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선생님과 진짜 아이들
남동윤 글.그림 / 사계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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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새로운 경향을 한 가지 말한다면 예전에 비해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동영상 등을 동기유발을 위한 도입활동 뿐 아니라 본 활동에까지 끌어들여 감상이나 요약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한다. 예전이라면 영화를 보여주고 감상문을 쓰는 등의 활동은 2월 쯤 진도가 거의 끝나고 애매한 시기에, 그것도 약간 눈치를 보면서 해야 했었는데 지금은 아예 교과서에 들어와 버렸으니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국어교육(또는 독서교육)은 일단 시대의 흐름에 맞다고 본다. 


그 다양한 매체들 중 만화는 어떨까? 대답부터 하자면 "O.K!!"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남은 3주를 위해서 국어 한 단원을 남겨 두었는데 이 마지막 단원에 등장하는 매체가 바로 만화다. 평상시 아침독서시간이나 도서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만화를 읽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담임이 갑자기 "얘들아~ 너희들 만화 많이 읽어봤니? 이번 단원에서는 만화를 가지고 수업을 하자~" 이러면 아이들이 좀 적응이 안되는 표정으로 날 볼 것 같기도 한데....^^;; 하여간에 수업을 위해서이니 만화건 뭐건 찾아본다. 일단 도서실에 아이들이 읽을 만한 만화부터 골라보았다. 와이나 만화천자문 등의 학습만화 종류는 빼고 스토리 중심의 만화를 찾아보니 별로 없다. 내가 좋아하는 짱뚱이 시리즈가 있긴 한데 이건 나온지 오래되어 이미 너덜너덜하다. 도서구입 예산 자투리 조금 남은 걸 가지고 만화 몇 권을 골라 구입했다. 그 중의 한 권이 이 책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화 읽는 걸 좀 자제시킨다고 해서 내가 어린시절 만화를 안 읽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나도 만화가게의 추억이 있는 몸이다. 그런 내가 이 만화에 주는 점수는 꽉꽉 채운 별 다섯 개다.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만화를 만났다~!!" 라고 호들갑을 떨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등장인물은 처녀귀신을 닮은 노처녀 강귀신 선생님과 16명의 4학년 1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12편의 이야기는 잘 짜여진 단편 동화 같은 탄탄한 이야기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유치하고 과장된 캐릭터가 아닌 것이 마음에 든다. 등장인물의 개성이 드러나긴 하지만 웃기기 위해 과하게 꾸며낸 캐릭터가 아니어서 더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코미디로 치면 유치한 몸개그나 말장난이 아닌 감동이 있고 여운이 남는 코미디라고 할까? 게다가 이 분의 그림 수준은 만화가 아닌 장르까지 손쉽게 넘나들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12편의 이야기 중 어떤 것은 웃기고, 어떤 것은 찡하고, 어떤 것은 섬뜩하며 어떤 것은 훈훈하고 어떤 것은 상상력이 넘친다. 한 편씩만 예를 들면

웃기다:<우리 선생님은 귀신>-이 작품에서 젤 극대화 된 캐릭터는 선생님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냥 캐릭터 만으로도 웃기다. 처녀귀신을 닮은 외모에 모태솔로, 감정기복이 심하고, 특기는 아이들 말 무시하기, 학부모님들 만나는 걸 젤 싫어하고 가장 좋아하는 날은 방학이라 방학식날 아이들보다 더 좋아한다. 그래도 이 학급, 1년동안 알콩달콩 잘 지낸단 말이다. 마치 40대 아주머니라기엔 너무 유치한 내가 아이들 데리고 1년을 그럭저럭 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교사에게 너무 심한 인격을 요구하지 말라고. 아이들과 마음만 맞으면 이 정도 인격으로도 추억 돋는 일년을 잘 보낼 수가 있다고!(아, 말하다보니 저 깊은 곳에 감춰놨던 본심이 나와버렸다...)


찡하다:<꼬마 저승사자>-꼬마 저승사자가 소혜를 데리러 왔다. 소혜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의식을 잃고 병원에 누워있다. 소혜는 저승에 가기 전에 집을 한번 돌아보겠다고 부탁한다. 그 길에 소혜를 걱정하고 눈물 흘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혜는 늘 보던 일상의 물건들 앞에서 추억과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이 어리버리한 저승사자의 표정이 점점 변한다. "울보야, 나중에 보자." 그 이후는?^^


섬뜩하다:<소시지 더 주세요!>-급식 시간에 소시지를 다 먹자 더이상 밥 먹을 의욕이 없는 아이들. 비듬나물 한 줄기를 입에 넣고 거의 구역질을 하는 아이들. 센과 치히로의 한 대목을 보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진심 섬뜩하더라.


훈훈하다:<주인찾기 대작전>-소민이가 길에서 만원을 주웠다. 신 나하는 소민이에게 만원짜리의 세종대왕님이 주인을 찾아주라고 말씀하신다. (작가는 만원짜리를 여러 번 그리느라 고생하셨을 것 같은데, 거기에 세종대왕님의 표정까지 매번 바꿔 그리셔야 했다는) 소민이와 세종대왕님이 합심하여 열심히 주인을 찾는다. 찾아낸 주인은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였다. 만원은 할아버지가 며칠 일해서 번 돈이었고. '주인님'을 찾자 안도의 눈물을 흘리시는 세종대왕님. 흐뭇한 소민이.


상상력 넘친다:<토끼와 함께>-동식이는 상현이네 집에 갇힌 토끼를 풀어주었다. 토끼와 함께 동식이가 간 곳은 달나라 떡집이었다. 달나라엔 진짜 떡방아 찧는 떡집이 있었던 것이다.(얼떨결에 간 동식이 역시 열심히 떡방아를 찧어야 했다) '지구인이 떡방아를 찧어서 더 찰지고 맛있는' 떡은  날개 돋힌 듯 잘 팔린다. 상상력 치고는 참 고전적이지만 그러면서도 신선했다. 


한 편씩만 소개해 봤는데, 읽는 이에 따라 우선적으로 고를 작품이 다 다를 것이다. 버릴 작품 없이 다 재미있다. 작가는 어릴 적에 특이한 상상과 걱정이 많은 아이였다고 한다. 

"어느 날, 하늘에서 물이 떨어졌다. 외계인 오줌인 줄 알았다. 걱정이 되고 또 걱정이 되었다. 내가 외계인으로 변하면 어쩌지? 무서워서 며칠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일기를 쓰던 아이는 커서 만화가가 되어 이런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엉뚱할 때도 있고 뭔가 특별히 뛰어난 것도 없지만 그 아이들이 꾸려 가는 세상이 참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남은 교직생활 중 귀신 선생님보다 특별히 나을 게 없는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런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있다 보내주고 싶다. 뭔가 특별한걸 가르치겠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지 않고 아이들의 꿈을, 상상력을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아이들의 따뜻함에 함께 행복해하다 때가 되면 웃으며 보내주고 싶다. 기억에 남는 선생님 같은 것 별로 바라지 않는다. 그냥 일상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서로를 할퀴지 않고 상대방의 부족함에 분노하지 않고 내게 남는 돌 슬며시 꺼내어 빈 자리 괴어주며 살아가면 좋겠다. 

문제는 힘을 빼는 것은 힘을 주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데 있다. 살짝 힘을 뺀 이 만화책을 읽으며 참 행복했다. 나도 모르게 과도한 힘이 들어갈 때, 아이들이 쓸데없는 거에 목숨걸며 핏대 올릴 때, 다시 꺼내어 같이 읽을 수 있게 책꽂이에 잘 꽂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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