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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 대마왕 ㅣ 내책꽂이
수지 모건스턴 지음, 클로틸드 들라클루아 그림, 김영신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책으로 오랫동안 너무나 유명한 작가 수지 모건스턴은 지금도 활발히 책을 쓰시나보다. 이 책은 작년에 나왔다. 내용에 대한 정보가 없었지만 작가 이름을 보고 골라들었다.
마침 어제 수업했던 ‘근면’이라는 주제의 도덕수업이 생각났다. 시간이 부족해 준비를 많이 하지 못했고 두 편의 교과서 예화와 한 편의 동영상을 가지고 줌에서 수업을 했다. 내용파악 후에는 패들렛에 이런저런 질문들을 올리고 답변을 달게 했더니 아이들의 답변이 주루루룩 올라왔다. 그 답변들을 함께 살펴보는 게 교과서 예화를 보는 것보다 더 좋은 공부가 되었다. 공부는 이렇게 서로서로 배우는 거라고, 선생님도 많이 배웠다며 고맙다는 인사로 수업을 마쳤다.
수업은 무난하게 흘러가고 마쳤지만 사실 피상적인 질문들이 많았고 아이들도 대충 당위에 대한 눈치는 있으니 거기에 의거해 답변한 경우가 많았다.ㅎㅎ 이 책을 읽고 보니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아이들과 깊이 있게 읽는다면 이 주제에 대한 실제적인 고민이 가능하겠다.
제목을 보자. 심심해 대마왕! 표지에는 주인공 소년 헥토르가 세상 지루한 표정을 하고 소파에 늘어져 있다. 이 아이의 입버릇은 “심심해.”이다. 모든 게 지루하고 재미없다. 이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은 상상 속에만 있다.
우리반 아이들과 수업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얘들아, 너희들도 심심하다는 말 많이 하니?”
코로나 1년을 보낸 아이들이니 당연히 그렇다고 하지 않을까.
“선생님도 어릴 때는 심심한 적이 많았어.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심심할 새가 없었으니까. 매일 피곤할 정도로 일이 많으니까. 어쩌다 한가한 시간이 나면 그건 심심한 게 아니라 달콤하고 행복한 거였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고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 책의 내용이 내 생각이랑 너무 비슷한 거였다!ㅎㅎ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심드렁하고 매사 귀찮기만 하던 헥토르의 귀에 어느 날 선생님의 한마디가 깊이 박힌다. “여러분은 지금 오직 한 번뿐인 아홉 살 인생을 살고 있어요.”
그리고 다음날, 헥토르에게 또 한명의 지루한 존재인 이모할머니에게 다락방에 보관하던 오래된 바이올린을 선물로 받는다. 이 바이올린이 헥토르 인생의 전환점이랄까? 비로소 헥토르의 ‘시간’들이 채워지기 시작하고 그것들이 색채를 갖기 시작한다.
바이올린이 헥토르 맘에 들어서 다행이다. 예술을 즐긴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을 갖는 것인가. 그런데 공짜는 없기 때문에 그게 그냥 되지는 않는다. 숙달을 위한 노력과 투자와 인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헥토르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마도 숨겨진 재능이 있었던 듯. 이것을 발견하고 제안해주는 것도 부모의 큰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장의 제목은 ‘바쁘다 바빠’이다. 왜 일들은 몰려다니는 걸까. 흘려버렸던 지나간 시간을 아까워하게 말이다. 헥토르가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하자마자 헥토르에게는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도 생기고, 도와드려야 할 이웃도 생기고, 학교에서의 역할도 생긴다. 그리고 아빠한테 이끌려서 다니던 축구교실은 자신이 원하는 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헥토로의 일상은 채워지고 정돈된다. 그러다 토요일을 맞았다. 할 일도 없고 친구들도 없는 완벽한 혼자였다.
“하지만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마지막 문장이었다.^^
사람에게는, 특히 아이들에게는 텅 빈, 뒹굴뒹굴하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다. 널브러진 시간들 속에 방치되다보면 사람은 자존감을 잃게 된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너무 빡빡한 일상도 좋지 않다. 적당히 근면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과제, 그리고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 함께 필요하다. 이것은 약간의 교사의 역할과 지대한 양육자의 역할이 요구되는 일이다. 헥토르의 선생님이 동기부여를 해주고, 이모할머니가 바이올린을 선물하고, 아빠가 축구교실 그만두는 걸 허용하고, 엄마가 미술관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것처럼 말이다.
어제 미술시간에는 그림책 『다다다 다른별 학교』을 읽어주고 자신을 주인공으로 그림책의 한 장면을 그리는 활동을 했다. 남학생 절반이 “나는 게임별에서 왔어.” “나는 핸드폰별에서 왔어.”라는 작품을 제출한 것을 보고 잠시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내가 의욕을 잃을 일은 아니다. 오히려 힘을 내야 할 일이다. 오죽하면 그렇겠는가?
아이들에게 ‘나를 성장시키는 유익한 취미’를 찾게 하고 그것을 위한 연습의 시간을 매일 조금씩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일단은 날마다 읽은 책과 쪽수와 간단한 감상을 쓰는 독서일기를 쓰고 있는데, 스스로가 정한 종목의 과제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디 아이들이 우울한 시간의 늪에서 부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짝 바쁜 듯한 평일, 쉼이 있는 주말을 통해서 자신의 성장을 느끼며 만족하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치우쳐지기 쉬운 일이며 황금비율을 찾아야 하는 일이며 개인마다 다른 일이다. 쉽다면 누구나 했겠지.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내 하루를 보람되게 채우는 근면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해보고 싶다.
사실 나 자신도 삶의 밀도를 높였다면 지금보다 더 능력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내구성이 달라서, 더 높였다가는 터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난 지금 심심하지 않아. 심심할 새가 어딨어. 그럼 나 자신의 근면성에 대해서는 그리 회의하지 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