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클리즈의 유쾌한 창조성 가이드 - 아이디어 탐색자를 위한
존 클리즈 지음, 김평주 옮김 / 경당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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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클리즈는

 

존 클리즈(John Cleese, 1939~ )는 영국의 코미디 배우이자 작가, 영화제작자로 ‘코미디계의 비틀스’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전설적인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선(Monty Python)’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는 아내인 코니 부스와 함께 영국 영화협회가 선정한 ‘최고의 영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100선’에서 1위를 차지한 BBC의 시트콤 “폴티 타워스(Fawlty Towers)”(1975~1979)을 제작, 출연해서 성공을 거두었고, 1988년 아카데미상과 BAFTA의 최우수 각본상 후보에 오른 영화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1988)를 공동 집필하고 제작을 총 지휘했을 뿐 아니라 출연까지 했다.

 

 

창조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저자가 ‘전설’라고 불릴만한 코미디 배우이자 작가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창조성’ 혹은 ‘아이디어 개발’이 천재(天才)의 영감(靈感)처럼 타고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창조력을 발휘할 만한 환경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지” [p. 12]를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창조성은 간단히 말해 “새로운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아이디어를 선사한다.

 

저자는 케임브리지 대학시절, 교내 연극 클럽 ‘풋라이츠(Footlights)’에 가입했다. 이 클럽에서 매달 공연하는 ‘스모커(smoker)'라는 쇼에 모든 멤버가 참여해야 했다. 그래서 저자도 공연을 위한 코미디 대본을 쓰고 연기에 참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내내 머리를 쥐어짜다가 결국 포기하고 잠이 들어야 했던 문제가 아침에 일어나 다시 책상 앞에 앉으면 저절로 확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뿐만 아니다. 친구 그레이엄 채프먼과 함께 교회 설교를 패러디 해서 써둔 작품을 그만 잃어버렸는데, 친구의 질책이 두려웠던 클리즈는 어쩔 수 없이 모든 내용을 기억나는 대로 다시 썼다. 나중에 잃어버린 원본을 찾아, 두 대본을 서로 비교해봤더니, 놀랍게도 기억에서 끄집어내 만든 것이 훨씬 나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그는 “무의식이 항상 뭔가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p. 25]을 확신하게 되었다.

 

 

무의식이 선사하는 아이디어를 포착하려면

 

문제는 우리가 무의식에게 질문을 던질 수도 없고, 무의식의 언어로 대답한 것을 제대로 해석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이 클랙스턴(Guy Claxton, 1947~ )의 <토끼의 두뇌, 거북이의 마음(Hare Brain, Tortoise Mind)>는 두 가지 생각의 길을 제시한다. 하나는 토끼처럼 빠른 두뇌가 수행하는 또렷하고 분명하고 능률적인 생각[토끼의 두뇌]이고, 다른 하나는 거북이처럼 느린 마음의 명상적인 생각[거북이의 마음]이다. 토끼의 두뇌가 선종(禪宗)에서 얘기하는 ‘점수(漸修)’와 유사하다면, 거북이의 마음은 ‘돈오(頓悟)’와 유사하다.

 

여기서 저자는 창조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거북이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무의식이 선사해주는 아이디어를 포착하기 위해 놀이와 명상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놀이의 경우에는,

어린아이들이 놀이하는 모습을 떠올려 봅시다. 아이들은 지금 하는 일에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한눈 파는 법이 없습니다. 그저 …… 탐험을 하는 중이죠. 어디로 가는지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놀이하는 아이들은 몹시 즉흥적입니다. 실수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규칙을 지키지도 않죠. 아이들에게 “아냐, 그러면 안 돼.”라고 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런 놀이에는 목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무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pp. 49~50]

이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실수를 저지를까 봐 걱정하는 마음에 휩싸이는 것이다.

