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2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2
박정호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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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이미 인문학의 위기가 이미 상시화된지 오래다.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문 및 어문학계열 학과들이 퇴출 위기에 몰렸다는 뉴스 기사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사회 전반에 인문학 열풍이다. 최근 출간되는 책의 제목들에도 힐링과 인문이 대세다. KDI 전문연구원이자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의 저자 박정호 씨도 이 추세에 착안해서 인문학을 통한 기초 경제 원리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겉으로 보기에 경제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일도 알고 보면 경제 원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더라는 결론이 무척이나 명쾌하다. 그리고 재밌기까지 하니 일석이조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꽃을 피웠다는 대중문학의 전개에 가장 먼저 관심이 갔다. 우선 문학을 소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결조건이 필요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과 책을 읽기에 필요한 여가 시간. 고된 산업화 현장에서 후자는 불가능한 조건이지 않았을까? 가사노동자라는 직업군이 성장하면서, 문학의 수요층이 그야말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상류층이나 중산층이 즐겨 보던 고가의 장정본이 아닌 염가서적과 유명작가에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자극적인 내용이 담긴 대중문학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 과거에는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던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은 서로 크로스오버되면서 그 경계가 희미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수요를 바탕으로 한 시장원리가 가치관과 문화적 행태의 차이마저 뛰어넘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요즘은 탄산음료의 위해성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탄산음료의 제왕 코카콜라를 마시는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코카콜라 소비자들은 한 때 코카콜라가 모르핀을 대체하는 최음제 성격의 음료수이자 약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마시는 코카콜라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른 채(7X으로 알려진 코카콜라 제조의 비밀 성) 마셔왔다면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까. 세계 최고의 브랜드인 코카콜라가 모든 음식과 상황에 맞는다는 시대를 초월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수요를 창출해왔다. 패스트푸드 햄버거집에서 코카콜라 없이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박리다매 전략으로 무지막지한 물량공세를 펼치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코카콜라가 몸에 안 좋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익숙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깨달아야 할 시간이다.

 

얼마 전 대형 극장 체인이 영화관 입장료를 올린다는 소식에 분개했다. 아니 입장료를 올린지 얼마나 됐다고 또? 게다가 극장 입장료 수익보다 극장에서 파는 팝콘 장사로 돈을 더 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 그래서 저자는 극장 수입의 디테일을 분석한다. 사실 극장에 올리는 영화 제작사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 세금과 극장 유지를 위해 극장 측이 지불하는 고정비용을 감안할 때, 영화 상영으로는 수중에 들어오는 수입이 얼마 안 된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팝콘 판매 수입은 온전하게 극장이 가져간다. 게다가 팝콘 제작비의 원가는 1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수익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극장입장료를 올릴 것이 아니라, 팝콘 값을 올리는 게 수익증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나야 뭐 이제 더 이상 극장에서 팝콘을 사먹지 않으니 절대 찬성이다.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커피 역시 원래는 그들의 주요 식음료가 아니었다고 한다. 본국인 영국 사람들처럼 차를 즐겨 마시던 미국 사람들은 영국이 미국 식민지 지배를 위해 차에 대한 관세를 올리자 이에 대항해서 독립전쟁이 시작되었고, 본국에 저항하기 위해 대체 식음료로 커피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미국 특유의 패스트푸드 문화에 커피를 접목시키면서 거실에 우아하게 앉아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고 마실 수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야말로 바쁜 일상의 속도전을 소화해내야 하는 미국 문화에 안성맞춤이었다는 지적이다. 세금이 정치적 격변을 불러일으키고, 한 나라의 식문화까지 바꿀 수 있다는 기초 경제 원리의 적용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식량은 세계 공략에 있어 단순한 자원으로 인식한 나라 영국과 다양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현재까지도 풍부한 요리 레시피를 가진 요리 강국으로 발전한 프랑스 간의 차이 분석도 예사롭지 않다. 그저 맛없는 영국 요리,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프랑스 요리의 차이가 역사와 경제 원리에 입각한 사례라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으로 기억되는 미국의 남북전쟁 역시 단순히 외국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독립 이래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던 북부와 남부의 경제차이로 인한 무력충돌이었고, 링컨에게 최우선 순위는 노예해방이 아니라 연방제 결속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에게 위대한 음악적 문화유산을 남겨준 모차르트도 유효수요 판단을 잘못해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만하다. 문학이나 미술과 달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오페라하우스 같은 공간은 귀족 같은 특권계층에게만 허용이 되어 있던 시기에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모차르트가 작곡한 귀족을 풍자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표현한 오페라의 수요계층은 없었다. 1회성의 불투명한 클래식 공연이 지나치게 과다한 비용으로 책정되는 것에 대해서는 저자는 경제학자다운 진단을 내린다. 지속되지 않는 그리고 그 품질이 보장되지 않는 연주를 그렇듯하게 포장해서 비싼 가격에 시장에 내놓은 종합 서비스 상품의 본질을 예리하게 분석해내는 저자의 능력이 역시 탁월하다.

