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 대마왕 내책꽂이
수지 모건스턴 지음, 클로틸드 들라클루아 그림, 김영신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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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책으로 오랫동안 너무나 유명한 작가 수지 모건스턴은 지금도 활발히 책을 쓰시나보다. 이 책은 작년에 나왔다. 내용에 대한 정보가 없었지만 작가 이름을 보고 골라들었다.


마침 어제 수업했던 근면이라는 주제의 도덕수업이 생각났다. 시간이 부족해 준비를 많이 하지 못했고 두 편의 교과서 예화와 한 편의 동영상을 가지고 줌에서 수업을 했다. 내용파악 후에는 패들렛에 이런저런 질문들을 올리고 답변을 달게 했더니 아이들의 답변이 주루루룩 올라왔다. 그 답변들을 함께 살펴보는 게 교과서 예화를 보는 것보다 더 좋은 공부가 되었다. 공부는 이렇게 서로서로 배우는 거라고, 선생님도 많이 배웠다며 고맙다는 인사로 수업을 마쳤다.

수업은 무난하게 흘러가고 마쳤지만 사실 피상적인 질문들이 많았고 아이들도 대충 당위에 대한 눈치는 있으니 거기에 의거해 답변한 경우가 많았다.ㅎㅎ 이 책을 읽고 보니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아이들과 깊이 있게 읽는다면 이 주제에 대한 실제적인 고민이 가능하겠다.

제목을 보자. 심심해 대마왕! 표지에는 주인공 소년 헥토르가 세상 지루한 표정을 하고 소파에 늘어져 있다. 이 아이의 입버릇은 심심해.”이다. 모든 게 지루하고 재미없다. 이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은 상상 속에만 있다.


우리반 아이들과 수업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얘들아, 너희들도 심심하다는 말 많이 하니?”

코로나 1년을 보낸 아이들이니 당연히 그렇다고 하지 않을까.

선생님도 어릴 때는 심심한 적이 많았어.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심심할 새가 없었으니까. 매일 피곤할 정도로 일이 많으니까. 어쩌다 한가한 시간이 나면 그건 심심한 게 아니라 달콤하고 행복한 거였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고 있었는데, 깜짝 놀랐다. 책의 내용이 내 생각이랑 너무 비슷한 거였다!ㅎㅎ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심드렁하고 매사 귀찮기만 하던 헥토르의 귀에 어느 날 선생님의 한마디가 깊이 박힌다. “여러분은 지금 오직 한 번뿐인 아홉 살 인생을 살고 있어요.”

그리고 다음날, 헥토르에게 또 한명의 지루한 존재인 이모할머니에게 다락방에 보관하던 오래된 바이올린을 선물로 받는다. 이 바이올린이 헥토르 인생의 전환점이랄까? 비로소 헥토르의 시간들이 채워지기 시작하고 그것들이 색채를 갖기 시작한다.

바이올린이 헥토르 맘에 들어서 다행이다. 예술을 즐긴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을 갖는 것인가. 그런데 공짜는 없기 때문에 그게 그냥 되지는 않는다. 숙달을 위한 노력과 투자와 인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헥토르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마도 숨겨진 재능이 있었던 듯. 이것을 발견하고 제안해주는 것도 부모의 큰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장의 제목은 바쁘다 바빠이다. 왜 일들은 몰려다니는 걸까. 흘려버렸던 지나간 시간을 아까워하게 말이다. 헥토르가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하자마자 헥토르에게는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도 생기고, 도와드려야 할 이웃도 생기고, 학교에서의 역할도 생긴다. 그리고 아빠한테 이끌려서 다니던 축구교실은 자신이 원하는 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헥토로의 일상은 채워지고 정돈된다. 그러다 토요일을 맞았다. 할 일도 없고 친구들도 없는 완벽한 혼자였다.

하지만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마지막 문장이었다.^^


사람에게는, 특히 아이들에게는 텅 빈, 뒹굴뒹굴하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다. 널브러진 시간들 속에 방치되다보면 사람은 자존감을 잃게 된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너무 빡빡한 일상도 좋지 않다. 적당히 근면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과제, 그리고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 함께 필요하다. 이것은 약간의 교사의 역할과 지대한 양육자의 역할이 요구되는 일이다. 헥토르의 선생님이 동기부여를 해주고, 이모할머니가 바이올린을 선물하고, 아빠가 축구교실 그만두는 걸 허용하고, 엄마가 미술관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것처럼 말이다.

