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소년 21 - 우주인 나타나다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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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본인의 주 관심사는 북조선국의 핵실험 강행에 따른 한반도의 비핵화 정책 폐기와 미일의 북한 압박과 햇볕정책의 위기와 반기문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선출이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어쩌고 저쩌고 이런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눈 아래 있는 바 본인의 관심은 와인과 일본 만화에 있다. 얼마전에 그 유명하다는 <20세기 소년> 20권을 샀다. 20권이 끝인줄 알고 20권 모두 샀는데, 이런...이런... 21권이 또 있더군. 낭패랄 것 까지야 없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스토리가 탄탄하고 재미있고 독특하다. 만화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각 장마다 과거와 현재가 호상간 교차되는 방식도 특이하고 흥미를 돋운다. 다만 근심스러운 것은 너무 끌다가는 지리멸렬 흐지부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전도 거듭되면 식상하게 된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곳에서 마무리 하지 못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다. 일러 진퇴양난이라고들 한다. 빼도 박도 못한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그놈의 가면속에 숨겨진 “친구”의 얼굴이 몹시도 궁금해 흥미가 진진했었는데, 보여줄듯 말듯 줄듯 말듯하며 장난을 하도 쳐서 나중엔 가면만 보면 확 잡아 째버리 싶은 것이 슬슬 성질이 나더이다. 하다 하다 가면으로도 안되니까 허연 붕대를 칭칭 감고 나오는 것이 지가 무슨 불탄 미이라라도 된단 말가. 이제는 “친구”가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게 되었다. 너무 끌면 오히려 흥미를 반감시키는 법이다. “켄지”가 “친구”라고 해도 별로 놀랍지 않겠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갈 때 친구와 너무 정신없이 떠들다 보면 혹은 아무 생각없이 자빠져 자다보면(버스칸에서 자빠져 자기는 어렵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고주망태가 되지 않고서야 어찌 공공장소에서 자빠져 잘 수 있겠는가) 내릴 역을 지나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재수가 없으면 종점까지 갈 수도 있다. 나중에 다시 돌아올려면 성질 좀 나고 짜증도 좀 난다는 이야기다. 일본만화는 다 좋은 데 끝이 없는 게 문제다. 내릴 때 내려야 하는데 종점까지 막 갈려고 한다. 그건 그런데, 22권은 언제쯤 나올란가. 눈알이 둘러 빠지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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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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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하 추리소설이 대세~ 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무시못할 한 세를 이루고 있는 건 사실이다. 추리문학이라는 것이 이류 삼류 따라지로 분류되며 시간 떼우기용으로 취급되거나 일부 메니아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던 시절도 이제는 갔다(사실 간 지 좀 된 것 같다).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추리문학이 이른바 각광을 받고 있으니 북풍한설 몰아치는 변방에서의 풍찬노숙도 이제는 옛말이 된 듯하다.


20여년전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명탐정 셜록 홈즈와 괴도신사 루팽이 이제는 성인용 양장본으로 부활했다.(아~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홈즈와 루팽은 얼마나 뛰어나고 또 얼매나 멋졌던가) DMB(동서 미스터리 북스)야 뭐 오랜 옛날부터 일편단심 한 구멍을 파고 있었지만, 국내 유수의 출판사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숱한 동서고금의 추리소설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특히 일본 추리소설은 범람의 수위에 이르고 있다는 생각이다. 어디 문밖 가까운 곳에 숨어있다가 신호가 울리면 한꺼번에 쳐들어 오기로 자기들끼리 몰래 작당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백야행), 다카노 가즈아키(13계단), 미야베 미유키(모방범 : 일전에 사놓았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다), 우타노 쇼고(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 읽어 봤는데 끝장을 보고 나니 참 씁쓸하고 쓸쓸하면서 어째 기분이 조금 더럽기도 하더라), 교고쿠 나즈히코(우무베의 여름), 요코미조 세이시(옥문도) 기타 둥두리 둥둥


뜻있는 인사들은 스스로를 돌아보는데 게으르지 않은 법이다. 넘쳐나는 외국 추리소설 속에 거의 불모지로 내팽겨쳐진 우리나라 추리문학의 실상을 생각해보자면 실로 안타까운 마음 어찌할 길이 없다. 최근에 역사추리물 같은 몇 편의 작품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판타지 문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비하다면 우리나라에도 과연 추리문학이라는 것이 있는가 의심스러운 심정이다.


생각해 보건데 수백권에 다다르는 DMB시리즈에 아국 추리소설이 한 편도 없다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다. 편편이 주옥같고 기라성 같은 그 목록에 설사 된장같은 우리나라 작품이 꼽사리 끼일만한 자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흔히 말하는 세계 100대 거시기 뭐시기 하는 것들에는 수준이나 인지도가 조금 미달이더라도 자국의 것을 한두개 정도는 끼워 넣기 마련이고 또 남들도 대충 그려려니 하는 것이다. 인지상정이라는 것이다.