 

그저 놀랍다. 어려운 기초 경제원리들이 우리 삶의 곳곳에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포진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 인문, 사회, 역사 그리고 문화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는 경제원리의 엑기스를 저자 박정호 씨는 인상적으로 다뤄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야 그저 이런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보며 숨차게 따라갈 수밖에. 그리고 이렇게나마 시대의 화두가 된 소통과 통섭의 장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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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Story - 역사라고 불리는 그들만의 이야기
닉 테일러 지음, 엄연수 옮김 / 글과생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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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히즈스토리>의 저자 닉 테일러에 대해 검색해 봤다. 먼저 오래전 인기를 끌던 영국 출신의 팝그룹 듀란 듀란의 멤버가 저자로 변신했나 싶었다. 오해하지 마시라, 물론 아니다. 유사 이래 남성들과 남성성에 의해 제거된 여성성의 부활과 균형을 주장하고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히즈스토리>를 읽고 저자가 여자가 아닐까 하는 나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외모로만 볼 적에 그는 상남자처럼 생겼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 출신으로 주류 언론에 기고를 해온 저널리스트이자 교사 그리고 에너지 힐러라는 그의 경력이 눈길을 끌었다. 맨 마지막의 에너지 힐러는 무슨 일을 하는 직업군일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닉 테일러는 남성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적 과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그들의 이야기인 <히즈스토리>를 시작한다. 농업생산과 그에 따른 필수적인 잉여생산을 지배 관리하게 된 남성은 인류사에서 꼭 필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인 문자 체계마저 주도적으로 행사하면서 비로소 여성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게 되었다. 훗날 개발된 독신 남성 유일신 시스템(종교)은 남성이 왜 여성을 비롯한 세계를 지배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념 체계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유일신 종교가 표방하는 선과 악, 빛과 어둠이라는 서로 대립되는 가치 체계는 그리스 고전철학의 거두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와 사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기득권층의 비전의 무기가 되었노라고 저자 닉 테일러는 증언한다. 남성이 오른쪽의 정의라면, 유일신 종교가 나타나기 전에 자유롭게 왼쪽을 맡았던 여성은 자연스레 부정적이며 악당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말이다. 종교가 그랬다는 건 그나마 이해가 된다.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와서도 과학이 종교를 대신하게 되면서, 그 역할은 바뀌지 않았다.

 

결속과 화합을 강조하는 종교는 앞장서서 권력 추구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분열과 분리를 조장해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 결과, 지구별과 함께 해서 살아온 인류 5,000년 역사는 그 어느 때보다 피폐해져 있다. 근면을 바탕으로 한 노동 윤리에 방점을 찍은 종교는 무위의 즐거움을 인간으로부터 박탈해 버렸다. 쉬지 않고 일하는 기계처럼 그렇게 인간은 별 가치 없는 것들의 무한소비를 위해 노동하는 존재가 되었다. 요한 하위징아의 대표작 <호모 루덴스>가 연상되는 놀이하고 유희를 즐기는 인간에 대한 고찰 역시 인상적이다. 인류의 존재 이유가 그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의 톱니바퀴 같은 부속품이 아니라는 저자의 저술이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며칠 전에 본 다큐멘터리에서도 인류의 진화가 현대의 식습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비만과 당뇨 같은 질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것이 그 진단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구석시 식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핵심이었다.