어제 미술시간에는 그림책 다다다 다른별 학교을 읽어주고 자신을 주인공으로 그림책의 한 장면을 그리는 활동을 했다. 남학생 절반이 나는 게임별에서 왔어.” “나는 핸드폰별에서 왔어.”라는 작품을 제출한 것을 보고 잠시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내가 의욕을 잃을 일은 아니다. 오히려 힘을 내야 할 일이다. 오죽하면 그렇겠는가?


아이들에게 나를 성장시키는 유익한 취미를 찾게 하고 그것을 위한 연습의 시간을 매일 조금씩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일단은 날마다 읽은 책과 쪽수와 간단한 감상을 쓰는 독서일기를 쓰고 있는데, 스스로가 정한 종목의 과제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디 아이들이 우울한 시간의 늪에서 부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짝 바쁜 듯한 평일, 쉼이 있는 주말을 통해서 자신의 성장을 느끼며 만족하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치우쳐지기 쉬운 일이며 황금비율을 찾아야 하는 일이며 개인마다 다른 일이다. 쉽다면 누구나 했겠지.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내 하루를 보람되게 채우는 근면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해보고 싶다.


사실 나 자신도 삶의 밀도를 높였다면 지금보다 더 능력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내구성이 달라서, 더 높였다가는 터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난 지금 심심하지 않아. 심심할 새가 어딨어. 그럼 나 자신의 근면성에 대해서는 그리 회의하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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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이네 떡집 난 책읽기가 좋아
김리리 지음, 이승현 그림 / 비룡소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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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학년 아이들과 이 책으로 돌려읽기를 했다. 그때는 온작품읽기라는 말이 아직 교육과정에 들어오기 전이라서, 이 책이 그토록 유명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국어에 독서단원이 들어오고, 거기다 3학년 교과서에 본문이 실리기까지 하자 이 책의 수요는 폭발적이 되었다. 거의 3학년 온작품읽기의 교과서? 이 책을 안하시는 3학년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라 할까.^^

올해는 4학년을 맡았다. 난 이 책을 3학년 용으로 머릿속에 딱 박아놓은지라 고려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같이 으쌰으쌰 하는 쌤들이 이 책을 하잔다. 작년 3학년에 물어보니 마침 이 책을 안했다는 거 아닌가! (코로나 땜에 온책읽기도 잘 진행되기 어려웠지ㅠ) 오~ 신나는 맘으로 7년만에 다시 책을 펼쳐봤다. 이 책을 왜 골랐었는지 기억이 났다. 수많은 학교에서 이 책을 선택하시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첫째로 진입장벽이 낮다. 저학년도 읽기 가능할 정도로 쉽게 읽히고 술술 나간다. 온작품읽기 첫 책으로 선정하면 무난하고 좋다. 독서능력이 좀 부족한 아이들도 함께 끌고 나갈 수 있다.
둘째, 재미있다. 수많은 이유가 있다 해도 이게 없으면 끝이지. 입말투의 문체가 친근하고 적당히 유머도 있으며 다음 장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도 있다.
셋째, 교훈(?)적이다. 이건 잘못하면 완전 마이너스다. 문학적 힘이 없으면서 교훈을 들이대면 어른들은 골라들지 몰라도 아이들에겐 외면당한다. 이 책은 이야기의 힘에 교훈을 얹었다. 그래서 거부감 없이 성찰이 가능하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내 기억보다 더 책이 짧네? 혼란의 2020 동안 아이들의 독서능력도 크게 성장하지 못했을거라 감안하면, 이정도로 가볍게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이제 등교날도 점차 늘어날 거라 예상되는 바, 아이들의 관계 문제는 더 불거질 것이고, 그 출발점은 그들의 '언어'인 경우가 많으니 예방주사로 어찌 아니 적절하랴!^^

책을 보고 활동을 구상하는 교사들의 눈도 비슷비슷해서, 그해 3학년과 이 책을 읽고 '떡집' 활동을 했는데 이후에도 그런 활동을 많이 보았다. 떡집의 신상품들을 상상해서 만들어내는 활동. 난 빵을 좋아하지 떡은 별론데, 그래도 왠지 상상하면 기분이 좋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데다가, 신비한 능력으로 단점을 고쳐주기까지 하니까! 사람들의 단점도 소원도 천차만별이니 새로운 효능을 가진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신상 떡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 재미있겠다.

