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왈루크 알맹이 그림책 69
아나 미라예스.에밀리오 루이스 지음, 구유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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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그림책들을 여러권 읽어보았는데 이 책은 느낌이 색다르다. 일단 칸 만화로 되어있고, 내용이 지식그림책과는 다르다. '왈루크'라는 어린 북극곰의 성장기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안에 많은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다.

북극곰은 환경문제, 특히 기후위기(지구온난화)의 상징적인 동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기후위기 얘길 꺼내면 바로 "북극곰이 죽어가요." 할 정도다. 이책을 보고 나니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인 나도 아이들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구나 하고 느낀다.

인간은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더 풍요롭게 살려고 발버둥치다 빙하가 녹는 것도 모르고 있었고(혹은 모른 척했고) 북극곰의 생존 위기를 목도하고서야 그들을 위해 뭐라도 하려고 하지만 인간이 해주는 일은 늘 신통치 않다. 한마디로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 거'다. 그렇다고 멸종되게 보고만 있을 수도 없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이 책을 보아도 그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왈루크는 엄마가 떠나고 혼자 남겨졌다. 엄마가 왜 떠났는지는 나오지 않으니 독자의 상상의 몫이다. 혼자 남겨진 후 왈루크에게 가장 먼저 강하게 다가온 감각은 배고픔이었다. 하지만 왈루크는 그걸 해결할 방법이 없다. 아직 바다표범을 사냥할 만큼 자라지도 못했고, 이제 그곳은 먹이 자체가 절대부족한 곳이 되었다. 바닷새의 알로 배를 채우다가 그 지역을 장악한 큰 곰의 분노에 튕겨나 버린다.

이때 중요한 만남이 일어난다. 늙은곰 '에스키모'가 지나가다 왈루크를 핥아주고, 깨어난 왈루크는 늙은 곰과 동행하며 이런저런 것을 배운다. 에스키모의 경험과 지혜, 왈루크의 생생한 감각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덕분에 그들은 겨우 생존해간다. 여기서 이 책의 장점을 하나 더 말한다면 그림이다. 그림체가 실제적이면서도 귀엽고, 동물인데도 표정이 생생히 살아있다. 큰 위기를 경고하는 책이긴 하지만 디테일에는 유머도 들어있어 어떤 장면에선 웃게 되기도 한다.

그들의 동행길에서 독자들은 관광열차를 넘어뜨리고 약탈(?)하는 곰들의 모습도, 탑 위에서 인간이 던져주는 정어리를 받아먹기 위해 모여드는 곰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먹을 것을 찾고 찾다 인간 가까이로 오게되어 처음으로 아스팔트를 밟아보는 왈루크의 모습도 볼 수 있고,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뒤져 먹다 곰덫에 걸린 에스키모의 모습도 보게 된다. 사실 그 덫은 자꾸 내려오는 곰들을 최대한 멀리 데려가 떨궈주려고 설치한 거긴 한데.... 그런다고 효과가 있나? 더구나 에스키모를 진단한 이들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엔 늙었다고 판단하고 안락사 결정을 내린다....ㅠ

인간들의 쓰레기가 눈과 뒤섞여 뒹구는 아스팔트 위에 왈루크가 서서 정면을 응시한다. 이 책의 표지로 사용된 장면이다. 잠시 후 그는 뒤돌아서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밤하늘에서 예전 에스키모 아저씨가 해주었던 전설의 북극곰 '나누크'를 본다. 이제 왈루크의 길은 정해졌다. 그는 어떻게 에스키모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 장면은 통쾌하긴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위기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 환경그림책은 만화라는 장르를 사용하여 많은 것을 구석구석 담았다. 북극곰 하면 작은 얼음위에 위태롭게 올라앉은 상징적인 그림도 좋긴 하지만, 북극곰의 생태를 알 수 있는 이런 만화 그림책도 좋을 것 같다. 보면 볼수록, 인간은 그냥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어야 맞다. 멀리서 지켜봐야 할 존재들과 너무 가까워진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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