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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우리는 - 두 교사 이야기 ㅣ 함께교육 6
권재원 지음 / 서유재 / 2021년 9월
평점 :
『명진이의 수학여행』으로 시작된 작가의 교육소설은 이로서 두권째가 되었다. 전작의 권오석 선생님이 30대 때 가르쳤던 제자들이 이제 30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중 두 여학생이 교사가 되었다. 써니와 와니.
나는 권오석 선생님과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기에 전작에 공감할 점이 더 많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여교사라는 점에서 이 책에서 공감할 점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읽어보니 권쌤, 써니, 와니 중에서 나와 가장 비슷한 캐릭터는 써니인 것 같다. 난 가정의 문제 없이 평탄하게 살아왔다는 점에서는 와니와 같지만 와니는 나보다 집이 훨씬 잘 살고 공부도 전교 2등이며 다재다능하니 나와 비교가 안 된다. 와니는 한마디로 인싸다. 반면 써니는 공부를 어느정도 잘하고 꾸준하고 성실하다는 것 외엔 내세울 게 없다. 써니를 뒷받침해줄 배경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두 친구는 10여년 후, 교사로 다시 만났다.
써니가 휴학과 낙방을 거듭하다 천신만고 끝에 신규교사로 발령받았을 때 와니는 이미 몇 년의 경력을 가진 교사였고 신규교사 연수에 강사로 나오는 ’잘나가는 젊은 교사‘였다. 하지만 와니에게는 그런 게 장벽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친근함과 밝음, 진정성이 있었다. 둘은 학창시절, 특히 권오석샘과의 추억을 공유하는 친밀한 동료교사이자 친구로 새롭게 우정을 쌓아간다.
권오석샘의 관점에서 서술된 저번 책에서 나는 그와 교사로서 동질감을 많이 느꼈는데, 이번 책에서 제자들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니 나와는 천리만리 떨어진 사람이었다. 그는 교사 무리에는 잘 섞이지 못하는 대신 아이들과는 깊이 소통하며 존경받는 교사였다. 특히 와니나 용이, 전작에도 나왔던 명진이 등 최상위 성적의 학생들에게 추앙받을 수 있었던 건 그의 해박한 지식과 교사로서의 전문성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영향을 받아 교사가 된 제자가 이렇게 둘이나 된다. 나는 근근히 수업준비하며 하루벌어 하루먹기에 급급한 교사라서 이런 여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리하여 나의 공감 대상은 써니와 와니에게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ㅎㅎ
이 책을 읽고 질문 하나를 남기라면 난 이렇게 하겠다.
"교사로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얼마나 큰 것인가요?"
기쁨? 아이고 배부른 소리 한다. 슬픔과 절망, 수치와 회한이 아니면 다행이지. 라고 나의 입은 뱉듯이 말하고 있지만 나의 깊은 곳은 알고 있다. 아무리 먹고 살려고 억지로 하는 일이라지만 괴롭기만 했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수업을 구상하고 디자인할 때 드는 기대감, 그게 먹혀들어갈 때의 충족감, 무사히 마쳤을 때의 안도감, 학생들의 발전이 주는 성취감, 가르칠 밑천을 늘리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 그것을 써먹었을 때의 효능감, 아이의 변화에서 느낄 수 있는 보람, 무사히 끝마치고 올려보낼 때의 후련함.... 그렇다. 입으로는 부정적인 말을 주로 쏟아내는 나도 안에는 이러한 기쁨을 품고 있다. 크진 못하고 작게.
"선생님이 되렴.
웬만한 상실은 흔적도 못 남길
무한대의 기쁨이 이어지는
행복을 너도 누렸으면 좋겠어."
(본문과 똑같진 않고 추려서 이어붙인 문장임)
권오석샘이 절친의 사고사로 큰 낙담에 빠졌을 때, 와니의 주도하에 몇 그룹의 아이들이 롤링페이퍼를 썼다. 오석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담아서. 예상보다 훨씬 오석샘은 감동했고, 그 학생 중 한명인 써니를 불러 위와 같이 말했다. 저 말이 내게는 현실감이 좀 없었다. '무한대의' 라는 표현 때문이다. 동네 친구들과 작은 공연이나 하는 무명 인디가수가 조용필 가왕님의 말씀을 들은 기분이라고 할까. 나는 그 경지를 모른다. 평생 모르고 퇴직할 것 같다. 내가 느끼는 행복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그날그날의 소소한 성취감이다. 그나마도 없는 날, 절망과 짜증에 덮여 흔적도 없어지는 날이 많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저 '무한대'라는 말은 양적인 표현이 아니라 '지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즉 나한테 그 행복이 퍼부어진다는 뜻이 아니고 이어진다는 것이다. 오석샘에게서 써니와 와니로. 그리고 또 다음 세대 교사로.
