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의 도전하는 날
필라르 세라노 브루고스 지음, 다비드 시에라 리스톤 그림, 고영완 옮김 / 초록귤(우리학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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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날것의 해석 같아 민망하지만, 난 이 그림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시샘의 순기능' 이라고 부르겠다.^^

일반적으로, 시샘은 찌질한 짓이고 자기파괴적이다. 하지만 인간의 속을 잘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시샘이 있다. 이걸 부정하느니 솔직하게 인정하고 건강하게 이용하는 게 낫다. 내가 아는 대표적인 사람이 싱어게인 시즌1의 30호 가수다. 그는 하고많은 이름 중 '배 아픈 가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쿨해보이는 그도, 재능인들에 대한 시샘이 동력이 될 때가 있었다니 위안이 된다. 그는 이제 거꾸로 많은 가수들이 배아파할 만한 열성팬들을 거느린 스타가 되었다.

이 책에는 날렵한 이동기능을 가진 다람쥐가 나온다. 그의 재주에 숲속 친구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너구리만 빼고. 너구리는 다람쥐가 부러워 따라해봤지만 불가능만 확인할 뿐이었다. 그러자 소위 '딴지'를 걸기 시작한다. "너 ~~~도 할 수 있어?" 이런 식이다.

다람쥐는 가볍게 성공하고, 그때마다 너구리는 배아픈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운이 좋았던 거야. 단지 그거야!" 를 되뇌인다. 이런 대목을 읽을 때는 해피엔딩을 예상하지 못했다. '시샘의 순기능'은 커녕 역기능을 보여주는 책일 것만 같다. 몇년 전 이런 아이들이 많은 학급을 맡은 적 있었다. 아이들에게 간곡하게 말하곤 했다. "선생님이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 줄게요. 남을 깎아내린다고 내가 올라가지 않아요. 오히려 남을 높여주면 나도 따라서 귀해지는 거예요." 타고난 성향은 잘 변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염두에 두는 아이들도 있었다. 남을 깎아내리는 찌질함. 그걸 속시원하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바로 여기에 나오네.^^

너구리는 상대의 실패를 바라며 계속 난코스를 개발하고, 다람쥐는 그걸 성공한다. 결국 이 출중한 다람쥐는 동물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떠난다. 그가 떠나자 숲은 심심해졌고, 너구리가 재주넘기 연습을 하고 있다. 그때 비버가 말했다.
"너구리야, 네가 잘하는 건 따로 있어. 잘 생각해 봐. 다람쥐에게 새로운 도전과제를 주기 위해 네가 얼마나 머리를 썼는지 기억 안 나?"
'네가 잘하는 건 따로 있어' 라는 말이 훅 다가왔다. 너구리도 그랬던 것 같다. 비버의 말대로 너구리는 재주넘기에 골몰할 필요가 없었다. 그건 다람쥐의 재능이고, 너구리의 재능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남이 갈채받는 것을 부러워하다가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지 못하고 때를 놓쳐버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너구리는 새로운 역할에 만족하며 숲속나라에 큰 도움도 주게 된다.

다람쥐의 멋짐은 마지막 장, 너구리에게 보낸 편지에서까지 빛을 발한다.
"너구리야, 네가 없었다면 절대로 그 많은 도전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야. 고마워!"
자신을 시샘하고 시험하는 친구가 미웠을 법도 한데, 그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고 고마워까지 하는 다람쥐는 정말 대인배구나. 이렇게하여 '시샘의 순기능'이 극대화된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부러움에서 좀더 나아간 시샘이 이처럼 도전과 발전의 동력이 되는 경우를 각자의 삶에 적용시켜야 할 것 같다. 삶을 보기싫게 일그러뜨리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시샘이기 때문이다. 이건 어린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신이 왜그러셨는지는 모르지만 재능은 저마다 저울에 단 것처럼 균일하진 않다. 누구에겐 몰빵되기도 했고. 누구는 천재적이기도 하다. 사실은 이게 문제지...ㅎㅎㅎ 나같은 범인들이 보기에 세상은 너무 불공평한 거야! 하지만 누구한테 따질 수도 없는 일, 엄연한 사실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저마다 역할이 다르다 생각하고 자신의 역할을 아름답게 수행하는 일. 이게 개인의 행복이고 나아가선 사회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찌질한 시샘이 사회 전반에 퍼지는 것을 매우 경계해야 하며 그런 사회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현명하고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람쥐와 너구리의 해피엔딩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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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풀 킴 씨
한사원 지음, 민영 그림 / 풀빛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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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가에 꽂힌 이 책을 뽑을 때 글자를 잘못 읽고서 거의 다 읽을 때까지도 몰랐다. ‘폴 킴이라고 읽었다. 왜 그... 가수도 있고 그 이름 많잖아. 그런데 읽다보니 폴이 아니고 이었다. 기막힌 작명 센스다. 나처럼 오해에서 발생하는 해프닝으로 웃을 수도 있고, 이름 자체도 의미가 찰떡이니까. 언어란 건 참 훌륭한 기능을 가졌어. 때로는 한 글자만으로도 충분하다.