동서문고도 나름으로 출판에 있어 무슨 굳은 원칙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 추리문학의 대부라는 김성종의 작품 중 한 두 편 정도는 그 목록에 넣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주인공이 무슨무슨 ‘탐정’이 아니고 ‘형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웃기게도 탐정은 기맥히고 칼날같은 추리에 제격으로 어울릴 것 같은데, 형사라고 하면 왠지 죄없는 사람 무지막지하게 두드려패서 허위자백 받아내는 그런 이미지라 조금 난감스러운 느낌도 없지 않다. 시류에 무관심할 수 없는 소심한 소시민으로 도도히 흐르는 유행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하여 최근 몇 편의 일본 추리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모두 재미있었다.


<용의자 x의 헌신>도 재미있게 읽었다. 몇가지 사소한 불만도 있다. ①야스코의 살인동기가 좀 약하다는 생각. 전남편이 상습적이고 악질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금품을 갈취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뭐 아무렴 어떠랴 우발적인 살인인데. ② x의 헌신은 야스코에게는 너무 큰 부담일 것이다. 헌신이 아니라 편집증이다. ③ 그리고 아무 죄없이 죽은 노숙자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말이다. 정도.


이건 여담인데, 부산 해운대 전망 좋은 곳에 사재를 털어 우리나라 최초로 추리문학관을 세우고 나름으로 한국 추리문학을 위해 불철주야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김성종씨가 일전에 부산에서 시의원으로 출마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당락의 소식은 접하지 못했다. 그와 관련해서 몇가지 생각나는 점들. 그가 1969년도 신춘문예 출신이라는 점. 당시 당선작 제목이 아마도 <경찰관>이었던 것 같다. 신춘문예 출신으로 순수문학이 아닌 추리소설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또 하나.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그의 작품이라는 것. 최재성과 채시라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나눈 뜨거운 이별의 키스씬은 당시로서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소설도 무척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지만 문단의 평가는 호평도 혹평도 아닌 무관심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생각에 <여명의 눈동자>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작가의 출신성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용의자 x의 헌신>에 대한 리뷰를 쓴다는 것이 추리소설 전반에 대한 단상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본 책에 대한 성실한 리뷰를 써내지 못했으니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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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가득히 동서 미스터리 북스 87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문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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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재주꾼 리플리」란다. 「태양은 가득히」에 비하자면 좀 웃기고 어쩌면 한심스러운 제목이라는 생각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여사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말이다. 신분상승을 꿈꾸는 젊은이의 비뚤어진 욕망을 보여주는 영화나 소설이 허다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아마도 그 강렬한 제목에 힘입은 바 적지않다 할 것이다. 태양이 작열하는 푸른 바다 그리고 눈부시게 하얀 보트위, 구릿빛으로 그을린 상체를 드러낸 알랭들롱. 제목과 배경이 찰떡 궁합으로 맞아 떨어졌고, 거기다가 알랭들랭씨의 강렬한 눈빛을 한번 받게 된다면 이 영화를 쉽게 잊지는 못할 것이다. 영화가 재미있었는 지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은 참 멋있다는 생각이다. 무언가 큰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제목이다. 「이방인」에서도 눈부신 태양이 문제였지 않나 말이다.


아주 오래전에 이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영화에서는 아마도 마지막에 디키의 시체가 떠오르면서 리플리의 범행이 탄로나는 것으로 끝났던 것 같은데, 책에서는 리플리의 완전범죄로(일단은)로 끝을 내고 있다. 권선징악이니 어쩌니 하는 윤리 도덕적인 문제를 떠나 리플리의 살인과 사기행각이 성공을 거두는 듯하다가 결국은 들통이 나서 파멸하는 것이 소설적으로 볼 때 보다 드라마틱하고 재미도 더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언하자면,「태양은 가득히」가 바로 「금지된 장난」의 르네 끌레망 감독 작품이라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본 책 표지에 등장하는 알랭들롱씨의 얼굴은 그 주름으로 보건데 아마도 40대쯤은 되어 보인다. 어차피 알랭씨를 표지모델로 쓸 바에는 영화속 20대의 알랭들롱씨를 채용하는 것이 당연지사일 것만 같은데, 가만 생각해 보면 출판사에 계시는 분들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지 싶은 생각도 조금 들고, 말하자면 40대의 다소 늙은 알랭들롱씨를 표지모델로 쓸 수 밖에 없었던 아픈 속사정이 따로 있을 것만 같다. 무슨 저작권 문제 같은 거 말이다. 참고로 실제 영화속의 들롱씨의 사진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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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Mr. Know 세계문학 26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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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어의 빙빙 돌려 말하기와 복잡한 완곡 어법은 한국어를 능가할 정도였다. -135쪽