7년만에 다시 읽으며 책의 마지막장을 보고 맞다, 그랬었지! 했다. '만복이네 떡집'은 역할을 다했고 이제 '장군이네 떡집'이....ㅎㅎ 뒷이야기 쓰기도 활동의 좋은 소재였지만 작가님이 직접 그 이야기를 쓰실 것 같은데.... 그 이야기가 10년만에 작년에 나왔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리셨는지 이야길 들어보고 싶다. 일단 내가 '장군이네 떡집'을 읽으러 갈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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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나가 나무를 심었대 상상공작 그림책
로드리고 마티올리 지음, 김정하 옮김 / 풀빛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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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커뮤니티에 서평 모집이 몇권 올라왔는데 표지랑 제목을 보고 이 책을 신청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어린이 버전일까? 궁금해서였다. 읽어보니 그렇게도 볼 수 있겠고, 다른 관점에서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앞면지와 뒷면지에는 어떤 물건들이 가득 그려져있는데, 나무심기와 관련된 물건들이다. 삽, 물뿌리개, 가위, 장갑, 장화, 쇠스랑, 손수레... 등등. 그리고 단순한 선으로 아주 귀엽게 그려진 알리나는 아주 작은 묘목 하나와 작은 삽을 가지고 등장해 땅을 푹푹 파고 그 묘목을 심는다. 그때부터의 변화가 이 책의 내용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일평생 셀수없이 많은 도토리를 심었다면 알리나는 생각한 것을 한 번 실천에 옮긴 것이다. 물론 한번의 실천이 이토록 많은 열매를 맺었으니 그 이후에도 실천이 이어졌을거라 우리는 믿을 수 있다. 어쨌든 전자의 핵심이 '꾸준한 실천'에 있다면 이 책은 '즉각적인 실천'에 있다고 보여진다. 일단 해보는 것! 그것이 선한 일이라면.

알리나의 나무에선 가지가 나오고, 새가 깃들고, 알을 낳고, 토끼가 굴을 파고, 과일이 열리고, 꿀벌과 개미들이 찾아오고, 아기새들이 깨어난다. 씨앗이 땅에 떨어지고 그것들이 또 자라난다. 알리나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던 화면이 점점 채워진다. 마지막 장면은 거의 자연의 낙원처럼 보인다.^^

그 과정에 이 책은 독자인 어린이와 양육자가 같이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심어놓았다. 변화 관찰하고 찾아내기, 각 개체의 수 세기. 변화를 찾아내는 것은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잘한다. 또한 취학 전 5~7세 정도나 1학년의 어린이들에게 변화하는 토끼, 꿀벌, 과일들의 수 세기는 놀이처럼 할 수 있는 활동일 것 같다. 또 한가지가 있다. 의성어, 의태어 활동이다. 이게 원작에도 있었을까? 궁금하다. 우리말처럼 의성어, 의태어가 발달한 언어는 좀처럼 없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원작에 있으니까 넣었겠지? 그건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을 반복해서 읽기에 좋은 장치라고 생각되었다. 취학 후 어린이들과도 살펴볼만한 소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포인트를 달리 해서 여러번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중의적 주제를 가졌다는 점도 그렇다. 마지막 장은 이렇게 끝난다.
"너도 나무 한 그루를 심어 보면 어떨까?"
이건 단지 나무를 심는 그 행위에 한정된 제안은 아닐 것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 그것을 향해 내딛는 첫발을 의미하지 않을까. 나무를 심었으니까 이후의 일들이 가능했듯이, 일단 시도해야지 그것조차 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물론 액면 그대로의 의미도 크다고 생각한다. 지구엔 더 많은 나무가 있어야 하니까. 나무를 심는 일 자체도 매우 숭고한 일이다.

읽다가 거슬리는게 하나 있었다. 순차적인 변화 과정에서, 과일이 열리는 것보다 새 알이 깨어나는게 먼저여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ㅎㅎㅎ 그건 물론 중요한게 아니겠쥬?^^;;;; 음 하지만 거기서 안넘어가는 아이도 없진 않을 것이다.ㅎㅎ

처음 만나는 브라질 작가의 그림책 한 권을 학급문고에 꽂아본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나무 한 그루가 심기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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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귀신과 함께 마루비 어린이 문학 2
한영미 지음, 임미란 그림 / 마루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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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소재들로 채워진 동화다. 그중에 '귀신'이 두드러지기에 솔직히 썩 끌리진 않았다. 괴기류를 싫어해서.... 하지만 읽다보니 무섭다기보단 애잔하달까.... 귀신을 믿지는 않지만 상상력의 영역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 사연을 들여다보면 흔하지 않은 새로운 소재를 다루셨다는 생각도 든다.