여러분이 창조력을 발휘할 때 결코 실수 따위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떤 길을 잘못 가고 있는지 아닌지는 다 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면, 그 생각의 흐름을 끝까지 따라가서 그게 정말로 유용한지 아닌지 확인해야 합니다. 탐험을 하면서 자기가 어디로 향하는 건지 꼭 알 필요는 없습니다. 일찍이 아인슈타인도 꼬집은 바 있지만, 뭔가를 조사하는 사람이 자기가 뭘 하는 것인지 알고 있다면 이미 그것은 연구가 아닙니다.” [pp.56~57]

 

명상의 경우에는

“무의식은 우리에게 힌트와 자극을 아주 살며시 보내줍니다. 바로 그 때문에 고요함을 유지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일종의 명상을 실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p. 67]

 

이런 과정을 통해 무의식에서 불쑥 떠오른 새 아이디어를 포착해도 끝이 아니다. 방금 튀어나온 새로운 관념이 천천히 조금씩 명확해지도록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 그 후에 토끼의 마음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평가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평가의 시점이다. 농작물의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잡아당겨 늘여놓으면[발묘조장(拔苗助長)] 죽어버리듯이, 새로운 아이디어도 명확해지기 전에 너무 성급하게 평가하면 압살(壓殺)당한다.

 

 

창조성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요령

 

첫째, 자신이 아는 것을 가지고 쓴다.

여러분이 이미 잘 알면서 관심을 쏟는 분야에서 창조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p. 82]

 

둘째, 동경하는 사람의 아이디어를 빌려라.

초보자가 훌륭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서 창조적인 작업을 시작하기는 어렵다. 그럴 때는 먼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놀면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든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 다른 이가 해놓은 것을 맹목적으로 똑같이 베끼라는 것이 아니라 ‘모작(模作)’을 통해 실력을 키우고 ‘창작(創作)’을 하라는 얘기다.

 

셋째, 차질이 생겼다고 의기소침하지 마라.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튼슨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낡은 아이디어를 버리기 전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없다.” 베이트슨의 통찰 덕분에 저는 불모의 시기를 풍작을 위한 준비 기간, 더 나아가 전체 창작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흐름이 막혀 있다고 해서, 자책하면서 차라리 머리 깎고 산속으로 들어가 버릴까 고민하지는 마세요. 그냥 빈둥거리며 놀이를 하다 보면 무의식이 뭔가를 토해 낼 수 있을 겁니다. 의기소침해져 있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pp. 94~95]

 

넷째, 지나친 자신감을 경계하라.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며 자신만만해하면 창조성이 무너지더군요. 그런 사람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면 자연히 배우기를 그만두고 기존의 패턴만 고수합니다.” [p. 104]

 

다섯째, 아이디어에 집착하지 마라.

창작 과정을 시작할 때 작가는 마음에 꼭 드는 대단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이 아이디어가 바로 ‘애인’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글을 전개하다 보면 이야기가 조금씩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애인’이 새 내러티브(narrative)에 어울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죠.

훌륭한 작가라면 애인을 버릴 겁니다. 그보다 좀 뒤처지는 작가는 애인에게 매달리면서 이야기가 탈바꿈하는 것에 훼방을 놓겠죠.” [p. 110]

 

여섯째, 자신의 생각이 명확해졌을 때, 다른 의견을 구하라.

경험이 풍부한 작가라면, 자기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때 던져야 할 질문이 네 가지 있습니다.

1. 어떤 대목이 지루했는가?

2.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은 어디였는가?

3. 설득력이 부족한 대목은 어디였는가?

4. 감정을 헷갈리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는가?

이 질문 들에 대한 답을 듣고 나서는, 한발 물러서서 과연 그런 지적이 타당한지 판단하고…… ‘직접 고치세요’.” [pp. 112 ~113]

처음 초고를 쓰고 4~5명에게 위의 질문을 던져 피드백을 받고, 두 번째 초고는 새로운 독자 2~3명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피드백을 받는다. 이런 과정을 사람들의 반응이 만족스러워질 때까지 계속한다.

