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이별 큰 스푼
정지아 외 지음, 방현일 그림 / 스푼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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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라는 키워드로 다섯 작가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정지아, 안오일, 이선주, 강효미, 김기정 작가님이 참여했다.

이별은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필요하기도 하다. 좋고 나쁨을 떠나 누구나 인생에서 마주해야만 하는 경험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다섯 작가가 말하는 이별에는 죽음이라는 가장 거대한 슬픔이 주로 나오는데(다섯 편 중 세 편), 그 슬픔을 매우 담담하게 담았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 피할 수 없는 길을 향해서 간다. 그래도 고통과 슬픔에 몸부림치며 가는 것이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인데, 이 책에 담긴 모습들은 어찌 보면 낯설다. 이렇게 이별을 맞을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 가능만 하다면 정말 바라는 바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쉽게 말해서 본인의 육신의 고통과 주변인들의 생활적 어려움이다. 어느덧 부모님들을 떠나보내는 나이가 되어서,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들이 많다. 죽는 것도 쉽지 않은 그런 이야기. 현대의 의료기술은 삶의 질보다는 목숨의 연명에 더 적합하게 돌아가는 듯하다. 그리하여 고통뿐인 삶을 그저 이어나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게다가 엄청 겁도 많아서 솔직히 말해 육신의 고통이 가장 두렵다. 편안하게 눈감을 수 있다면 이별에 초연한 모습쯤은 나도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새 부모님들이 오래 사시는 것보다도 편안히 눈감으실 수 있기를 기도하는 나이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은행나무」(정지아)에선 할아버지가 췌장암 판정을 받으셨다. 할아버지는 공개적으로 주변을 정리하신다. 할아버지 나이와 같은 은행나무와, 할아버지보다 더 오래된 감나무를 베고 집도 처분하신다. (책의 맥락과 관계없이 나무가 너무 아깝다고 안타까워 하는 나...;;;) 흔들리지 않는 차분함으로 가족들을 다독이며 이별을 준비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가족들도 격동하기보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잘 저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의 정원에서」(안오일)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은 노인이 아니고 건우의 형 승우다. 3학년 때 소아암 판정을 받은 형은 아직 6학년인 초등학생이다. 아빠도 돌아가시고 암환자인 아들을 키우며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엄마의 고생은 짐작하기도 어렵다. 가족은 시골로 이사를 가서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아직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본인은 느낄 수 있는 그 이별 예감에, 형은 이런저런 이별의 선물들을 준비한다. 셋 뿐인 가족의 서로를 위한 마음에 가슴이 찡해지는 이야기. 첫 작품도 그렇고 이 작품에도 이별의 순간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준비하는 모습이 마음을 먹먹하게 할 뿐.

「안녕, 거짓말」(강효미)에서는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다. 급속한 암의 진행으로 석달만에. 문제는 아흔 가까운 할머니. 줄초상을 염려한 가족 친지들은 막내아들의 사망 사실을 숨기고 외국 출장으로 둘러댄다. 어느날 할머니는 성치도 못한 몸으로 고집을 부려 집에 찾아오시고, 온갖 잔소리와 함께 대량의 음식, 특히 곰탕을 펄펄 끓여놓고 가신다. 사실 곰탕은 아빠가 좋아하시던 음식이 아니다. 할머니는 캐묻지도 알은 척도 하지 않으셨지만, 이제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이 막내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 듯하다. 그리고 손주와 며느리 든든히 먹고 잘 살아가라고 끓여주신 곰탕.ㅠㅠ

나머지 두 작품에는 죽음이 나오지 않는다. 「절교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이선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친구 사이의 이별을 다룬다. 촌락의 소규모학교에 다니는 나리는 여학생이 혼자뿐인 교실에 지우가 전학을 오게 되어 무척 기뻐한다. 하지만 지우와의 친구관계는 쉽지 않았다. 금방 절친이 된 것 같았지만 금세 ‘절교’ 운운이 오가고, 지우는 또 전학을 가게 된다. 이별이 아프고, 이별 후의 잊혀짐은 더 아파서 미리 철벽을 치는 지우의 마음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기도 하다. 사랑할 땐 사랑하고, 잊혀지면 잊고... 그래도 괜찮다고. 이거 주인공을 어른으로 바꾸고 드라마로 만들어도 될 소재 같은데?^^

