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표 쉐이코 카세트 - 내맘대로 노래 듣기
류인숙 지음, 신대기 사진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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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런데 우리 세대만큼 음악 매체의 격동기를 보낸 세대가 또 있었을까? 카세트 테이프와 LP로 음악듣기를 시작한 우리는 CD, DCC 그리고 MD를 거쳐 mp3와 모바일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기에까지 이르렀다. 지나고 보니 참 다양한 매체로 음악을 들었구나 싶은 생각이다.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건, 그 음악 자체라는 생각이다.

 

소백산 자락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지은이는 자신과 음악의 처음 만남을 책 제목 <독수리표 쉐이코 카세트>로 추억한다. 궁금한 마음에, 성우전자에서 만들었다는 시대의 명품 독수리표 쉐이코 카세트를 검색해 봤다. 정말 요즘 같아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촌스러운 녀석이 그 시절에는 아무나 가지지 못하는 명품이었다니. 그것도 중동 건설 현장에서 피땀으로 번 돈으로 개선장군처럼 금의환향하며 사들고 왔다고 했던가. 카세트 테이프가 요즘에도 팔리는 지 문득 궁금해졌다.

 

<독수리표 쉐이코 카세트>에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 지은이의 고달픈 청춘을 함께 한 음악에 대한 사연 깊은 이야기가 오롯하게 담겨 있다. 그녀가 치열하게 노동현장에서 그녀를 위로해준 음악과 함께 했다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비슷한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어느 학생은 음악에서 또 다른 위로를 찾았었나 보다. 아무래도 지은이가 연배가 있다 보니, 그녀가 들려주는 가수와 노래 얘기가 곧바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귀에 익은 노래, 세월이 가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반겨주는 노래에 눈길이 간다.

 

아직 한 편도 제대로 못 본 그리스 출신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가 작년 교통사고로 영면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처음 들으며 먼저 영화를 섭렵한 지은이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들었고, 그녀가 들려주는 칠레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의 죽음 앞에서는 경건함이 느껴졌다. 요즘에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티삼스의 <매일 매일 기다려>, 그룹 건아들의 원래 이름이 헬스맨(health man)이었다는 새로운 사실 그리고 정태춘과 해바라기 같은 가수들이 상처 받은 영혼에 위로를 주었다면 요즘 가요 차트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들이 젊음의 풋풋한 싱그러움으로 노래패를 만들어 청중과 함께 했다면 요즘에는 기획사에 의해 철저하게 상품화되고 포장, 규격화된 채로 만들어진 노래를 소비하는 시대가 참으로 씁쓸하기 짝이 없다. <독수리표 쉐이코 카세트>에는 시대는 다르지만 무언가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만, 다음 세대는 작금의 아이돌 전성시대를 어떻게 회상할지 자못 궁금하다.

 

얼마 전 공중파 방송에서 <불후의 명곡>이라는 제목의 가요 프로그램을 봤다. 해바라기의 곡들을 리메이크해서 부르는 코너였는데, 정말 좋은 노래는 세월이 가도 팬들의 심금을 울리는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독수리표 쉐이코 카세트>를 읽으며 나의 사연 깊은 노래 이야기는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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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다 Off The Record - 가장 뜨거웠던 네 남자의 비하인드 스토리
국윤성 지음 / 우리들의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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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 팬이었다. 팟캐스트가 무언지도 모르던 시절, 스마트 폰도 없는 주제에 어렵사리 mp3 파일을 다운 받아가며 열심히 나꼼수를 들었다. 모든 일에 흥망성쇠가 있는 것처럼 나꼼수도 마찬가지였다. 나꼼수 성공 이래, 수많은 팟캐스트 방송이 범람하면서 나꼼수를 듣는 회수는 그들의 변칙적인 업로드 횟수만큼이나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방송은 아예 듣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아마 듣지 않게 될 것 같다.

 

나꼼수 방송의 한 축을 맡았던 국윤성이라는 녹음 엔지니어가 그들의 곁에서 기록한 <나는 꼼수다 오프 더 레코드>는 총선과 대선 패배가 다 지나간 뒤, 그리고 시대를 풍미한 나꼼수 열풍이 모두 사그라진 후에 우리 곁을 찾아왔다. 모름지기 출판은 타이밍이라 했거늘, 출판사의 타이밍은 사후약방문 격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꼼수라는 이름이 우리 곁에서 잊혀지기 전에 찾아왔으면 좋았으련만.