경재네는 3남매, 부모님까지 다섯 식구인데 방 두개짜리 작은 연립에 산다. 게다가 엄마 뱃속엔 넷째가... 곧 여섯 식구가 될 예정이다. 경재의 소원은 자기 방을 가져보는 것이다. 난 무척 공감이 간다.

그런 경재가 하교길에 발견한 광고지는 전원주택 광고였다. 방이 다섯 개! 초등학생이 관심가질 내용은 아니지만 경재의 소원에 비추어보면 솔깃할 수밖에. 파격 할인이라는 '2억 5천만원'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광고지를 잘 챙겨 엄마한테 갖다드린다.

요즘 집값이 미친 가격이라... 2억 5천이면 웬만한 곳 전세값도 안될 가격이니 독자인 나도 솔깃했다. 방이 다섯 개면 2층집. 정원도 있다니 얼마나 좋을까... 아빠는 의심했지만 엄마는 전화를 해보고는 집을 보러가기로 한다. 집은 도시에서 좀 떨어졌다는 것 외엔 손색이 없었고 엄마는 홀린 듯 계약했고, 드디어 이사를 하게 됐다.

경재는 2층의 방 하나를 혼자 차지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이 집이 왜 헐값에 나왔는지 알게 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아있는 2층의 한 방에 누가 살고 있었다. 밤이면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 '누구'는 할머니와 고양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할머니 귀신과 고양이 귀신이었다. 그들은 이미 죽었으니까.

그들은 왜 이 집에 있는걸까? 왜 이 집에 이사오는 사람들마다 견디지 못하고 집을 팔고 나가게 만드는 걸까? 그 사연 안에 애틋한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고통 받기에는경재네 가족은 죄가 없지 않나? 다행히 밤에 게임하길 좋아하는 경재를 빼고는 식구들이 잠을 잘 자서 무서운 일은 생기지 않는다. 아빠는 돈버느라, 엄마는 임신한 몸으로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보살피느라 밤이 되면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지는 것이다. 두 귀신이 아무리 식구들을 놀래키려 해도 잠에서 깨지 않으니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 점, 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숙면하는 미덕을 일깨워 주는 것인가?^^

식구들을 괴롭혀 내쫒으려는 할머니와 맞서다보니 경재는 할머니의 사연도 마음도 알게된다. 할머니는 아들 가족이, 손자가 그리웠던 거다. 죽어서도 기다릴 만큼. 하지만 그들에게 할머니는 잊혀졌다. 그들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거의 와보지도 않은 이 집을 팔고 떠났다. 다시 돌아올 일은 절대 없을거다. 할머니가 그렇게 피눈물 흘리며 기다려도....

함께 귀신이 된 할머니 '점순 씨'와 고양이 '반짝이' 사이의 애정도 눈물겨웠다. 결국 할머니는 아파하는 반짝이를 보다못해 자기 뜻을 포기한거니까.... 그래서 '경재만 아는' 귀신들은 '경재만 알게' 이 집에서 공존하기로 한다. 경재도 두 귀신을 소중히 지켜주려 한다. 뒷이야기가 있다면 아마도 경재네 가족은 그 집에서 막내동생까지 낳고 행복하게 살 것이고, 할머니는 그 모습을 미소띠며 지켜보실 지도 모르겠다.

죽은 사람이 떠나지 못한다거나,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는데도 이 책의 점순 씨와 고양이에게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만약을 가정하고 점순씨에게 한마디 한다면 "기다리지 마세요."라고 하고 싶다. 기다리는 건 슬프니까. 내가 개를 보면서 가끔 울컥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언제 올 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한 곳을 바라보는 그 뒷모습을 볼 때다. 개는 말 못하는 짐승이라 그렇다 치고, 할머니, 뭘 그리 기다리시나요. 부질없게. 오지 않는 사람 기다리는 거, 살아서도 못할 짓인데 죽어서는 더더욱 하지 마세요. 요즘 그런거 높이 사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시대에 맞춰서 살아야지 어쩌겠어요 네?

