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를 돌면 큰곰자리 60
성현정 지음, 혜란 그림 / 책읽는곰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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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꽤 있다는 걸 미리 밝힙니다)

판타지인데 슬픈 판타지라고 해야 하나.... 슬프다는 말로 다 표현이 안되는 서러움과 아픔까지 느껴지는 세 편의 단편집이다. 비룡소 문학상을 받았던 작가의 첫 책 『두배로 카메라』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인생의 아픔에 직면해 보았거나 직면할 용기가 있는 아이들이 좋아할 책일 것 같다. 나는 나이가 들었으면서도 그렇지 못한지, 이 책의 분위기와 느낌이 부담스러웠다. 이런 내게 이 책의 메시지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퉁이를 돌아라.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고 똑바로 바라봐라.

직면. 그렇다. 이 책의 주제를 두 글자로 뽑으라면 나는 그렇게 말하겠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우리가 직면을 못하기에 작가는 판타지의 장치까지 동원해서 직면을 시킨 것이 아닐까. 결국 결말에는 살아야 할 현실로 돌아온다.

첫 작품, 표제작인 연우 이야기에서는 연우는 관계 권력을 가진 현아라는 친구에게 맥없이 끌려다닌다. 현아의 취향에 끌려다니고 본인에겐 의미없는 일에 시간까지 쏟아야 한다. 이게 아닌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다. 그러던 중 만난 ‘유령빌라’ 에서의 지상이. 지상이는 자신의 꿈을 소중히 여기고 당당한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줬다. 스스로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지 말 것을 알려주고, 끌려다니기보다 외톨이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도 주었다. 하지만 다시 만나려 지상이를 찾았을 때, 현실에는 지상이가 없었다. 연우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상이를 다시 만나게 될까?

두 번째 작품 「꿈 장난꾼」의 판타지는 초반에 좀 어리둥절했다. 읽다보니 ‘꿈 장난꾼’이라는 존재가 나온다. 아이들을 꿈 속에 영원히 가둬놓는 존재. 그 꿈은 행복한 꿈이다. 끔찍한 현실에 처한 견우와 미로가 이 존재의 덫에 걸려들었다.
“이걸 먹으렴. 그럼 넌 끔찍한 현실로 돌아가지 않아도 돼.”
꿈 장난꾼의 유혹이다. 이 세상에 이 존재가 있다면, 이 유혹에 넘어갈, 넘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미로가 그랬듯이.... 하지만 견우는 거부한다. 돌아온 현실 속에 견우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교통사고의 기억이 떠오르고 그때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그 아픔을 안고 견우는 이제 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세 번째 작품 「내일의 오늘」은 미래소설 같다. 냉동인간과 타임머신이 나온다. SF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별로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중점이 다른 곳에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화자인 시우는 33년 후의 세계에서 깨어났다. 급성 불치병으로 냉동인간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자식을 떠나보낼 수 없었던 부모님은 냉동인간을 선택했지만, 혼자서 흐르는 시간을 뛰어넘어 미래 세상에서 깨어난 시우는.... 엄마는 할머니가, 동생은 아줌마가 되어있는 모습 속에서 혼자 아이로 남아있는 기분은.... 시우에게 선택의 갈림길이 놓여있다. 뛰어넘은 미래 세상을 오늘로 여기고 살아갈 것인가,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오늘을 살 것인가.

나는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싫어한다. SF에서 타임머신이 나오면 어쩔 수 없는 그 모순성 때문에 몰입이 안돼서 별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타임머신은.... 실제로는 타임머신이 아니었다. 왠지 다행이라 느껴지는 이 마음은? 작품에 실망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인지도.... 결국 실망하지 않았다.^^ 시우의 선택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리뷰를 쓰며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니 읽으면서 들었던 그 서러운 느낌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서럽고 아픈 게 인생이지만 광풍을 견디면 조금은 가라앉는다. 그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직면’ 이라고 생각한다.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타날지 너무 두려워. 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돌아야 할 차례라면 빨리 돌 것. 그리고 봐 버려. 그게 훨씬 나아. 그게 꼭 나쁜 것이라는 법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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