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속의 세상, 세상속의 교회>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법학자 김두식이 바라본 교회 속 세상 풍경
김두식 지음 / 홍성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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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말을 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한국 교회에 대하여 호의적인 비기독교인은 거의 없다고 소생은 생각한다. 감히.(이건 순전히 소생 혼자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생 주위의 분위기가 대체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기독교에 존경할만한 목사님이나 신자들이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 이유는 이 책에도 나오지만 우선 교인들에 대한 비교인들의 기대치가 무척 높은 점을 들 수 있겠다. 똑같은 짓을 해도 교인이 하면 아~ 저 사람은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쯔쯔쯔...,어쩌고 저쩌고....이리 되는 것인데, 이리 되는 원인은 교인에게도 일부 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항상 사랑과 용서라는 너무나 좋은 말을 입에 붙이고 다니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기란 어려운 법이다. 말씀만 익은 이가 되기 십상인 것이다.    

 

다음은 기독교의 배타성을 들 수 있겠다. 요즘은 개신교에서도 석가탄신일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등 분위기가 상당히 화기애애하게 관용적으로 흐르고 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하느님이 진실로 우주를 창조하고 만사를 주관하는 유일신이라면 플랜카드를 내걸 것이 아니라 유일신을 영접하지 못하고 진실에 눈 어두운 이교도를 궁휼히 여겨 진심으로 전도해야 마땅할 것이다.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자꾸 옆길로 빠지려는 자식을 가르치는 부모의 마음으로 말이다. 불교야 보살을 만나면 보살을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는 종교이고, 고승대덕들 중에는 날이 몹시 추워 불알이 얼얼하게 얼면 도끼로 목불木佛을 쪼개 장작을 만들어 태워서리 언 불알을 데우는 스님도 있다고 했으니 야소 탄생을 축하하여 곡차라도 한 잔 할 수 있겠지만 야소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유일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교도를 대량으로 양산하게 되는 수괴로서의 석가모니 부처의 탄신은 그리 축하할 만한 일은 아닐 것인데 ‘축석가탄신’ 플래카드를 내붙이는 것은 어찌 보면 기만적인 통일전선전술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중세처럼 기독교왕국도 아니고 뭐 어디서 오합지졸일지언정 십자군을 끌어 모을 수도 없는 세상. 이성과 합리와 관용이 나름 득세하고 판치는 계몽주의 인본주의 시대에는 잠시 수그려 있자는 전술.   

 

교인들의 언행불일치야 사람살이가 다 그런 것으로 널리 양해될 수 있는 것이겠고,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이 갖는 배타성은 어찌보면 사랑이라는 계명보다 더 강력한 흡인력으로 작용하여 오늘날 득세의 원인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마도 세계에서 신자가 가장 많은 종교는 유일신교인 기독교(천주교 포함)와 이슬람교일 것이다.     

 

2.
과거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나 조성기의 <야훼의 밤> 같은 소설을 무척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지고 있는 의문들. 정비석의 <산정무한> 식으로 말하자면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라 할 것인데, 고작 60~70년 찰나지간의 인간 생애에 실수든 뭐든 어쨌든 한 순간의 결정으로 하느님을 영접하지 못하였다고 죽은 후에 억만겁년 영원의 시간을 불구덩이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여야 하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살아생전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죽는 순간에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천국에 들 수 있고, 반대로 평생 정직하고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았더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니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기란 말인가. 알수 없는 일. 아~ 어찌 신의 높고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으리오.   

 

3.
1장 <교회속의 세상>, 2장 <비전과 욕심>, 3장 <진보와 보수>는 비기독교인이 볼 때 무릎을 ‘딱’ 치면서 ‘맞다! 말 잘한다.’ 라고 할만한 깊이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다. 나름 교회에 관심있는 비신자들이 교인 혹은 교회를 욕하는 내용들이 총망라 되어 있다. 근100여년의 일천한 개신교의 역사에 비해 한국 개신교의 양적 팽창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배고프다고 한번에 너무 많이 처먹으면 속에 탈이날 수 있느니, 키도 한번에 너무 크면 허벅지가 트고, 경제도 그렇지만 급속한 성장에는 그늘이 있기 마련. 4장 <콘스탄티누스>, 5장 <16세기>, 6장 <중세의 이단>은 교회의 역사와 교리에 대해 너무나 많은 공부가 되었다. 특히 6장은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6장의 제목 <중세의 이단- 먼저 실험을 시작한 사람들>이라는 제목도 유의미하다. 이단이란 것이 교리를 멋대로 해석하여 도덕적 윤리적으로 타락해버린 사악하고 괴상한 집단이 아니라 부패한 기존 기독교에 대항하여 일종의 개혁적이고 진지한 실험을 용감하게 감행했던 선구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4~6장은 언제 시간내어 다시 한번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이다. 7~9장은 한국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나 실험적 대안 등에 대하여 작가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한 내용이다.   

