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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 - 14명의 경이로운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레모니 스니켓 외 지음, 크리스 반 알스버그 그림, 정회성 옮김 / 웅진주니어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이야기 만들기 수업을 좋아한다. 국어 수업에서 이 활동이 나오면 난 최대한 시수를 늘려 충분하게 수업을 한다. 그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라는 명분보다도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쓰기를 즐기지 않는 아이들도 이 수업에는 흥미롭게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아이들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니 수업도 잘 되고, 일석 삼조쯤 되었던 셈이다.
내가 처음 시도했던 방법은 문장을 하나 던져 주고 모둠의 아이들이 릴레이로 이야기를 완성하는 방법이었다. 예를 들면 "숲 속에 다람쥐와 곰이 살았어요." 라든가 "어느 날 우리 반에 새 친구가 전학을 왔어요." "아침에 눈을 뜨니 사방이 조용했어요." 등등.... 중간에 삼천포로 빠지게 만들거나, 갑자기 김을 빼놓거나, 예전에 말 많았던 어떤 드라마처럼 모든 주인공을 죽게 만들거나 등등의 부작용이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 아이들은 나를 웃게 만들고 때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두번째 방법은 스토리큐브라는 교구를 이용해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건 특히 열광하는 몇몇 아이들이 있었다. 늘 뒷목 잡게 만들던 아이가 갑자기 반듯해져서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했더니 하교시간에 알림장을 내민다. 학교생활 잘했다고 써달란다. 그러면 엄마가 스토리큐브를 사준다고 했다고.ㅋㅋ

이렇게 각 면에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9개의 주사위가 한 세트다.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게임이다. 여기에서 난 그림을 단서로 이야기를 만드는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마지막 세 번재 방법은 그림카드를 활용한 수업이었다. 그림이 환상적이고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면 더욱 좋다. 그런 그림카드가 어디 있을까 찾다가 보드게임에서 찾아냈다. <딕싯>이라는 게임이었다.

이게 딕싯이라는 보드게임인데 여기에 84개의 그림카드가 들어 있다. 그림은 환상적이면서도 무한히 열려있고 다의적이다. 이걸 알게 되어 무척 기뻤다. 당장 구입해서 집에서는 보드게임을, 학교에 가져가서는 국어수업을 했다. 맘에 드는 카드를 한 장씩 고르고 그 그림을 문장으로 표현하게 한다. 그리고 그 문장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만든다. 2학년 아이들과 이 수업을 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그동안 이놈들 땜에 속썩었던 걸 한 방에 용서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물론 등장인물 다 죽이기 등의 엽기적 결말을 좀 차단한 고심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니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 수업들이 떠오른다. 책이 만들어진 과정이 비슷한 맥락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해리스 버딕이라는 작가는 14점의 그림을 가지고 편집자를 찾아갔고, 그림에 딸린 이야기의 원고를 다음날 가지고 오기로 하고는 30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각 그림에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한 문장이 딸려 있을 뿐이다. 해리스 버딕이 가져오려고 했던 이야기는 대체 어떤 이야기였을까? 궁금증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이 궁금증은 바로 알스버그가 만들어 놓은 장치가 아니겠는가? 책장을 몇 장 넘기면서도 이게 대체 뭔 소린가 눈치 채지 못하는 곰탱이가 바로 나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그 그림책은 미국 초중생들의 글쓰기 수업에 널리 활용된다고 한다. 교사들이 생각하는 아이디어는 국경을 넘어서도 비슷하구나 생각했다. 그림카드 수업까지 해봤으니 나도 그림책을 활용한 수업을 한번 고민해 봐야겠다.
그 14점의 그림들을 단서로 하여 쓰여진 이 책은 작가 구성부터 놀랍다. 사실 난 외국 소설의 작가는 잘 몰라서 14명을 다 아는 건 아닌데... 스티븐 킹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작자이고, 웨이싸이드 아이들을 쓴 루이스 새커는 올해 우리반 아이들과 재미있게 읽은 『빨간 머리 마빈 시리즈』의 작가고, 엇, 린다 수 박은 『사금파리 한 조각』의 그 린다 수 박? 거기에 케이트 디카밀로까지!
그 뿐 아니라 작품을 읽으며 몰랐던 작가에 대한 궁금증까지 생겨났다. 표지그림으로 쓰인 <또 다른 장소, 또 다른 그림>을 이야기로 쓴 작가 코리 닥터로우는 SF 전문 작가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그 상상력이란.... 비상한 사람의 상상력은 나같은 범인이 따라가기에 버거울 정도다. 이 그림이다.

