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괜찮겠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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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사카 코타로가 10년 동안 쓴 에세이를 모아 놓은 책이다. 원제도 10년은 일 단위로 표시한 <3652>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표되었는데 이 책 끝에 그 출처가 하나씩 표시되어 있다. 최근에 이렇게 출처를 표시한 책을 본 것도 참 오랜만이다.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탓인지 분량이 일정하지 않다. 짧은 것도 한 쪽짜리도 있다. 그림은 별도지만. 이렇게 일상을 소재로 한 에세이는 다양한 분량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장르 소설가로만 알고 있던 이사카 코타로의 새로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실 생활이 소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떤 순간에는 낯선 모습에 살짝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한 편 한 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황당한 상식 부족이 가끔 보인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손오공이 타고 다니는 구름을 근두운이 아닌 근두 구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처음 읽을 때 일본에서는 이렇게 표기하는구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능청스럽게 이런 실수를 12지 중 원숭이 해의 에피소드로 이 이야기를 그냥 쓰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가 읽으면서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즐기게 되었다. 뭐 이런 것 모른다고 재미있는 소설을 못 쓰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것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설 한 편 쓸 능력도 없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수많은 에세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족은 아버지다. 건강요법 마니아에 동네 개들에게 먹이를 주는 이상한 아저씨에 묘한 설득력을 지닌 말을 하는 아버지 역할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작가는 개인적으로 놀랍게도 오에 겐자부로다. 대학 시절 그의 소설 <외치는 소리>를 읽고 반해 하루에 한 권씩 10일 동안 읽었다는 에피소드가 반복해서 나온다. 이 에피소드를 읽을 때면 나에게는 왜 그렇게 힘들게 읽혔던 작가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다룬 소재는 책과 12간지의 동물들 이야기다. 12간지 동물은 책 출간(2010년) 당시 5마리가 남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몇 편이 남았을까 궁금하다.

 

작가의 일상을 엿보는 즐거움도 주지만 그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글은 또 다른 재미다. 아예 대놓고 작가와 대표작을 쓴 글도 있지만 곳곳에서 작가와 작품명이 나온다. 이때마다 읽지 않는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위시리스트에 추가할 목록이 늘어난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라면 정말 아쉬운 일이지만 생각보다 출간된 책이 많았다. 그리고 자신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줄 때는 읽었던 작품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뚫고 반가움이 먼저 다가왔다. 한 에피소드는 책이 바로 앞에 있어 목차를 뒤져 그 제목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 에세이에 나온 책들의 출간 여부를 알려주었다면 좀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 책의 기획 중 재미난 것은 각 에세이의 끝에 작가의 간략한 감상이 사족처럼 달려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당시의 상황이나 기분 등이 적혀 있는데 어떤 에세이에서는 이것이 더 흥미진진했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생각한 모습과 일상이 너무 다른 것도 놀랍지만 짧은 글 속에 녹여낸 사연들과 마무리가 왠지 모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들을 연상시키는 순간이 많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만의 착각일까? 엄청나게 소심한 그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와 뜨거운 팬심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몇 가지는 묘하게 교차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 재미있는 책에 한 가지 아쉬운 것을 하나 더 더한다면 문화, 풍속, 유행, 언어의 차이 등을 고려하여 삭제한 에세이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 목록을 보니 읽고 싶은 마음이 부쩍 생기는 글도 적지 않다. 언젠가 모든 글이 다 나오는 완전판이 출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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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기행 - 칭기스 칸의 땅을 가다
박찬희 지음 / 소나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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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했던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왜 자꾸 몽골에 자주 가? 볼 만한 게 뭐가 있어? 같은 물음이다. 우리는 휴가 등으로 해외로 나갈 경우 같은 나라를 여러 번 가면 늘 이런 질문을 던진다. 늘 새로운 곳과 새로운 물건에 관심을 두고, 해외 나가기가 쉽지 않기에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늘 그립고 익숙하고 새로운 곳이 바로 몽골이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다. 우리나라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고, 가보고 싶은 곳이 넘쳐나듯이 외국도 나가면 실제 며칠 동안에 모든 것을 다 볼 수 없다. 관광을 생각하고 외국에 나간 사람과 여행을 간 사람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매년 몽골을 다녀왔다. 그 일정표가 끝에 나온다. 울란바토르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지역을 그렇게 길지 않은 일정으로 다녀온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몇 년 동안 다녀오지 못했다. 이번에는 두 명만 갔다. 이번 여행은 칭기스 칸의 생을 거꾸로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 책 곳곳에 나오는 것이 바로 칭기스 칸이다. 한때 세계 최대 제국을 건설한 그에 대한 숭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몽고인들에게 그가 어떤 의미인지 아주 잘 알 수 있다. 그들이 신성시 하는 곳을 두고 벌어지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낯설지만 그만큼 소중하게 다가온다.

