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달 달려요 웅진 우리그림책 113
김도아 지음 / 웅진주니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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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의 결정적인 장면에서 살짝 놀란 나는 아직도 한참 멀은 사람이다. 학교에서는 사회시간에 한창 편견, 차별,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해놓고선.... 그뿐인가? 이전 단원에선 사회변화의 키워드로 저출산, 고령화를 다루었다. 그 이전 단원에선 도시와 촌락의 문제점을 공부했다. 이 얇은 그림책 한 권에 이 모든 주제가 담겨 있었다. 감탄했다.

그렇다고 이 책의 느낌이 무겁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더욱 감탄스럽다. 그림부터 아름답다. 색감이 너무 예쁘고, 표정도 살아있는 사랑스러운 그림. 이런 곳에 살아보고 싶어지는 그림이다. 서사는 어떻고? 그 또한 아주 맘에 든다. 등장인물들은? 인정 많고 유쾌한 사람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 책은 비현실적인가 라는 생각이...? 아니다. 절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이곳을, 이 마음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단단하게 올라온다.

제목에 나오는 ‘달달달 달리는’ 것은 경운기다. 그렇다. 이 책의 배경은 농촌이다. 한창 추수에 바쁜 가을. 주변은 너무 아름답고 주민들은 너무 바쁘다. 그런 중에 동네 방송으로 울려퍼지는 이장님의 목소리.
“그.... 농번기라 다들 바쁘시것지만 가실 수 있는 분들은 그... 내일 아침 6시까정 저...기 마을 앞 느티나무로 나오시면 됩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이장님은 경운기를 단단히 채비하고 자기 과수원의 사과를 한 상자 싣고 출발한다. 느티나무 앞에는 네 분의 할머니가 각자 뭔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기다리고 계셨다. 헐레벌떡 뛰어오신 할아버지까지, 총 6명의 주민이 경운기로 길을 떠난다. 이런 말들을 나누면서.
“온 마을 경사여.”
“경사구말구유.”
“우리 어릴 적엔 참 북적북적혔는디.”
“그러게 말여유.”

경운기는 가을의 논을 지나, 밭을 지나, 오르락내리락 산길까지 지나간다. 밤나무 숲을 지날 때 따가운 밤송이들이 떨어지는 모습, 롤러코스터처럼 경운기로 오르막 내리막을 타는 모습이 아주 재미나게 표현되어 있다. 풍경은 또 얼마나 이쁜지. 한 장 한 장이 작품이다. 작가님의 다른 책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이렇게 하여 드디어 도착한 곳은.... ‘탕’씨 부부의 집이었다. 할머니들이 탕씨 부인의 손을 잡고 “고생 많았구먼.” 하신다. 짐작한 대로, 이 집에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할머니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이 뭐겠어. “어머나, 이뻐라!” 하며 모두가 들여다보는 그곳엔 얼굴이 까맣고 머리가 곱슬곱슬한 아기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우리의 농촌마을 깊숙한 곳에 외국인 부부가 정착한 것이다. 마을 어른들은 그들을 이모저모 보살펴 주고. 할머니들이 바리바리 가져온 보따리들엔 김치며, 떡이며, 고구마 등의 각종 농산물에다 미역, 참기름과 들기름, 천기저귀, 아기옷과 딸랑이까지 있다.
“얼마 만에 아가를 보는 겨?”
“건강하게 잘 커야 혀.”
이런 대화 속에 교과서에서만 가르쳤던 촌락의 문제들이 들어있다. 마을 노인네들은 아가도 보고, 미역국도 끓이고, 밭일도 봐주고, 장 담근 것도 봐주며 이 새로운 마을 식구를 살뜰하게 살펴준 후 바이바이 작별하고 달달달 경운기로 왔던 길을 돌아온다.

