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날
유현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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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느와르 풍 소설이다. 솔직히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우리 안의 다른 사람들이라는 조선족과 조선족 사회를 다루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사회는 아직 너무나도 낯설다. 이 낯설음은 단편적인 면만 보여주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나 신문 기사 등을 통해 그 사회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소설은 그 사회를 정면에서 보여줄까?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정착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식당 아줌마를 포함해서 말이다. 극적 장치를 위한 과장이 곳곳에 보이지만 그 바닥에 깔려 있는 사실이나 분위기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소설 굉장히 흡입력이 있다.

 

시작은 20년 전 회상에서 한 모자가 산을 걷는다. 이들의 대화를 보니 남한 사람이 아니다. 북한 사람이란 느낌이 먼저 드는데 놀랍게도 그들이 걷고 있던 곳은 한국의 어느 곳이다. 바로 이때가 첫 번째 날이 있었던 순간이다. 그리고 바로 한 남자의 불안한 일상이 나온다. 불법입국한 조선족 정문환이다. 용정 건달이었던 그가 어떻게 한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알려준다. 불법체류자인 그는 출입국관리소 직원이나 형사들을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발견되면 강제 귀국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에서 돈을 벌어 아들에게 보내야 하는 그에게 이것은 무조건 피해야 할 일이다. 이때 북경에서 그와 문제가 있던 조폭이 나타난다. 그들에게 잡힌 그에게 살인을 청부한다. 그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조성우 기자는 아내가 작가다. 조 기자는 HM캐피탈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친구를 찾아갔다. 이 회사의 사장은 제임스 리라는 조선족이다. 그런데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다. 아내는 소설을 몇 권 썼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논픽션이다. 한국의 조선족 사회를 다루는 과정에 HM캐피탈이 나왔다. 그리고 그녀를 스토킹하는 사람이 있다. 스토킹의 내용은 글을 쓰라는 것이다. 이 압박이 오히려 글쓰기를 방해한다. 이런 상황인데 조 기자가 집에 가니 아내와 아들이 시체로 변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내면은 황폐해지고 삶은 엉망진창이 된다. 이제 범인을 찾아 복수하려는 그의 의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제임스 리는 20년 전 회고에 나왔던 소년의 현재 모습이다. 그는 금융으로 조선족 사회를 휘어잡고 있던 고려행정사의 박 령감을 수족처럼 부린다. 이 둘은 공생관계다. 제임스 리는 박 령감의 잠자고 있던 욕망을 일깨워 그를 이용한다. 령감의 욕망은 강남 진출이다. 제임스 리는 더 큰 것을 바란다. 처음에는 그 윤곽이 보이지 않는데 과거 사건을 통해 그 그림이 드러난다. 사실 이 사건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시스템 불안정이 가져온 당연한 수순이다. 20년 전 과거의 진실이 드러날 때 지역 유지들의 부패와 숨겨진 잔혹성이 드러난다. 우리 사회의 감춰져 있던 단면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다양한 욕망을 표출한다. 이 욕망이 충돌하고, 살인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인간관계보다 자신의 이익이 우선이다. 속고 속이고, 계획하고 기획하면서 일을 꾸민다. 하지만 이들은 더 큰 세력 앞에 너무 무력하다. 권력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반격을 노린다. 쉬울 리가 없다.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충돌이 일어난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문제로 어느 순간 바뀐다. 정보도 권력 앞에 그 힘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아직까지는. 작가는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 과정과 결말에 드러나는 사연들은 결코 통쾌하지 않다. 승자의 활기가 사라지고 슬픈 사연들만 그 자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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