 

몽골이란 곳을 책으로 혹은 가끔 다큐멘터리로만 보았다. 그런 내게 이들의 여정을 상상하는 것은 영상 이미지나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상상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아쉬움 중 하나가 바로 사진이 컬러가 아닌 흑백이고, 사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덕분에 과거 다큐멘터리 영상 이미지나 무협 등에서 상상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와 어떤 괴리가 있을지는 직접 가서 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다. 중국 황산에서 밤에 본 별들을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갈증을 느낀 것이 바로 이런 간접 경험의 한계다.

 

이 책의 여정은 2012년 10월에 10일 일정으로 다녀온 것이다. 칭기스 칸의 고장 헹티아이막을 일주했다. 이전처럼 러시아 차 포르공을 타고 운전수 새럿과 가이드 겸 통역인 할리온과 함께 이 여행을 갔다. 이 여행을 얼핏 보면 낭만적이다. 포르공을 타고 초원을 달리고, 게르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모습을 볼 때 특히. 하지만 이런 여행에서 여행객도 힘을 합쳐 힘든 일을 헤쳐나가야 할 경우가 많다. 한국처럼 모든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고, 차가 늪에 빠졌을 때 전화 한 통으로 금방 보험서비스가 달려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일정에 쫓긴다고 자기 앞과 옆에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버려두고 갈 수도 없다. 물이 부족하여 매일 샤워는커녕 세수도 쉽지 않다. 또 화장실은 어떻고. 편안하고 볼거리가 많은 관광을 생각했다면 거의 최악에 가깝다. 물론 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면 최고가 되겠지만.

 

칭기스 칸의 땅을 다녀온다는 목적에 맞게 일정을 짰다. 하지만 몽골의 날씨와 환경이 이것을 쉽게 이룰 수 있게 도와주지 않는다. 적지 않은 곳을 다녀왔지만 변수는 곳곳에 있다. 그런데 이 변수가 여행을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도 고난도 준다. 무사히 돌아온 후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것들은 즐거운 추억으로 변한다. 여기에 몽골에 대한 애정이 깊고 관심이 많다면 그들의 문화와 의식을 하나씩 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보르항 할동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낯선 지역의 게르에서 만난 몽고인들은 유목민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들과 실제 만나고 대화하면서 그가 책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이해하는 과정은 나에게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몽골인들이 칭기스 칸을 숭배하는 모습을 보고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광개토태왕의 그 광활한 만주를 그리워하는 것 이상으로. 단순히 이 여행이 자신의 경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같이 녹여내었다. 하나의 문화나 삶을 경험과 엮어 고찰하면서 차분하게 설명한다. 그 와중에 드러나는 몽고의 변화는 낯설지만은 않다. 안타까움도 생긴다. 몽고에서 수많은 공룡의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다. GP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말은 그대로 적용된다. 광활한 초원과 높은 산과 바람과 별은 나의 허세와 낭만을 일깨우지만 실제 가라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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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도미난스 - 지배하는 인간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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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이다. 이 소설을 시작한 것은 예전 PC통신 천리안 동호회 멋진신세계다. 그 후 몇 가지 설정이나 전개 방식이 변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대로다. 작가의 말에서 영향을 끼친 작품들을 하나씩 알려줄 때 책소개를 읽고 가장 먼저 생각한 작품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없었다. 그 이유는 인간보다 유전자에 내가 더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힘에 의해 인간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이 힘을 획득한 인간들의 욕망과 의지가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 감옥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천슈란의 말에 한 여성 사형수가 끔찍한 일을 벌인다. 그것은 자신의 눈알을 파내고, 자기 아들을 목 조르는 것이다. 의식과 의지가 서로 충돌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곧 일본으로 넘어간다. 십대 소년 후지이 스스미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시신 발견과 그 소년이 조사 도중 경찰서를 벗어난 사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온다. 단순하게 보면 형사의 실수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뒤에 나올 이야기를 위한 하나의 설정이다. 그것은 이 소설의 부제인 지배하는 인간의 능력이 어떤 식으로 어디까지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소설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초인들, 2부는 보통 사람들이다. 이 둘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이 다르다. 1부는 흰원숭이들에게 보내는 메일로 시작한다면 2부는 류잉춘의 메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차이는 1부에서 보통 사람이었던 안시현이 2부에서 능력자로 변한 것이다. 이 능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줄 때 이 능력자들을 순간적으로 휘감아오는 자살충동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 능력이 지닌 한계를 알려줄 때 이 정보가 그들에게 어떤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당연히 그들을 방어하거나 처리하는 방법도 같이.