 

4.
이건 사족인데, 한권의 책을 읽다가 그 책 속에서 또 다른 책을 발견하는 것은 말하자면 가외의 즐거움으로, ‘엔도 슈사쿠’라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깊은 강>같은 책을 썻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구입해서 서재에 모셔두고는 있는데, 이 엔도 슈사큐가 <숙적>이라는 책을 지었다고 한다. 그 내용인 즉슨 소생이 무척이나 좋아라하는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로, 그 유명한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의 이야기인데, 엔도 슈사쿠 만한 작가가 쓴 역사소설이라는 점에서 몹시 기대가 되어 즉시로 알라딘에 검색했는데 마침 또 중고시장에 저렴하게 나와 있는 넘이 있어서 두권(1,2권임)을 언능 주문했다. 그런데 이 ‘숙적’이 이 책에서 언급된 이유는 바로 고니시 유키나가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는 점 때문이다.(엔도 슈사큐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고니시에게 상당히 호의적이라는 이야기인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아시다시피 이건 전32권짜리다, 소생은 이걸 두 번 읽었는데 무척 재미있더라나)를 보면 두 사람 다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히데요시 사후에 가등은 도쿠가와편에서 서고 고니시는 히데요시의 아들 편에 서서 싸우지만 고니시보다는 가등에게 보다 호의적이고, 저간의 복잡미묘한 사정이야 많겠지만 어쨌든 가등은 결론적으로는 히데요시를 배반해서 잘먹고 잘살아 지금도 일본 구마모토에 가면 그의 동상이 늘름하게 서 있고 가등의 본거지인 구마모토 성은 일본3대 고성의 하나로 소생도 가봤는데 볼만한 곳이더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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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혁명>을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밥상 혁명 - 세상을 바꾸는 21세기 생존 프로젝트
강양구.강이현 지음 / 살림터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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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혁명이라고 하니 문득 밥상이 그리워진다. 옛날에는 밥상에 빙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그게 언제 이야기인지 까마득하게 생각된다. 우리집은 대가족이어서 저녁 때가 되면 큰상을 두명이서 양쪽 끝을 잡고 안방으로 옮겨 빙 둘러앉아 먹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설거지 거리도 엄청났을 것이다. 지금 셋이 먹는 설거지거리도 귀찮아 마누라하고 가위바위보를 하니 주사위를 굴리니 어쩌고 하는데 당시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누나들도 공부한답시고 도와주지 않은 설거지를 엄마 혼자 다 할려면 참 많기도 많았을 것이다. ) 당근 아버지가 먼저 한 술 뜨셔야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때는 뭐 유전자 변이 식품도 없었고, 유기농업이니 공정무역이니 그게 뭐 밥달라고 개가 짓는 소린지 등가렵다고 소가 우는 소린지 그런 단어도 아마 없었던 시절이라 속시끄러운 콩가루 집안에서는 혹간 밥상이 전복되는 경우가 있기도 했지만 밥상이 혁명하는 사건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었다. 무슨 소린지.   

 

