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속 건축 도시 속 건축 시리즈
김태일 지음 / 안그라픽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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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속 건축]을 보기에 앞서

 

한 도시의 건축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재 존재하는 건축물 그 자체만 아니라 그 공간에 축적된 시간까지 함께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아가 그 공간에 살던 사람들의 삶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건축물과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이상현 교수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의 말을 변형하여 “그들이 건물을 빚어내고, 건물은 우리를 빚어낸다1)”고 말했던 것처럼.

 

그것은 ‘제주(濟州)’라는 공간에 세워진 건축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전통적인 제주의 건축물은 초가(草家)와 와가(瓦家)처럼 자연에 도전하고 적응한 결과의 산물이다. 아니, 한국 전통건축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은 그 경계가 칼로 자른 것처럼 선명하고 명확합니다. ‘여기까지는 정원이고 여기까지는 사람이 앉아서 감상하는 곳’ 그런 식입니다. 경계뿐만 아니라 각 공간의 프로그램도 아주 정확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정원은 그 경계를 손으로 선을 뭉개놓은 것처럼 아주 흐릿합니다. 심지어 그곳이 정원이지 그냥 풀들이 자라서 만들어진 풀밭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때고 있습니다. 자연의 일부가 인간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공간이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살아 있는 것 같은 역동성이 느껴집니다.2)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권두에 있는 제주의 자연, 역사, 건축문화, 언어[방언] 등에 대한 간결한 소개는 의미 있다. 우리가 제주의 공간에 축적된 시간에 대해 찾아볼 수고를 절약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제주 속 건축]은

 

제주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크게 산남(山南, 서귀포시)과 산북(山北, 제주시)으로 나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를 감안, 서귀포시와 제주시를 각각 세 개의 지역으로 나눠 155개의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제주의 건축물 외에도 각각의 지역을 소개하는 파트의 마지막에 제주를 상징하는 일곱 가지 특별 요소인 오름, 곶자왈과 중산간, 돌하르방, 밭담과 산담, 용천수(湧泉水), 마을의 허한 공간으로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방사탑(防邪塔), 제주어민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관리하는 등대인 도대불 혹은 등명대(燈明臺)를 얘기한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건축물과 상관없다고 여길 이런 요소들에 의해 제주 건축의 개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먼저 ‘서귀포시 서부지역’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알뜨르 비행장(1937), 제주도산 현무암을 사용하여 벽체(壁體)를 쌓고 목조 트러스 위에 함석지붕을 씌우는 등 건축 기술자의 참여 없이 건축될 수 밖에 없었던 한국 전쟁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남제주 강병대(强兵臺) 교회(1952) 등과 승효상(承孝相, 1952~ )의 제주추사관(2010), 안도 다다오[安藤 忠雄, 1941~ ]의 본태(本態)박물관(2012)이타미 준으로 알려진 유동룡(庾東龍, 1937~2011)의 포도호텔(2001)과 방주교회(2009) 등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 존재한다.

 

서귀포시 서부지역특히 대정지역은 예로부터 바람이 세고 땅이 거칠어 사람이 살기 어려웠던 곳이다. 그래서 유배의 공간, 항쟁의 공간으로 불린다.

중략 ~

이러한 이유로 서귀포시 서부지역은 조선시대의 유배 문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제주의 상징적 공간으로 평가 받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모진 환경에 피어난 추사의 예술혼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겨진 우리 역사의 깊고 짙은 슬픔을 느낄 수 있다. 현재는 이국적 경관에 상업자본이 접목되어 미술관, 박물관, 주거 시설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 그 덕분에 서귀포시 서부지역 일대는 ‘건축 박물관’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p. 34]

 

서귀포시 동(洞)지역’에서는 예술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기당 미술관(1987)3), 소암 기념관(2008), 이중섭 미술관(2002) 등이 밀집되어 있다.

 

서귀포시 동부지역’에서는 조선시대 정의현(旌義縣)의 중심으로,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제주성읍마을과 앞에서 언급한 안도 다다오의 모던하고 아름다운 설계가 돋보이는 글라스하우스(2008), 유민미술관[舊 지니어스 로사이](2008)을 볼 수 있다.

 

제주성읍마을,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 우도……. 서귀포시 동부지역에서 기억할 만한 곳이다. 서귀포시 서부지역의 건축에 전통적, 근대사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면, 서귀포시 동부지역은 수려한 자연경관에 현대적 건축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이다. [p. 90]

 

제주시 서부지역’에서는 선사시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제주 고산리 유적이 있다.