 

호모도미난스의 능력은 어디에서 처음 생겼을까? 이 가설에 대한 답을 홍콩 까울룽씽자이에서 찾는다. 예전에 홍콩 영화에 자주 나왔던 공간이다. 단일공간으로 세계 최대 인구 밀집 지역이었던 이 구역에서 유전자가 진화를 거듭한 것이다. 이 공간이 해체되면서 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번식한다. 능력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것을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능력자가 바로 류잉춘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능력을 계승하기 위한 사람으로 시현을 선택한다. 처음에 금강승이란 말뜻을 몰랐는데 나중에 이 능력을 이어받는 사람을 의미했다. 자살충동에 가끔 휩싸이는 류잉춘이 자신의 능력과 유지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다.

 

이 능력을 깨닫게 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것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하지만 스스미처럼 미성년자가 이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그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고, 슈란처럼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여 자신의 욕망을 끝없이 채우려는 사람을 등장시켜 그 위험성을 강하게 경고한다. 제어되지 못하는 절대 권력이 우리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과장되었지만 아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이 능력이 한 인간에게 작용할 때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데 이것이 현실 속에서 우리가 늘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니라고? 그럼 대단한 사람이다.

 

초능력자들이 나오지만 이들의 멋진 대결은 없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이것은 바뀐다. 이들의 능력은 보통 사람들에게 작용한다. 이 능력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어느 순간에 작용하는지 보여줄 때 나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나에게 이런 능력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지를 조종하여 나의 욕망을 채운다고 해도 진심이 사라진 그 틈을 완전히 메울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이것을 위한 설정으로 자살충동이란 설정을 집어넣었을 것이다. 캄팻이 불교의 명상을 통해 삶의 의지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가볍게 읽을 수도 있지만 다른 식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다른 작품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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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속도 -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리칭즈 글.사진, 강은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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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에 혹한 책이다. 저자가 건축학자인 것도 한몫했다. 여행의 속도를 인생에 비유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책은 안도 다다오의 “여행은 사람을 만든다”는 문장으로 문을 연다. 과연 여행이 사람을 만들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름대로 해석하면 맞는 말이다. 내 삶을 구성하는 것 중 많은 것들이 여행으로 채워져 있다. 더 많은 것은 친구들과의 생활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일이 중심을 차지하면서 친구들과의 생활이 멀어졌다. 이때 가끔 함께 만난 친구들과의 이야기에는 항상 여행이 들어있다. 과거의 추억과 기억들이 서로를 연결해준다.

 

여행의 속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도로가 더 많이 뚫리고, 비행기를 쉽게 타게 되면서 정체는 불안감과 짜증을 불러왔다. 여유와 느긋함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가 든 때문만은 아니다. 정체 없는 삶에 익숙해지고, 이 때문에 날려 보낼지도 모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현재를 즐기기보다 앞으로 할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나보다 훨씬 어린 직원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면 청춘을 붙잡고 싶은 중년의 집착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책은 빠른 속도에서 영의 속도로 내려가는 구성이다. 고속열차에서 묘지까지 이어지는 이 일련의 여행은 건축학자답게 건축물들이 우선이다. 그가 세계 곳곳을 다닌 것도 건축물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다. 이 여정에 탈 것들과 걷는 것이 하나의 도구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도구들과 도시과 연결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낯익은 이름과 건물도 가끔 나오지만 낯선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건축학에 대해서는 대학 때 강의 하나 들은 것이 전부니.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딘가에서 들은 듯한 이름이라고 느꼈다면 이 수업과 다른 책에서 본 것이 잠시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대만인 저자가 이 책 속에 가장 많이 다룬 나라는 일본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유학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가가 안도 다다오인 것과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다. 고속열차와 기차와 전차와 여객선과 도보로 하는 여행의 대부분이 일본이다. 가끔 프랑스나 스페인이 하나둘 그 자리 끼어들기도 한다. 이제 겨우 한 번 일본을 다녀온 내가 그것을 알기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와 만화와 소설에서 간접 경험한 것들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연상 작용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저자의 이런 일부 지역 편중은 아쉬운 대목이다. 비록 저자가 비행기보다 기차로 여행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해도 말이다.