말도 안되는 소리는 이만 각설하고, 항상 그렇듯이 듣거나 읽어 아는 것 하고 실천궁행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자식 두엇 키우면서 사교육비에 등골이 휘고 부모 봉양이다 주택 마련이다 노후 준비다 이래저래 분주하기는 되게 분주한 게 쥐꼬리 선낯곱쟁이 월급받으며 광역시의 변두리에서 그럭저럭 근근히 먹고싸는 소시민으로 말하자면, 이 물건(먹을거리)이 몇만 마일을 날아왔든 몇십만백만 마일을 뛰어왔든 값싸면 최고다. 거기다가 맛도 좋으면 금상첨화 왠떡이냐다. 웰빙은 다음이고 세계화와 농업정책에 대한 관심은 더더더 다음이다. 하물며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한 환경문제는 말해 무엇하리오다. 광우병 파동으로 반짝이며 흔들리고 넘실대던 촛불의 물결이 서울광장을 꽉꽉 채워 광장이 미어터질 듯 하던게 언제였던가. 미국산 쇠고기 지금 잘팔리고 또 잘들 자시고 계신다. 한우는 귀족들이나 먹는 음식이다. 상것들 먹는게 양반들과 같을 수가 없다. 그저 배 부르면 그만이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했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말이다. 피부에 직접 접촉되면 모두가 민감하게 반응할 것인데(뾰족한 바늘로 몰래 옆에 있는 사람을 살짝만 찔러 봐라 아마 깜짝 놀래 자빠질 것이다) 그때는 이미 대책을 세우기에는 너무 늦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생 생각이 먹거리 문제, 환경문제 등에 대해서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보고, 비록 소생이 근근히 먹고싸는 소시민이지만 우선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로컬푸드나 유기농산품에 조금 관심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세계화니 환경문제니 농민을 죽이는 농업정책이니 하는 조금 심각스러운 것들은 일단 차치하고 말이다.  

 

이건 사족지나 오족쯤 되는 이야긴데(말하자면 쓸데없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로컬푸드 영수증에 온실가스 줄인 양이 표시되어 있는 사진을 보다가 문득 생각났다. 지난주 목요일에 서울 출장을 다녀왔는데 저녁에 동대구역에 도착해서 보니 나가는 출구 벽면에 크게 쓰여져 있었다. “당신은 오늘 소나무 여덟 그루를 심으셨습니다”. 승용차로 서울 가는 것 보다 열차타고 가는 것이 당근 편하고 돈도 적게 들고 또 시간도 빨라서 열차를 이용했을 뿐이고 열차안에서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잠을 잤을 뿐인데, 소생이 혹시 꿈에라도 소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면 모를까 동대구역에 내려서 저런 문구를 떡 보니 뭔가 소홀찮게 켕기는 기분이다. 주말에 어디 산에라도 가든지 해서 아니면 아파트 단지내 화단에라도 작은 묘목 하나쯤 심어야 할 것만 같다. 잘 한 일도 없는데 과분한 칭찬을 받으면 이거 이넘이 나를 놀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법이다. 온실가스 줄인 양’이나 ‘소나무 여덟 그루’는 허수고 뭔가 속임수라는 생각이 든다. 소생이 너무 민감 과민하게 반응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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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한국문화>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왕세자의 입학식 - 조선의 국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키워드 한국문화 4
김문식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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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벽한 향촌의 미관말직이 왕세자의 입학례에 참례하게 되니 실로 황공하여 몸둘 곳을 알지 못하겠거니와 성은이 참으로 지극망극하다. 오호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강다롱디리....그건 그런데 아무튼간에 예로부터 학문을 지극히 숭상했던 나라 조선이고 왕권 못지 않은 신권이 행사되었던 성리학자 사대부들의 나라 조선으로서 왕세자의 성균관 입학식이 뭐 대수로울 것도 없고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 지도 모른다. 또 미루어 짐작해 보면 예식을 무척 중시했던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니 왕세자로서 치루어야 할 의식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왕세자의 입학은 보통 8세쯤에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지금으로 보자면 초등학교 입학연령으로 그 나이에 한 의식을 주관하기에는 왕세자나 스탭들이나 모두 애로가 많았을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백성을 다스릴 군주가 되자면 그 정도야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국의 왕자들도 전쟁통에는 전투기 조종사로 출전해 장렬히 죽기도 하고 했던 것이니 권력에는 당연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법이다.   

이 책은 <왕세자입학도첩>에 나오는 6장의 그림으로 왕세자의 입학식을 설명하고 있다. 역시 그림으로 설명하니 이해가 쉽고 빠르다. 세자가 여러 수행원들에 둘러싸여 궁을 나서는 <출궁도>, 성균관에 도착한 세자가 공자 등 성현들에게 절을 하고 잔을 올리는 <작헌도>, 작헌을 마친 세자가 대성전에서 스승이 있는 명륜당으로 나아가 배움을 청하는 <왕복도>, 세자가 스승에게 예물을 올리는 <수폐도>, 세자가 제자로서 스승에게 가르침을 구하며 문답이 오고가는 <입학도>, 입학례를 마친 세자가 궁으로 돌아와 백관으로부터 축하를 받는 <수하도>. 참고로 그림에 왕세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장차 지엄하신 지존이 될 몸으로 옥체를 직접 그리지는 않고 다만 그 자리만 표시한다.  

