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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긍정훈육법 - 친절하며 단호한 교사의 비법 ㅣ 학급긍정훈육법
제인 넬슨 외 지음, 김성환 외 옮김, 김차명 그림 / 에듀니티 / 2014년 9월
평점 :
이 책을 받던 날 난 공개수업을 했다. 동료장학이어서 서너 명의 동료교사가 참관을 했다. 수업설계에는 신경을 썼지만 자료 준비 등 세세한 것에 시간을 투자하기엔 좀 아까워서 그냥 넘어갔다. 평상시 수업을 보여줘야지, 안 쓰던 자료를 쓰는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이런 생각도 좀 있었다.
결과적으로 난, 그야말로 '평상시' 수업을 보여주고야 말았다. 중간에 '버럭'을 한 번 하고 다시 집중을 시킨 다음 진행해야만 하는 상황이 두 번쯤 왔는데 아무리 평상시 수업이라지만 손님이 있는데 예의상 '버럭'을 할 수는 없어서 그냥 진행을 했더니 수업은 갈수록 꼬여만 갔다. 겨우겨우 지도안과 크게 벗어나지는 않게 수업을 마쳤다. 참관하신 선생님들은 우리끼리의 예의로 좋은 평이 쓰여있는 참관록을 두고 가셨지만..... 난 아이들을 노려봤다. '이것들을 낼부터 어떻게 혼낼까?'
참관록을 찬찬히 읽어보다 '허용적인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라는 부분에서 덜컥 걸렸다. 난 이 부분에 컴플렉스가 있다. 이상하게도 내 수업의 참관록에는 '허용적'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쓰신 분들은 좋은 의미로 그 단어를 쓰셨을 것이다.(이날을 제외하고 지금까지의 공개수업은 비교적 상큼하게 잘 끝났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 단어는 나를 흠칫하게 한다. 마치 아이들을 손놓고 내버려두는, 무능한 교사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실제로 난 이 부분에서 무능하다고 느낀다. 말하자면 아이들의 행동을 단호하게 통제할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두 번 생각해보지도 않고 선택한 것은 "친절하며 단호한 교사의 비법"이라는 부제 때문이었다. 친절한 동료교사를 많이 본다. 그들의 교실은 대체로 통제가 잘 안된다. 그리고 교사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절한 교사는 끊임없이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그 노력에 비해 아이들은 별로 감동받지 않는다. 그래도 이 친절한 교사는 "난 아이들에게 알아달라고 교육하는 게 아니야. 힘든 건 나의 숙명이야."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내일도 노력한다. 일면 존경스럽다. 나도 한때는 친절한 축에 들었지만 이 지난한 과정에서 포기하고 '버럭' 증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어떤 교사는 단호하다. 이 부분에 맺힌 게 많은 나는 이런 교사들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복도에 아이들이 줄을 서 있다. 교사는 목소리를 깐다.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짧고 단호한 훈시 후 교사는 다시 아이들을 이동시킨다. 얼음들은 숨을 죽이고 걸어간다. 우와~ 난 이 과정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본다. 뭐냐.... 10년 후배도 저렇게 하는데... 난 헛살았구나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보통 교사는 이쪽 아니면 저쪽이기가 십상인 것이다. 친절하거나, 단호하거나. 그런데 '친절하며 단호한' 이라니 어떻게 하면 그게 될까? 그것이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다. 사실 난 이쪽도 저쪽도 아닌 교사라서. 친절하다기엔 가끔 버럭을 하고, 단호하다기엔 애들이 너무 시끄럽다.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교사는 그야말로 나의 로망이다. 이 책에 비법이 있다니, 어찌 안 읽어볼 수가 있을까!