 

제주시 서부지역은 아주 먼 옛날 이 일대에 정착해 살았던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한경면에 위치한 제주 고산리 유적은 동북아시아 신석기시대의 문화 연구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p. 190]

 

제주시 동부지역’은 암괴(巖塊)지역에 형성된 숲인 곶자왈, 밭의 경계에 쌓은 담인 밭담, 용암 분출로 생긴 독립된 형태의 기생화산인 오름 등으로 제주의 자연색이 짙게 배어나는 곳이다. 이런 자연환경을 이용, 전략촌으로 건설된 낙선동 4.3성은 ‘제주시 동(洞)지역’의 제주 4.3평화공원 기념관과 함께 건축적 측면을 넘어 역사적으로도 기억해야 할 장소라고 한다.

 

제주시 동(洞)지역’에서는 조선시대 제주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던 제주읍성 등 탐라와 제주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현재의 제주시 동지역은 과거 제주목이었던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원도심, 1980년대 개발을 시작한 연동, 노형동 일대로 구성된다. 특히 원도심에는 제주 역사와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흔적이 산재해 있다. 탐라국의 시조에 관한 전설이 깃든 삼성혈, 제주읍성의 관덕정(觀德亭)과 제주목관아(濟州牧官衙) 등이 그러하다. 그 안에는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으며, 고달프고 애절한 민초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옛 골목길, 산지천, 관덕정 광장 등에서 그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제주시 동지역은 그래서 더 흥미로운 곳이다. [p. 134]

 

앞에서 언급한 것들이 한데 어울려 이 책, <제주 속 건축>을 일반적인 여행 가이드북이나 제주 건축물에 대한 백과사전 이상의 것으로 만든다. 만약 특별한 여행을 꿈꾼다면, 이 책 끝부분에 수록된 ‘제주 건축 도보 여행 추천 코스’와 ‘제주 건축 테마별 추천 여행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리고 이 책에 소개된 155개의 건축물을 대부분의 건축물에 대한 간결한 서술과 특정 건축물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는 서술을 엮어 단짠단짠의 조합처럼 맛깔 나게 소개함으로써 건축에 대한 독자의 견문을 넓혀주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지금 제주건축에는 새로운 고민과 시간이 필요하다. 고유한 건축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제주 건축의 정체성을 단순히 외형적, 표피적 관점에서 모색하려는 사고(思考)에서 벗어나, 건축과 공간의 본질적 문제에 초점을 두고 건축작품을 탐색하려는 실험적 노력이 필요하다. [p. 24]

 

고 말함으로써 제주건축, 나아가 한국건축에 대한 조언을 더함으로써 이 책의 특별함을 더하고 있다.

 

1) 이상현,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 (효형출판, 2013), p. 36

2) 임형남/노은주, <나무처럼 자라는 집>, (인물과사상사, 2022), pp. 51~53

3) 1987년 개관된 국내 최초의 시립 미술관으로 제주가 고향인 재일교포 기당(寄堂) 강구범에 의해 건립되어 서귀포시에 기증되었다. 서귀포 출신 변시지(邊時志, 1926~2013) 화백의 상설 전시실이 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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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여운, 도쿄 - 일본의 감성을 선물하는 에세이&사진집
이송이 지음 / 하모니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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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여운, 도쿄]

 

이 책은 ‘1 In Korea’, ‘2 In Tokyo’, ‘3 Tokyo pictures’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도쿄[東京]에 취직하러 가기 전까지의 과정을 기술하고 있는데, 마치 자기소개서를 보는 듯해서 재미있었다. 2장은 도쿄에서의 에피소드를 간략히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3장은 저자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사진들로 가득 차 있다.

 

 

일본과의 인연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문득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 하나쯤은 할 수 있어야지 좀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말 갑자기였다. 그렇게 마음먹은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바로 뛰어갔다.

엄마! 나 일본어 할래!”

? 갑자기 무슨 바람이 나서 일본어래?”

그냥!”

엄마는 왜 많고 많은 외국어 중에, 중국어도 아닌 일본어인지 의아해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냥!’