얼굴색이 다른 아기를 보고 기뻐하고 예뻐하며 축복하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보았다면, 나는 한가지 생각이 더 들어서 좀 착잡한 마음도 되었다. 촌락의 이야기는 이제 이렇게 쓰여질 수밖에 없는가? ‘이렇게도’ 쓰여지는 것은 물론 좋지만 ‘이렇게밖에’ 쓰여질 수 없다는 것은 또 새로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작가님은 물론 '이렇게도' 쓰신 것이고 이제 그 첫걸음인데 노파심이 너무 심하단 생각도 든다.^^;;;; 부디 이 작고 예쁜 마을의 다양성과 수용력, 나눔과 인정이 우리나라 전체의 것이 된다면 좋겠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 책에 감사하며, 이런 희망이 향기처럼 퍼져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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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 공감이 진짜 실력이다 - 세상을 바꾸는 교실 공감교육
도대영 지음 / 푸른칠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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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라는 단어의 홍수시대다.
얼마 전 딸이랑 동네 지나가다가 '공감○○○' 라는 식당이 생긴 걸 봤다. 딸이 이런다.
"저기 분명 맛없다. 식당이고 뭐고 저런 이름 지은데가 제대로인 꼴을 못봤어. 이름만 저렇게 지으면 맛이 있어지나?"
"안 가면 그만이지 열은 왜 내니?" 하면서 웃고 말았지만 솔직히 나도 이제 그 말에 피로감을 느낀다. 이러한 공감 피로 현상은 원인이 두가지인 것 같다. 첫째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용되고 있다는 점, 둘째는 강요받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부 직종에게는 더욱 그렇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공감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며 필요성을 역설한다. 단지 도덕적이거나 당위적인 면에서의 접근이 아니고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훨씬 설득력이 있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내 취향에 맞기도 했다.

공감이라는 단어의 오용은 ‘동의’와 혼동하는 데서 가장 많이 일어난다고 본다. 이 책에서도 그 점을 지적해주었다. 공감은 동의가 아니며 동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공감해 주기를 바랄 때 동의, 나아가서는 동조를 바란다는 점이 문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오해가 있다. 이렇게 혼동된 공감의 개념이 만연할 때 공감 염증 현상이 퍼지게 되며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니 이 책은 아주 시의적절하게 나온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저자는 ‘공감은 하나의 유기체’라고 하며 공감은 하나의 반응이나 행동이 아니라 정서적, 인지적, 행동적 활동을 포함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즉, 정서 공유, 관점 공유, 적절한 반응이 어우러진 개념이라는 것이다. 공감만능주의가 공감 알러지를 가져온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멀리하기에는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이 맞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위적으로 중요하다기보다도 생존적으로(?) 필요하다. 살아가려면 있는 게 좋다.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다. 결국 전반적으로 좋은 세상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니, 교육에서 이 부분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감, 공감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공부와 적용을 하신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1장이 공감에 대한 이론적인 정리라면 2장은 저자의 교실 현장이다. 공감교육이 뿌리내리도록 학급운영에 세심하게 적용한 사례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일단 감정 수업으로 시작하는데 이 부분은 꽤 익숙한 수업이다. 나도 해본 적 있는 수업들. 하지만 저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저자의 지향점이 훨씬 더 멀리 있다는 것이다. 감정 자체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고, 거기까지만 간다해도 아예 안하는 것보다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저자가 1장 초반에서 언급했듯이 공감능력은 연마할 수 있는 것이므로 적절한 연습 프로그램에 따라 꾸준히 해나가면 훨씬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차후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는 저자의 감정수업은 방향성이 분명하다. 나는 감정사전이나 감정툰 등의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몇가지 활동을 하고 끝냈는데 이 책을 읽고보니 활동을 추가해 훨씬 더 풍성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공감 체크인’이라든가 ‘감정 양피지’ 같은 활동들. 의미도 있으면서 놀이의 형식을 띠는 활동들을 소개해주고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알게 되는 [정서 공유] 단계가 지나가면 타인의 입장에 서 보는 단계로 나아간다. [관점 공유] 단계라 하겠다. ‘나, 너, 그 글쓰기’ 등의 활동이 소개되어 있는데 무릎을 치게 되었다. 이 단계의 수업은 갈등 상황이 있을 때 직접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평소에 독서수업을 할 때도 염두에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평소에도 문학수업의 큰 의미가 공감에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공감 수업은 교과 포함 학급살이의 전반에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다음 단계는 [공감적 반응] 단계인데, 마음은 표현을 해야 상대방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고, 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표현 방법을 잘 모르거나 어색해서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연습이 꼭 필요한 단계라고 하겠다. 욕심껏 사놓기만 하고 넣어둔 관련 카드들을 다시 꺼내볼까 생각하게 되었다. 한가지 뜨끔한 부분이 있었는데, 저자는 스킨십도 반응의 일부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데, 나는 평소 이 부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고 생활지도에 신체접촉 금지를 표방할 정도라서 마음에 좀 부담이 왔다. 개인적 성향도 좌우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라서 이 부분은 좀 접어두어야 하겠지만 치명적인 부분은 아닐거라 믿고 싶다.^^;;;