 

 

[아이디어 탐색자를 위한 유쾌한 창조성 가이드]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사람들은 창조력 하면 순전히 예술 쪽에 있다고만 생각합니다. 음악이라든가 그림, 연극, 영화, 춤, 조각 같은 분야만 떠올리는 거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창조성은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드러납니다. 과학을 연구할 때도 발휘되고, 사업을 벌이거나 스포츠 활동을 할 때도 나타납니다.” [p. 9]

라고 말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주로 글쓰기 분야다. 모든 분야를 다루지 못한 것은 아마도 이 책이 제목 그대로 아이디어 탐색자, 그 중에서도 글 쓰는 창작자를 위한 창조성 가이드 북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쉽지만, 저자가 코미디 배우이자 작가이기 때문이 나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성이 누구나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고, 창조력을 발휘할 만한 환경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지를 얘기하려면, 저자의 말처럼 잘 알면서 관심을 쏟는 분야여야 할 테니까.[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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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1만 년 나이테에 켜켜이 새겨진 나무의 기쁨과 슬픔
발레리 트루에 지음, 조은영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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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연대학이란?

 

낯설게 들리는 ‘연륜연대학(Dendro-chronology)’이라는 학문은 나이테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나이테를 연구한다고 하면 단순히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연대를 측정하는 것만 떠올리기 쉬운데, 나이테는 나무뿐 아니라 빙하, 석순, 산호, 조개, 그리고 물고기 귀뼈[이석(耳石)]에도 생긴다. 그런 나이테를 통해 기류(氣流)와 해류(海流)의 변화, 나아가 “생태학, 기후학, 인류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과 환경의 역사 사이의 상호 작용을 밝힐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 [p. 20]의 학문이다.

 

하지만,

“나는 연륜기후학자이다. 나이테를 이용해 과거의 기후를 연구하고 기후가 생태계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 지난 20년간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과거와 미래의 기후 변화에 대해 생각하고 쓰고 이야기하며 보냈다. 그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매년 우리는 기후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태운 화석 연료가 기후에 초래한 대혼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지구 차원에서 인간이 만든 이런 기후 변화가 인간 사회에 가져온 결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해를 거듭해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억제하거나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가 가져올 최악의 결과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심지어 196개국이 모여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야심 찬 노력을 기울이기로 약속한 2015년 파리 기후 협약 이후에도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pp. 18~19]

라는 저자의 한탄을 보면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드러냈지만, 현실 사회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연륜연대학으로 할 수 있는 일

 

그렇다면 이 연륜연대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째, 과거의 기후를 알 수 있다.

나무는 식량과 물이 풍부할 때, 그리고 남과 경쟁하거나 공격받지 않을 때 행복하다. 행복한 해에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넓은 나이테를 만든다. 반면 가뭄이나 한파를 겪었거나 허리케인이 잎과 가지를 죄다 꺾어 놓는 바람에 행복하지 않은 해에는 생장에 투자할 에너지가 많지 않아 좁은 나이테를 만든다. 따라서 나무의 행복은 날씨에 크게 좌우된다. 나무는 계절적 정서 장애는 물론이고 (어두운 계절에는 아예 동면하고 생장을 멈추니까) 연례 정서 장애도 겪는다. 즉, 날씨가 나쁜 해에는 나무가 우울해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나쁜 날씨’는 지역에 따라 추위가 될 수도 있고 가뭄이 될 수도 있다.” [p. 79]

 

둘째, 과거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

우리가 유럽의 초기 정착민들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다. 인구는 얼마나 되었을까? 무슨 언어를 사용했을까? 어떻게, 그리고 왜 스톤헨지 같은 거석을 세웠을까? 그러나 연륜연대학 덕분에 그들이 6,000년 전에 참나무와 소나무를 잘라 호상 가옥, 수상 도로, 우물을 지은 정확한 연도와 계절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연륜연대학은 역사적으로 지상 목조 건축물이 보존된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한다. 중세 시대 이후 ‘마른’ 건축물에 사용된 목재는 연륜연대학자들이 갖고 놀 수많은 퍼즐 조각을 제공했다. 나이테를 이용한 연대 측정은 성과 대성당, 대학과 시청 건물은 물론이고 소박한 역사 건축물의 연구에도 크게 한몫 했다. 독일의 바이킹 정착촌, 베네치아의 팔라치(Pallazzi), 영국의 솔즈베리 성당, 이스탄불의 소피아 대성당까지 연륜연대학은 전 세계 문명의 건축물뿐 아니라 문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공했다.” [p. 99]

