이석원스러웠다. 그러나 정작 그 제목에 딸린 글, 목차에서도 일부로 흐리게 표시한 그 대목, 책을 읽으며 앞부분의 부족함을 만회할 한방처럼 찾아 헤맸던 그 부분은, 제목 이상의 무언가를 주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이제 그의 시선과 생각이 머무르는 곳이 더는 예전과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책 중간중간에 다른 포인트(마지막 한 부를 남기고 작가의 말)를 주고 한 면을 한 줄 또는 단 몇 줄의 문장으로 채우고자 한 대목에서는 특별한 임팩트가 없다는 점에서(<무릎팍도사> 종영은 도대체...).


사랑과 이별에 대한 추억, 택시, 풍경, 관계, 건강, 엄마, 아빠, 크리스마스, 여행, 친구, 암, 글쓰기, 인정... 많은 소재를 제목로 한 짧은 글에 밑줄 치고 싶은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것은 - 정작 내가 밑줄은 하나도 긋지 않은 - '단어들'이라는 부록이었다. 책의 끝부분에서 정작 본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의 향취를 잠시 맡고 책을 덮는다.   


이 책에서도 서너번 언급된 <보통의 존재>만한 역작을 앞으로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후의 글들은 모두 그 책의 주석일 수밖에 없을지도...

나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의 모습을 보는 일은
그 자체로 상처가 되어 내게 다시 돌아온다.

그러므로 상처 입은 나는
한편으로 그 상처를 되돌려받았을 너를 걱정하고 있다.

나는 지금
누구의 상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걸까.

우리 둘의 상처가 다르지 않다면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 16

대화란, 내 말이 맞음을 일방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느 때는 일치의 쾌감을 얻기도 하고 어떨 때는 다름의 묘미를 깨닫기도 하는 , 말로 가능한 최고의 성찬이다. 서로를 신뢰하기에 의견이 달라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말의 부딪침 속에서 대화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게 바로 통하는 사이가 아닐까? - 33

항시 나를 가장 오해하기 쉬운 존재는 오히려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를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안다는 그 확신에 찬 전제가 늘 속단과 오해를 부른다는 걸 알기에, 나는 누굴 안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으려 한다. 당연히 상대도 그러지 않기를 가까울수록 더 바라고. 그건 내가 복잡하거나 대단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든 몇 마디 말이나 경험으로 판단되고, 규정도리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 34

어쩌면 삶 전체를 통틀어 좋게좋게 웃음과 예의로서만 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이 공허한 인간관계에서, 나로 하여금 솔직함을 이끌어 내줄 수 있는 사람,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이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이고 행운인지를. - 39

욕망의 실현이 아닌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한 자유, 그것을 누릴 소중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 - 61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 64

사람이 책임을 질 수 없는 대상에게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책임감은 애초부터 그걸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 68

삶이 나에게, 이미 작은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거듭 감사를 표해왔는데도 만족 못하고 더 감사의 기도를 원한다면 더더 낮데 엎드리며 순응하는 수밖에. -88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지 숫자가 늘어나고 얼굴에 주름 몇 개가 늘어가는 일이 아니었음을, 그래서 노력하고 씩씩해지지 않으면 그 무게에 언제고 잠식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일임을. - 89

엄마가 바쁘지 않으면 다른 가족들이 살 수가 없으니까
엄마들은 항상 바쁠 수밖엔 없는 거다. - 100

우리들의 아늑한 보금자리는 어째서
다른 가족들이 떠민 일을 누군가 떠안는 희생과 수고로 지탱되어올 수밖엔 없었던 걸까. - 101

왜냐하면 생활 습관과 가치관의 차이란 가족이라 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란 걸 슬프지만 인정할 때가 누구나 오기 때문이다. 그걸 늦게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린 해결되지 않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는 쏟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 116

빠져나갈 출구를 마련해놓고
하는 사랑은 사랑도 아니다.
사랑을 예감하게 되었을 때
네가 해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상처투성이가 될 각오
그거면 되는 것이야. - 133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서 나에게나 스스로에게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그런 자세를 변함없이 오래 유지한다면 어찌 사랑의 묘약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 139