 

책의 어디에선가 말했듯이(에필로그에서였던가) 이 책은 나꼼수가 만들어낸 어떤 거대 담론에는 거의 미치지 못한다. 또 한편으로는 나꼼수 팬들이 원하는(그 상대편에 서 있는 이들은 아마 나꼼수를 외면할테니) 진정한 오프 더 레코드에도 근접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사실 오프 더 레코드는 말 그대로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때 더 그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저 나꼼수 사총사의 철저한 주변인으로 기술적인 면을 담당했던 녹음 엔지니어의 한담 정도라고나 할까. 책의 곳곳에 기술된 연애 스토리와 데이트 이야기는 책의 본류와 무관하기에 더더욱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매일 같이 안방을 찾아오는 방송사의 드라마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래서였을까? 사실 그렇게 많은 분량이 아닌데, 왜 그렇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꼼수 영욕의 순간을 함께 한 지은이의 기술은 그 나름대로 가치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꼼수 파일들은 모두 우리의 목아돼 김용민 교수가 편집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녹음 전문가의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녹음 파일을 구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지, 어떤 과정을 통해 나꼼수가 우리에게 전달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주류 언론이 외면하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지은이를 포함한 이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알게 됐다. 모든 일이 그렇듯, 몇 사람만의 노력으로 큰 그림이 그려지는 건 아닐테니까.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절에 대차게 쫄지마를 외치던 네 명의 선지자들은 이제 모두 흩어져 버렸다. 대신 그들의 후예들이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을 종횡무진 내달리고 있다. 강력한 주력군이 없는 가운데 바야흐로 팟캐스트의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 상황이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포스트 나꼼수로 우리의 속을 통쾌하게 해주던 사총사의 귀환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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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킹의 후예 - 제1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영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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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따라 호흡이 다르다. 어떤 책은 초반에 바로 몰입을 해서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손에서 책을 못 떼게 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서서히 호흡을 가쁘게 만드는 책이 있다. 이번에 오랜 시간을 두고 읽은 이영훈 작가의 책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200쪽을 넘길 때까지 좀처럼 그가 추적하는 의붓아들 샘이 즐겨보는 특촬물에 대한 호기심이 일지 않았다고나 할까.

 

책표지를 장식하는 18번째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은 필연적으로 전작들과의 비교를 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데뷔작으로 꼽는 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첫머리에서 말했듯이 천명관 작가의 글 같은 그야말로 주술적인 매력은 없더라도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등장하는 주인공 영호에 대한 이야기는 자못 흥미진진하다. 일견 무미건조해 보이는 남다른 일상의 이야기라도 조금 참고 견디시라 그러면 정말 재밌는 이야기가 등장할테니.

 

보험사 직원으로 자신이 관리하던 암에 걸린 보험계약자와 덜컥 결혼해 버린 영호. 그가 사랑한다고 믿는 채연은 자신보다 8살 연상의 여인에다가 미국에 사는 아들도 하나 있다고 한다. 이거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하지만, 글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은 그런 이상한 관계가 아니라 이제 새아버지가 된 영호와 함께 살게 된 의붓아들 샘이 즐겨보는 특촬물 <체인지킹>, 우리말로 하면 아마 변신왕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이런 설정이라면 너무 단순하니, 그가 맡은 자해적 성격이 강한 보험 계약건도 하나 삽입되면 좋을 것이다. 그와 짝을 이뤄 보험사기꾼들을 잡아내는 전직 헌병 군무관 출신의 안도 나름대로 멋진 캐릭터다. 이제 모든 게 준비되었으니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순리일 것이다. 의붓아들 샘과의 소통불가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하나 더 안게 된 영호는 예상대로 인터넷 카페의 도움을 받아 너무 유치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체인지킹>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주력한다. 어쩌면 그 과정을 통해 샘과 소통할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안고서.