무언가에 끌리게 되고 좋아하는 데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 머릿속에서 좋다라는 생각이 생긴 것이고 그 생각 자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나와 일본이란 나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p. 10]

 

걸그룹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

다가서지 못하고 헤매이고 있어

좋아하지만 다른 곳을 보고 있어

가까워 지려고 하면 할수록

멀어져 가는 우리 둘의 마음처럼

만나지 못해 맴돌고 있어

우린 마치 평행선처럼

라는 가사처럼, 인연은 바란다고 해서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연이란 그냥이라는 말처럼 우연의 작용일 수도 있고, 수만 번의 생을 윤회(輪廻)하면서 쌓은 업()의 결과일 수도 있다. 저자가 일본어를 공부하고, 도쿄에서의 삶을 그리워하게 된 것은 어느 쪽의 작용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인연 때문이 아닐까?

일본에서의 추억

일본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있나요?”

한국에 귀국 후, 주위 사람에게 종종 들었던 질문이다.

좋은 직원들과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좋았던 순간은 도쿄 타워를 보면서 회사에 출퇴근할 때입니다.”

도쿄 최고 관광지이자 어쩌면 동경하기까지 했던 도쿄 타워를 보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쌓였던 피로감이 없어졌었고 어떻게 보면 회사원에게 가장 힘든 출퇴근 시간을 가장 기분 좋은 순간으로 만들어 까지 했다. 퇴근 후,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도쿄 타워가 잘 보이는 공원에 앉아 한국에서 찍었던 사진이나 동영상들을 보다 집에 돌아가곤 했다. 한국에서의 나는 항상 친구들과 놀기 바빴고, 집에 있는 시간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타지에서의 지독한 외로움을 안겨준 도쿄가 있었기에 이제는 한국에서 외로움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하면 이겨 낼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코로나가 종식되어 다시 일본에 갈 수 있다면, 도쿄 타워가 가장 잘 보이는 그때 그 자리에 앉아 외로운 일본생활을 했던 나와 다시 한번 제대로 마주해보고 싶다. [p. 26]

 

사람들은 외로움에 지쳐 애완동물을 키운다는데, 저자는 도쿄 타워라는 애완 건축물을 가졌나 보다. ‘향수병(鄕愁病)’이라는 말은 낯선 곳에서 혼자 살다 보면 외롭고 쓸쓸함을 느끼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닐까?  ,

 

그렇다면 일본 생활 중, 가장 그리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두 번째로 많이 듣는 단골 질문이다.

너무나도 평범한 퇴근 후에 제 아지트 단골 술집에서 안주를 친구 삼아 술 한잔 기울이던 순간이요. [p. 33]

어쩌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계속해서 혼밥, 혼술을 하는 것은 왠지 처량해 보인다. 그렇기에 혼술하는 순간이 가장 그리운 순간이라는 것은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든다.

 

딸랑딸랑

이랏샤이마세! (*어서 오세요!)”

큰 종들이 가득 달린 미닫이문을 열자마자, 엄청난 경력이 있어 보이는 주방장님께서 인사를 크게 외쳤고 나머지 직원분들이 주방장님을 따라 다시 한번 인사를 해 주셨다. 외국인이 거의 없는 작은 동네 술집이었기에 누가 봐도 일본인처럼 보이지 않는 나에게 시선 집중이 되는 게 피부로 느껴질 만큼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여러 눈동자들과 눈 마주침이 있고 난 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메뉴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실은 너무나도 오고 싶었던 곳이라 예전부터 인터넷으로 메뉴 조사를 다 끝냈지만 신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준 후 주문을 이어 나갔다. 테이블에 있는 1인석 자리에 앉아 안주를 저녁 삼아 먹으며 한국에서 찍었던 동영상을 보며, 회사에서 못 했던 업무를 하며, 주말에는 어떤 하루를 보낼지 계획하며 그렇게 그날 하루도 얼큰하게 마무리하였다.

 

늘 처음이 어렵다.

나에게는 내심 큰 용기가 필요했던 혼밥 혼술이란 도전을 해보고 나니 두 번째, 세 번째, 수십 번째 할 땐 너무나도 익숙하게 행동하게 된다. 첫 시도만 용기 내서 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이란 나와의 믿음도 생기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단골집이 된 이자카야에서는 처음처럼 큰 인사는 아니었지만, 사장님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인사를 알 수가 있었다. ‘왔어? 오늘 일 수고했어! 배고프지? 뭐 먹을래?’