책은 왜 읽지? 좋아서 읽는다. 그게 내게 뭘 주기 때무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여행도 마찬가지다. 그게 내게 뭘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떠나고 싶어서 떠난다. 지르는 건 아무리 해도 좋은 일. 움츠리고 망설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 그래서 나는 떠난다. 돌아올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 168

너를 아파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법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 171

만약 내가, 인생의 끝자락에, 시간적으로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도 없는 시기에, 저렇게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면. 난 견딘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후회라는 걸 잘 하지 않는 이유가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며 내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그래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싫고 두려웠던 것이다. 그것이 내 지나온 생애가 후회로 결론지어지는 문제라면 더더욱. - 184

대체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때로 평생이라는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어떨 땐 한쪽이 죽고 나서야 겨우 이뤄지는 수도 있다. 이해라는 건 그만큼 하기도 받기도 어려운, 그래서 더 귀한 것이다. - 195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기보다 자신이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그래서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하는, 그런. - 202

세상의 어떤 명서도 내 그릇만큼 읽힌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오랜만에 집을 떠나면서 나는 외롭지 않고 불편하지 않으려 조바심치다 그 모든 것들이 여행이 아닌 구격이 되어버렸다. - 228

나는 활자를 찬양하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 활자를 사랑하면 그 마음을 글로 표현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입에 그 말을 담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때로는 말로 해줄 필요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상대가 믿게끔 행동하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244

행복이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닌 대체로 작고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은 진즉에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사소하고 평범한 듯 보이는 것들의 가치를 알고 지켜가기가 쉽지 않으니 결국 행복이란 가치 앞에서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은 작은 게 아니더라. 일상은, 일상의 평화라는 건, 노력과 대가를 필요로 할 만큼 힘겹게 지켜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것이더라. - 251

이제 나는
간절함보다는
그리움이 많은
사람이 된 것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의 하늘은 이렇구나.

가끔은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생각나는 대로 두는 것도 좋겠다. - 265

참 열심히 게을렀고
꾸준히도 무책임했으며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사랑했던

한 번뿐인 것으로 충분했던 시절. - 291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 말자.
희망과 절망은 해와 달 같은 것이어서
하나가 뜨면 하나가 지고 하나가 지면 또하나가 뜨는 법이니까.

우리는 그저
비바람이 치는 이 순간을 영원할 거라고
믿지만 않으면 된다. -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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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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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포츠에 관한 책이다. 대부분의 스포츠들이 그렇지만 축구, 야구와 더불어 가장 남초적인 스포츠인 하키선수들이 어떻게 싸우고 패하고 승리하는지를 흥미진진하게 그린 책이다. 이 책은 다른 세계에 관한 책이다. 승리하거나 패배하거나 두 가지의 상황 밖에는 없는 스포츠 경기에서 반정도 미쳐버린 십대 남자들로 구성된 집단들이 오로지 승리만을 갈구하고 그것을 쟁취해야만 하는, 일반인들과의 일상과는 또 다른 선수들의 세계를 쓴 책이다. 이 책은 태도에 관한 책이다. 호감의 표시를 곧 성(性)관계의 승낙으로 착각하는 남자에게, 그것들은 서로 구분되어야 하며 인간관계란 결국 상대방의 동의를 어림짐작으로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소통하고 그로 부터 이해와 승낙을 구해야 하는 관계임을 말하는 책이다. 이 책은 투쟁에 관한 책이다. 공동의 선을 위하여 침묵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 지역 최고의 슈퍼스타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진실을 알리기 위하여 벌이는 한 소녀와 그 가족들의 힘겨운 싸움을 쓴 책이다. 이 책은 부조리에 관한 책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에 관하여 날조하는 무리들, 진실을 매수하려는 무리들, 침묵을 통하여 공동의 이익을 맛보려는 무리들에게 둘러싸인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는 책이다. 이 책은 가족과 우정에 관한 책이다. 세상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려도 끝까지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유일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나이가 들면 가장 힘들어지는 것 가운데 하나가 너무 늦어서 바로잡을 수 없는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힘을 소유하고 있을 때 가장 안 좋은 게 가끔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 82

"아슬아슬하게 졌다고? 야, 배에 아슬아슬하게 못타는 것도 있냐? 배에 타든지 물에 빠지든지 둘 중 하나지. 다른 새끼들도 다 물에 빠졌는데 네가 맨 마지막에 빠지거나 말거나 상관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아?" - 84