마지막 「굿바이 피기」(김기정)는 어떤 이별인지 언뜻 보면 고개가 갸우뚱할 수 있다. 타인과의 이별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여기서의 이별은 내 안의 어떤 나, 나의 어떤 모습과의 이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또한 굉장히 중요한 이별이다. 적절한 때 적절한 이별이 있어야 사람은 성장한다. 탈피에 비유할 수 있을까? 나도 돌아보면 아주 다행스러운 이별도 있었고, 미적거리느라 놓친 이별도 있었다. 이렇듯 이 작품에선 건강한 이별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별이라는 주제를 감당하려면 고학년은 되어야 권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분량은 가볍지만 중학생이 읽어도 나쁘지 않겠다. 우리 인생에 닥치기 마련인 중요한 사건들은 성찰해볼수록 좋을 것이다. 그중 가장 어려운 사건, 이별에 대한 성찰로 이 책이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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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아는 도깨비 언니 1 - 수상한 공부방과 돈 나무 너랑 나랑 2
윤슬 지음, 코끼리씨 그림 / 프롬아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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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어린이실 신간코너에서 이 책을 보고 '인기있는 시리즈가 또 나왔나보네' 생각하며 일단 1권을 빌려와봤다. 검색해보니 작가님도 출판사도 다 낯선데 책은 판매지수가 높았다. 인기비결이 있겠지? 생각하며 읽어보았다.

일단 시리즈물은 기본 설정을 잘해두면 이후는 좀 쉽게 굴러가는 장점이 있다. 1권은 그 골조를 세우는 권이라 성패가 좌우되는 중요한 권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매우 성공적인 것 같다. 각 권에는 문제나 아픔을 가진 어린이 주인공들이 등장할 것이고, 그 아이들에겐 조력자가 필요할 것이다. 이 시리즈의 기본 골조는 바로 그 조력자다. 그 골조 안에 각 권마다 다른 사정의 아이들을 만들어 넣으면 되니 시리즈는 꽤 길게 이어갈 수 있겠다. (그렇다고 창작이 쉬울 리는 없지. 이 점은 분명히 해둠.)

그 조력자가 바로 제목의 '도깨비 언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데 친근하고 다정하기까지 한 언니. 이 언니는 어떤 사연으로 마음고생을 하는 어린이들을 찾아가게 되었을까?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아는' 도깨비 언니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보통 도깨비 하면 남성 이미지에,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어딘가 좀 부족하고 허당인 캐릭터가 일반적인데, 요즘은 그런 고정된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다. 도도언니라고 불리는 이 언니도 그렇다. 도도언니의 과거 서사는 무척이나 애절하다. 원래는 사람이었던 언니. 부모님을 다 잃고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 밑에서 자라난 어린시절. 해녀였던 할머니마저도 물질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홀로남은 언니는 어쩔 수 없이 서툰 물질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 만난 '석이'의 존재가 언니의 외로운 삶에 한줄기 웃음을 주는데... 석이는 도깨비였고, 유일한 사랑이자 위로였던 석이를 떠나보내고 본인이 도깨비가 되기까지의 서사가 어린이들에게 꽤 매혹적일 것 같다. 어린이들도 슬픈 이야기를 좋아하더라고. 이 애절한 사연을 가진 도도 언니는 슬픔으로 더 깊어지고 단련된 성품을 가지고 어린이들 앞에 사려깊게 나타난다.

1권에 나오는 아이는 현아다. 자기 의견을 당차게 말하지 못하는 소심한 현아는 전학간 학교에서 좋은 친구 예림이가 다가와 행복했다. 드디어 절친을 만났구나 기뻐했지만 커다란 오해가 아이들 사이를 가로막는다. 그 오해의 사연에는 부쩍 힘들어진 현아네 가정 사정도 있었고.... 그런 현아 앞에 도도언니가 나타났고 '도깨비 공부방'으로 현아를 이끈다. 이곳은 아마 다음 권들에서도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 되겠다.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간절한 소원은 도도언니를 만나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낼 테고 어린이 독자들은 이야기 속 친구들을 응원하겠지.