 

한편 닉 테일러는 무엇보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균형에 중요성을 강조한다. 01이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에서 여전히 1의 위력은 무시할 수 없지만, 전부이면서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0의 역할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이라는 것이 <히즈스토리>가 다루는 핵심이다. 문득 어떻게 해서 남성인 저자가 우리가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여성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런 이론적 귀결에 도달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닉 테일러가 쓴 대안 역사 에세이의 깨알 같은 또 다른 재미는 디테일에 있다. 저명한 영국의 정치지도자 윈스턴 처칠이 아돌프 히틀러 못지않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지적이 눈에 들어온다. 그가 역사상 최악의 제국주의자였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히틀러 같은 인종차별을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뿐이지 사고방식은 희대의 독재자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는 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제레미 벤담이 주장한 원형감옥 팬옵티콘의 모습이 우리가 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인 아파트 거주습관과 거의 유사하다는 점도 특이할만하다. 스스로 감옥살이를 하지 못해 안달하는 우리의 모습을 공리주의 철학자가 보았다면 뭐라고 말할지 참 궁금하다.

 

닉 테일러는 <히즈스토리>를 통해 암울하기 짝이 없는 지구별의 현재 상태를 진단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비관적인 것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상태에서도 여전히 희망이 그 바닥에 남아 있던 것처럼,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자유의지야말로 우리가 가진 최고의 무기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지구별의 모든 존재가 조화롭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한다. 물론 모든 선한 의지가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이야기하고 노력한다면 그 결과는 거대해질 수 있다는 것이 닉 테일러가 <히즈스토리>에서 말하고 싶은 핵심일 것이다. 과연 에너지 힐러다운 멋진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거대할 수 있는 담론을 보통 사람도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들려준 <히즈스토리>가 참 반가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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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조류학자의 어쿠스틱 여행기 - 멸종 오리 찾아서 지구 세 바퀴 반 지식여행자 시리즈 3
글렌 칠튼 지음, 위문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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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제목 한 번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요상한 제목의 책은 캐나다 출신의 조류학자 글렌 칠튼이 19세기에 이미 멸종된 래브라드 까치오리(이하 까치오리)의 박제라도 보겠다며 전 세계를 3바퀴반이나 돌면서 직접 쓴 육필기록이다. 전 세계에 박제된 상태로 남아 있는 54마리, 아니 53마리의 까치오리를 직접 보겠다는 일념 하에 괴짜 조류학자는 고난에 찬 여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제목을 이 책의 원제인 <래브라도 까치오리의 저주>라고 번역했다면,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번역서의 제목 한 번 기차게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렌 칠튼 만큼은 아니겠지만, 이제는 멸종된 까치오리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위키피디아의 도움을 받아 검색해 봤다. 참 좋은 세상이다.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이란 사이트의 정보에 의하면 지구상에 더 이상 산 채로 존재하지 않는 까치오리는 주로 북아메리카의 북동부 지방에 살았으며, 1850-70년대에 이미 희귀종이었다고 한다. 왜 까치오리가 멸종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1875년에 마지막 까치오리가 총에 맞은 것으로 지구상에 더 이상 살아 있는 까치오리를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 수집의 매료되어 '집착의 길에 들어선 글렌 칠튼 박사는 브룩본드 식품사에서 만들어 팔던 수집용 카드에서 만난 까치오리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29년간 대학 강단에서 조류학자로 강의에 매진하던 그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까치오리를 보겠다는 신념으로 구도의 길에 나서게 된다. 그의 까치오리 탐사여행은 자못 진지하다. 세계 각처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까치오리와 그 알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대로, 글렌 칠튼 박사는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락해서 멸종된 까치오리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글렌 칠튼의 연구 중 상당 부분은 그 이전에 이미 직접 까치오리 둥지를 찾아 나선 미국 조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제임스 오듀본(1785~1851)1963년에 <사라진 새는 어디 있는가?>를 펴낸 폴 한(Paul Hahn)이 바로 그다. 전자가 실질적인 까치오리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직접 래브라도 탐험에 나섰다면, 후자는 글렌 칠튼 교수 연구의 전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저자가 실제로 행한 DNA 분석은 그동안 까치오리의 알이라고 알려진 가짜의 정체를 세상에 폭로한다. 글렌 칠튼 박사는 역시 학자답게 꼼꼼하게 처음 만난 까치오리의 박제에 대한 기록을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단순하게 까치오리 자체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누가 어디서 어떻게 까치오리의 박제를 얻게 되었는가 그리고 또 누가 까치오리를 박제했는가에 대한 상상가능한 모든 정보를 요구한다. 단순하게 생물학적 차원의 연구가 아닌 인문학을 넘나들며 연구의 범위를 자유자재로 확장하는 저자의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괴짜 조류학자인 글렌 칠튼 박사와 어쿠스틱 여행을 하며 독자는 까치오리 뿐만 아니라 까치오리들이 보관되고 있는 각종 박물관 등등에 대한 실체를 접하게 된다. 어떤 녀석들은 박제사의 창의력에 따라 훌륭하게 본박제로 살아 있을 당시의 역동적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녀석들은 쥐나 해충의 공격을 받아 가짜 발을 가지고 있거나 원래의 색도 아닌 조잡한 칠을 뒤집어 쓴 가박제의 상태로 존재하기도 했다. 놀라운 사실은 본박제보다 가박제 상태가 연구가들에게는 더 유용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나같은 조류학에 대한 문외한에게는 좀 더 전시와 보관에 손이 가는 본박제가 더 멋지게 보이겠지만 말이다.