 

초록의 생김새를 가진 풀 킴 씨는 오늘도 출근한다. 이유는 뭐 다 비슷하지. 월세를 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반려 달팽이에게 줄 싱싱한 채소를 살 수 있으려면, 벌어야 하니까. 나처럼 풀 킴 씨도 생계형 직장에 최선을 다하고 툭하면 가장 늦게 퇴근한다. 하지만 직장에서 잘 어울리진 못한다. 너무 다른 색깔 때문에.

 

그날도 풀 킴 씨는 마지막으로 퇴근하는데, 비가 내렸다. 무슨 일인지 도토리 비였다. 도토리 한 개가 풀 킴 씨 입으로 들어갔다. 풀 킴 씨는 여느 날처럼 집에 돌아가 반려 달팽이를 보살피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여느 날과는 달랐다. 출근길의 발걸음을 하나씩 내디딜 때마다 그는 점점 커져갔다. 회사에 도착한 그를 상사는 해고하고, 그는 쓸쓸한 발걸음으로 걷고 또 걷는데, 그 발걸음마다 또 점점 커져갔다. 회색빛 건물 옥상의 다람쥐들을 만나고서야 그는 멈추었다. 다람쥐들은 제안한다.

어때, 우리의 집이 되어주지 않을래?”

좋아.”

그렇게 풀 킴 씨는 숲이 되었다.

 

그 숲에는 많은 것들이 깃들 것이다. 다람쥐와 작은 달팽이는 물론. 지구를 지키는 많은 생명들이 그 안에 깃들어 살겠지. 풀 씨가 숲 씨가 되고 회색 도시를 푸르름으로 감싸 안는 장면이 정말 벅차다. 작은 그림책 한 권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데 그 방식이 너무 신선하다. 숲처럼.

 

글작가와 그림작가 모두 이 책이 첫 책인 것 같은데, 첫 책으로 이렇게 푸르른 작품을 써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다양한 작품을 쓰시되, 이 숲의 느낌이 늘 바탕에 깔려 있다면 다시 만날 때 무척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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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달을 지켜 줘
정진호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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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져나오는 그림책들을 탐색하는 눈이 그렇게 밝은 편이 아니라서, 이 재밌는 그림책이 나온지 1년 넘도록 모르고 있었네. 오늘 막간의 시간에 책 반납하려 도서관 잠깐 들렀다가 정진호 작가님 그림책이 눈에 띄어 대충 후다닥 빌려가지고 왔는데, 집에 와서 찬찬히 읽어보니 완전 마음에 들었다. 이런 그래픽노블 그림책도 참 좋아한다. 130여 쪽의 분량이라 제법 읽을 것도 있으면서 부담없이 술술 넘겨 읽을 수 있어서 잠시의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에 딱 좋았다.^^

이 책의 서사는 주인공의 결정적인 오해를 바탕으로 한다. 푸른화살은하의 신입 탐사요원 새로는 블랙홀에 빠져서 어딘가에 불시착한다. 우주선은 박살나고 간신히 비상장치를 켜서 현재위치를 탐색하던 중 ‘지구’가 뜬다.(그 옆에 달도) 새로는 훈련소 시절 배웠던 지식 중 두가지를 기억해냈다.
- 지구에는 생명체가 사는데, 아주 난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지구에는 달이라는 위성이 있는데, 밤하늘에서 아름답게 빛난다고 한다.

사실 새로는 달에 불시착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까 화면에 스쳤던 ‘지구’가 뇌리에 박힌 새로는 여기가 지구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새로가 생각하는 ‘달’은 무엇일까? 달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별, 그건 바로 지구였다. 하지만 제목은 새로의 오해를 그대로 반영했다. 그리하여 제목이 『나의 달을 지켜 줘』

망망대해보다 더한 곳에 혼자 던져진 새로는 달(사실은 지구)의 아름다움에 감격했다. 너무 아름다워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새로는 급하게 우주선을 수리한다. 이 첨단 우주선은 입자변환기로 기억물질을 만들어 재생이 가능하다. 불시착한 곳의 광물로 재생 중.... 꽤 오래 걸리는 이 작업 중 새로는 아름다운 달(사실은 지구)을 보며 지친 마음을 달랜다.

