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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 (Magazine B) Vol.67 : 교토 (Kyoto) - 국문판 2018.6
B Media Company 지음 / B Media Company / 2018년 6월
평점 :
매거진 B와 교토[京都]의 콜라보
교토[京都]. 한국의 서울과 경주 그 사이 어딘가에 해당하는 도시다. 고도(古都)의 냄새가 짙다는 점에서는 경주가, 활기찬 현대화된 도시라는 점에서는 서울이 연상되는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교토를 좋아하고, 방문한다. 그리고 그들의 글과 사진, 그림 등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교토에 익숙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책 <매거진 B: 교토>는 묘한 잡지다. <매거진 B>라는 잡지는 전세계의 균형 잡힌 브랜드를 심도 있게 소개하는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이라고 한다. 잡지를 거의 보지 않는 나에게는 독특한 느낌을 주는 잡지 스타일의 책인데, 그래서 그런지 <매거진 B: 교토>는 교토라는 도시를 하나의 브랜드로 파악하는 경제경영 관련 책 같은 느낌을 주면서, 그 안의 글들이 하나하나 에세이 형식을 띄고 있기에 복합상영관을 방문한 듯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 책을 매거진 B와 교토의 콜라보라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매거진 B가 본 교토
교토 같은 곳은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고, 또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보고 들을 수 있어서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곳을 진짜 제대로 아는 것일까? 오히려 그런 생각은 눈 먼 이가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품평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이 잡지의 편집자는
“도쿄[東京]가 눈과 마음을 현혹하는 것들로 발산하는 도시라면, 교토는 차분하게 수렴하는 도시에 가깝죠” [p. 9]라고 얘기한다.
수렴하는 도시라고?
역시 편집자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수렴은 나 스스로에게 집중한다는 것”[p. 9]을 뜻한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정(禪定)과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물론 현대 도시의 끊임없는 외부 자극에 의한 잡념을 떨쳐내고 마음을 나에게 집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것을 흉내만 내도 흔들리지 않는 큰 산처럼 중심을 잡고 자신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교토를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도시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교토 사람들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간사이 지방인데도 오사카와 교토는 색이 다르잖아요. 그곳에 자리한 사람들의 목소리나 건물이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요. 교토엔 고도(古都)라는 느낌이 곳곳에 스며 있어요. 과거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법한 건물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온갖 편의를 제공하는 현대적인 편의점도 쉽게 찾을 수 있죠. 옛 것과 현대적인 것이 묘하게 잘 섞인, 경계선상에 놓인 도시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p.19]
이 책에는 무라야마 도시오[村山 俊夫]의 <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에 소개된 노포(老鋪)들의 후계자처럼, 교토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도 등장한다. 6대째 이어온 금속 차통[茶筒, tea caddy]을 만드는 ‘카이카도(Kaikado, 開化堂)’, 일본을 대표하는 견직물인 니시진오리[西陣織]를 다루는 ‘호소오(Hosoo)’, 5대째 이어오는 대나무 공예 브랜드인 ‘코초사이 코스가(Kohchosai Kosuga)’, 철사를 엮어 주방용품과 오브제를 만드는 ‘가나아미 쓰지(Kanaami Tsuji)’, 목공예 전통을 따르는 ‘나카가와 모코게이(Nakagawa Mokkougei, 中川木工芸)’, 전통 도자에 현대감각을 더한 ‘아사히야키(Asahiyaki, 朝日?) 등 전통 공예 브랜드를 잇는 커뮤니티 고온(ごおん)의 멤버들이 바로 그들이다.
일본에서 대(代)를 이어 가게를 하는, 즉 가업(家業)을 잇는 것 자체가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박물관처럼 옛 것을 고스란히 보전하거나 옛 전통을 글자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살려 개선하고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아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더 쉬울 지도 모른다. 옛 것의 맥(脈)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여 하나의 양식, 하나의 생활문화, 하나의 양식으로 승화(昇華)시켜야 하는 이중고를 그 도시에 살아가는 구성원 모두가 감수하는 것이니까.
“교토 사람들에게 새로운 걸 시도한다는 의미는 과거를 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의 핵심을 강화하는 행위입니다. 과거의 것에 새로운 결을 더하는 것, 그것이 교토 사람들이 전통을 지켜나가는 방법입니다.” [p.76]
단순히 교토에 백 년 가게가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교토라는 도시가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들 들면, 패션 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는
“브랜드의 신조가 ‘전통과 혁신의 융화’라는 점에서 교토와 이세이 미야케는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전통적인 기술을 사용한 혁신적인 디자인을 내놓기 위해 항상 고민하니까요. 엄격한 전통 고수와 새로움의 수용이라는 역설적인 공통점이야말로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p. 117]라고 말한다.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디앤디파트먼트’도
“교토는 여러 세대에 걸쳐 가장 교토스러운 것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을 고민해온 도시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 브랜드가 내세우는 ‘롱 라이프 디자인’의 선배격이라고 볼 수 있지요.” [p. 118]라고 얘기한다.
결국 교토에는 은연중에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교토 스타일’ 혹은 ‘교토 스탠다드’라고 불릴 만한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교토에 사는 이들이 여기에 대해 일종의 ‘합의’를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 ‘합의’자체를 교토라는 도시가 가지는 특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합의’가 교토의 특징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패션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나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디앤디파트먼트’가 얘기한 전통과 현대의 ‘조화’, 그 자체는 교토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교토는 하나의 기업, 하나의 브랜드를 닮은 도시인 셈이다.
아마 다른 책에서도 도쿄 스타일과 비교해서 교토 스타일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만큼
‘교토’가 가진 특이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교토’라는 도시 그 자체를 브랜드로 보는 시각은
나름 독특한 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내가 교토에 관한 책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기에 다른 책에서
이미 언급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각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잡지는 충분히 제 몫을
한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