어디로 이어졌는지 모를 철로 위로 네 명의 아이들이 탄 수동차가 보인다. 수동차에는 돛이 달려 있고 한 아이는 항해복을 입고 있다.
아이는 평소에 이런 의문을 갖고 있다. "공간에서는 거의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 어째서 시간은 한 방향과 한 가지 속도로만 움직이는 거지? 더 빨리, 더 느리게 갈 수는 없나? 그리고 뒤로 갈 수는 없어?"
"만약 시간이 모든 방향, 모든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은하계 저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공간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은 인간이 아직 증명하지 못한 미지의 문제다. 작가는 상상력을 통해 가능한 장면을 우리 앞에 형상화 해놓는다. 그 모든 것이 주어진 그림과 문장, 제목을 반영하고 있다. 입을 헤벌리고 읽었다. 와우~ 놀랍다.
린다 수 박의 <하프>도 맘에 들었다. 그림이 흑백인데도 숲의 느낌이 얼마나 싱그럽고 고요하며 환상적인지. 한 쪽의 바위 위에 놓여 있는 하프. 저 건너 멀찌감치서 그것을 바라보는 한 소년. 제시된 문장은 이것이다. "진짜였어. 소년은 생각했다. 진짜 있었어."
'진짜' 뭐가 있었을까? 그건 숲의 음악이었다. 그 음악은 마법과 주문, 마법에 걸린 자매의 우애와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그게 소년을 울게 했고 위로했다.
작가는 현대 사람들이 마법을 믿지 않기 때문에 마법사들이 암암리에 조용히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적절한 시기, 우연, 운좋은 발견 등을 통해서....
나도 가끔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싶다. 모든 기대가 사라지고 '마땅히 해야 할 일'만 내 앞에 놓여져 있을 때 특히 그렇다. 그럴 때 난 가 본 적도 없는 그 숲을 그린다.
<오직 사막뿐>을 쓴 M.T.앤더슨도 잘 모르는 작가인데 이 이야기를 읽다가 영화『트루먼 쇼』의 결말 부분을 볼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안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호박의 그림이 가장 인상적인데 이야기 또한 가장 강력하게 인상적이다.
케이트 디카밀로는 여기서도 특유의 아련한 슬픔을 자아낸다. 그의 작품 <3층의 침실>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렇게 강한 이미지를 주진 않았지만 아픈 소녀의 손을 잡아주고 소녀의 동생을 안전한 곳에 데려다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마지막 편인 <메이플 거리의 집>이 스티븐 킹의 작품이었는데 왜 그의 작품이 영화로 많이 제작되는지 알 것 같았다. 짧은 작품 속에서도 시한폭탄의 초침이 재깍거리는 듯한 소리가 독자의 심장을 울린다.
어떻게 보면,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었으면 좋았을 상상력의 여지를 작가들이 채워버렸다는 아쉬움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상상력의 여지는 무한하니까... 상상력의 씨앗은 또 어디서든 뿌려질 것이다.
내가 상상력을 추구하는 건, 아니 인간이 상상력에 큰 가치를 두는 것은 그것이 세상을 살맛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력이 과학문명을 발전시킨 면도 있고 간혹은 악의적인 상상력이란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상상력은 이 세상에 의미를 불어넣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며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보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 안의 상상력을 발견할 때 기특하고 기쁘다.
그런데, 내 안에는 얼마나 되는 상상력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쪼그라진 형체만 발견하게 될까 두려워 펼쳐 보지 않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