"재능이라는 건 풍선 두 개를 하늘로 띄워 올리는 것과 같아. 이때 관전 포인트는 어느 풍선이 더 빠르게 올라가느냐가 아니라 어느 풍선에 달린 줄이 더 긴가 하는 거지." - 86

어른이면 누구나 완전히 진이 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을 겪는다. 뭐 하러 그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싸웠는지 알 수 없을 때, 현실과 일상의 근심에 압도당할 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렇다.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그런 날들을 생각보다 더 많이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끔찍한 사실이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이 견딜 수 있을지 정확하게는 모른다는 것이다. - 88

고백하자면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그녀는 출근길에 해방감을 느낀다. 스스로 일을 잘한다는 걸 알기 때문인데, 부모 노릇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가장 기쁜 날(휴가길에 페테르와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노닥거리고 모두들 웃으며 행복해하는, 그 조그맣고 아른아른한 순간들)에도 미라는 거짓 인생을 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 순간을 누릴 자격이 없는 듯한, 포토숍으로 꾸민 가족사진을 남에게 보여주는 게 목적인 듯한 기분이 든다. – 93

이 세상에 전직 하키 선수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들의 체온은 일반인 수준으로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주변에서 사회 복귀를 도모하려 하지만 전우나 적군의 부재로 망연히 표류하는 귀환병 같다고 보면 된다. 페테르는 평생 스케줄과 버스 이동과 로커룸으로 쪼개진 인생을 살았다. 식단과 훈련 시간, 심지어 수면 시간까지 정해져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가르치기 가장 힘든 개념이 바로 ‘일상’이다. - 97

결혼 생활은 연수가 쌓이면 복잡해진다. 오래도록 결혼 생활을 유지한 사람들 대부분이 가끔 이렇게 자문할 정도로 복잡해진다. ‘내가 이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상대방을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새로운 누군가와 이만큼 알아나가는 과정이 귀찮아서일까?’ - 125

하지만 살다보면 물에 빠지거나 거기서 헤엄쳐 나오거나 둘 중 하나일 뿐, 다른 건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그런 시점이 찾아온다. - 142

"그럼 우리가 그 아이들한테 바라는 게 뭘까요, 라모나? 그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요? 거기에 평생을 바쳐서 얻을 수 있는 게 기껏해야 뭘까요? 찰나의 순간들... 몇 번의 승리, 우리가 실제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몇 초의 시간,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된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에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 153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건 찰나의 순간들뿐이지. 하지만 페테르,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인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 154

아이들이 어렸을 땐 아이스링크 관중석에서 이성을 잃는 수많은 부모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아이들의 취미 생활은 단순히 아이들의 취미 생활에 그치지 않는다. 부모도 몇 년에 걸쳐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희생하고 엄청난 돈을 쏟아붓기에 그들의 이성까지 마비가 된다. 그것이 상징하는 바가 확대되고, 보모의 실패했던 기억을 보상하거나 강화하기 시작한다. 미라도 이게 얼마나 한심한 소리인지 안다. 그녀도 이게 한심한 스포츠의 한심한 시합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오늘은 페테르와 청소년팀과 구단과 이 마을을 감안해서 마음을 졸이는 게 아니라 그녀도 내심 조마조마하다. 그녀도 저 밑바닥에는 뭐라도 하나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 - 155, 156

어떤 팀의 자부심은 다양한 데서 생길 수 있다. 장소에 대한 자부심,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 아니면 한 사람에 대한 자부심. 우리가 스포츠에 몰입하는 이유는 우리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와 더불어 스포츠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위대해지는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 170

하키를 종교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하키는 믿음과 같다. 종교는 나와 타인들 간의 문제고 해석과 이론과 견해로 가득하다. 하지만 믿음은... 나와 신의 문제다. 심판이 센터 서클로 미끄러지듯 나와서 두 선수 사이에 설 때, 스틱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까만 원판이 그 사이로 떨어지는 게 보일 때 느껴지는 무엇이다. 바로 그때 그것은 나와 하키만의 문제가 된다. - 178