 

그 과정에서 얻어 터져 가면서 만난 민은 우리 어른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특촬물의 세계에 대한 냉철한 분석으로 영호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처럼 특촬물이 세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산업을 넘어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조정하게 된 자본의 힘은 하찮아 보이는 유치한 특촬물의 세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하는 특촬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특촬물을 소비하는 계층의 또래 아이들의 소비욕구를 자극하고, 신학기에 맞춰 새로운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다는 민의 분석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더 나아가 일만 하고 자식 세대와 도통 소통의 노력을 하지 않았던 아버지 세대와의 단절에 대해 민은 가혹할 정도의 비판을 마지않는다. 극복의 대상이 아닌 그야말로 무얼 해도 관심마저 가지지 않는 구조의 악순환은 영호의 파트너인 안의 가정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실재하지 않는 내러티브에서 좋은 아버지, 화목한 가정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 아들 세대를 대표하는 영호는 비로소 자신이 진심으로 샘을 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영호의 깨달음이 소설 <체인지킹의 후예>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만 오면 그 다음부터는 영호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비밀과 시너지를 불러일으키면서도 결말로 치닫기 시작한다.

 

어쩌면 <체인지킹의 후예>의 결말은 독자의 기대와 어긋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소설에서 그렇듯 문제제기의 과정과 전개는 저자가 맡을 진 몰라도 그 뒤의 결말의 해석은 전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에게 달려 있는게 아닐까. 특촬물이라는 유년시절 이후에는 감히 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궁진한 소재를 통해 세대 간의 단절 그리고 어른이면서 여전히 성장통을 겪는 이들에 대한 초상에서 이 신예작가에게 포인트를 주고 싶다.

 

그런데 정말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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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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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으로 그 꿈을 다 펼쳐 보이지 못하고 날개를 접은 게 아쉽지만 또 한편으론 지식소매상의 자리에 다시 되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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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6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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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을 읽을 적에는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읽었다. 물론 실용서나 이렇게 하면 나도 성공할 수 있다 부류의 책은 사양하고, 주로 문학 서적을 즐겨 읽곤 했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고, 어떤 작가의 경우에는 절판된 책까지 찾아내 가면서 읽게 됐다. 안지 얼마 안되는 미나토 가나에 작가의 경우에는 그 수준에 도달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녀의 실질적직인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백>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팬이 되어 버렸다.

 

오늘은 언제나 깜짝 놀랄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스토리 전개보다 그녀의 작법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고백>을 읽고 나서 많은 이들에게 책을 소개해줬다. 어제도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상대방이 결말을 모르게 하면서 호기심을 갖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마치 심리 스릴러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핵심은 쏙 빼고 말하는 리뷰 쓰기와 닮았다고나 할까. 쉽지 않은 문제다.

 

신작 <경우>에서도 미나토 가나에 작가는 이제는 자신의 스타일이 되어 버린 전언(傳言) 방식, 다시 말해 말/이야기를 전하는 서사구조를 따른다. 우선 두 명의 주인공이 있다. 동갑내기 친구로 아기 시절을 보육원에서 보낸 아이다 하루미와 다카쿠라 요코가 그녀들이다. 요코는 동화작가로 대성공을 거두는 신출내기 작가이자 전업주부고, 하루미는 능력있는 민완기자다.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동갑내기 친구는 고아라는 동질감으로 서로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주 친한 사이다.

 

요코에게는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 중인 남편이 있다. 시어머니 히로코가 반대하는 결혼을 해서인지 여전히 그녀는 집안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녀를 키워준 양부모님이 계시지만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바로 외아들 유타다. 그런데 만약 그 보물이 어느날 사라져 버린다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협박장과 함께. 이제부터 미나토 가나에 작가의 소설은 그야말로 폭풍 속으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삼십 육년 전의 살인사건이 갑자기 서사의 중심에 들어오면서 독자는 당황한다. 분명 무슨 연관이 있으니 등장했을 텐데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그 점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현재의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투영하고, 주인공들의 관계에 대해 추적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소설 <경우>의 본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긴박감이 넘치거나 그러진 않는다. 미나토 가나에 작가가 전작에서 보여준 그대로 조용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전개를 이끌어 간다.

 

하루미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고, 항상 신중하고 진지한 요코는 경어체를 써가면서 좀 더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어쩌면 그 점까지도 작가가 고려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심리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작가의 테크닉을 바로 간파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절하게 독자를 눙치는 작가의 트릭과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기 위해 죽어라 전개와 단서를 좇는 독자의 이런 게임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숨기고 싶은 과거는 과연 현재의 족쇄일까? 아니면 그것을 속죄로 극복해내고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용서할 수 없는 타인의 행복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는 여러 가지 단상(斷想)이 들었다. 이 소설이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었다고 하는데 구해서 한 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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