 

셋째, 과거의 기후변화가 인간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과거는 현재의 기후 변화를 인정하고 미래를 예측, 계획하는 가장 실질적인 기초 자료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기준점 이동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이 현재 경험하는 환경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변화의 규모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인 과거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현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고 그 일에 나이테만 한 것이 없다” [p. 307]

예컨대, 인류는 과거 화석 연료를 대량으로 사용하면서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켰다. 하지만, 수세기에 걸친 과학적 발견과 연구에 기반한 연륜연대학 덕분에, 예상치 못한 기후 변화가 과거 인간사회에 끼친 영향을 확인하고, 지구 온난화 가속에 따른 인류의 미래, 나아가 지구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이테 측정기를 가지고 서로 다른 수종, 수령, 토양, 기후의 나무에서 얼마나 많은 목질부가 자라고 얼마나 많은 탄소가 저장되었는지 조사할 수 있다. 우리는 길어진 생장기가 어떻게 목질부 생장에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가뭄, 극한의 날씨, 상승하는 기온이 어떻게 생장에 영향을 미쳤는지, 기후가 변화하면서 이러한 영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산불과 곤충으로 인한 발병이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숲 생장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나이테는 우리에게 기후 변화가 어떻게 과거 사회에 영향을 끼쳤는지 가르쳐 주었다. 과거 한 문명이 쇠퇴하는 과정에서 기후 변화는 사회 붕괴를 이끄는 사회생태학적 그물망의 일부가 되었다. 또한 창의성과 적응력이 정의하는 한 사회의 복원력에 따라, 그 사회가 열악한 환경에서 일시적인 퇴행을 겪더라도 다시 재기할 수 있을지, 아니면 완전히 무너져 해체될 지가 결정된다.” [p.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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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의 정치학
박성원 외 지음 / 인간사랑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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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공지능 시대와 정치적 인간의 미래’, ‘알고리즘 민주주의: 가능성과 한계’, ‘인공지능 거버넌스: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어떻게 govern해야 하는가?’, ‘인공지능시대 정치과정의 변화: AI후보자의 선거출마와 AI정책결정이 가져온 변화’, ‘AI알고리즘 패권경쟁의 세계정치: 기술-표준-규범의 3차원 경쟁’이라는 5편의 논문을 엮은 책이다.

 

첫 번째 글인 ‘인공지능 시대와 정치적 인간의 미래’는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거의 동등한 능력의 지능적 존재로서 어려운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미래에, “인간은 어떤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간주할 것이며, 정치적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 것인지 예상” [p. 11]하고자 하는 글이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 기자가 존재하면 이들에게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기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이고. 이처럼 글쓴이는 인간, 기술을 적극 활용해서 신체의 변형/확대/증강을 이루는 다양한 형태의 트랜스휴먼인공지능인공지능이 만든 인공지능까지 네 종류의 지적 존재가 공존할 여러 가능성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가치를 정상으로 판단하고, 이를 우선시할 경우 조직과 주체 사이의 대립은 불가피하다는 점도 언급한다. 결국 이를 해결하려면 정치적 인간이 여전히 필요한 존재임을 역설하는 셈이다.