사람들은 가끔 슬픔은 정신적인 것이고 갈망은 육체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는 상처고 다른 하나는 절단된 팔이나 다리, 꺾인 줄기에 달린 시든 꽃잎이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바짝 붙어서 성장하다보면 결국에는 한 뿌리를 공유하게 된다. 우리는 상실을 논하고 치유하고 시간을 두고 기다릴 수는 있지만 생물학적인 특성상 특정한 원칙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운데가 부러진 식물은 치유가 되지 않는다. 그냥 죽는다. - 193

한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추락은 서열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 197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똑같이 걱정하는 결정적인 시기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다. 십대는 유년기를 거치고 서로가 동등해지는 짧은 시기다. 이후에는 추가 기울어서 부모가 마야를 걱정하기보다 마야가 부모를 더 많이 걱정하는 나이가 될 것이다. 조만간 마야가 미라의 귀여운 딸이 아니라 미라가 마야의 귀여운 엄마가 될 것이다. 아이를 놓아주려면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 모든 게 필요하다. - 211

가해자에게 성폭행은 몇 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 245

가장 끔찍한 사건들은 한 가족에게 그런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게 무너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순간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도록 만든다. 충돌하기 직전의 순간, 사고가 나기 전에 주유소에서 먹은 아이스크림, 집으로 돌아와서 진단을 받기 전에 휴가지에서 한 마지막 수영. 우리의 기억은 밤이면 밤마다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자문하도록 강요한다.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있었을까? 내가 왜 행복해하면서 돌아다녔을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면 내가 막을 방법이 있었을까?’ - 256

누구에게나 비극이 벌어지기 전에는 수천 가지 소원이 있지만 그 이후에는 딱 하나로 바뀐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그 아이가 최대한 특별하게 자라주길 꿈꾸지만 병에 걸리면 모든 게 평범해지길 바라는 것으로 갑자기 소원이 바뀐다. 이삭이 세상을 떠난 뒤로 몇 년 동안 미라와 페테르는 웃을 때마다 가슴을 후벼 찢는 끔찍한 죄책감을 느꼈다. 아직도 그들은 행복을 느낄 때 수치심의 습격을 당하고, 아이가 떠났을 때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게 아이에 대한 배신일지 궁금해진다. 슬퍼하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상실의 가장 끔찍한 부작용이다. - 256, 257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 사회에서 허용하는 대로 하지." - 291

페테르가 그 긴 세월 동안 하키를 하면서 인간의 천성에 대해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거의 모든 선수가 자신을 훌륭한 팀 플레이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군집의 동물이라는 발상이 워낙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우리들 대다수가 단체 생활에 젬병이라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우리들 대다수가 협동을 모르고, 이기적이며, 무엇보다도 남들이 싫어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되뇐다. ‘나는 훌륭한 팀 플레이어’라고. 거기에 따르는 대가는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스스로 그렇게 믿을 때까지 계속 되뇐다. - 297

페테르는 여러 팀에 몸을 담았고 팀원이 되려면 어떤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지 안다. ‘개인보다 팀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스포츠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상투적인 문구다. 스포츠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진실이다. 거기에 부합하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원지 알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역할에 순응하고, 묵묵히 쓰레기 같은 일을 하며, 골을 넣고 스타가 되기보다 수비수로 뛰는 것. 단체를 사랑하기에 팀원들의 가장 끔찍한 면모조차 받아들일 수 있으면 팀플레이어가 됐다고 볼 수 있다. - 297, 298

농담은 그런 면에서 강력한 도구다. 우리를 인사이더로 만드는 동시에 남들을 아웃사이더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남들을 순식간에 가를 수 있다는 점에서. - 312

어렸을 때는 유일한 소망이 시간이 빨리 흐르는 거였는데, 이제는 시간이 더디 흐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멈춰서 마야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 - 318

자발적인 선택이었건 강요에 의한 선택이었건 리더가 되면 가장 먼저 터득하는 것이, 리더는 무슨 말을 할지 선택하는 것 못지않게 무슨 말을 하지 않을지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 335

"다른 건 전부 신경 쓰지 말고 바꿀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라고요." - 341

누군가가 필리프의 엄마에게 왜 뭐라고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뭔가를 사랑하려면 모든 면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건 하키에도 해당되지만 친구에게도 해당된다. - 355