이것도 나랑 멀기는 마찬가지다. 하루벌어 하루 먹는 인생이라고 했잖아? 그런 주제에 무슨 후대까지 생각을 하겠어? 하지만 엉망이 된 교단을 두고 나만 빠져나와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네. 그나마 좋을 때 선생질을 했어." 와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 학교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싶지 않다. 내가 도움될 일이 있을리는 없지만 그래도 응원은 보내주고 싶다. 천하의 오석샘도 와니의 원망에 가까운 아쉬움을 뒤로하고 물러나는 때가 온다. 그게 인생인데 무한대의 기쁨이란게 어떻게 존재하랴. 그저 내 역할을 다하고 가능성을 남겨놓고 퇴장하는 것이 유한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겠지.
써니와 와니의 우정과 연대는 교사가 아니어도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교사이기에 더욱 다행인 관계라 생각한다. 써니가 평생 당해온 고난은 남성이었다면 겪지 않았거나 더 일찍 극복했을 것이었는데, 교사가 되어서도 제자인 남성들에게 또 당하는 것을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때 써니를 북돋우고 세우던 당당한 와니 역시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악몽 하나를 갖고 산다. 여초 직장이라는 교직 역시 여성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다른 직종에 비해서 그나마 나은 점이 있긴 해도 말이다. 그중에 이 여성들의 우정은 참 빛이 나고 위안이 된다.
논픽션이 아닌담에야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가상의 인물들일 것이지만, 염두에 둔 인물들이 존재할거란 느낌 하에, 나의 소망을 담는다면 이렇다.
오석샘, 퇴직 후에 노욕도 무기력도 찾아오지 말고 그대로 현명하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저에 대입하자니 비슷한 점이 퇴직밖에 없지만(나는 연금 나올 때가 아직 멀어서 퇴직 못함;;;) 저도 퇴직하고도 꼿꼿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써니샘, 나랑 가장 비슷한 사람. 그런 고난을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비슷하다고 해서 미안해. 하지만 같은 상황이라면 난 써니샘처럼 했을 것 같아. 험난한 정글에 던져지기엔 마음이 약한 사람. 난 중등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는지 어쩌다보니 꽤 오래 버텼답니다. 하지만 아직도 휴일 마지막에 가슴이 막히는 증세는 여전하죠. 써니샘은 천천히 강해질거라 생각합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서 다행. 저도 그렇답니다.^^
와니샘, 늘 부러워하던 캐릭터. 내가 와니샘 또래라면 와니샘에게 기운도 받고 와니샘의 상처도 위로해 줄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을 것 같아요. 와니샘이 마지막장에서 말했죠. '진짜 어른이 되는 거야.' 라고. 이제 지는 별 오석샘, 같은길 가는 써니, 괜찮은 남자인 남친, 도전을 주는 명진이(!) 모두가 와니샘이 진짜 어른이 되는데 도움을 줄 것 같네요. 응원할게요. 교단을 잘 지켜 보아요! (약올리는 거 아님ㅎㅎ)
이제 교직은 일등신부감 그런거 아니고 큰 장점도 없고 필요한 역량만 잔뜩 늘어난 매우 힘겨운 직종이 되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직업은 없고 모든 직업은 전문직이다." 라는 소신을 평소에 갖고 있기에 크게 엄살을 부리고 싶은 맘은 없다. 하지만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싸잡아 비난하여 힘을 빼놓거나 손발 다 자르고 조직의 부품으로만 만드는 일들은 점점 줄어들었으면 한다. 교사들이 마지막 밑바닥까지 절망하면 그 '무한대의 기쁨' 순환 회로는 생명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석샘보다는 조금 더 하겠지만 그래도 10년 안에 퇴직할 사람으로서 그 모습까지 보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