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속 건축 도시 속 건축 시리즈
김태일 지음 / 안그라픽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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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속 건축]을 보기에 앞서

 

한 도시의 건축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재 존재하는 건축물 그 자체만 아니라 그 공간에 축적된 시간까지 함께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아가 그 공간에 살던 사람들의 삶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건축물과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이상현 교수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의 말을 변형하여 “그들이 건물을 빚어내고, 건물은 우리를 빚어낸다1)”고 말했던 것처럼.

 

그것은 ‘제주(濟州)’라는 공간에 세워진 건축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전통적인 제주의 건축물은 초가(草家)와 와가(瓦家)처럼 자연에 도전하고 적응한 결과의 산물이다. 아니, 한국 전통건축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은 그 경계가 칼로 자른 것처럼 선명하고 명확합니다. ‘여기까지는 정원이고 여기까지는 사람이 앉아서 감상하는 곳’ 그런 식입니다. 경계뿐만 아니라 각 공간의 프로그램도 아주 정확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정원은 그 경계를 손으로 선을 뭉개놓은 것처럼 아주 흐릿합니다. 심지어 그곳이 정원이지 그냥 풀들이 자라서 만들어진 풀밭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때고 있습니다. 자연의 일부가 인간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공간이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살아 있는 것 같은 역동성이 느껴집니다.2)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권두에 있는 제주의 자연, 역사, 건축문화, 언어[방언] 등에 대한 간결한 소개는 의미 있다. 우리가 제주의 공간에 축적된 시간에 대해 찾아볼 수고를 절약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제주 속 건축]은

 

제주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크게 산남(山南, 서귀포시)과 산북(山北, 제주시)으로 나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를 감안, 서귀포시와 제주시를 각각 세 개의 지역으로 나눠 155개의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제주의 건축물 외에도 각각의 지역을 소개하는 파트의 마지막에 제주를 상징하는 일곱 가지 특별 요소인 오름, 곶자왈과 중산간, 돌하르방, 밭담과 산담, 용천수(湧泉水), 마을의 허한 공간으로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방사탑(防邪塔), 제주어민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관리하는 등대인 도대불 혹은 등명대(燈明臺)를 얘기한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건축물과 상관없다고 여길 이런 요소들에 의해 제주 건축의 개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먼저 ‘서귀포시 서부지역’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알뜨르 비행장(1937), 제주도산 현무암을 사용하여 벽체(壁體)를 쌓고 목조 트러스 위에 함석지붕을 씌우는 등 건축 기술자의 참여 없이 건축될 수 밖에 없었던 한국 전쟁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남제주 강병대(强兵臺) 교회(1952) 등과 승효상(承孝相, 1952~ )의 제주추사관(2010), 안도 다다오[安藤 忠雄, 1941~ ]의 본태(本態)박물관(2012)이타미 준으로 알려진 유동룡(庾東龍, 1937~2011)의 포도호텔(2001)과 방주교회(2009) 등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 존재한다.

 

서귀포시 서부지역특히 대정지역은 예로부터 바람이 세고 땅이 거칠어 사람이 살기 어려웠던 곳이다. 그래서 유배의 공간, 항쟁의 공간으로 불린다.

중략 ~

이러한 이유로 서귀포시 서부지역은 조선시대의 유배 문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제주의 상징적 공간으로 평가 받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모진 환경에 피어난 추사의 예술혼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겨진 우리 역사의 깊고 짙은 슬픔을 느낄 수 있다. 현재는 이국적 경관에 상업자본이 접목되어 미술관, 박물관, 주거 시설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 그 덕분에 서귀포시 서부지역 일대는 ‘건축 박물관’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p. 34]

 

서귀포시 동(洞)지역’에서는 예술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기당 미술관(1987)3), 소암 기념관(2008), 이중섭 미술관(2002) 등이 밀집되어 있다.

 

서귀포시 동부지역’에서는 조선시대 정의현(旌義縣)의 중심으로,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제주성읍마을과 앞에서 언급한 안도 다다오의 모던하고 아름다운 설계가 돋보이는 글라스하우스(2008), 유민미술관[舊 지니어스 로사이](2008)을 볼 수 있다.

 

제주성읍마을,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 우도……. 서귀포시 동부지역에서 기억할 만한 곳이다. 서귀포시 서부지역의 건축에 전통적, 근대사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면, 서귀포시 동부지역은 수려한 자연경관에 현대적 건축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이다. [p. 90]

 

제주시 서부지역’에서는 선사시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제주 고산리 유적이 있다.

 

제주시 서부지역은 아주 먼 옛날 이 일대에 정착해 살았던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한경면에 위치한 제주 고산리 유적은 동북아시아 신석기시대의 문화 연구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p. 190]

 

제주시 동부지역’은 암괴(巖塊)지역에 형성된 숲인 곶자왈, 밭의 경계에 쌓은 담인 밭담, 용암 분출로 생긴 독립된 형태의 기생화산인 오름 등으로 제주의 자연색이 짙게 배어나는 곳이다. 이런 자연환경을 이용, 전략촌으로 건설된 낙선동 4.3성은 ‘제주시 동(洞)지역’의 제주 4.3평화공원 기념관과 함께 건축적 측면을 넘어 역사적으로도 기억해야 할 장소라고 한다.

 

제주시 동(洞)지역’에서는 조선시대 제주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던 제주읍성 등 탐라와 제주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현재의 제주시 동지역은 과거 제주목이었던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원도심, 1980년대 개발을 시작한 연동, 노형동 일대로 구성된다. 특히 원도심에는 제주 역사와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흔적이 산재해 있다. 탐라국의 시조에 관한 전설이 깃든 삼성혈, 제주읍성의 관덕정(觀德亭)과 제주목관아(濟州牧官衙) 등이 그러하다. 그 안에는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으며, 고달프고 애절한 민초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옛 골목길, 산지천, 관덕정 광장 등에서 그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제주시 동지역은 그래서 더 흥미로운 곳이다. [p. 134]

 

앞에서 언급한 것들이 한데 어울려 이 책, <제주 속 건축>을 일반적인 여행 가이드북이나 제주 건축물에 대한 백과사전 이상의 것으로 만든다. 만약 특별한 여행을 꿈꾼다면, 이 책 끝부분에 수록된 ‘제주 건축 도보 여행 추천 코스’와 ‘제주 건축 테마별 추천 여행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리고 이 책에 소개된 155개의 건축물을 대부분의 건축물에 대한 간결한 서술과 특정 건축물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는 서술을 엮어 단짠단짠의 조합처럼 맛깔 나게 소개함으로써 건축에 대한 독자의 견문을 넓혀주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지금 제주건축에는 새로운 고민과 시간이 필요하다. 고유한 건축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제주 건축의 정체성을 단순히 외형적, 표피적 관점에서 모색하려는 사고(思考)에서 벗어나, 건축과 공간의 본질적 문제에 초점을 두고 건축작품을 탐색하려는 실험적 노력이 필요하다. [p. 24]

 

고 말함으로써 제주건축, 나아가 한국건축에 대한 조언을 더함으로써 이 책의 특별함을 더하고 있다.

 

1) 이상현,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 (효형출판, 2013), p. 36

2) 임형남/노은주, <나무처럼 자라는 집>, (인물과사상사, 2022), pp. 51~53

3) 1987년 개관된 국내 최초의 시립 미술관으로 제주가 고향인 재일교포 기당(寄堂) 강구범에 의해 건립되어 서귀포시에 기증되었다. 서귀포 출신 변시지(邊時志, 1926~2013) 화백의 상설 전시실이 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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