마지막 단계는 [사회적 공감]이다. 편견과 차별, 다양성에 대한 교과 내용도 이 안에 다 담겨있었다. 공감은 공기처럼 인간의 삶에 넓게 스며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하면서 이 분야의 연구와 실천이 이처럼 책으로 나온 것이 꼭 필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읽는 데 오래 걸렸고 한 번 읽고 말 책도 아니었다. 1장은 정독하면서 이해했다면 일독으로도 괜찮겠지만 2장은 적용하려면 옆에 두고 봐야할 책인 것 같다. 이런 책을 쓰기까지 상당한 공부와 내공이 있었겠다 느껴져 감탄하게 됐다. 교직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제라도 보게 되어 다행이다. 나처럼 ‘공감’에 멀미를 느껴보신 선생님들께도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멀미를 치료하고 더 나아갈 수 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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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개 마루비 어린이 문학 18
정승진 지음, 해랑 그림 / 마루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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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언뜻 너무 평범하고 밋밋해 보이지만 첫인상과는 다르게 아주 특별한 느낌들로 채워진 단편집이다. 사실 나는 ‘늙은 개’를 연극으로 먼저 접했다. 지난겨울(2023) 아스테지 출품작이어서 대학로의 큰 극장에서 보았다. 그림자극으로 만들어진 연극은 적당히 유머스러우면서 각종 기법들도 돋보였다. 마지막으로는 슬픔이 잔잔하게 남았다.

정승진 작가는 원래 어린이극을 주로 쓰는 희곡 작가다. 그가 쓴 작품은 이미 여러 편 좋은 평가를 받았다. 거인 이야기, 깨비가 잃어버린 도깨비방망이, 고래바위에서 기다려 등이다. 다른 작품도 많은 듯한데 내가 본 것은 늙은 개 빼면 이렇게 3편이다. 하나같이 재밌었고 기발했고 감정의 여운도 잔잔히 남는 연극들이었다. 그러다 어느 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서 이분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오, 동화 쪽으로의 진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당선작이 이 책에 첫 번째로 실린 ‘손톱’이다. 그 작품 또한 연극에서 느꼈던 기발성(?)이 있었다. 심사평도 아주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양쪽 장르를 다 다작할 수는 없어서인지, 한참만에야 첫 동화집이 나왔다. 늙은 개와 손톱을 알고 있는 나는 너무 반가워 덥썩 읽어보았다. 총 일곱 편이 담겨있다. 약간씩 작품의 무게들은 다르지만 다 좋았다. 무게...라는 말을 하고보니.... 그렇다. 대체로 다 무겁다. 주제나 소재들이 말이다. 하지만 무거우면서 무겁지 않다. 어린이극을 쓰는 희곡 작가의 특기인가 한계인가. 나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재밌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의 연극이 그랬듯이 이 책에도 전반적으로 슬픔이 깔려있다. 어떤 것은 얇게 어떤 것은 두껍게. 어떤 것은 희망과 함께 어떤 것은 그런 것도 없이. 유머를 장기로 갖고 있으면서도 슬픔의 시내가 그 밑으로 흐르는 정서가 매우 인상적이다. 첫 책이 이제 겨우 나왔을 뿐인데 성급한 말이지만, 이 작가가 ‘마구 웃기기만 한 책’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 책의 첫 단편이자 신춘문예 수상작인 「손톱」은 쥐변신 설화의 손톱 화소를 그대로 차용했다. 그게 아주 천연덕스럽고 거침이 없다. 대중목욕탕의 두 소년이 나누는 쥐인간 이야기. 은근 스릴있기도 하면서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킬 이야기다. ‘이야기’의 본질에 아주 잘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작품 「마중」은 스포를 조심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말조심... 슬픔과 희망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있는 것인가, 슬픔을 거름으로 희망이 꽃을 피우는 것인가. 하여간 슬픔의 자리에 화사한 벚꽃비와 아침햇살이 눈부신 작품이었다.