이제는 익숙해진 큰 종들이 울리는 가게에 들어갈 때, 말하지 않아도 정이 가득 담긴 사장님의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pp.31~33]

 

아마도 저자는 혼밥이나 혼술 그 자체보다 새로운 도전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게 해주었기에 혼술의 순간을 그리워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저자에게 있어서 도쿄는 그저 일본의 도시가 아니라 바쁜 일상을 영위하면서 잠시 숨을 쉬는, 아니 숨을 쉴 수 있는 여유를 상징하는 것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을

한국에서는 하늘을 볼일도, 그런 잠시의 여유조차 없었다. 학교 다닐 때는 학교, 과제, 아르바이트의 반복이었고 하늘을 볼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항상 핸드폰을 달고 다녔기에 고개가 아래로 향한 적은 대다수였지만 내 시선이 위를 향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퇴근길에 보이는 도쿄 타워와 인사를 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려던 순간, 도쿄 타워 뒤로 보이는 빨간 노을이 나의 발걸음을 자석으로 이끌기라도 하는 듯 노을 쪽으로 끌어당겼다. 정신 차려보니,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 중략 ~

난 행복하고 즐겁게 지낸다.’

나 자신이 좋다.’

후회 없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생각들을 수없이 하면 뭐하나. 잠시의 여유조차 즐기는 방법을 모르는데. 고장 난 생각을 가진, 모순덩어리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결심하게 되었다. 아무리 바쁜 일상을 지내게 되더라도 시선을 빼앗길 만한 하늘과 노을이 있다면 잠깐이라도 좋으니 즐기고 감상할 시간을 나에게도 주자. 그때의 빨간 노을이 아니더라도 좀 더 넓고 다양한 풍경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하나 하나 카메라와 눈동자에 가득 담는 연습을 시작했다. [pp. 94~95]

라고 맺은 것이 아닐까?

 

 

옥의 티

 

Epilogue의 페이지가 206인데 목차에는 098로 되어 있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저자(https://www.instagram.com/__songyi___/)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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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 도시와 건축을 성찰하다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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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도시와 나쁜 도시


오래 산 부부는 닮는다고 한다. 서로 달리 살던 사람들이 결혼하여 한 공간에 같이 살면서 그 공간의 규칙에 따르다 보면, 습관과 생각도 바뀌어서 결국 얼굴까지 닮게 된다는 것이다. 수도사들이 산간벽지의 암자나 수도원을 굳이 찾는 이유가 그 작고 검박한 공간이 자신을 번뇌에서 구제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 오래 걸리고 더디지만 건축은 우리를 바꾼다. 즉 이런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좋은 건축 속에서 살면 좋은 삶이 되고, 나쁜 건축에서는 나쁘게 된다는 것. 이게 맞는다면, 건축을 통해 인간을 조작하는 일도 가능할 게다. 그래서 옛날부터 절대권력을 가진 자가 건축을 통해 대중의 심리와 행동을 조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고대에는 신전과 피라미드 등을 지어 민심을 장악했고, 이후 궁전이나 기념탑 같은 건축물도 절대권력의 영광을 칭송하게 하는 도구로 지어졌다. [p. 121]

이런 말들을 보면, ‘건축 만능주의라는 평가해도 할 말이 없다. 만약 저자의 말이 맞는다면, 나쁜 건축으로 이루어진 도시(이하 나쁜 도시’)에 사는 시민은 나쁜 삶을 살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도시가 나쁜 도시일까? 여기에는 가치판단이 작용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정을 지향한다면, 나쁜 도시가 어떤 형태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나쁜 도시는 거주지를 계층별로 분류하고, 명령을 전하고 통제하기 쉬운 거리를 구성하고, 권력자의 구미에 맞는 거대 건축과 상징물을 랜드마크로 삼은 도시가 아닐까?


반대로 좋은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건축가들이지만 도시에서 정작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건축이 아니라 그곳의 생생한 삶이다. 그들은 현대의 첨단 건축이 즐비한 강남을 피해 강북의 골목길 풍경에 탐닉한다. 통행 기능만 있는 직선이 아니라 지형과 경사를 따라 불규칙하게 조직된 서울의 골목길에서 그들은 건축의 지혜와 영감을 얻는 것이다.