 

여행은 다양한 속도를 경험하게 만든다. 가장 빠른 비행기에서 기차나 승용차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도 있고, 두 발로 걸으면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봐야 하는 순간도 있다. 속도의 변화는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다.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나 고속열차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고 정확하게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반면에 두 발로 걸어다니면 좀더 많이 좀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여행을 갔을 때 가장 많은 것을 얻고 오는 것도 바로 이런 도보 여행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걸은 만큼 얻는 것도 많다. 하지만 여기에 빠지면 한 지역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런 순간에는 탈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미국을 자동차로 여행한 저자의 경험은 상당히 부럽다. 미국에 조금 산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차로 여행한 이야기할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저자가 건축가다보니 이 책은 건물들에 대한 단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단상들 중 “타이완은 지역개발을 우선으로 여겨 무조건 영리를 목적으로 한 상업적인 건물들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라고 한 대목을 읽었을 때 ‘한국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의뢰인들에게 소송을 당했다는 정보는 놀라웠다. 그가 멋지다고 말한 리옹의 오렌지 큐브의 어떤 부분은 욱일승천기 느낌이 나서 거부감이 들었다. 한입 베어 먹은 오렌지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렇게 다가왔다. 이 책 속에 나온 건축물들 대부분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이 건축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학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상당히 현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건축물을 조금 더 좋아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 건물의 효용성이나 지역과의 조화 등은 과연 어떨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더불어 둘러보고 싶은 곳도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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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날
유현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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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느와르 풍 소설이다. 솔직히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우리 안의 다른 사람들이라는 조선족과 조선족 사회를 다루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사회는 아직 너무나도 낯설다. 이 낯설음은 단편적인 면만 보여주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나 신문 기사 등을 통해 그 사회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소설은 그 사회를 정면에서 보여줄까?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정착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식당 아줌마를 포함해서 말이다. 극적 장치를 위한 과장이 곳곳에 보이지만 그 바닥에 깔려 있는 사실이나 분위기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소설 굉장히 흡입력이 있다.

 

시작은 20년 전 회상에서 한 모자가 산을 걷는다. 이들의 대화를 보니 남한 사람이 아니다. 북한 사람이란 느낌이 먼저 드는데 놀랍게도 그들이 걷고 있던 곳은 한국의 어느 곳이다. 바로 이때가 첫 번째 날이 있었던 순간이다. 그리고 바로 한 남자의 불안한 일상이 나온다. 불법입국한 조선족 정문환이다. 용정 건달이었던 그가 어떻게 한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알려준다. 불법체류자인 그는 출입국관리소 직원이나 형사들을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발견되면 강제 귀국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에서 돈을 벌어 아들에게 보내야 하는 그에게 이것은 무조건 피해야 할 일이다. 이때 북경에서 그와 문제가 있던 조폭이 나타난다. 그들에게 잡힌 그에게 살인을 청부한다. 그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조성우 기자는 아내가 작가다. 조 기자는 HM캐피탈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친구를 찾아갔다. 이 회사의 사장은 제임스 리라는 조선족이다. 그런데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다. 아내는 소설을 몇 권 썼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논픽션이다. 한국의 조선족 사회를 다루는 과정에 HM캐피탈이 나왔다. 그리고 그녀를 스토킹하는 사람이 있다. 스토킹의 내용은 글을 쓰라는 것이다. 이 압박이 오히려 글쓰기를 방해한다. 이런 상황인데 조 기자가 집에 가니 아내와 아들이 시체로 변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내면은 황폐해지고 삶은 엉망진창이 된다. 이제 범인을 찾아 복수하려는 그의 의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제임스 리는 20년 전 회고에 나왔던 소년의 현재 모습이다. 그는 금융으로 조선족 사회를 휘어잡고 있던 고려행정사의 박 령감을 수족처럼 부린다. 이 둘은 공생관계다. 제임스 리는 박 령감의 잠자고 있던 욕망을 일깨워 그를 이용한다. 령감의 욕망은 강남 진출이다. 제임스 리는 더 큰 것을 바란다. 처음에는 그 윤곽이 보이지 않는데 과거 사건을 통해 그 그림이 드러난다. 사실 이 사건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시스템 불안정이 가져온 당연한 수순이다. 20년 전 과거의 진실이 드러날 때 지역 유지들의 부패와 숨겨진 잔혹성이 드러난다. 우리 사회의 감춰져 있던 단면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다양한 욕망을 표출한다. 이 욕망이 충돌하고, 살인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인간관계보다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다. 속고 속이고, 계획하고 기획하면서 일을 꾸민다. 하지만 이들은 더 큰 세력 앞에 너무 무력하다. 권력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반격을 노린다. 쉬울 리가 없다.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충돌이 일어난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문제로 어느 순간 바뀐다. 정보도 권력 앞에 그 힘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아직까지는. 작가는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 과정과 결말에 드러나는 사연들은 결코 통쾌하지 않다. 승자의 활기가 사라지고 슬픈 사연들만 그 자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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