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풀 킴 씨
한사원 지음, 민영 그림 / 풀빛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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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가에 꽂힌 이 책을 뽑을 때 글자를 잘못 읽고서 거의 다 읽을 때까지도 몰랐다. ‘폴 킴이라고 읽었다. 왜 그... 가수도 있고 그 이름 많잖아. 그런데 읽다보니 폴이 아니고 이었다. 기막힌 작명 센스다. 나처럼 오해에서 발생하는 해프닝으로 웃을 수도 있고, 이름 자체도 의미가 찰떡이니까. 언어란 건 참 훌륭한 기능을 가졌어. 때로는 한 글자만으로도 충분하다.

 

초록의 생김새를 가진 풀 킴 씨는 오늘도 출근한다. 이유는 뭐 다 비슷하지. 월세를 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반려 달팽이에게 줄 싱싱한 채소를 살 수 있으려면, 벌어야 하니까. 나처럼 풀 킴 씨도 생계형 직장에 최선을 다하고 툭하면 가장 늦게 퇴근한다. 하지만 직장에서 잘 어울리진 못한다. 너무 다른 색깔 때문에.

 

그날도 풀 킴 씨는 마지막으로 퇴근하는데, 비가 내렸다. 무슨 일인지 도토리 비였다. 도토리 한 개가 풀 킴 씨 입으로 들어갔다. 풀 킴 씨는 여느 날처럼 집에 돌아가 반려 달팽이를 보살피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여느 날과는 달랐다. 출근길의 발걸음을 하나씩 내디딜 때마다 그는 점점 커져갔다. 회사에 도착한 그를 상사는 해고하고, 그는 쓸쓸한 발걸음으로 걷고 또 걷는데, 그 발걸음마다 또 점점 커져갔다. 회색빛 건물 옥상의 다람쥐들을 만나고서야 그는 멈추었다. 다람쥐들은 제안한다.

어때, 우리의 집이 되어주지 않을래?”

좋아.”

그렇게 풀 킴 씨는 숲이 되었다.

 

그 숲에는 많은 것들이 깃들 것이다. 다람쥐와 작은 달팽이는 물론. 지구를 지키는 많은 생명들이 그 안에 깃들어 살겠지. 풀 씨가 숲 씨가 되고 회색 도시를 푸르름으로 감싸 안는 장면이 정말 벅차다. 작은 그림책 한 권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데 그 방식이 너무 신선하다. 숲처럼.

 

글작가와 그림작가 모두 이 책이 첫 책인 것 같은데, 첫 책으로 이렇게 푸르른 작품을 써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다양한 작품을 쓰시되, 이 숲의 느낌이 늘 바탕에 깔려 있다면 다시 만날 때 무척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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