어른 독자로서 딱 내 취향에 맞거나 손꼽게 재밌는 책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어린이들에게는 독서력을 불문하고 흡인력과 접근성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체도 요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이어지는 다음 권들에서 다양한 상황의 어린이 주인공들이 나와 어린이 독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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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속삭임 - 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보름달문고 93
하신하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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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을 패스한 적은 없으니 올해도! 오, 작가님이 꽤 많은 작품을 쓰신 알려진 분이시네. 이분의 작품 중 『별별수사대』를 몇년 전에 인상적으로 읽었다. 그 작품도 외계인을 다루었고, 우주에 관한 작가님의 관심과 지식을 짐작할만한 대목들이 군데군데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외 다른 작품은 못 읽어보았지만 이번 수상작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작가님은 오래전부터 SF 작품을 쓸 수 있는 내공을 닦아오셨구나. 그리고 드디어 이렇게 빛을 보았다. 아주 특별한 느낌의 SF였다. 과학이나 미래는 소재일 뿐 인간을 말하는 작품들이라는 느낌이었다. 책 제목이 『우주의 속삭임』 그렇다, 우주가 나온다. 그런데 그 우주가 탐험이나 개척의 대상이라기보다 어떤 근원을 말하는 느낌이 든다. 가늠할 수 없는 공간과 시간. 그 안의 나. 수많은 사람들의 사색과 철학의 대상이었던 나와 세계. 이 작품은 그 사색의 연장선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호흡이 긴 작품을 기대했었는지, 첫 작품이 끝날 때 단편집이라는 사실에 살짝 실망을 했다. 그러고보니 표제작이 된 작품은 없었다. 5편의 단편이 실렸고 책 제목은 그 모든 작품을 아우르게 잘 지었다. 실망은 괜한 것이었다. 각 단편의 완성도가 모두 높았고 느낌은 다섯이 각각 다 다르면서도 특별했다.

첫 번째 작품 「반짝이는 별먼지」는 이별을 다루었다. 그 이별은 아주 먼 이별이었다. 산골의 허름한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할머니와 아이. 그 민박집 이름 ‘별먼지’는 참 의미심장한 이름이다. 주제까지 담은 이름이라고 할까. 할머니는 50년 전에 의문의 방송을 듣고 미래를 예견하는 엽서를 썼다. 그게 당첨되어 외계인이 선물을 가지고 ‘별먼지’를 방문했다. 오로타 행성으로 가는 우주항공권. 할머니는 이제 떠나실 때가 된 것이다.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보니 그 외계인은 마치 저승차사의 역할 같은데, 작품의 신비로운 느낌 때문에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할머니가 가신다는 오로타 행성 또한 여행지라는 느낌이 들 뿐이다. 할머니는 “내 몫의 여행을 떠날 때가 왔구나.” 라는 말씀을 남기고 우주선에 올라 빛과 함께 사라졌다. 의지할 데라곤 할머니뿐이던 아이가 남겨졌지만 슬픔도 참혹함도 없이 평온하다.

이 서사가 상징이어서 할머니의 여행이 즉 죽음이라면, 참으로 아름답게 묘사된 죽음이다. 육신을 벗는 일이 저토록 가볍다면 얼마나 좋을까. 광활한 우주. 그중의 먼지인 존재. 하지만 인생의 무게는 왜 먼지가 아닐까. 어느 순간 그 무게는 우주이기도 하지. 그것이 바로 인생의 신비인 것일까. 그 누구도 완벽히 규정할 수 없는.