많은 길들이 지난날 재개발의 광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서울에는 여전히 많은 골목길이 있다. 미로의 도시라면 모로코의 페스가 단연 앞선다. 1,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 도시를 안내자 없이 갔다가는 길을 잃기 마련인데, 길이 이 도시를 지탱하는 실핏줄처럼 퍼져 있다. 어떤 길은 몸을 비틀어야 지나갈 수 있는 60~70센티미터 정도의 좁은 폭이어서, 심리적으로 압박을 느끼는 보행자는 그 길에서 그저 속히 벗어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의 골목길은 대략 2~3미터 폭 우리 신체 크기에 딱 적합하여 페스의 답답한 길보다 훨씬 편안하고 밝다. 더구나 경사지인 까닭에 공간 변화가 무쌍할 수밖에 없어, 서울의 골목길을 걷는 것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다. [pp. 44~45]

규격화된 공산품 같은 아파트나 화려한 네온사인을 뽐내는 고층 빌딩이 즐비한 강남보다 오래된 건물, 낡은 창살, 정형화되지 않은 골목길, 시민이 자유롭게 오가는 빈터와 마당이 있는 강북이 더 좋은 도시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도시를 소개하는 책자에는 그 도시의 상징적 시설물이 등장하게 마련이지만, 사실 이것들은 그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의 일상과 괴리가 있다. 실제로 나는 서울의 남산타워에 올라간 적이 없으며 서울숲에도 간 적 없고, 고궁을 찾는 일은 몇 년에 한 번쯤일 뿐이고, 시내에 즐비한 고층빌딩에서도 살아본 적이 없다. 서울을 안내하는 책자마다 그려져 있는 이런 풍경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1923~1985)의 말을 빌리면 허무한 환영일 뿐이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사용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빈터나 길가에 도시의 본질이 있다는 것, 그는 이를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라고 했다. [pp. 54~55]



건축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가


건축가는 자기 집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집을 지어주는 일을 고유 직능으로 한다. 그 직능은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사색과 성찰을 수반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객관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p. 9~10]

다시 말해, 저자가 생각하는 건축가는 킹 비더(King Vidor, 1894~1982) 감독의 영화 <마천루(The Fountainhead)>(1949)에 나오는 신념에 찬 건축가 하워드 로크 같은 이다. 따라서 승효상에 있어

건축가는 건축주를 위해 일하는 동시에 사회와 시민을 위해서도 일해야 바른 직능을 지닌 이다. 왜냐하면, 건축주가 자기 재산으로 개인의 집을 짓는다 해도 길 가는 행인이나 옆집 사람도 그 집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건축은 집주인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이익도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건축주는 그 건축의 사용권만 가질 뿐, 소유권은 사회가 갖는 게 맞다. 건축이 목표하는 바는 단순한 부동산의 뛰어넘는 공공성의 가치라는 것인데, 이는 바로 건축이 지녀야 할 윤리를 뜻한다. [pp. 204~206]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건축에 시간의 때가 묻어 윤기가 날 때, 그때의 건축이 가장 아름답다고 나는 즐겨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남루했어도, 거주인의 삶을 덧대어 인문의 향기가 배어나는 건축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경이롭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게 아니라 거주인이 시간과 더불어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물론, 건축이 거주인에 의해 완성된다고 해서 건축가의 책임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축가는 모름지기 그 건축이 담아야 하는 시간을 재는 지혜를, 그 풍경의 변화를 짐작하는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그런 건축가가 만드는 건축이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나기 마련이며, 그렇지 못하면 시간을 견디지 못해 소멸되거나 우리 환경의 일부가 되기 위한 비용이 만만찮게 든다. 그래서 애초에 건강한 건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p. 203]



공공성을 지닌 건축, 공유도시


만약 내가 사는 도시가 나쁜 도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 부수고 새로 만들어야 할까?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또 다른 나쁜 도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는 나폴레옹 3세 당시 오스만 남작이 추진한 파리 개조 사업(1853~1870)처럼 마스터플랜에 의한 상의하달(上意下達) 방식의 개조밖에 이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아름다운 파리를 만든 파리 개조 사업도 시민들의 폭동과 시위의 장소를 제거하겠다는 목적에서 진행되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뻔하다.


심지어 마스터플랜에 의한 도시개조는 그 자체로 이미 시대에 뒤처졌다.