「심사」라는 작품의 무게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상상력과 표현력도 넘치는 작품이다. 주인공 노바 씨는 작은 항구의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다. 난민 심사도 그가 하는 일 중 하나다. 한가한 그곳에 어느날 신입사원이 도착해 노바 씨는 의아해한다. 두 사람 사이의 신경전, 그리고 대비되는 캐릭터에 웃음이 난다. 그러다 아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난민이 도착했다! 그는 외계인. 1300만 광년이나 떨어진 별에서 웜홀을 통해서 도착했다는. 하지만 노바 씨는 쉽게 그를 받아들일 수 없어 계속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는데.... 주제의식은 무거우나 작품은 가장 상큼하다. 아주 재밌게 읽은 작품이었다.

드디어 표제작「늙은 개」가 나온다. 늙은 주인과 정을 나누는 동물들의 사연은 참 애틋하다. 그런데 그 주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게다가 진돌이도 늙은 개다. 개도 치매에 걸린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새삼 떠올리게 됐다. 고달픈 몸을 이끌고 날마다 할머니를 찾아 헤매는 진돌이, 얄밉게 쏘면서도 늘 그 옆에 동행하는 까망이. 개와 고양이의 우정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까망이가 ‘불빛이 번쩍거리는 차를 타고 가서 다시 올 수 없는’ 할머니를 입에 올리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도 우정이다. 날마다 할머니를 찾는 고생이 진돌이에는 차라리 나은 것이다. 그걸 지켜보는 독자는 너무 슬프다.

「라이카의 편지」는 가장 슬프다. 라이카가 화자다. 인간이 자기한테 한 짓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라이카를 화자로 할 생각을 하다니. 라이카가 나온 책들이 몇 권 있는데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작품이 단연 가장 슬펐다. 미안해 라이카....ㅠ

「호랑이와 아이」에도 손톱과 마찬가지로 옛이야기의 화소가 나온다. 바로 ‘재판’이다. 호랑이를 구해준 착한 인간, 그리고 그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가 여러 동물들에게 재판을 청하는 이야기.(토끼의 재판?) 이 책에서 아이는 아파트, 강물에게 재판을 청했지만 그것들은 호랑이의 손을 들어주었다. 마지막 재판을 해준 존재는? 이 모든 일은 단지 꿈이었을까?

마지막 「어린이 공화국에서 온 편지」의 화자는 할아버지다. 독거노인이다. 또다른 주인공은 할아버지가 병원에 계신 동안 할아버지 집의 마당에 침입해 ‘본부’를 짓고 있는 남자아이다. 할아버지는 이 아이를 내치지 않았다. 외로움이 깊은 사람에겐 인기척이라도 그리운 법이기 때문일까? 게다가 할아버지는 이 아이의 치명적 사정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이렇게 하여 소재도 주제도 느낌도 다양한 7편의 단편을 모두 읽었다. 150쪽 정도의 4,5학년 수준 분량일 뿐이지만 상당히 알차게 많이 담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중 내가 본 「늙은 개 」외에 「손톱」과 「호랑이와 아이」 등도 연극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공연을 꼭 보고 싶다. 희곡과 동화를 넘나들며 어린이들과 만날 수 있는 일. 이 신인작가(?동화 쪽으로는...)의 강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보면 도깨비가 복수할지 모른다고 엄살을 피우며 다음 책도 꼭 읽어달라고 부탁을 하셨던데, 두 번째 책도 이처럼 다양한 느낌으로 재미있을지 기대를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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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트 구름 너머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탁경은 지음 / 우리학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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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청소년소설도 가끔씩 읽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대부분 장편을 읽었던 것 같다. 이 책도 장편인 줄 알고 들었다가 첫 편이자 표제작인 오르트 구름 너머가 금방 끝나버려서 당황했다.ㅎㅎ 예상과는 달랐지만 단편의 느낌도 괜찮았다. 이어지는 작품들도 다양하면서도 일관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뭐랄까.... 고민하고 애쓰는 청소년? , 아닌 청소년도 많을 것이다. 생각이란 걸 안 하는 청소년.... 하지만 그들이 부각되어 보여서 그렇지 설마 다들 그렇기야 할까. 이런 청소년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오르트 구름 너머SF지만 과학이나 미래에 중점이 있지 않다고 느꼈다. 성격과 성향이 정반대인 쌍둥이 자매 소율과 지율. 둘은 다른 만큼 서로에게 애틋하기도 하다. 혈육이니 당연한 것도 있겠지만 외로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는 아파서 돌아가셨고 아빠는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빴고. 독보적인 과학자인 아빠는 광속추진체 개발에 성공했고 오르트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그 프로젝트에 소율이 뛰어들었고 지율만 남는다. 지율은 나와 비슷하다. 모험이나 명예, 기록적인 일 등에는 관심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소박한 행복이 더 소중하다. 지율은 이 일로 소율과 다투다가 말한다.