 

두 번째 글인 ‘알고리즘 민주주의: 가능성과 한계’는 가치중립적인 인공지능 기술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알고리즘에 대해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통제하는 것이 권력 지배의 새로운 원천” [p. 38]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보통신의 기술의 발달로 의사결정을 위한 물리적, 공간적 제약이 완화되면서 미래 지향적인 열린 참여민주주의가 다가온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알고리즘에 의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가치 판단이 개입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알고리즘 민주주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밖에 없다. 알고리즘의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 또 그렇다면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따라 인간의 미래는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글인 ‘인공지능 거버넌스: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어떻게 govern해야 하는가?’는 인공지능과 관련된 기술(알고리즘, 데이터, 로봇)의 고도화와 이에 따른 기존 질서의 파괴적 혁신과 불확실성의 증대를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기술이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어느 한 영역에 대해서만 규범체제를 구축하기 보다는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수평적으로 협력하여 사회적 제도를 형성하는 거버넌스(governance) 또는 협치(協治)가 요청된다고 주장한다.

 

네 번째 글인 ‘인공지능시대 정치과정의 변화: AI 후보자의 선거출마와 AI 정책결정이 가져온 변화’는 먼저 “정치인이나 관료의 비효율성, 편파적인 정책결정을 극복하여 정치적 효율성 추구, 공정한 배분, 투명한 정치적 의사결정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pp. 111~112] AI(인공지능) 정치가를 개발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2018년 AI 후보자가 선거에 출마했고, 뉴질랜드에서도 2020년 AI 후보자가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AI가 보다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정치분야는 정책결정 분야다.

정치과정에서 AI활용이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선거과정뿐만 아니라 정책결정과정에서 인공지능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공지능(AI)는 미래사회의 ‘지속 가능한 방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지역이 보유한 다양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책제언이라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중략 ~

지방자치단체가 생산한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지역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변수들을 고려하여 예상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도출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지역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최적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pp. 142~143]

이러한 AI 후보자의 선거출마와 AI 정책결정은 현행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한계를 AI기술로 극복하자는 정치적 실험이다. 동시에 “정치과정의 투명성, 합리성, 효율성, 시민들의 실시간 참여를 확장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플랫폼 구축이기도 하다.” [p. 146]

 

다섯 번째 글인 ‘AI 알고리즘 패권경쟁의 세계정치: 기술-표준-규범의 3차원 경쟁’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양자컴퓨팅,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과 같은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이른바 ‘신흥기술’을 안보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즉, AI 알고리즘의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가지는 성격을 설명해주는 글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AI 알고리즘 경쟁은 ‘권력성격의 변환’을 야기하고 있는데, 좁은 의미의 기술경쟁이라기보다는 기술-산업-안보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디지털 패권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둘째, AI 알고리즘 경쟁은 ‘권력주체의 변환’을 야기하고 있는데, 알고리즘 권력을 행사하는 민간 AI 기업들이 주요 주체로 부상했으며, 이들의 활동을 지원 또는 규제하는 정책, 제도 환경을 둘러싼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끝으로, AI 알고리즘 경쟁은 ‘권력질서의 변환’을 야기하고 있는데, AI 알고리즘을 활용한 산업과 서비스, 무기체제 등을 규제하는 국제규범의 형성을 놓고 국가 및 비국가 행위자들의 의견대립이 불거지고 있다.” [pp. 152~153]

다시 말하면, 군사안보의 시각에서 AI 알고리즘 등 신흥기술을 해석하지 말고, 이들 신흥기술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세계정치의 변환을 이해하고, 새로운 대응전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리뷰는 도서출판 인간사랑으로부터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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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10주년 기념 특별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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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프로이트의 의자>는 정신분석에 대한 개념을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놓은 에세이와 같은 책이다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숨겨진 나를 들여다보기’, ‘무의식의 상처 이해하기’, ‘타인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무의식’, ‘무의식을 대하는 다섯 가지 기본 치유법이라는 4 가지 이야기와 21개의 장으로 나눠 불안공포우울분노좌절망설임과 열등감시기심과 질투애착과 고독오해와 집착사랑 등 다양한 개념을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왜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가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즉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내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남에게 보여주는 ’/의식]과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진짜 ’/무의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프로이트가 강박적 반복(repetition compulsion)’이라고 부르는과거에 상처받은 일이나 상황을 반복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가끔 나는 어떤 행동을 그냥 되풀이합니다자동적으로 움직입니다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습니다심지어 뻔히 손해를 보는 짓도 합니다무의식의 힘은 그렇게 작용합니다의식적으로 하는 일과 달리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은 왜 그러는 건지 원인을 알기 어렵습니다.” [p. 49]

 

그렇다면 왜 그런 작용이 일어날까?