증오는 매우 자극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훨씬 더 무서워할 수 있다. 한 집단을 똘똘 뭉치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요구사항이 많다. 증오는 간단하다.
그래서 갈등이 벌어지면 우리는 제일 먼저 편을 정한다. 양쪽의 생각을 같이 하는 것보다 그러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는다. 평범한 일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위안이 될 만한 증거를 찾는다. 그런 다음에는 적에게서 인간성을 거세한다. 그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이 이름을 제거하는 것이다. - 374

어떤 집단이건 가장 높은 바위에서 가장 먼저 뛰어내리고 달려오는 열차를 앞에 두고 가장 마지막으로 선로를 점프해 건너는 등, 도가 지나친 친구가 한 명씩 있기 마련이다. 그 아이는 가장 용감한 게 아니라 그냥 가장 겁이 없는 거다. 그리고 어쩌면 남들보다 잃을 게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벤이가 항상 강렬한 육체적인 감각을 추구한 이유는 그것으로 다른 모든 느낌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들레날린이 솟구치고 입안에서 피 맛이 느껴지며 통증으로 온몸이 욱신거리면 머릿속은 기분 좋게 웅성거렸다. 그가 겁이 나는 상황으로 자기 자신을 몰고 가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겁에 질리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378

살다보면 내가 위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 힘든 일은 거의 없다. - 401

‘어떤 사람이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다른 사람들이 따라가면 뭐라고 하는가? 리더십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숲속으로 혼자 걸어 들어가면 뭐라고 하는가? 산책이라고 한다.’ - 427

바깥의 어둠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으려면 자기 안의 더 큰 어둠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 454

"전쟁이 그렇게 시작되는 거야. 한쪽이 자기 보호에 돌입하면 다른 쪽은 더 심하게 자기 보호를 하고 우리의 공포와 저들의 협박을 맞바꾸기 시작하고. 그러다 서로 총을 쏘기 시작하는 거지." - 456

싸움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걸 시작하고 멈추는 게 어려울 뿐이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거의 본능적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싸움을 벌일 때 까다로운 부분은 첫 방을 날리는 용기와 이기고 난 뒤에 마지막 한 방을 참는 자제력이다. - 468

그러고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너는 혼자였던 적이 없어. 함께 어울릴 친구를 선택하는 눈만 기르면 돼. - 478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걸 알 수는 없지 않느냐고 인정하는 것. - 495

‘의리’처럼 설명하기 힘든 단어도 없을 것이다. 의리는 항상 좋은 걸로 간주된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푸는 수많은 호의가 의리에서 비롯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저지르는 가장 나쁜 짓도 바로 그 의리에서 비롯된다는 거다. -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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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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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아 본 류시화의 책이다. 요즘 같이 삶이 팍팍해지고 여유 없어지면, 가끔 이런 류의 책을 찾고는 한다. 내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해답이 아닌, '나'와 나를 둘러싼 상황을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고자 할 때, 특히 그런 것 같다(물론, 아주 실용적인 책을 읽는다고 해서 Do It Now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내가 이런 시기와 기분을 느낄 때즘 의례히 삶에 관한 에세이를 찾는 것이 그가 말한 '퀘렌시아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철학의 본질은 대체적으로 유사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같은 화두를 삶을 통해 스스로 끊임없이 삶의 방향과 태도에 대해 묻고 답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황, 상처의 치유, 자아의 회복, 공감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와 상념들로 구성된 이 책은 목적없이 바쁘게만 움직이는 내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한 템포 쉴 수 있게 해주었다. 누구나 철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철학 없는 삶은 부표 없는 항해와도 같다. 