드디어 수리 완료! 새로는 떠날 준비를 한다. 마지막으로 달을 눈에 담으려는데, 여기저기 폭발이 일어난 게 아닌가! 새로의 오해는 이런 확신을 부른다.
- 지구인이 지구를 이렇게 망쳐놓고 달로 건너갔구나. 이대로라면 달마저 파괴하겠다. 안돼~~!!
그리하여 새로의 우주선은 달로 향한다. 실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구다.

‘나의 달을 지킬 거야.’ 라는 새로의 각오는 이루어졌을까? 새로는 자기의 은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구는 평화를 되찾고 유지할 수 있을까? 초반부터 재미 포인트가 많지만 결말에도 꽉꽉 들어차 있다. 그리고 이중으로 놓여진 또하나의 서사. 달토끼들과 또다른 어떤 존재의 사랑. 그 이야기는 결말을 어떻게 인도하게 될까?

외계인을 통해 인간 세상을 풍자하는 우화 같은 느낌의 그래픽노블이었다. 『나의 달을 지켜 줘』라는 제목의 메시지는 사실은 ‘너네 지구를 잘 좀 지켜!’가 아니겠나. 달, 아니 지구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외계인의 감성이 우리를 찡하게 만든다. ‘난폭하다’고 우주적으로 소문난 지구인들, 이제 어떡할 겁니까? 계속 그렇게 살 거예요? 네?

라가치상을 두 번이나 받으셨다는 정진호 작가님은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창조하는 능력도 대단하시다. 외계인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일이야? 마지막의 반전. 얘는 키로만 따져도 나보다 열 배는 크다. 하지만 뭐 크기야 상대적인 것이고 숫자일 뿐이지. 사랑스러움에는 조건이 없다. 귀여움에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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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행 나무의말 그림책 7
이상은 지음, 오승민 그림 / 나무의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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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온걸 보고 봐야지! 하고는 잊어버렸는데 동네도서관 신간코너에서 발견했다. 읽어보고 너무 좋아서 검색을 해보고 감탄의 한숨이 나왔다. 내가 모르는(몰랐던) 세계는 왜 이렇게 많을까. 이상은이라는 분이 아티스트인걸 나는 몰랐구나. 심지어 동시대인인데도.

그분과 나는 학번도 같다. 88년 대학 1학년일때 강변가요제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데뷔했다. 그때 살았던 사람이면 안들어봤을 수가 없는 담다디. 이건 여담인데 88년은 서울올림픽의 해이기도 하지만 정말 걸출한 아티스트들을 배출한 해였다. 대학가요제에서는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신해철의 <그대에게>가 등장했다. 아 어느새 오래된 추억이다.

근데 나는 신해철에 비해서 이상은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이상은=담다디' 공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담다디는 썩 내맘에 드는 노래는 아니었고 겅중거리는 그이의 춤도 소비성이 높다고 생각했을 뿐 그닥 좋아하진 않았다. 나의 취향과는 반대로 그 노래는 엄청 히트를 쳤다. 하지만 가수에게 굴레를 씌우는 곡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후 그의 음악 작업은 담다디를 지우는 작업이었을 수도.

그런데 나는 담다디 그 이후를 몰랐다는 게 오늘의 아쉬움이다. '언젠가는'을 좋은 노래로 기억하고 있는 정도. 거기에 오늘 그림책으로 '삶은 여행'이 추가되었고, 탈피에 가까운 그의 수많은 도전들과 함께 많은 명반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천천히 들어봐야겠다.

예술적 욕구는 있으나 표현기능을 갖고 있지 못한 나는 아티스트인 이상은 씨가 부럽다. 특히 싱어송라이터로서 가사를 잘 쓰는 사람들 보면 감탄한다. 요즘 가수로는 이승윤이나 이찬혁 같은... 이상은 님도 그런 부류였구나. 그림책의 본문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아니 넘치게 좋은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 종합예술인.

그림작가 오승민 님에게도 감탄한다. 노래가사는 보통 구체적이지 않고 함축적이다. (아 지나치게 구체적인 가사도 물론 있긴 하지만^^) 그걸 그림으로 구체화해야 되는 작업이 쉬울 리 없다. 새로운 창작이되, 조건이 많이 따르는 어려운 창작일 것 같다. 이 책에선 그 창작이 아주 훌륭하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글과 그림이 모두 아름다운 한 권의 그림책이 되었다.

'삶은 여행' 이라는 제목 속에 작가의 인생관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삶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 속을 혼자 걸어가는 걸
두려워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 걸"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발걸음이 늘 혼자인 것은 아니다. 내 발로 디뎌야 하지만 내 옆에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피리"
"수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

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 같다.

삶의 많은 부분이 슬픔과 아픔이기에, 아픔을 노래한 가사들도 마음에 절절히 와닿는다.
"어제는
날아가버린 새를 그려
새장 속에 넣으며 울었지"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이 대목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을까.