 

글렌 칠튼 박사의 까치오리 탐사를 좀 더 재밌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박사의 글쓰기 능력이다. 여느 박사처럼 젠체하지 않고, 때로는 자기 비하를 남발하는 그의 모습에서 비슷한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맞다, 그 전에 앞서 빌 브라이슨이 있었다. 생리학 박사인 아내 리사의 연구여행에 동참해서 누드화 앞에서 공짜 와인을 즐기며, 자기가 탐내는 까치오리를 마음껏 주무를 생각에 흐뭇한 그의 모습은 연구가의 삶이 그렇게 고달프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뭐 물론 모든 연구가들이 그의 족적을 따라 가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확실히 괴짜 조류학자의 발로 하는 까치오리 탐사는 재밌다.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서 직접 가보지 않아도 디지털 정보로 사실에 가까운 정보를 어디서나 접할 수가 있다. 하지만, 글렌 칠튼 박사는 그런 방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진정한 연구가라면 자신의 연구의 대상을 직접 만나 봐야 한다고 자신의 발로 입증한다. 모두가 박사의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의 그런 어쿠스틱스타일이 참 마음에 든다. 이 괴짜 조류학자의 다음 번 탐사여행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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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잡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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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 유명한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을 읽었다. 이미 국내에 소개된 <빅 픽처> 그리고 <템테이션> 같은 소설 대신 이번에 새로 출간된 <더 잡>으로 그와의 만남을 시작했다. 최신작은 아니고 1998년에 나온 책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정글 같은 직장 생활과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볼 뉴욕 생활의 정수를 오롯하게 뽑아낸 수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최고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컴퓨월드>라는 컴퓨터 잡지 세일즈를 전담하는 잘 나가는 광고지국장 네드 앨런은 오늘도 광고 세일즈에 여념이 없다. 연말에 지급되는 보너스를 위해 오늘도 그는 달린다. 메인 주 출신의 촌뜨기 남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뉴욕에 둥지를 튼 후, 그 누구보다 성공의 사다리를 향해 질주해왔다. 그렇게 해서 유능하고 사랑스러운 아내도 만나게 됐다. 이렇게 나간다면 소설 <더 잡>이 독자의 시선을 끌 이유는 없겠지. 바로 그에게 만만찮은 시련들이 시리즈로 닥치기 시작한다.

 