마스터플랜의 허망함을 아는 해외 선진도시는 이미 다른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는 게 아니라 주민과 함께 필요한 작은 부분을 개선하고 기다리며 변화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형식, 시간이 걸리지만 시행착오 없는 이 지혜로운 방식을 침술적 방법이라고 이름했다. 도시는 완성되는 게 아니라 생물체처럼 늘 변하고 진화한다는 이치를 터득한 이 도시침술은 예산도 많이 들지 않지만, 무엇보다 과정이 민주적이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개발이 아니라 재생이라는 지금 시대의 가치와 부합한다. [pp. 40~42]


재생은 건축가 김면이 <파리, 에스파스(PARIS, ESPACE)>에서 말한 것처럼 과거를, 오래된 것을 부정하고 지워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유휴(遊休) 공간’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쓰임새가 다한 건물이나 장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도록 고민해 온 문제이다. 질문을 던지고 타인과 생각을 나누며 그 결과물을 공유하려는 국민성이 있는 그들은, 쓰임이 다한 공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다 함께 고민하면서 그 방안으로 예술품이나 문화재의 전시를 계획하곤 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파리의 낡은 옛 병원들을 박물관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또 도시 안에 남아 있는 커다란 창고 및 교역장, 다리의 하부 공간, 옛 주택과 궁전 등을 사들인 뒤 박물관으로 바꾸어, 교육의 장으로서 사회에 환원한다. 역사성이 있는 공간들을 없애지 않고 전시 공간으로 만들어 ‘도시의 기억’을 이어 가는 것이다.1)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하나하나의 개인은 힘이 없으니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연대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공유도시이며, 이러한 도시는 공공성을 지닌 건축을 통해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책,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건축에 대한 지식을 넓혀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인문학적 시각으로 건축을 보는 법을 알려주는 책인 셈이다.



1) 김면, <파리, 에스파스(PARIS, ESPACE)>, (허밍버드, 2014), p.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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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 반복되는 일상에 떠밀리다 마침내 새로운 세계에 닿다
오건호 지음 / 텍스트칼로리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나를 위한 삶,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

 

요즘 같은 불경기에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하지만 막상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무한경쟁 속에 부대끼다가 번아웃되거나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게 된다.

물론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말라며 일단 버텨보라고 말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이라면 그렇게 버티며 1년, 2년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까? 회사에서 더 이상 쓸모 없다고 쫓아낼 때까지?

직장인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한번쯤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 하는 일이 즐겁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반복될 삶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회사를 떠나 새롭게 도전할 수 있다. 아니면, 새로운 삶에 대한 용기가 부족해서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저자의 경우에는 이 답을 구하러 얽매임 없이 자유를 맘껏 향유할 수 있는 예술가의 도시라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Porto)로의 여행을 결정했다.

 

사람들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 믿었던 안정된 직장 생활은 지난 10년 동안 그 어떤 무모함이나 용기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모터가 멈춰버린 배 위에서 그저 둥둥 떠다니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그러나 길바닥 한 곳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이 순간만큼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단단한 용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앞뒤를 따지지 않고 용기만으로 행동에 나서던 순간, 무의식적으로 나는 어떤 일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것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남들의 시선에 좋아 보이는 일보다는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일,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길거리 전시에서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나는 가끔 동료에게 현재의 일이 본인을 행복하게 하는지 묻는다. 대부분은 ‘그냥 하는 거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지나가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태어나 있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알아 가면서 온전한 나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pp. 38~39]

 

사실 우리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외치면서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해야만 하는 것으로 가득 찬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삶을 성공한 삶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삶에서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인생의 목표라고도 할 수 있었던 취업이 내어준 것은 성취감도, 안도감도 아니었다. 예상치 못하게도 그것은 남들이 만든 환상을 여태 나의 꿈으로 착각하고 노력해왔다는 깨달음이었다.

중략 ~

취업의 기쁨은 잠시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일이 쌓일수록 의욕보다 한숨만 늘어 갔다. 무엇보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보람도, 이루고 싶은 꿈도 찾을 수 없다는 게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p. 118]

 

저자도 10년간 버티다가 충동적으로 사직서를 던지는 대신 여행을 떠났다. 그 기록이 이 책, <포르투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다. 유럽 여행을 간다고 하면, 스페인,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혹은 체코나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포르투갈 한 나라만 선택해서 떠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는 시중에서 포르투갈 여행기를 찾기 어려운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의 <페소아의 리스본(Lisbon: What the Tourist Should see)>가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잘 그린 여행기라고 한다. 하지만 그 외에 포르투갈 여행기가 떠오르는 것이 있을까?

때문에 이 책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여기에 사진이 아닌 멋진 펜 드로잉이 곁들여 있으니…….

