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치워야 돼 날마다 그림책 (물고기 그림책) 21
정하영 글.그림 / 책속물고기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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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초반부를 봤을 때는 깔끔한 아이-지저분한 아이, 양심적인 아이-양심없는 아이, 부지런한 아이-게으른 아이가 대비되는 구조에서 뭔가 갈등과 화해가 일어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사실 그 해결이 상당히 궁금했다. 집안에서도 그런 구도는 흔히 있지 않은가? "어째 이 놈의 집구석엔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어! 궁시렁궁시렁......."


교실에도 그런 구도는 있다. 목마른 놈이 샘 판다고 결국 배째라 하는 편이 이기게 되어 있는 게임이다. 지켜보는 교사 입장에서는 샘파는 놈은 업어주고 싶고 배째라 족은 한대 쥐어박아주고 싶지만 별 뾰족한 수는 없고,  샘파는 놈이 그게 좋아서 파는게 아니라면 늘 불만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기에 어떤 후련한 해결책이 나오는지 기대가 되었다.


해결책은 없었다. 늘 혼자서 치우던 즐리는 어지르기만 하는 그리에게 방을 나눠 쓰자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뭐야, 나도 안 치워!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라고 외치고 만다. 사이좋게 요리해서 먹던 두 친구는 각자 통조림 등 인스턴트 식품만 사서 혼자 먹고 아무데나 버렸다. 집안에는 쓰레기 산이 생겼지만 서로 오기가 난 두 친구는 끝까지 버텼다.


어느 날 불어난 빗물이 두 친구의 집까지 밀려들어와 쓰레기를 모조리 쓸어 갔다. 둘은 다시 행복해졌지만....? 함께 낚시 가서 잡아온 커다란 연어를 요리하려는 순간... 어떤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을까? 여기에서 우리가 버린 것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무서운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너무 늦었긴 하지만 그래도 즐리나 그리나 할 것없이 낑낑거리며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장면이다. 이고 지고 끌고 나르는 그리를 보니 웃음이 나오면서 그동안의 얄미움을 용서해주고 싶어진다. 지쳐버린 즐리가 재활용 쓰레기장 앞에 두 발 뻗고 앉아있는 장면에서도 살짝 웃음이 지어진다. 이 두 장면은 뒷면지에 그려져 있다. 그것만 넘기면 이 책은 끝이다.


지금 이 시대가 그렇다.지구의 생명이 한 권의 책이라면 우리는 지금 뒷면지 쯤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면만 넘기면 책은 끝이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즐리와 그리보다도 더 배짱이 두껍다.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 우리 중의 즐리가 "그리 때문이잖아! 왜 내가 치워야 돼?" 라고 소리쳐도 때는 늦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살 터전을 지키는 데는 깨어있는 사람들이 더 애쓰는 방법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배째라고 버티는 수많은 그리들 옆에서 애먼소리 들어가면서도 묵묵히 그 길을 가는 분들. 나는 그런 분들을 종종 본다. 나도 귀찮더라도 아이들과 꼼꼼하게 분리수거하는 일, 개인 컵 가지고 다니는 일, 온수로 하염없이 샤워하지 말고 후다닥 씻고 나오는 일 등 한 가지라도 더하려고 애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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