문학동네에서 야심찬 기획으로 <키워드 한국문화>라는 제하의 문고판 출간을 시작했으니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몇가지 문고판과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이 가지고 문고판은 <살림지식총서>, <시공디스커버리총서>, <창해ABC문고>, <빛깔있는 책들> 4종이다.  

<살림지식총서>는 근400권 가까이 나온 걸로 알고 있다(찾아보니 368권까지 나왔다). 위 열거한 것들중 크기도 제일 작고 분량도 제일 얇지 싶다. 진정한 의미의 포켓 문고판에 가장 접근하는 듯하다. 그러나(역시 그러나가 중요하다) 내용이 너무 소략이고 사진이나 그림이 전혀 없어 무미건조하다.  

<시공디스커버리총서>(129권까지 나와 있다)는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 시리즈의 한국어판이다. 인류의 문화유산을 총 망라한다는 방대한 기획이다. 사진이나 그림, 기타 기록과 증언 등 다양한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 사진이나 그림이 너무 많아 읽기에 몹시 산만하다. 본문을 읽다가 사진을 보다가 본문 읽다가 그림 보다가 하다 보면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헷갈린다. 맥을 놓치기 십상이다.   

<창해 ABC 문고>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고판이다. 하지만 50권까지 나오고는 감감 무소식이다. 안타깝다.  프랑스 플라마리옹에서 발행한 'ABCdaire'의 한국어판이라고 한다. 시공디스커버리와 비슷한 기획인 것 같다. 표지나 내용이 형형색색 화려하고 보기에 좋다. 재질이나 구성 편집도 마음에 든다. 내용이 가나다라마바사아 사전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빨리 재간되기를 바란다.  

대원사의 <빛깔있는 책들>은 우리 전통문화와 민속에서부터 생활, 건강, 음식 등 우리 것에 대하여 폭넓게 다루고 있어 한국문화키워드와 취지에서 가장 비슷한 것 같다. 크기도 비슷한 것 같다. 아마도 열거한 문고판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지 싶다. 현재 273권정도 나와 있다. 내용은 알차고 읽을 만 한 것 같은데 표지 디자인이나 재질(다소 두꺼운 모조지) 판형 등에서는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  

 <키워드 한국문화>는 그 기획 의도나 표지 디자인, 편집 등은 마음에 드는데 책 크기가 별로 인 것 같다. 좀더 길쭉했으면 좋을 것 같다.(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어쨌든 목록을 훑어 보면 흥미진진할 것 같은 제목들도 더러 보이고 앞으로 어떤 책들이 더 나올지 기대도 된다. 끊이지 않고 계속 줄기차게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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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사교육>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굿바이 사교육 -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은 학부모를 위한 교육 필독서
이범 외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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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시장 규모가 얼마얼마로 어마어마 엄마아빠하고, 사교육비 부담에 부모들 등골이 휘고 뼈골이 빠지고, 자식에게 올인하다 늙어 쪽박찬 기막힌 사연도 텔레비전에 나오고 한다. 이래저래 주워듣고 또 보고 하지만 나에게는 딴나라 달나라 이야기였다. 왜냐? 당근 아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 불혹 넘어 작년에 간신히 후사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 문제는 관심밖이다. 왜냐?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슬슬 본인도 교육이란 것에 대해 관심을 좀 가져봐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아버지 엄마는 7남매 키워 다 대학 보냈는데 사교육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옛날엔 다 그랬다. 나도 그럴려고 한다. 고등학교까지는 보내주고 대학부터는 알아서 하라고 할 작정이다. 애 처음 낳고 마누라하고 둘이서 2인 정상회담을 열어 당내 서열을 정했다. 서열 1위는 자기자신, 2위는 배우자, 자식은 3위, 당내 구성원이 3인이라 금은동메달 하나씩은 차지하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는 자식에게 올인하지 않고 우리 부부 노후에 올인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도 썩 잘한 결정인것 같다. 가족내 올바른 서열 책정이 사교육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말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 하면 주위에서는 한심하다는 듯이 그런다. ‘어디 키워봐라~ 그리 되는가’  