 

리스본의 첫 인상

출처: <포르투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p. 17

 

포르투의 동 루이스 다리(Ponte D. Luis)

출처: <포르투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pp. 114~115

 

 

여행의 이유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일상을 되돌아 보는, 일종의 힐링 시간이다. 저자도 포르투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풍경을 감상하면서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문제들을 풀어간다. 이 책에 실린, 글과 펜화로 옮겨진 그 순간 순간의 감정들을 읽다 보면, 그 문제들이 매듭을 칼로 자르듯이 단번에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감정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고민들의 흔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나는 수많은 프레임을 걸친 채 살아왔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 받아들였고, ‘누구만큼은’, ‘누구보다는’이란 생각으로 사회가 만든 프레임에 열심히 자신을 끼워 맞추려 해왔다. 사람들의 삶은 각자의 속도와 방향이 있을 텐데, 나 자신의 것들을 외면했다. 마음속에서 불안함이 자라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반면, 여행에서만큼은 온갖 관계와 프레임들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나로 지낼 수 있었다.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은 고민뿐만 아니라 무슨 고민을 했는지 기억조차 잊게 만들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직접적인 해결책을 찾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흔들리던 마음을 똑바로 서게 해주었다. 뿌옇고 희미하던 마음 상태가 선명하고 또렷해졌다.

여행은 관계의 거미줄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독립적인 자아로서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여행은 본연의 자신을 경험하게 하고 자신의 본 모습을 더욱 알아가게 할 시간을 내어준다. 그리고 자신의 본질적인 면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믿어가는 과정을 통해 중심을 단단하게 잡아줄 무게를 키워 나가게 된다. 자신을 찾음으로써 자신다운 자신에 가까워지는 것, 우리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다. [pp. 100~101]

 

여행을 일상에서의 탈출로만 여기는 글은 많다. 하지만 그런 글은 사이다처럼 순간적인 상쾌함만 가져다 준다. 그렇기에 아무 대책 없이 일상에서의 탈출만 권유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짓이다. 목마르다고 오염되었거나 독이 든 물을 마시는 일이고, 불이 났다고 무작정 창문으로 사람을 미는 일이다.

그래서 그러한 권유 없이 잔잔히 자신의 일상을, 고민을 잔잔하게 읊조리는 이 책이 좋았다. 저자의 생각이나 느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공감하며 지그시 미소 짓게 만드니까. 누군가에 공감한다면, 누군가를 공감하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말없는 위로이고, 위안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공감들 속에서 상처를 위안받고 삶을 버텨나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타인을 위로하는 마음 깊숙한 곳에는 자신이 가진 슬픔을 위로하려는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슬픈 소식을 듣고 있으면 내 안의 슬픔들이 늘 떠오르는데, 그런 슬픔들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위로하려는 마음이 생기고는 했기 때문이다. 내가 위로하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곳엔 언제나 상대방에게 투영된 나의 슬픔이 있었다. [p.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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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06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어요. 드로잉이 참 좋습니다.
포루투갈은 언젠가 다시 좀 오랜 시간을 두고 머물고 오고 싶은 나라에요. 사실 코로나가 터진 그해 봄 계획하고 있다가 정지 상태입니다.
드로잉 여행에세이 좋아해요. 책 담아갑니다.

KOEMMA 2021-12-06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의 격려에 감사합니다. 저도 드로잉 여행에세이를 좋아합니다.^^
 
매거진 B (Magazine B) Vol.67 : 교토 (Kyoto) - 국문판 2018.6
B Media Company 지음 / B Media Company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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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와 교토[京都]의 콜라보

 

교토[京都]. 한국의 서울과 경주 그 사이 어딘가에 해당하는 도시다. 고도(古都)의 냄새가 짙다는 점에서는 경주가, 활기찬 현대화된 도시라는 점에서는 서울이 연상되는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교토를 좋아하고, 방문한다. 그리고 그들의 글과 사진, 그림 등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교토에 익숙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책 <매거진 B: 교토>는 묘한 잡지다. <매거진 B>라는 잡지는 전세계의 균형 잡힌 브랜드를 심도 있게 소개하는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이라고 한다. 잡지를 거의 보지 않는 나에게는 독특한 느낌을 주는 잡지 스타일의 책인데, 그래서 그런지 <매거진 B: 교토>는 교토라는 도시를 하나의 브랜드로 파악하는 경제경영 관련 책 같은 느낌을 주면서, 그 안의 글들이 하나하나 에세이 형식을 띄고 있기에 복합상영관을 방문한 듯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 책을 매거진 B와 교토의 콜라보라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매거진 B가 본 교토

 

교토 같은 곳은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고, 또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보고 들을 수 있어서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곳을 진짜 제대로 아는 것일까? 오히려 그런 생각은 눈 먼 이가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품평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이 잡지의 편집자는

도쿄[東京]가 눈과 마음을 현혹하는 것들로 발산하는 도시라면, 교토는 차분하게 수렴하는 도시에 가깝죠” [p. 9]라고 얘기한다.