두 번째 작품 「타보타의 아이들」에서 지구인들은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탐색 중이다. 화성과 타이탄을 개발했고 ‘타보타’라는 행성에 탐사 기지를 세웠다. 화자는 TAT-129라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타보타에 파견된 전문가들은 모두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생겨 철수했고, 이곳엔 로봇들만 남았다. 인공지능인 화자는 나름의 판단으로 필요한 일들을 수행하며 타보타를 지키지만 지구인들은 사실상 이 행성을 포기한 듯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감지된 생명활동! 그것은 폐쇄된 온실에서 발생한 원시생물인 지의류였다. TAT-129는 그것에 보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극진히 보살펴 키운다. 우리가 알듯이 세상 모든 것들 중 어떤 것은 소멸되고 어떤 것은 시작된다. 이것은 또 어떤 시작인 것일까? 작가는 그 이상을 말하진 않았다. 다만 로봇인 화자가 그 지의류에게 하는 말이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보보 힘내, 이게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야.”

「달로 가는 길」의 주 소재는 ‘로봇’이다. 미래의 인간은 어디까지 로봇을 활용하게 될까? ‘달로 가는 길’은 바로 로봇이 소멸로 가는 길이다. 그게 왜 슬프게 느껴질까. 마지막 순간에서야 자신이 로봇인 줄을 알게 된 로봇(인간인 줄로 알고 살아왔던 로봇) 때문이었다. 로봇에 마음을 심는 일이 가능할까? 내가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데, 가능해지더라도 그건 안 했으면 좋겠다. 인간은 상실을 대체품으로 채우려고 하지만 아무리 미루어도 상실은 찾아온다. 그러니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들어오지 마시오」는 외계인에 대한 상상이 가장 재미나고 유쾌한 작품이었다. 못된 일당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주인공의 상황을 해결해 준 (본의인지 아닌지) 외계인 무아무아족. 이 무심한 외계인이 보여준 권선징악은 아주 후련했다. 그리고 그들이 과연 고향 행성에 돌아갔을까? 확인할 수 없는 열린 결말도 웃음이 났다. 다섯 편의 작품 중 가장 소품이라면 소품인데, 감정에 부담 없는 이런 작품이 하나 끼어 있는 것이 난 맘에 들었다.

마지막 「지나 3.0」은 앞의 작품에 가벼워진 마음을 다시 무겁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지구 멸망의 순간에 첨단 우주선으로 겨우 탈출한 가족. 그들은 인간이 살 수 있다고 짐작되는 태양계 밖의 어떤 낯선 이름의 행성으로 향하는데.... 우주의 광활함은 공포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 행성에 10년이 지나도 도착하지 못한다. 엄마와 동생은 동면에 들어갔고 우주공학자인 아빠와 장녀인 지나가 조종실을 지킨다. 그리고 20년, 30년이 지난다. 아, 그냥 글자만 읽는다면 모르겠는데 상상을 하면서 읽는 것은 힘들었다. 인간이 체감하는 시간 개념, 적어도 나의 체감에서는 저건 상상도 못할 고문이다. 멸망할 때는 그냥 같이 멸망하는게 좋겠어 라는 생각을....;;; 그러나 아빠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 가능한 방법으로 그들의 존재를 남기고 있다. ‘지나 3.0’도 그중의 하나다. 그게 난 너무 부질없고 슬퍼 보였다. 그게 작가의 생각과는 한참 거리가 먼 생각이라 해도. 감상은 각자의 몫이니까. 작가는 뭔가 희망을 말하려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우주의 속삭임』이라는 제목 아래 이상의 다섯 단편이 담겨있었다. 제목이 의미깊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인간 또한 우주를 알고 싶어 몸부림친다. 나야 먼지만큼도 모르지만, 많이 공부하고 알아본 사람들일수록 겸손해진다고 들었다. 내가 겸손해진다면 가끔씩 우주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까? 그 속삭임이 평화로운 것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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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 옥토버 - 2022 요토 카네기 섀도어스 초이스상 수상작
카티야 발렌 지음, 안젤라 하딩 그림, 이진경 옮김 / 상상의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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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지 않은 느낌의 아름답고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소재부터가 그렇다. 옥토버는 화자인 11살 소녀의 이름이다. 낱말뜻 그대로 옥토버는 10월에 태어났고 도시의 문명과 단절된 깊은 숲속에서 아빠와 둘이 산다. 엄마는 이런 삶에 동의하지 않았고 두 사람의 곁을 떠났다. 옥토버는 이 삶에 100% 동의하고 만족한다. 아이는 자신을 야생이라고 칭한다. 아이에게 야생은 최대의 가치다. 따라서 엄마를 이해하려 하지 않으며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옥토버에게 사랑은 오직 아빠 뿐이다.