하지만 인생은 여행이기에, 떠날 때는 다 놓고 떠나는 것이다.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작가소개에 작가가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다친 이에게 힘이 되는 노래였음 했었어요.
기도로 만든 노래이므로 누군가에게 삶을 향한 긍정의 기도로 다가가기 바랍니다."
그 의미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각자의 의미로 작가와 소통할 수 있다. 나도 그런 느낌이었다.

노래가사도 예술(문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나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꿈틀.... 하지만 나는 구구절절 쪽이고 함축과는 거리가 멀어서 불가능하다.^^;;;; 세상에 있는, 있을 수많은 가사들 중 이렇게 문학성이 높은 가사들은 종종 그림책으로 제작되면 좋겠다. 얼마나 좋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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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작업치료가 필요합니다
나카마 치호 지음, 지석연 옮김 / 케렌시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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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치료에 대해서 들어본지는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잘 알지는 못한다. 역자서문에서 학교지원 경험으로 언급한 선생님과 내가 친한 사이여서, 그분이 마련한 연수자리에 나가본 적이 있다. 그때 역자 강의를 한번 들었는데, 이 분야가 무척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하는 전문분야이며 이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막막한 상황에서 상당히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일상적 학급운영에도 바쁘다보니 1년,2년,그리고 몇년이 쏜살같이 지나버렸고 난 그때의 생각을 거의 잊고 지냈다.

지금 근무하는 곳은 특수학급 2개반의 정원이 넘칠 정도로 대상자가 많은 곳이다. 나도 해마다 도움반 학생을 한명씩 맡았다. 어떤 학생은 비교적 무난했고 어떤 학생은 무척 힘들었다. 가장 힘든 것은 나의 대처방법에 대해 확신이 없었고, 시도한 방법들이 효과가 없는데 그게 방법의 오류인지 아니면 아직 때가 아닐 뿐이라서 지속적으로 밀고나가야 하는건지 끊임없이 고민이 된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학생들은 도움반 학생들 외에도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다. 이유는 분석해보지 못했지만 체감으로는 분명히 그렇다. 이제는 이런 학생들 지도에 팀플레이가 필요한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무척 유연하고도 세심하며 전문적인 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

우리나라는 뭐든 도입되면 형태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 우려되는 점도 있지만, 그래도 부러운 마음으로 이 일본의 사례들을 읽어나갔다. 전문가의 분석은 문제의 지점을 찾고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향한 한걸음을 실행하는데 도움을 준다. 보통은 학교교육과 별도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치료를 받는데, 교육현장에서 병행하면 훨씬더 효과를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치료는 보편적이라기보다 상황적이라 공적 시스템으로 만들기에는 유연성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긴 했다. 하지만 이것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고, 현장의 협업은 꼭 필요하니 방법을 모색해보면 좋겠다.

내용 중 학생의 문제행동에 집중하기보다 '도달하고 싶은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고 뜨끔하게 다가왔다. 보통 학급에서 도움이 절실할 때는 '문제행동'이 표출될 때다. 그래서 그 문제행동의 축소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저자를 보니 세밀한 관찰을 통해 학생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도달하고 싶은 목표를 정한 뒤 구체적 과제를 단계별로 해결해 나갔다. 이 내용을 담임교사, 특수교사, 학부모, 보조인력 등이 모두 공유하고 협력했다. 은연중에 학급의 친구들까지 협력하게 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이렇게 목표를 정하는 방식은 협력이 없는 상황이라 해도 교사로서 참고해야겠다.

다음으로 인상적인 대목은 ['해주는 복지'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활용하는 복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117쪽) 라는 의견이다. 복지대상이 많은 학교에 근무해보니 우리나라는 복지의 불모지가 아니다. 다만 그 효율성에는 물음표가 떠오를 때가 많았다. 그래선지 '자신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고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이 확 다가왔다. 사실 해주는 게 훨씬 더 쉽다. 하지만 진정한 복지는 가능성을 키워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까이서 본 입장에서, 말이 쉽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알고있다. 연관하여 '졸업이 있는 복지'라는 의견도 현장전문가답다고 생각되었다.

이어서 목표 설정이나 작업수행 단계를 정하는 등의 과정을 간단히라도 보니 상당히 공부가 필요한 전문적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치료 영역과 교육의 영역은 상당부분 겹치고, 그래서 함께할 때 시너지를 낼 부분이 많아 보인다. 시스템적인 부분은 내가 잘 모르지만 고민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저자가 협력의 경험이 많은 분이라 자신의 실패경험을 토대로 사려깊고 현명한 협력의 태도를 말씀하시는 부분이 구석구석 보여서 그 점도 신뢰가 갔다. 부디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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