사실 이런 류의 책은 반복되는 표현이나 유사한 우화, 에피소드가 많다. 유사한 책 몇 권을 읽다보면 '또 그 얘기냐' 생각하기 십상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하는 행동이나 말이 그 사람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다", "내 감정은 내가 아니다. 나는 그저 관찰자여야 한다"라는 등의 이야기들. 그러나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고 했던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대목은 저자가 배우 김혜자와 네팔 여행을 갔을 대의 이야기다. 노상에서 울고 있는 여인을 가만히 안아 주며 같이 동감해주던 김혜자가, 그녀가 좌판에서 파는 물건 중 싸구려 팔지 하나를 골라 300달러를 지불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횡재를 하고 싶지 않겠어요? 인생은 누가에게나 힘들잖아요"라고 말했다던 장면에서 절로 탄성이 나왔다. 진정한 공감과 연민이라는 것은 그 상황에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통찰과 애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라는 뒷표지의 글귀가 가슴에 팍 박혀버렸다. 어찌 내 주변에는 나뭇가지에 자신의 발을 칭칭 동여맨 이들만 있을까, 나도 모르게 실소를 날리며, 과연 나는 내 날개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을 덮고 일상으로 넘어가면 또 똑같은 태도로 삶을 살겠지만, 입에서는 예전과 같이 악에 받친 말이 나오겠지만, 내 방향과 맞지 않는 것을 죄악시하고 또 반대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멈칫하거나 한 번쯤은 더 생각하고 말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 말했듯이, 인생은 쉼표 없는 악보와 같기 때문에 연주자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쉼표를 매겨 가며 연주해야만 한다.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퀘렌시아이다. 나아가 언제 어디서나 진실한 자신이 될 수 있다면, 싸움을 멈추고 평화로움 안에 머물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곳이 퀘렌시아가 될 수 있다. 신은 본래 이 세상을 그런 장소로 창조했다. 자연스러운 나로 존재하는 곳으로,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세상과 대지와의 교감 속에서 활력을 얻고 영적으로 충만해지는 장소로. 그런 세상을 투우장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다. - 15, 16

우리가 누군가에게 하는 행동이나 말이 그 사람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으며, 그 사람은 그 느낌을 간직하고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 29

우리 자신도 목표 지점과 원하는 결과를 향해 가느라 삶이 그 여정에서 선물하는 것들을 지나치기 일쑤이다. 삶은 그 여정들로 이루어지는 것인데도 말이다. 한 사람은 도중의 난관들을 피해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느라 마음이 급하지만, 또 한 사람은 과정에서 발견하는 신비와 뜻밖의 경험들에서 순수한 기쁨을 얻는다. 그에게 삶은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며, 목적지는 오히려 그 과정들을 경험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한 지점에 불과하다. 목적지에 이르면 또 다른 목적지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과 순간순간이 목적이’라는 말은 트레킹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진리이다. - 34, 35

여행이 내게 준 선물은 삶과 세상에 대한 예찬, 그것이다. 광부는 수많은 돌들에 불평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광부의 눈은 보석을 발견할 뿐이다. 예찬하는 마음 역시 모든 돌들을 보석으로 만든다. 부자는 누구인가? 많이 감동하는 사람이다.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지상의 양식>에서 앙드레 지드는 말한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 가듯이 바라보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 62

‘우리가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라는 말은 진리이다. 자세히 볼수록 더 모르게 된다. 그것이 존재의 신비이다. 한 존재를 아는 것은 한 세계를 끌어안는 일이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그 무한한 세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이름과 성별과 직업으로 분류하고 규정짓는 순간, 나는 그 무한한 세계를 사랑하기를 포기한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냥 ‘그대’라고 불렀다. 그 자체로 존중이고 사랑이다.
당신은 이름 없이 나에게로 오면 좋겠다. 나도 그 많은 이름을 버리고 당신에게로 가면 좋겠다. 이름을 알기 전에 서로를 느끼면 좋겠다. - 66, 67

이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모든 행위는 고유한 파장이 있고, 그 파장과 일치하는 존재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아무리 어둔 길이라도 혼자 걷는 길은 없다. 혼자라고 믿는다면, 자신을 도우러 오는 수많은 존재들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공간을 초월한 협력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인생은 혼자 걷는 길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 세상 안에서는 혼자 내던져지는 법이 없다. 단지 우리가 혼자라고 믿는 것일 뿐이다. - 77, 78