우주선에 타는 순간 우리는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사는 거야.”

결국 지율만 남기고 두 사람은 떠났다. 순조롭진 않았고 장치의 오류도 있었지만 결국 무사히 돌아오긴 했다. 다시 만난 그들은........

 

소율의 편지에서, 장치 오류를 느끼고 새까만 우주 공간에서 깨어났던 그때의 느낌을 상상해봤다. 나는 지금 나를 둘러싼 온갖 잡다한 것들 사이에 존재하지만 광활한 우주에서 나는 어떤 존재일까. 여기서 죽는 것과 거기서 죽는 것은 다를 바가 없고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 그런데 엄청난 외로움과 막막함, 공포가 다가온다. “사랑은 그 사람이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어주는 일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내가 여기서 복작대며 낑낑대며 살아가는 의미는 사랑인 것일까. 언젠가는 상상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날 인생들이 여기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엄마는 그곳에의 가은이는 엄마의 관리로 만들어진 엄청난 우등생이었지만 지금은 할머니 집에서 지낸다. ‘한 달 전 엄마는 그곳에 갔다.’라는 문장에서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바로 알아챘다. 그게 맞다는 사실에 또 놀라고....

 

그 엄마는 나보다 훨씬 자식에게 헌신적이다. 나는 그래도 해줄 수 없는 일에는 선을 그었고, “나도 쉬어야 살지.” 이런 주의였는데 이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명백하고 그 댓가 또한 치러야 하지만, 적어도 자식을 향한 마음만은 진심이겠지. 가은이는 엄마에게 짧은 편지를 쓴다. 자신을 만들어주던 엄마는 이제 곁에 없지만 이제 진정한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가길 바란다. 나는 이렇게 가은이를 응원하지만, 자식을 이런 방식으로 관리하는 엄마들에게는 동의할 수 없다. 이런 불상사를 겪어야만 아이들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슬픈가. 부모들의 자식 만들기는 좀 멈추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청소년들의 문제는 뜻밖에도 간병이었다. ... 간병의 고단함과 참혹함을 이렇게 보여주다니. 나이 든 나도 아직 제대로는 겪어보지 못했다고 느끼는 그것.... 인간의 마지막이 누군가에게 주고 떠나는 그 고통, 간병. 앞으로 갈수록 어렵고 힘들어질 이 문제가 청소년소설에 나올 줄은 몰랐다. 마음이 참 무겁다. 그래도 이야기는 너무 어둡지는 않게 끝난다.

 

시드볼트는 이 책의 단편 5편 중 두 번째 SF. 위기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아직 그 위기가 본격적으로 닥치지는 않았다. 종자 금고라는 뜻의 시드볼트는 만약을 위한 시설이고 실무자들은 그 만약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일하고 있다. 전세사기를 당해 오갈 곳 없어진 현준 부자는 시드볼트 중 한 곳인 고요에서 일하는 삼촌의 도움으로 그곳에 일자리를 얻어 살고 있다. 그러다 현준은 중요한 씨앗 하나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는데, 그 범인은 어처구니없게도..... 깽판을 친 존재는 누구든 그 깽값을 무는 게 당연하지만 아이보다 못한 어른은 왜 이렇게 많으며 왜 아이들의 인생은 그 타격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하는가. 현준이처럼 의연한 경우는 많지 않을 텐데. 또한 기후위기 앞에서 현실의 사람들이 시드볼트 같은 대비를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르지만 아마 도미노의 한 조각이 쓰러지기 시작하면 그 대비책이란 것 또한 종이장보다도 못하게 깔려버릴 것이란 예상을 한다.

봄이 오면 섬진강 변에 꽃들이 가득 피어나길 현준은 간절히 바랐다.” (118)

나도 그렇게 바란다. 돌아오는 봄엔 섬진강 변에 가보고 싶다.