그렇긴 하지만, 우리들도 주변을 좀 돌아보며 살 필요는 있다. 누구를, 특히 부모님을 너무 기다리게 하진 말자. 피차 살면 얼마나 산다고. 매일 수록 귀찮고 편한 만큼 외로운 법이니, 너무 매이지도 너무 편하지도 않게, 적당히 귀찮고 적당히 외롭게,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글쎄 저도 잘 모르겠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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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달리는 아이들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6
신지영 지음, 최현묵 그림 / 서유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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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컨셉의 역사동화를 읽었다. 앞뒤로 뒤집어 읽는 책. <너는 나의 특별한 □□>, <장꼴찌와 서반장> 같은 동화가 이런 구성이었는데 흔치는 않은 구성이다. 정보를 모르고 무심코 집어 조금 읽다가 나중에 다시 잡고는 어리둥절했다. 아니? 분명히 몇 장 읽었었는데 왜 처음보는 것 같지?ㅎㅎㅎ 다시 보니 거꾸로 잡은 것이었다. 위에 말한 <너는 나의...>같은 책들처럼 이 책도 두 아이 각각의 시점에서 서술되다가 중간에서 딱 만난다.

두 아이는 많이 다르다. 복남이는 시골 동네 천민의 아들이다.
윤이는 한양에서 알아주는 양반가문의 딸이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둘다 '바람을 달리는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때는 개화기이자 일제가 마수를 뻗치던 시기, 을미사변(1895년), 아관파천(1896년) 등의 사건이 책 속에 나온다. 신식 학교가 생겨나고 세상은 변화에 눈떠가지만 뿌리깊은 신분제도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기득권을 가진 양반들은 변화를 거부한다.

그런 시대에 두 아이는 세상에 맞서며 달린다. 실제로도 '달린다'. 복남이는 동네 아이들의 괴롭힘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달리기의 재능을 발견했다. 수방도가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물지게 나르기 연습을 하던 중 이용익 어른을 만났다. (이분은 실존했던 인물) 다리를 다친 어른을 대신해 연락책 심부름을 하고 신임을 얻는다. 언제나 당당하지만 대책없이 큰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키려 최대치의 노력을 기울이며 순간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참을 줄 아는 복남이의 모습이 믿음직하다. 윤이와의 만남은 한양의 수방도가 대회장에서.

윤이는 여느 양반댁 규수와는 다른 활기와 호기심으로 행랑어멈의 골칫거리. 양장을 하고 신식학교에 다니는 남동생을 부러워하며 간혹 부모님 몰래 동생의 옷으로 남장을 하고 세상 구경을 나온다. 사당패 구경을 나온 길에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마당극을 보고 아수라장 속에 위기를 겪기도 한다. 윤이는 중요한 두번의 순간에 복남이를 만났다. 첫번째는 수방도가 대회를 구경갔다가. (이때 윤이는 바람같이 뛰어다니다가 복남이랑 부딪쳤지.) 두번째는 남장을 하고 나갔을 때, 얼떨결에 쫓기는 사당패의 중요한 편지 심부름을 맡았다가.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윤이가 복남이를 찾아 달린다. 그리고 악수를 청한다. 많은 관습과 금기를 한꺼번에 깨는 순간이다.

역사동화는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독서 수준은 되어야 읽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고학년용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4학년 정도에게 권해도 크게 무리가 없겠다. 일단 양쪽에서 시작되니 각 편의 호흡은 짧은 편인데다가 주인공들이 아이들 눈으로 봐도 매력적이고 친근할 것 같다. 다르게 말하면 '친해지고 싶은 책 속 인물'.

일제가 침략하는 시기이니 시대 배경은 답답하고 고난으로 가득차 있지만, 비참함 보다도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는게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바람을 달리는' 두 아이를 통해서 독자들은 시대를 극복하는 에너지를 느낀다. 훨씬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과 세상의 가능성에 대해서 좀 더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 책 중 두 아이의 대화에서 나온 말과 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움직이는 게 중요해요. 설령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열정에 가장 큰 울림을 느꼈다. 노비출신 복남이든, 양반집 딸 윤이든 새로운 배움 앞에서 설레고 감동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금 우리 앞에 이런 설레는 배움이 있을까. 다양화된 사회니 개인에 따라 내용도 층위도 갖가지겠지. 저런 배움의 설렘이 있다면 행복한 인생 아닐까, 지금의 아이들은 어떻게 그런 설렘을 갖고, 바람을 달리는 아이들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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