본인이 철들고 어느 한 순간인들 아국 교육이 백척간두 풍전등화의 위기가 아닌 상황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4000년전 애급의 파피루스 두루마리에도 적혀 있었다고 한다. “요즘 애들은 정말 큰일이야” 건국 60년 역사의 아국으로서는 교육백년대계란 참으로 아득한 이야기다. 정치인, 학부모, 교수, 무슨무슨 교육단체 등이 한 목소리로 이러다가는 필경 교육이 절딴날 것이라고 가래침을 사방으로 튀기며 핏대를 세운 것도 60년쯤 되지 싶으다. 돌이켜보면 번갯불에 콩을 뽁는지 후라이판에 깨를 뽁는지 조변석개 조령모개의 교육정책으로 지난 세월이 얼마나 분주하고 황망했던가. 이상한 건 그래도 아국은 꾸역꾸역 발전을 하는지 어쨋는지 OECD에도 가입하고 G20이니 어쩌니 나름 잘 나가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혹자는 또 말하길 어쩐다 저쩐다 해도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건 다 교육의 힘이다 라고 한다. (물론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도 수다하시리라 생각한다.)  

본인의 일천한 생각으로는 사교육 문제를 포함하여 교육 전반에 대한 변화와 개혁은 정책 제도적인 측면에서보다는 결국 학부모의 의식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학부모의 의식이 바뀔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을 읽어본다면 말이다. 1교시(이범), 3교시(이수광), 5교시(조기숙), 7교시(송인수) 강의는 현 입시체제와 교육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은 하고 있지만 뭐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 같고, 반면에 2교시(이남수), 4교시(신을진), 6교시(허아람) 강의는 어떻게 영어공부를 시키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식으로 독서교육을 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자녀를 칭찬하고 격려해야 하는지, 자녀를 교육하고 상담하는 보다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어 개인적으로 적지않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 혜림씨(본인의 어화둥둥 금지옥엽 딸내미 이름이다)를 위해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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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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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잡문(잡문이라고 하니 조금 송구스럽다. 저 높으신 곳의 노벨문학상에 거론되시고 전세계적으로 양명하신 작가의 글에 ‘잡’ 자를 붙인다는 것이 조금 거시기하다.)의 특징은 말하자면 가벼움이다. 가벼움이라고 하니 또 송구스런 마음이 슬그머니 든다. 그렇다면 경쾌함, 발랄함이라고 할까 그것도 조금 아닌 것 같고, 뭐랄까 촐싹촐싹이 아니라 사뿐사뿐 같은 느낌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하루키의 잡문은 쉽고 잘 읽힌다. 재미도 있고 유머도 있다. 사뿐사뿐 룰루랄라 피크닉이라도 가는 즐거운 기분으로 펼쳐 보게 된다. 그런데 이번 책은 읽는데 며칠이 걸렸다. (언뜻보기에는 서점에서 선 채로 잠깐만에 읽을만한 분량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역시 달리기는 걷기보다는 진지하고 어려운 작업인 것이다. 
 

몇가지 기억에 남는 것들  

 

1. 《1Q84》 아오마메의 실제 모델
“도쿄의 사무실 근처에 있는 체육관엑 가서 근육 스트레칭을 받는다. (중략) 스트레칭을 해주는 트레이너는 젊은 여성이지만 힘이 세다. 즉 그녀가 주는 타력은 뭐랄까 강력한 아픔을 동반한다. (p128)” 부분을 읽다가 문득 아~아! 《1Q84》의 여주인공 아오마메의 모델이 혹시 그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쓰기란 상상만으로는 역시 어려운 법. 비슷한 경험이라도 일단 해보면 살 붙이기가 훨씬 수월한 법.  

 

2.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경외감
“그것은 진짜 대단한 소설이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문학으로서의 깊은 자양분이 넘친다. 29세의 약관의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예리하고 공정하며 마음 따뜻하고세상의 실상을 읽어낼수 있을까”(p199~p200) 본인도 물론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봤고  다른 역자의 번역본으로 두권을 가지고 있지만 무라카미씨의 말대로 진짜 대단한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한 번 읽어봐야하나 어쩌나. 다른 읽을 책도 많은데 


3. 무라카미씨의 묘비명
"무라키미 하루키/ 작가(러너) / 1949~20** /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p259)
버나드쇼 만큼 정곡을 찌르면서도 유머가 있는 묘비명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멋있다. 너무 폼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 해본다.  

 

4. 책의 제목
무라카미씨는 이 책의 타이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를 씨의 ‘경애하는 작가’인 레인먼드 카버의 단편집 제목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씨가 카버의 미망인 테스 갤러거 부인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p267) 처음 제목을 봤을 때 왠지 어디선가 듣고 또 본듯한 느낌이었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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