 

수렴하는 도시라고?

역시 편집자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수렴은 나 스스로에게 집중한다는 것”[p. 9]을 뜻한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정(禪定)과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물론 현대 도시의 끊임없는 외부 자극에 의한 잡념을 떨쳐내고 마음을 나에게 집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것을 흉내만 내도 흔들리지 않는 큰 산처럼 중심을 잡고 자신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교토를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도시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교토 사람들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간사이 지방인데도 오사카와 교토는 색이 다르잖아요. 그곳에 자리한 사람들의 목소리나 건물이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요. 교토엔 고도(古都)라는 느낌이 곳곳에 스며 있어요. 과거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법한 건물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온갖 편의를 제공하는 현대적인 편의점도 쉽게 찾을 수 있죠. 옛 것과 현대적인 것이 묘하게 잘 섞인, 경계선상에 놓인 도시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p.19]

 

 

이 책에는 무라야마 도시오[村山 俊夫]의 <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에 소개된 노포(老鋪)들의 후계자처럼, 교토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도 등장한다. 6대째 이어온 금속 차통[茶筒, tea caddy]을 만드는 ‘카이카도(Kaikado, 開化堂)’, 일본을 대표하는 견직물인 니시진오리[西陣織]를 다루는 ‘호소오(Hosoo)’, 5대째 이어오는 대나무 공예 브랜드인 ‘코초사이 코스가(Kohchosai Kosuga)’, 철사를 엮어 주방용품과 오브제를 만드는 ‘가나아미 쓰지(Kanaami Tsuji)’, 목공예 전통을 따르는 ‘나카가와 모코게이(Nakagawa Mokkougei, 中川木工)’, 전통 도자에 현대감각을 더한 ‘아사히야키(Asahiyaki, 朝日?등 전통 공예 브랜드를 잇는 커뮤니티 고온(ごおん)의 멤버들이 바로 그들이다.

일본에서 대(代)를 이어 가게를 하는, 즉 가업(家業)을 잇는 것 자체가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박물관처럼 옛 것을 고스란히 보전하거나 옛 전통을 글자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살려 개선하고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아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더 쉬울 지도 모른다. 옛 것의 맥(脈)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여 하나의 양식, 하나의 생활문화, 하나의 양식으로 승화(昇華)시켜야 하는 이중고를 그 도시에 살아가는 구성원 모두가 감수하는 것이니까.

 

교토 사람들에게 새로운 걸 시도한다는 의미는 과거를 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의 핵심을 강화하는 행위입니다. 과거의 것에 새로운 결을 더하는 것, 그것이 교토 사람들이 전통을 지켜나가는 방법입니다.” [p.76]

 

단순히 교토에 백 년 가게가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교토라는 도시가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들 들면, 패션 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는

브랜드의 신조가 ‘전통과 혁신의 융화’라는 점에서 교토와 이세이 미야케는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전통적인 기술을 사용한 혁신적인 디자인을 내놓기 위해 항상 고민하니까요. 엄격한 전통 고수와 새로움의 수용이라는 역설적인 공통점이야말로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p. 117]라고 말한다.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디앤디파트먼트’도

교토는 여러 세대에 걸쳐 가장 교토스러운 것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을 고민해온 도시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 브랜드가 내세우는 ‘롱 라이프 디자인’의 선배격이라고 볼 수 있지요.” [p. 118]라고 얘기한다.

 

결국 교토에는 은연중에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교토 스타일’ 혹은 ‘교토 스탠다드’라고 불릴 만한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교토에 사는 이들이 여기에 대해 일종의 ‘합의’를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 ‘합의’자체를 교토라는 도시가 가지는 특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합의’가 교토의 특징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패션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나 라이프스타일 편집매장 ‘디앤디파트먼트’가 얘기한 전통과 현대의 ‘조화’, 그 자체는 교토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교토는 하나의 기업, 하나의 브랜드를 닮은 도시인 셈이다.

 

아마 다른 책에서도 도쿄 스타일과 비교해서 교토 스타일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만큼 

‘교토’가 가진 특이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교토’라는 도시 그 자체를 브랜드로 보는 시각은 

나름 독특한 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내가 교토에 관한 책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기에 다른 책에서

이미 언급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각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잡지는 충분히 제 몫을

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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