화살에 맞으면 아픔을 느끼되 그 아픔을 과장하지 말라고 붓다는 충고했다. 병이 난 제자를 찾아가서도 아파하되 그 아픔에 깨어 있으라고 가르쳤다. 상처에 너무 상처 받지 말 것, 실망에 너무 실망하지 말 것, 아픔에 너무 아파하지 말 것 – 이것이 두 번째 화살을 피하는 방법이다. 잠시 아플 뿐이고, 잠시 화가 날 뿐이고, 잠시 슬플 뿐이면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맑고 투명해진다.
우리는 첫 번째 화살에 반응을 보이는 데는 익숙하지만, 두 번째 화살을 다루는 데는 매우 서툴다. 칼루 린포체는 말한다.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해방시켜 주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을 향한 원망과 분노와 증오에서 나 자신이 해방되는 일이다." - 137

즐겁고,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교리들은 잘못 베낀 것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정의와 도그마를 넘어 두려움 없이 지금 이 순간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면 언제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살아 있는 경전이다. 인생은 필사본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써 나가는 책이다. 우리는 예술가이며 예술 그 자체이다. - 149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3인의 현대 시인 중 한 명인 올라브 H. 하우게의 시가 있다.

모든 진리를 가지고 나에게 오지 말라
내가 목말라한다고 바다를 가져오지는 말라
내가 빛을 찾는다고 하늘을 가져오지는 말라
다만 하나의 암시, 이슬 몇 방울, 파편 하나를 보여달라
호수에서 나온 새가 물방을 몇 개 묻혀 나르듯
바람이 소금 알갱이 하나 실어 나르듯 – 164

당신이 추구의 길에 있을 때, 누군가가 자신이 모든 해답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 그를 따르지 말아야 한다. 그 해답은 당신의 목적지가 아닌 그의 목적지로 데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목말라하는 당신을 위한다고 바다를 주려고 하는 사람은 믿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갈증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빛을 찾는 당신에게 누군가가 하늘을 가져다준다면 당신은 오히려 눈이 멀 것이다. – 164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싸우고 있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이다. 그것은 분노이고, 질투이고, 탐욕이다. 거만함이고, 거짓이고, 우월감이다. 다른 한 마리는 선한 늑대이다. 그것은 친절이고, 겸허함이고, 공감이다. 기쁨이고, 평화이고, 사랑이다."
귀 기울여 듣던 손자가 물었다.
"어느 쪽 늑대가 이기죠?"
체로키 노인이 말했다.
"네가 먹이를 주는 쪽이 이기지." - 174

우리가 겪는 일들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사건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어난다. 예기치 않았던 불행은 껍질을 태워 버리는 불과 같아서 껍질 속에 가려져 있던 우리 본연의 모습을 보게 한다. - 181

"문제는 물병의 무게가 아니라, 그대가 그것을 얼마나 오래 들고 있는가이다. 과거의 상처나 기억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오래들고 있을수록 그것들은 이 물병처럼 그 무게를 더할 것이다."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오래전에 놓아 버렸어야만 하는 것들을 놓아 버려야 한다. 그다음에 오는 자유는 무한한 비상이다. 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온다.
뉴욕 어느 서점의 유리에 붙어 있던 작자 미상의 글귀 하나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 204

생각은 내가 아니다. 본래의 나는 생각들이 아니라 그것들의 관찰자이다. 그 ‘나’의 알아차림이 없으면 생각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고, 현존이 아니라 끊임없는 중얼거림이 일상을 차지한다. 이 중얼거림에서 깨어나 미소 짓지 않겠는가? - 210

어두울 때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때 빛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도 썼다.
‘어둠 속에서 눈은 비로소 보기 시작한다.’ - 237