정신분석은 소위 상담이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업입니다내가 내 생각을 말하면 분석가는 언어로 표현한 텍스트를 해석해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나에게 돌려주거나 스스로 의미를 알아차리도록 도와줍니다인간은 결국 감성적인 동물입니다자신이 이성적이라고 믿는 사람일수록 마음속에 문제가 많습니다마음도 몸처럼 치료가 필요합니다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아픈지를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정신분석이란 바로 그 마음을 확대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렌즈입니다.” [p. 22]

 

하지만사람은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AT필드처럼남이 내 마음을 읽지 못하게 하는 방어기제가 작용한다이러한 방어기제는 백혈구가 인간의 육체를 보호하는 면역기능을 하는 것처럼인간의 마음을 보호하는 작용을 한다하지만 백혈구가 과다하면 백혈병에 걸리는 것처럼방어기제도 너무 즐겨 쓰거나 너무 강하게 쓰면 그것이 내 안에서 굳어져 진짜 나를 가리게 된다.

방어기제도 너무 강하게 또는 습관적으로 쓰면 문제가 생깁니다성격이 융통성 없이 꽉 막히면서 고집스러워집니다그렇게 대인 관계를 피하고 혼자 지내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됩니다.” [p. 56]

 

그래서 내 마음의 진실을 알려면 내가 무엇을 방어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내 행동태도성격에 묻어 나오는 방어기제를 잘 살펴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그래서 정신분석 시간에 하는 일 중에 방어기제의 분석이 중요합니다.” [p. 74].

 

 

정신분석학 입장에서 본 개념들

 

이 책에서 소개된 몇 개의 개념들을 살펴보면,

 

망설임을 정신분석 용어로는 ‘양가감정(ambivalence) 이라고 합니다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을 느끼거나 태도를 보인다는 뜻입니다예를 들면 어머니에 대해 미움과 사랑의 감정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에 쓸 수 있습니다양가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무의식적인 것입니다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일상생활에서의 망설임은 실제로 그 대상의 정체나 내용이 잘 파악이 안 되어서 의식에서 망설이는 것도 포함이 됩니다.“ [pp. 147~148]

이러한 망설임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완벽에의 강박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열등감으로 인해 남의 눈치를 보는 것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하지만 망설임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약간의 망설임은 성급한 행동으로 인한 실수를 예방할 수 있는 치료제가 될 수도 있다열등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열정적 행위입니다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열정적인 사랑을 원합니다. 사랑에 의존할 수 있어서입니다열정적 사랑은 일종의 중독 상태입니다중독이라 말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사랑의 모양이 더 열정적으로 변하길 원하지만사랑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는 ‘내성(tolerance)’이 생기고 관계가 소원해지면 ‘금단 증상(withdrawal symptoms)’으로 고통을 받게 되기에 그렇습니다.” [p. 208]

사랑은 한 가지 감정이 아닙니다사랑은 애정욕망호기심자존심소유욕이 엉켜 있는 복잡한 것입니다그리고 사랑이라는 동전의 뒷면에는 미움이 이미 새겨져 있습니다사랑은 생각만이 아니고 행동입니다사랑은 늘 이성이 지배하는 머리와 열정이 가득 찬 가슴이 서로 다투는 갈등입니다.