 

아빠는 강인하고 박식한 사람이었기에 옥토버는 야생이되 모글리나 늑대소녀는 아니었다. 그들의 집에는 책들이 가득 차 있었고 옥토버는 야생의 생활만큼이나 책읽기를 사랑했다. 다만 그들은 최대한 자급자족했고, 자연의 섭리 속에서 살았다. 옥토버는 이와 다른 삶을 전혀 원하지도 상상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될까 끝까지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미심쩍어하는 나는 문명에 찌들은 사람이겠다. 나는 오히려 옥토버의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모든 불편이 바로 해결되는 (그것도 남의 손으로) 아파트에서 평생 살기로 결심한 내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되고 악천후를 견뎌야 하는 자연 속에서의 삶을 이해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름다운 대자연과 그 신선함을 만끽하는 옥토버를 보며 잠깐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편리함과 바꿀 생각이 없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옥토버의 숲속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사고가 벌어졌다. 어느날 엄마가 찾아왔고 그녀를 엄마라는 여자라고 칭하는 옥토버는 반발하며 나무 위로 달아나 적대감을 표출하는데, 그 와중에 아빠가 나무에서 떨어져 온몸이 부서지는 큰 부상을 입는다. 이제 그들은 문명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아빠는 런던의 큰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과 재활을 하고, 옥토버는 그토록 싫어하던 엄마라는 여자와 도시적인 주택에서 거주하게 된다. 심지어 생애 처음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상황 또한 독자로서는 흥미로웠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옥토버는 늑대소녀는 아니었기에 학교생활이 대단한 화제일 것까진 아니었지만 문제는 옥토버의 내적 갈등이다. 야생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 특히 옥토버가 구조해 기르던 올빼미 스티그를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두고 돌아선 마음, 아빠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과 절망감, 엄마라는 여자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어린 옥토버의 마음 속에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옥토버는 도시에서의 느낌을 나의 모든 감각이 뭉개지는 것 같다고 표현했는데, 내가 그 느낌을 느껴봤을 리는 없지만 어렴풋이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다. 도시인들의 오감은 살아있다 해도 살아있는 게 아닐 수 있겠지. 자연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던 감각이 도시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짓눌림이나 뒤엉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아빠의 부상은 심각했지만 조금씩 회복되어갔고, 옥토버도 한자리에서 분노하며 머물지 않고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유수프라는 친구와 프로젝트 과제의 짝이 된 것은 매우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박물관의 케이트 선생님을 통해 눈을 뜨게 된 사실들, 보물사냥꾼이 된 일, 사랑하는 올빼미 스티그의 비상을 보게 된 일, 엄마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 일, 유수프와의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치게 된 일 등.... 이제 옥토버의 세상은 더 크게 열렸다. 성장하며 옥토버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독자들은 응원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매력적이기는 하나 초반 진입이 조금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느낌으론 낯선 문체 때문인 것 같았다. 화자인 옥토버의 1인칭 시점인데, 항상 현재형 시제를 쓴다. 보통은 나는 함성을 질렀다.”라고 할 텐데 여기서는 나는 함성을 지른다.”라고 쓰는 식이다. 원서를 보지 못하니 어떤 차이와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낯설었다. 그리고 대화글이 따옴표 없이 문장 속에 들어있는데, 의도가 있을테고 거기에 동의하지만 읽기의 편의성으로만 따진다면 따옴표로 구분하는 편이 편하기는 하다. 가끔씩 섞여있는 운문은 어려운 말로 되어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의도를 파악하려면 곱씹어 해석할 필요가 있는 문장들이어서 쉽지는 않다고 생각되었다. 초등 고학년 중에서도 독서력이 있는 학생들에게 권해줄 만하겠고 중학생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타인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든 그것을 평가하지 말고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옥토버가 보물 사냥에 몰두하는 것이 내게는 좀 집착처럼 여겨졌지만 작가는 그것을 통해서 이야기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었다. 산산히 부서졌다 파묻힌, 이제는 본 모습을 알 수 없는 조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 누군가의 삶이었던 이야기. 세상은 이야기의 총체이며 나의 이야기도 그 일부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다. 이 책은 이렇게 끝난다.