먼저 직장 동료 이반 돌린스키가 맡은 광고가 펑크가 나면서 그의 즐거운 연말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잡지 발행이 초읽기에 들어간 순간, 최고 물주 중의 하나인 <GBS>의 광고담당 이사인 테드 피어슨이 초를 친 것이다. 아슬아슬한 도덕적 기준을 넘나들며, 반협박으로 그에게 다시 광고를 수주해서 위기를 넘기는 네드 앨런.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업계 3위로 고급독자를 상대로 나름 잘 나가던 <컴퓨월드>가 다른 회사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모회사인 게츠브라운의 독일 상사는 네드 앨런에게 발행인 자리라는 승진과 급여인상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던진다. 오늘의 자신이 있게 이끌어준 발행인 척 자누시에게 조금 거리낌이 없지 않지만, 그런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모든 것들이 주인공 네드 앨런이 바라는 대로 되면 좋겠지만, 역시 이 소설의 저자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바로 그 성공의 순간, 네드 앨런을 나락으로 떨어 뜨려 버린다.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컴퓨월드>를 인수한 업체는 업계의 경쟁업체였고, 가차 없이 <컴퓨월드>는 폐간의 운명에 처하고 기존 직원들은 모두 정리해고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에게 달콤한 약속을 했던 상사를 폭행한 네드 앨런은 해당 업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고 만다. 위기에 순간에 나타난 고향 친구 제리 슈버트에게 빌붙어 재기를 도모하지만, 수렁에서 자신을 건져준 친구가 실은 더할 나위 없는 악당이란다. , 네드 앨런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갈 것인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더 잡>은 탄탄한 구성과 확실한 캐릭터 그리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전개가 장점인 소설이다. 우선 캐릭터 면에서 주인공 네드 앨런을 자신의 업무에 유능하면서도 부하 직원들을 잘 다독일 줄 아는 멋진 상사로 작가는 그린다. 아마 누구나 직장에서 이런 상사와 함께 꿈꾸는 상상을 해보지 않을까. 동료 이반의 치명적 실수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들의 사립학교 등록금 때문에 절절매는 데비 수아레스를 위해 보증을 서주고, 나중에 자신의 퇴직금에서 공제된 사실을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는 네드 앨런은 그야말로 소시민적 영웅의 가깝게 그려진다.

 

물론 그도 인간인 만큼 실수도 곧잘 저지른다. 우선 승진과 급여인상이라는 아직 실현되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대만으로 아내와의 휴가에서 필요 이상의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보통 사람으로서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본 다음에 해도 되는 과소비를 성급하게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랬다면 소설의 전개가 독자의 기대만큼 재밌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욱하는 성격에, 뒤를 생각하지 않고 독일인 상사를 때려눕힌 일이다. 고소에까지 이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지만, 이 사건은 두고두고 재취업하려는 그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네드 앨런의 더 큰 위기는 구원의 동아줄이라고 생각하고 잡은 제리 슈버트가 알고 보니 썩은 동아줄이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우리에게 조세피난처로 알려진 버진 아일랜드, 바하마 등지로 미국에서 검은 돈을 운반하고 세탁하는 일에 종사하게 된 주인공. 이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위기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제는 살인혐의에 조세회피 같은 중범죄자가 될 위기에 처한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얼까 생각해봤다. 소설의 주인공 네드 앨런이 위기에 빠졌을 때, 생각한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자는 어떻게든 성공하게 된다? 너무 진부하지 않을까. 아직 더글라스 케네디의 다른 소설을 읽어 보지 않아 비교하기에는 쉽지 않지만, 나락에 빠진 주인공이 다시 일어서는 일련의 과정이 그의 소설에는 주를 이룬다는 평을 들었다. 과연 그렇게 소설 속 주인공처럼 누구나 위기에서 생각보다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한 까풀 들춰내면, 냉혹하기 짝이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의 제목처럼 일자리는 현대인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매달 내야 하는 집세와 공과금을 비롯한 각종 비용, 문화생활을 영유하기 위한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은 일터에서 치환된 노동의 대가다. 그렇게 중요한 일자리가 사라져 버린다면,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주인공 네드 앨런은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아내 혹은 직장동료들과의 자질구레한 문제들도 산적하지만 더글라스 케네디는 가장 중요한 요소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자신 있게 소설의 제목을 <더 잡>(일자리)으로 정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지인에게 권했다. 지인 역시 책을 읽으며 재밌다는 평과 함께 제목이 너무 모호하지 않냐는 질문을 던졌다. 공감한다. <정글에서 살아남기> 정도였다면 어땠을까? 이래서 소설에 대한 상상은 끝이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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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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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온전하게 상실과 무자비한 국가주의 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화양이라는 마을에 빨간 눈의 괴질이 퍼져간다. 전국으로 퍼져가던 구제역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처럼 인수공통 전염병인 이 병에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시시각각 퍼져가는 공포 앞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무장해제당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유정은 이 아수라장 속에 5명의 인물과 1마리의 개(링고)를 투입한다. 무대와 주인공이 정해졌으니, 이제 작가가 구사하는 서사가 폭발할 순서다.