 

마지막 오늘은 내가 아웃은 교실에서의 권력 관계와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 권력자 아이가 일일 왕따놀이 제안을 했고 현우를 비롯한 나머지 아이들은 눈치보며 동참을 했다. 자기 순서가 되었을 때는 비참한 하루를 경험해야 했고. 결국 어른들에게 알려져 아주 모양 나쁘게 종료가 되었지만 파국으로까진 안 가서 다행이라고 할까.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한 파국도 많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이 작품은 상당히 교육적인(?) 결말로 가는데, 살짝 삽입된 작은 존재들의 판타지가 약간 뜬금없게 느껴진 것이 조금 아쉬운 점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수도)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의 교육적인(!) 메시지가 너무 좋았고,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가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의 이런 결심 때문이다.

다만 남의 가슴에 상처 주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겠다.” (160)

나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실수하는 일일 테고. 그래도 노력은 해야된다. 노력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각 편을 다 얘기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는데, 책은 두껍지 않고 읽는 데 시간도 얼마 안 걸린다. 6학년쯤부터는 읽고 얘기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시작하며 고민하고 애쓰는 청소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고민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고통을 느끼기 싫어서 덮어놓고 외면하면 곪아서 썩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삶에서 그 전략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때론 그렇고. 아이들에겐 직면의 전략을 알려줘야 한다. 문학의 힘으로 그걸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책들은 그 힘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청소년들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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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작은 곰자리 70
일레인 비커스 지음, 서맨사 코터릴 그림, 장미란 옮김 / 책읽는곰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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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순수하지 않은 접근에는 약간이라도 무리수가 있기 마련이다. 그림책에 대한 나의 접근이 그러한데 써먹을궁리를 하면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렇게 신청했다. ‘연말도 되어가니, 이 그림책을 읽어주고 감사에 대한 활동을 하면 좋겠다.’

 

내 꾀에 내가 넘어간 격인지, 아쉽게도 그렇게 사용할 순 없겠다. 학교 같은 대그룹에서 읽어줄 책은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상처받을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첫 장면부터 그렇다.

따뜻하고 포근한 집이 고마워요.”

책을 읽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엄마, 아빠가 고마워요.”

엄마 아빠는 밤마다 이불을 꼭꼭 여며 주고, 나직나직 자장가도 불러줘요.”

잘 자렴. 단꿈을 꾸렴. 꿈의 날개를 타고 날아가렴. 내일 어떤 일이 찾아와도 널 사랑한단다.”

 

솔직히 저런 가정에서 자라면서 감사를 하지 않는다면 양심이 없는 거 아닌가?^^;;;; 하지만 저런 가정 속에 있는 아이는 의외로 적다. 가정은 이상이 아니고 현실이며 시궁창인 경우가 많고 그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부드럽고 완벽하다기에는 여기저기 깨지고 흠집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인생에는 감사할 일들이 있으며 그걸 찾는 밝은 눈이 있을 때 그 인생은 행복한 것이다.

 

첫장부터 완벽한 사랑을 갖춘 엄마 아빠의 모습과 모두가 원하는 단란한 가정, 웬만한 것은 다 갖춘 듯한 집의 모습까지 보이니, 지금 우리반에서 읽어주기엔 반 넘는 아이들이 마음에 걸린다. 물론 아이들은 괜찮은데 어른이 괜히 하는 걱정일 수도 있다. 어쨌든간 나는 이 책을 학급에서는 읽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정에서 읽거나 개인적으로 읽기에는 아름답고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어서 아이는 모든 것이 다 고마워요.”라고 말하고 있다. 밤과 아침이, 어김없이 뜨고 지는 해와 달이, 심장이 뛰는 것도, 들이쉬고 내쉬는 모든 숨도 다 고맙다고. 이것도 아이가 안정된 행복감 안에 안전하게 들어있을 때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그걸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어른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삐딱한 눈으로 보면 슬프고 힘든 아이들의 불행감을 더 자극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표현들은 아주 맘에 들었다.

근사한 곳으로 이끌어주는 문이 고마워요.

근사한 곳으로 데려가 주는 책이 고마워요.”

그리고 따뜻한 것들의 고마움에 대해서 표현한 뒷장에 차가운 것들의 고마움을 표현한 부분에서는 감탄을 했다. 감사한 일들을 넓게 볼 수 있도록 생각을 넓혀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대상 연령이 유아부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등장하는 어른들이 거의 부모인 것은 좀 아쉽다.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감사도 좀 배워야 한다. 하긴 어른들도 마찬가지고 나도 마찬가지인데....^^;;; 감사는 정말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좀 본을 보이고 가르칠 필요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어른들이 많이 읽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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