 

이야기들은 도처에 존재하고, 나는 그 이야기들 모두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모든 세상이 야생이며, 그 세상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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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줄줄이 이야기가 줄줄이 산하작은아이들 72
이소완 지음, 박지윤 그림 / 산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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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특이해서 어떤 책일까 궁금해하며 펼쳤다. 따뜻하고 예쁜 이야기였다. 제목은 이 책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한 아이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책은 줄줄이 다음 아이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연결된 이야기는 하나로 잘 통합되고 마무리된다. 각 아이들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었고, 착하고 정이 가는 아이들이지만 비현실적일 정도는 아니었다. 표지에 그려진 빨간 장갑은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중요한 소재다.

 

처음 등장하는 아이는 보라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와서 친구가 없다. 보라의 새 집에선 집 앞 공원이 내려다보인다. 어느날 새벽 보라는 좋은 생각이 났다. 공원의 공터에 낙엽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하트로부터 시작된 그림은 토끼 얼굴, 곰돌이 얼굴 등으로 점점 수준을 높여갔다. 그걸 만들어 놓고 집에 들어와 창문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마지막으로 보라는 아주 커다란 고양이 그림을 완성한다.

 

다음 장에는 쌍둥이 형제 정우와 정민이가 등장한다. 동생 정우는 섬세하고 형 정민이는 과감하다. 정우가 공원에서 고양이 그림을 발견하고 감탄한다. 그때, 심술궂은 고등학생 무리가 나타나 몇 번의 발길질로 작품을 순식간에 망쳐버리고 말았다. 슬퍼하던 정우는 흩어진 낙엽더미에서 빨간 장갑을 발견한다. 고양이의 눈이었던 장갑이었다. 장갑 크기를 보고 또래인 걸 알게된 정우는 더욱 안타까워하며 장갑 주인이자 낙엽그림의 작가를 찾고 싶어한다. 정민이는 그 얘기를 듣고 장갑 주인을 찾는 방을 써서 붙인다.

 

다음 등장하는 윤서는 오지랖이 태평양인 아이다. 장갑 주인도 아닌데 정우 정민 형제를 찾아가고, 도와주겠다 제안한다. 윤서네 집은 공원 근처에서 과일가게를 한다. 자연스럽게 과일가게는 그들 프로젝트의 거점이 된다.

 

장갑을 과일가게에 걸어두었지만 주인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는다. 그때 수아가 나타났다. 수아는 좀 특이한 수집 취미가 있는 아이였다. 주인 없는 주운 물건들을 잔뜩 갖고 있다. 공원에서 작은 장터같은 것을 열어 분실물들의 주인을 찾아주자고 제안한다. 분실물 지우개에 눈독을 들이지만 밉지 않은 태오, 도움은 안되고 얄밉기만 한 영수 등도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채원이! 이 아이도 실행력이 좋다. 아이들을 지휘해 커다란 눈사람을 만든다. 빨간 장갑은 다시 눈사람의 눈이 되었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 보라는 왜 나타나지 않았을까? 아이들의 장갑 찾아주기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외롭던 보라가 자신의 작품을 기억해주고 좋아해주는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관계에 설렘을 갖게 되는 과정을 흐뭇하게 그려놓았다. 빨간 장갑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방식은 이야기의 본질을 잘 담았다고 생각한다. 공원의 낙엽그림이라는 첫 소재가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들까지 흥미롭게 잘 끌고나왔고 마무리까지 잘 이어졌다. 제목 그대로 줄줄이 줄줄이~

 

100쪽이 조금 안되는 분량은 3학년 정도에 딱 맞아 보이고, 2~4학년 정도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 적당하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전작인 맹물 옆에 콩짱 옆에 깜돌이처럼 따뜻하고 기분 좋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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