 

예전에도 정유정 작가의 책을 읽었다. <내 심장을 쏴라>였던가, 오래 전이라 가물가물하다. 이전에 나온 <7년의 밤>은 읽지 못했다. 아니 베스트셀러에 심드렁한 나의 기질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리 없이 강한 <28>은 안보고는 배길 도리가 없었다. 알래스카에서 벌어지는 아이디타로드 개썰매 경주에서 서재형은 자신이 아끼는 개들을 모두 잃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는 속죄의 마음으로 조국에 돌아와 드림랜드에서 유기견을 죽음에서 구해내고, 치료하는 일에 전념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선의가 모두에게 좋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민완기자 김윤주의 기사로 졸지는 그는 선의의 천사에서 품의 없는 개장수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멋진 갈등구조의 설정이다.

 

디스토피아 소설 <28>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들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책임의식과 사명감 불타는 한기준 대원, “수진으로 불릴 정도로 매사를 긍정적으로 대하며 열심인 노수진 간호사 그리고 이들 가운데 이질적인 요소인 박동해까지. 마지막으로 서재형과 교감을 나누며 소설의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조이는 키팩터(key factor)로서 링고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그렇겠지만, 특히 <28>의 등장인물들은 제각각 부여받은 임무를 멋지게 수행한다. 개백정 악당으로 나오는 박동해는 어려서부터 엄혹한 아버지에게 받은 학대 때문에 일탈의 전형을 선보인다. 좀 입체적이지 못한 캐릭터로 그는 다른 주인공들을 가해하는 악행을 일삼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개연성이 약간 엿보이지만, 유년시절 이래 부모에게 쌓인 분노는 결국 파멸을 부른다. 그에 비하면, 초반에는 대척점에서 서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빨간 눈 괴질이 불러온 파멸의 구렁텅이에서 서로의 존재를 수긍하게 되는 서재형과 김윤주의 관계는 가변적으로 보인다.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역시 한기준이다. 공수부대 출신의 이 남자는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구하는 일에 매진한다. 하지만 모든 파괴되는 시간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구하지 못한 그에게 남은 건 순수한 분노 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주범이 개가 퍼트린 것으로 보이는 전염병과 그 매개체인 개라는 판단이 들자 그는 분노는 특정한 대상에 쏠린다. 이성이 통제하지 못하는 분노는 필연적으로 비극을 잉태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먼저 살아야겠다고 환자 돌보기를 거부한 동료를 대신했던 노수진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 역시 비극이다.

 

이런 주인공들의 운명에는 공통적으로 상실의 그림자가 그늘져 있다. 괴질로 철저하게 외부와 고립된 화양에서 살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며 연명하는 수라장이 된 공간에서 상실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역설적이게도 그럴수록 죽음은 무시로 달려든다. 마땅히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서야 할 당국은 화양 시민들을 외면한다. 우리의 합의 아래, 구성된 조직이 도움을 거절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당국이 약속한 것들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화양은 그야말로 무법천지로 전락하기 시작한다. 대신 그들에 대한 제재 하나만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런 국가주의 폭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소설 곳곳에서 분출된다.

 

대신 화양을 고립 봉쇄시키고 봉쇄선을 탈출하려는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한다. 그에 비하면 진압작전 초기에 무자비하게 살처분된 개들은 차라리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이 파괴되는 과정을 읽어야 하는 독자의 마음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인과관계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 속수무책으로 불가해한 신의 징벌을 받아 들여야 하는 미약한 존재가 결국 인간이었던 말인가.

 

인간사의 비극이 이렇게 소설의 한 축을 차지한다면, 쿠키-스타 그리고 링고와 인간 서재형으로 이어지는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 또 다른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다. 쿠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박동해를 막아서고, 완전무장하고 아무 죄 없는 개들을 살처분하려는 병사들에 맞서며 결국 자기희생으로 이야기를 종결시키는 서재형의 모습에 독자의 감정은 극한으로 내달린다.

 

글쓰기의 대상에 대한 작가의 심모원려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의료계를 뛰어넘어 날로 확장 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현장에서 수년을 보낸 작가만큼 리얼하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비유하고 묘사할 수 있는 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장황한 설명 대신 짧고 명확한 문장으로 서사를 진행시키는 정유정 작가의 작법은 이번 작품을 통해 완전체에 다가선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이 워밍업이었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란 말인가. 올해 만난 우리 소설 중에 가히 최고라 해도 부족함을 없을 것 같다.

 

201382일 금요일 1318분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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