중략 ~

왜 그런 것일까요사랑은 자신이 잘 달래야 하는 감정입니다상대가 처음부터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물론 어렵습니다속으로는 자꾸 나와 같은 사람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사랑한다는 말에 쉽게 속지 말고 사랑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지 마십시오사랑은 결국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p. 211]

 

용서는 절대로 상대의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닙니다상대가 한 짓을 잊는 것도 아닙니다용서란 내 상처의 원천이자 원한과 복수의 대상인 상대 자체를 마음에서 버림으로써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자 결과입니다.” [p. 219]

따라서 다른 사람의 용서를 구하는 행위는 사실  자신이 스스로를 용서하려는 행위 뿐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나를 내가 용서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어차피 남이 하는 용서는 변덕스럽습니다.

그러니 남에게 용서를 빌면서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마세요비참하게 되어야 벌을 받은 것이고 벌을  받았으니 용서받은것이다‘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p. 255]

 

 

정신분석 치료의 어려움

 

예전에 정신과는 미친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편견이 강했다지금은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사회적으로 불이익이 많나요?’ ‘정신과는 의자가 약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인가요?’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보험 가입이 어렵나요?’ 같은 질문들이 여전히 나올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외부의 시선 때문에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것이 쉽지 않다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상처까지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나아가 자신이 그렇다고 믿고 있는자신에게 거짓말하는 마음도 꺼내놓아야 한다이런 일이 쉬울 리가 없다.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은 짐작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정신분석은 내가 말한 것에 근거해서 치료자가 나를 이해하고 이해한 것의 의미를 해석해서 나에게 되돌려주는 과학입니다귀 기울여 듣지 않는 치료자는 위험합니다그러니 혼자 있을 때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는 연습을 꾸준히 하십시오그러면 길이 보입니다.” [p. 172]

 

따라서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은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진짜 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그래서 저자도 여러분 앞에 분석가가 있다고 스스로 상상해보세요그와 대화함으로써 내가 대상을 찾아 방황하는 현재는 내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그리고 그 거울을 어떻게 닦아내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달라질 것” [p. 179]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정신분석 치료를 한다는 것은 숨겨진 나 혹은 진짜 나를 바라보고 내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인 셈이다그러는 과정에서 니까 당연히 를 안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내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면 나의 삶도 좀 더 여유로울 수 있고타인도 좀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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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 (Magazine B) Vol.67 : 교토 (Kyoto) - 국문판 2018.6
B Media Company 지음 / B Media Company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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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와 교토[京都]의 콜라보

 

교토[京都]. 한국의 서울과 경주 그 사이 어딘가에 해당하는 도시다. 고도(古都)의 냄새가 짙다는 점에서는 경주가, 활기찬 현대화된 도시라는 점에서는 서울이 연상되는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교토를 좋아하고, 방문한다. 그리고 그들의 글과 사진, 그림 등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교토에 익숙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책 <매거진 B: 교토>는 묘한 잡지다. <매거진 B>라는 잡지는 전세계의 균형 잡힌 브랜드를 심도 있게 소개하는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이라고 한다. 잡지를 거의 보지 않는 나에게는 독특한 느낌을 주는 잡지 스타일의 책인데, 그래서 그런지 <매거진 B: 교토>는 교토라는 도시를 하나의 브랜드로 파악하는 경제경영 관련 책 같은 느낌을 주면서, 그 안의 글들이 하나하나 에세이 형식을 띄고 있기에 복합상영관을 방문한 듯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 책을 매거진 B와 교토의 콜라보라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매거진 B가 본 교토

 

교토 같은 곳은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고, 또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보고 들을 수 있어서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곳을 진짜 제대로 아는 것일까? 오히려 그런 생각은 눈 먼 이가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품평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이 잡지의 편집자는

도쿄[東京]가 눈과 마음을 현혹하는 것들로 발산하는 도시라면, 교토는 차분하게 수렴하는 도시에 가깝죠” [p. 9]라고 얘기한다.

 

수렴하는 도시라고?