인간에 대한 가장 나쁜 예의는 ‘너는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자세이다. 각자의 내면에 훌륭한 교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다. 자신이 가진 유일한 연장이 망치일 때는 모든 대상을 튀어나온 못으로 보게 된다. 자신이 옳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그 길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그 길은 많은 옳은 길 중 하나일 뿐이다. 행복한 관계는 비평이나 조언이 아니라 상대방의 ‘순수 존재’를 잊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찾아온다. -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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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부기 셔플 - 2017 제5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이진 지음 / 광화문글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을 읽던 중 그가 직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사례에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기타 부기 셔플>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원고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다"는 대목을 읽던 중 책을 잠시 접어 두고, 이 책을 바로 구매한 후 읽던 책을 계속 읽었다. 다른 이의 평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현역 작가가 '너무 재미있다'고 밝힐 정도면 정말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더욱이 <당선, 합격, 계급>에서도 나왔듯이, "새로운 작가의 새로운 장편소설을 읽고 싶어 하는 시대의 요구"는 이제 독자들이 책을 선택하는 트렌드 또한 'ㅇㅇ(문학)상 수상작'을 통해 검증된 선택을 하게 만들고, 나 또한 그러한 풍토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책을 그리 빨리 읽는 편은 아닌데, 하루만에 다 읽었을 정도로 흡입력이 강하고 전개가 빠른 소설이다. 우리의 과거사에서 서구의 음악이 유입되며 대중화되기 전의 시점을 포착하여, 한국전쟁 이후 피폐한 사회상 속에서 생계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었던 한 개인이 우연히 미8군을 대상으로 한 쇼단에 소속되어 음악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먹고 살기도 힘든 재건 상황에서 음악을 통하여 생계를 해결하고 자아성취를 이룬 주인공(현)의 삶은 일반 국민들의 삶과는 다르고 이질적이다. 국가, 경제력, 인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질화될 수 있는 유일한 요소인 언어, 그것을 둘러싼 음악의 힘이 그를 포함한 그룹(와일드 캐츠)을 한국에 속하지만 전혀 다른 영역인 캠프, 미합중국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차마 생각할 수도 없었던 부와 인기를 누리게 된 그들의 앞 길에는 또다른 소멸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전쟁, 미군정, 군부독재, 유신과 같은 거시적인 비극은, 그 시대를 사는 한 개인의 삶에 맞닿아 구체화됨으로써 더 큰 비극으로 또는 전혀 다른 방향의 희극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 시대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내가 살아보지 못한 과거시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생경한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의 말을 읽던 중 현재의 낯섦과 부적응이라는 고독의 근원을 과거로부터 살펴본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시간을 들여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즐거움과 더불어 인생에서 나 자신에 대한 시공간을 재편해보려는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삶의 숙제를 받은 것 같았다.

사람을 무대 위에 서게 만드는 근본적인 힘은 지극히 본능적이며 육체적인 것이었다. 모든 딴따라들의 영혼에 찍힌 낙인, 속된말로 ‘끼’라고 불리는 그 재능은 최초에는 이성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풋내기다운 욕망에서 시작한다. 쇼를 거듭해갈수록 그 욕망은 덩치를 부풀려 수백 수천 청중의 우레 같은 갈채를 갈구하게 된다. 무대라는 단상 위에서 기독교 부흥회의 장로처럼 접신을 한다. 인간을 초월하여 신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욕망. 딴따라의 야생적 끼가 도달하는 궁극적인 지점에는 역설적으로 종교적인 숭고함이 있었다. - 110

전쟁 이후 세상은 쭉 무저갱이었다. 혁명이 일어난 지 일 년 만에 또 다른 혁명이 일어나고,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새로운 법리와 규율들, 자고 일어나면 어제의 명사가 사형수가 되고, 가도를 헤매던 부랑아와 걸인들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철철이 찾아오는 천재지변과 전염병 속에서 오직 재수와 요행수만이 개인의 운명을 판가름했다. - 132, 133

하지만 누가 노예일까? 따져보자면 꿈 한 번 못 꾸고 사는 쪽이 노예가 아닐까? 나는 스무 해를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마음속에 노예를 품어본 적이 없어. - 186

예외가 존재하는 혁명이란 모순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모순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 187

"키키도 아예 잊었어요? 형에게 키키는 뭐였나요?"
"키키? 음악이랑 똑같아. 전부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
대답하며, 강엽 형은 눈을 감고 벽에 기댄 채 천천히 모로 쓰러졌다. - 238

전부이되 아무것도 아닌 것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동경하고 사랑하지만 끝내 손에 쥘 수 없는 것, 그러기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 - 242

내가 사는 시공간은 항상 낯설었다. 책과 말과 미디어로 배운 세상과 내 눈에 비치는 세상은 서툴게 깎은 톱니바퀴들처럼 아귀가 맞지 않고 어긋나 있었다. 때로는 내가 먼 미래에서 뚝 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정반대로 과거에서 온 미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예 사람이 아닌 존재인 것처럼도 느껴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공간에 의문을 품는다는 것, 사회에 부적응한다는 것은 그렇게 고독해지는 일이었다. - 256(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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