책을 읽으며 취할 것과 버릴 것을 미리 분류해버리는 습관이 있어서 내가 취할 게 없다 싶으면 중간에 책을 덮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교육법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는 학급회의를 꼽을 수 있겠는데 그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실은 내가 굉장히 비선호하는) 방법이어서 솔직히 중간에 책을 덮을 고비가 몇 번 왔다. 하지만 이 교육법의 정신에 크게 공감하고 감동받을 만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가장 공감되는 것은 상벌제도의 폐해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상벌제도를 교실에서 전혀 시행하지 않는다. 불편할 것도 없고 아이들이 더 나빠지지도 않는다. 상벌에 연연해 왔던 시절이 참 피곤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 보면 처벌의 장기적인 영향 3Rs가 나오는데 반항(당신은 나를 통제할 수 없어. 내 멋대로 할 거야), 보복(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복수하고 상처 줄 거야), 후퇴(그래 나는 나쁜 사람이야)가 바로 그것이다. 아이들은 문제행동(여기서는 '어긋난 행동'이라고 부른다)을 쉽게 고치지 못한다. 오히려 강도가 더해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행동 아래 감춰진 신념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감정은 소속감과 자존감이다. 인간은 소속감과 자존감을 느낄 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데 이것이 충족이 안되면 생존을 위한 행동(소위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이의 자존감과 소속감에 흠집내는 짓을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상처주고 상처받고, 힘들어했었다. 상벌을 사용하지 않으니 그때그때 행동에 대한 지적을 말로 해야 했었는데, 씹어뱉듯이 말하는 나의 나쁜 말습관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이 또다른 징벌인 경우가 많았었다고 느낀다. 이제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행동만을 지적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야겠다. 너는 지금 이런 부분이 너에게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많은 고통을 준다. 하지만 너는 변함없이 우리 반의 소중한 존재이고 소중한 사람이다..... 이런 메세지를 어떻게 진심으로 전해줄 수 있을까? 상황마다 고민해야 되는 큰 숙제 중 하나이다.
이 책에서도 아이들의 지나친 자유분방함이나 버릇없는 행동, 자기들이 무슨 당연한 권리를 가진 듯이 행동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으로 생긴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어긋난 행동' 을 유발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행동 아래 감춰진 신념'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원인을 살펴보려는 노력 없이 그 아이를 단지 비난하고 처벌한다면 부정적 행동은 더욱 강화된다.
이 책에서 발견한 내게 가장 중요한 지침은 <아이들이 해결 방법을 찾도록 하기> 였다. 단호한 교사라면 뭔가 확실한 해결책을 그때 그때 제시해 주고 거기에 따르도록 해야 할 것 같은데, 여기서 제시하는 방법은 그와 달랐다. 아이들에게 되묻고, 생각하게 하고, 해결방법을 찾도록 하고, 스스로가 선택한 방법을 지키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교사가 심판자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사실 그동안 심판자로서의 내 역할은 참 위태위태하고도 부질없었다. 그러니 이 지침이 내 몸에 배도록 노력을 해 볼 생각이다.
가장 찔리는 문장을 소개하고 마치려 한다. 학생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p.183) 교사는 학생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학생에게 존중받기를 바랄 수 있느냐? 라는 질문도 이어진다. 음..... 할 말이 없다. 나이가 들고, 이상이 꺾이고, 이곳 저곳에서 상처받고, 지치고, 기운이 떨어지면서 아이들을 품어주어야 할 대상으로보다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진취적이기 보다는 방어적이 되고, 그러다보니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 성가신 일을 생산하는 존재들에게 무의식적인 적의가 생겨났던 것 같다. 그런 상태에서 존중이란 없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이 책은 솔직히 나에게 방법적인 팁을 많이 주진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이미 굳어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늘 하던 방식에서 멈칫하고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게 어쩌면 당분간은 더 혼란을 가져올지도 모르겠다. 한 후배가 이런 하소연을 했다. "차라리 모를 때가 편했는데 알면 알 수록 학급이 더 엉망이 돼요." 주워들은 건 있어서 나의 방식을 고집할 수가 없으니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다. 왕도가 있었다면 누구나 그 길을 갔을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한 가지 길을 더 보여주었고 난 여러가지 길 사이에서 들락날락 하며 헤매고 있는 중이다. 길의 끝은 보이지 않고 아마 난 그만두는 날까지도 끝까지 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나의 고민이 아이들에게 조금의 약이라도 되길 바랄 뿐이다. 그 고민을 선사한 이 책에게 감사한다. 사실 친절과 단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준 것만 해도 이 책은 나에게 큰 선물이며 잡는 과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