문맥상 우리 국어가 빙빙 돌려말하기와 복잡한 완곡어법에 있어서 지구상에서는 거의 최고봉 수준이라는 말인 것 같다. 정말 그러한지 약간 의문이고, 젤라즈니는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었는지 궁금하다. 하기야 얼마전 신문을 보니 외국인이 습득하기 최고난이도(고난이도가 아니고 최고난이도다)의 언어에 한국어가 아람어 등과 함께 포함되어 있기는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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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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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 표지의 사진이 눈길을 잡아끈다. 아득한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있는 곧고 넓은 황토길, 소들이 어슬렁 거리고 다니는 저곳은 어디일까?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 불어오면 흙먼지 뿌옇게 일어날 것만 같은......그 길위에 내가 서있는 상상을 해본다. On the Road.

오래된 유행가의 가사가 아니더라도 인생은 나그네 길이고 모름지기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못하는 법이다. 함성호의 시. 사내의 발바닥에도 몇 천분의 일 지도 같은 미세한 길들이 사방으로 팔방으로 나 있었다. 필시 객사의 운명이려니… 역마살낀 자의 운명은 객사라. 어차피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나그네 길위에서 우왕자왕 방황하고 있으니 누구도 객사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른바 여행자들의 천국이라는 태국의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내외국인 14인과의 여행을 주제로 한 인터뷰를 모은 것이다. 내용은 소략하고 깊이는 없다. 이제는 배낭여행이라는 것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듯 이 책에서 특별히 얻을 것은 없다. 14편의 인터뷰가 표지 사진 한 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헛도는 대화는 한 장의 사진 앞에서 공허하고 무력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낡은 외투를 입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이것이 터기의 옛 노래라는 것은 무라카미씨의 여행에세이 <먼북소리>를 읽고 알았다. 여행이 가지는 매력(혹자는 마력이라고 하고, 마약이라고도 한다)을 설명하기는 실로 난감하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실 삶 자체가 긴 여행이라면 우리는 지금 여행중이므로 따로 떠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여행을 원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누구나 여행을 떠나고 또 꿈꾼다. 인류가 한 곳에 정착하여 땅을 파먹고 살기 시작하면서 먹을 것을 찾아 온 천지를 떠돌아 다니던 수렵시대의 생활은 버렸지만 그 습성의 일부는 여전히 우리 유전인자에 남아 아직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서 이 비슷한 소리를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여행에는 종류도 많다.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결혼하면 신혼여행, 이별여행, 심지어 자살여행까지, 휴가철에 잠시잠깐 쉬었다 오려고 떠다는 짧은 여행(쉬려고 갔다가 고생만 실컷하고 돌아오기 일쑤)에서부터 배낭하나 달랑 매고 수년동안 온 세상을 떠돌아 댕기는 오랜 세계 여행에 이르기까지, 멋진 유적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행지에서의 낭만을 즐기려는 관광여행에서부터 인생의 비밀이나 삶의 진리 혹은 신을 찾아(아니면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구도여행에 이르기까지 여행이란 실로 다양하고 천차만별인데, 대부분은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아 댕기는 오랜 여행을 더 꿈꾸기 마련이다. 


길고 오랜 여행에의 꿈이 참기 힘든 냄새를 뿡뿡 풍기며 우리를 유혹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이 가지는 위력 또한 대략 단단한 것으로 본인같은 한심한 인사에게 이르면 대충 꿈만 꾸고 잠만 자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채, 어느듯 마흔살을 넘기고 쉰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뭐 그리 슬플 것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빠진 것 같은 아쉬움은 남는다. 직장문제, 주머니 사정, 자녀에 대한 문제, 양가부모의 반대......갔다 와서는 뭘 먹고 살지.......이런 것이 현실의 힘이고 위력인데, 난관이 첩첩산중인 것 같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한방에 해결할 수도 있다. 그냥 떠나면 되는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선택은 나의 몫이고 결정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무엇인가를 버려야 한다. 공수래 공수거의 인생임에도 무엇이든 버리기는 싫고 또 어렵다.


각설하고, 이 책의 표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무슨 타잔영화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 저 멀리에서, 아니면 가슴속 깊은 곳 어디에선가, 둥둥둥 심장소리인지, 둥둥둥 북소리인지 여하튼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궁뎅이는 들썩거린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고민 좀 해봐야겠다. 결론은 항상 버킹검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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