역시 편집자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수렴은 나 스스로에게 집중한다는 것”[p. 9]을 뜻한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정(禪定)과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물론 현대 도시의 끊임없는 외부 자극에 의한 잡념을 떨쳐내고 마음을 나에게 집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것을 흉내만 내도 흔들리지 않는 큰 산처럼 중심을 잡고 자신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교토를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도시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교토 사람들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간사이 지방인데도 오사카와 교토는 색이 다르잖아요. 그곳에 자리한 사람들의 목소리나 건물이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요. 교토엔 고도(古都)라는 느낌이 곳곳에 스며 있어요. 과거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법한 건물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온갖 편의를 제공하는 현대적인 편의점도 쉽게 찾을 수 있죠. 옛 것과 현대적인 것이 묘하게 잘 섞인, 경계선상에 놓인 도시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p.19]

 

 

이 책에는 무라야마 도시오[村山 俊夫]의 <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에 소개된 노포(老鋪)들의 후계자처럼, 교토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도 등장한다. 6대째 이어온 금속 차통[茶筒, tea caddy]을 만드는 ‘카이카도(Kaikado, 開化堂)’, 일본을 대표하는 견직물인 니시진오리[西陣織]를 다루는 ‘호소오(Hosoo)’, 5대째 이어오는 대나무 공예 브랜드인 ‘코초사이 코스가(Kohchosai Kosuga)’, 철사를 엮어 주방용품과 오브제를 만드는 ‘가나아미 쓰지(Kanaami Tsuji)’, 목공예 전통을 따르는 ‘나카가와 모코게이(Nakagawa Mokkougei, 中川木工)’, 전통 도자에 현대감각을 더한 ‘아사히야키(Asahiyaki, 朝日?등 전통 공예 브랜드를 잇는 커뮤니티 고온(ごおん)의 멤버들이 바로 그들이다.

일본에서 대(代)를 이어 가게를 하는, 즉 가업(家業)을 잇는 것 자체가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박물관처럼 옛 것을 고스란히 보전하거나 옛 전통을 글자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살려 개선하고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아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더 쉬울 지도 모른다. 옛 것의 맥(脈)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여 하나의 양식, 하나의 생활문화, 하나의 양식으로 승화(昇華)시켜야 하는 이중고를 그 도시에 살아가는 구성원 모두가 감수하는 것이니까.

 

교토 사람들에게 새로운 걸 시도한다는 의미는 과거를 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의 핵심을 강화하는 행위입니다. 과거의 것에 새로운 결을 더하는 것, 그것이 교토 사람들이 전통을 지켜나가는 방법입니다.” [p.76]

 

단순히 교토에 백 년 가게가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교토라는 도시가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들 들면, 패션 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는

브랜드의 신조가 ‘전통과 혁신의 융화’라는 점에서 교토와 이세이 미야케는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전통적인 기술을 사용한 혁신적인 디자인을 내놓기 위해 항상 고민하니까요. 엄격한 전통 고수와 새로움의 수용이라는 역설적인 공통점이야말로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p. 117]라고 말한다.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디앤디파트먼트’도

교토는 여러 세대에 걸쳐 가장 교토스러운 것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을 고민해온 도시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 브랜드가 내세우는 ‘롱 라이프 디자인’의 선배격이라고 볼 수 있지요.” [p. 118]라고 얘기한다.

 

결국 교토에는 은연중에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교토 스타일’ 혹은 ‘교토 스탠다드’라고 불릴 만한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교토에 사는 이들이 여기에 대해 일종의 ‘합의’를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 ‘합의’자체를 교토라는 도시가 가지는 특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합의’가 교토의 특징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패션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나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디앤디파트먼트’가 얘기한 전통과 현대의 ‘조화’, 그 자체는 교토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교토는 하나의 기업, 하나의 브랜드를 닮은 도시인 셈이다.

 

아마 다른 책에서도 도쿄 스타일과 비교해서 교토 스타일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만큼 

‘교토’가 가진 특이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교토’라는 도시 그 자체를 브랜드로 보는 시각은 

나름 독특한 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내가 교토에 관한 책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기에 다른 책에서

이미 언급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각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잡지는 충분히 제 몫을

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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