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시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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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처럼 나도 <태백산맥>으로 처음 조정래의 소설을 만났다. 그 후 읽은 소설은 <대장경>이 마지막이다. 10권 정도의 장편을 읽을 여유가 잘 생기지 않았다. 시간이 있을 때는 다른 소설을 읽기에 바빴다. 물론 이것은 핑계다. 우선순위를 뒤로 밀어두었을 뿐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3권 정도의 소설을 적지 않게 읽은 것을 생각하면 핑계가 분명하다. 재작년에 <정글만리>가 나왔을 때도 사 읽을 기회가 있었지만 왠지 손이 나가지 않았다. 왜일까? 내 마음 한 곳에 조정래의 소설들은 어느 순간부터 우선순위가 계속 뒤로 밀리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 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대담은 <정글만리> 출간 후 진행된 것이다. 강연도 있는데 시기 때문인지 상당히 많은 부분이 중복된다. 작가의 말에서 중복이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렇게 많이 나올지 몰랐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글들이 초기부터 실린 것을 담은 것이 아니다. 가장 먼 시간이 2002년 8월 한겨레신문에 실은 글이다. 그 다음이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글이다. 두 번의 대선 즈음에 나온 글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정글만리>이 출간 이후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정글만리> 성공 후 진행된 대담 모음집과 같다. 물론 그의 인생과 철학과 문학관 등이 다양한 대담 속에 조금씩 흘러나온다. 조금씩 겹치는 부분이 워낙 강한 인상을 주지만.

 

<태백산맥>에서 시작해 <한강>으로 이어진 20년 동안의 대하소설 집필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보통의 작가라면 한 편의 대하소설을 겨우 완성할 시간이지만 그는 무려 3편이다. 모두 열 권 이상이니 얼마나 대단한가. 아직 <태백산맥>을 제외한 다른 작품을 읽지 않아 개인적인 감상을 표현할 수 없지만 어느 한 편이라도 처지거나 나쁘다는 평을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매일 원고지를 일정 분량 씩 정서하면서 썼다는 사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의지와 집중력을 생각하면 괜히 내가 부끄러워진다. 점점 게을러지고 안락함에 빠져들면서 핑계만 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잘 보여서 그렇다.

 

<정글만리>의 시작은 1990년 <아리랑> 집필을 위한 취재를 갔다가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그 후 20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중국을 방문해 취재한 후 썼다고 한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대담 속에 조금씩 나오는 중국 이야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의 인식이 중국의 현재와 같이 나가지 않고 과거 속에 머물러 있다고 질타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면세점의 주 고객이 누군가를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시내 면세점을 가면 중국인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단순히 인구가 많아서 그렇다면 인도는 왜 그럴까? 거대한 인구 대국의 실체를 정확하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대담 속에서 반복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 과거의 거대한 자전거 물결은 이제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길은 수많은 자동차로 가득하다. 가장 높은 빌딩이 지어진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더 높은 빌딩이 옆에 지어진다. 이 변화가 너무 빠르다. 이 빠른 변화가 분명 수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것을 너무 쉽게 말한다. 주변에 수많은 기업인들이 현재 중국에서 어떤 고전을 치루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물론 몇 년 전까지는 그 말이 맞을 수 있다. 무작정 간다고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말한 2억이 넘는 농민공이나 매년 쏟아져 나오는 중국 대학생은 그냥 있겠는가. 작가도 말했듯이 엄청난 성장 뒤에 가려진 수많은 희생이나 부의 분배나 부동산 폭등 문제 등이 살짝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 <정글만리>에 대한 이야기다. 그 속에 나오는 중국의 모습은 가끔 가는 중국 출장이나 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문학관은 동의하는 부분이 대부분이지만 완전히는 아니다. 1인칭 사소설이 범람하는 것이 문제지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 경제에 대한 통찰은 배울 점이 많고, 우리가 잊고 있던 IMF의 기억을 새롭게 해 준 것은 좋았고 잊고 있어 부끄러웠다. 다음 작품이 교육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올해 나오면 봐야겠다. 한국의 수많은 문제점들이 교육에서 비롯하는 부분이 적지 않은 현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대하장편 3편을 쓰는 동안 그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저녁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반주로 안동소주를 한 잔씩은 했다. 저녁 술자리를 멀리한 이유를 들려줄 때 깊이 공감했다. 주변에 숙취에 시달리면서 하루를 멍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민족을 중심에 둔 그의 세계관과 문학관은 좀더 깊은 고찰이 필요하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스승이었던 서정주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았고, 아내와 <태백산맥> 필사를 둘러싼 소문의 실체를 글로 확인했다. 그리고 <월간중앙>의 글에서 실체도 명확한 정의도 없는 창조경제의 원리를 조정래의 글에서 발견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순간적으로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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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과학도에게 보내는 편지 -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과학자 <개미>, <통섭>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이 안내하는 과학자의 삶, 과학의 길!
에드워드 O. 윌슨 지음, 김명남 옮김, 최재천 감수 / 쌤앤파커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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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에드워드 윌슨이란 이름을 모른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과학자, <개미> <통섭>의 저자’라는 말해 혹했다. <개미>는 모르지만 <통섭>은 듣거나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안내하는 과학자의 삶, 과학자의 길이란 말은 과학에 무지한 나에게 좀더 쉽게 과학과 과학자에 대해 알려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가 과학도에게 보낸 스물 통의 편지가 예상한 것보다 어려웠기 때문이다.

 

모두 네 파트로 나누었다. 과학의 길, 창조의 과정, 과학자의 삶, 당신이 남길 유산 등이다. 가장 먼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게 되는 에피소드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직업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이다. 거기에 있는 것은 열정이었다. 그래서 열정이 우선이고, 훈련은 그 다음이라고 말한다. 방향성과 함께 다섯 가지 원칙을 알려준다. 여시서 우리가 흔히 영화 등에서 만나는 수학에 뛰어난 물리학자 이미지와 살짝 다른 모습을 만난다. 과학의 분야에 따라 수학 실력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과학을 다른 시선에서 보게 한다. 실험과 이론으로 중무장한 과학자가 아닌 창의성과 꼼꼼하고 지속가능한 일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할 때 그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하고, 성공적인 혁신가는 재능과 환경이 운 좋게 결합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최근 과학은 한 명의 과학자가 모든 것을 처리하던 시대가 아니다. 수학자나 통계학자, 조수나 컴퓨터 전문가 등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들의 도움이 자신이 발견하고 세운 가설 등을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저자의 과학에 대한 열정을 알려주는 대목 중 하나가 여행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에서의 일상 속에서도 연구를 계속하지만 안식년에 집중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과학자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정도의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일에 재미를 누리기에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냥 개미인 것을 다양한 연구와 실험으로 구분하는 모습은 역시 아무나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알려준다. 개미에게 물리면서도 새로운 발견에 행복했다는 표현을 할 때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하게 되었다.

 

흔히 듣는 말 중 하나인 ‘거인들의 어깨에 서십시오’란 조언은 청출어람을 바라는 과학자의 바람이 담긴 말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독창적인 발견을 꼽는데 이것을 인정하고 인정받는 것을 강하게 강조한다. 자신이 다른 동료 과학자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고, 학생들의 연구를 지원했다고 했을 때 이런 환경이 부러웠다. 연구비를 받아서 자신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흔하고, 가끔 한 것도 없이 논문에 이름을 올린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문제를 이야기할 때 괜히 황우석 사건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사건은 아니겠지만.

 

낯선 분야가 주로 나와서 조금 어렵게 다가왔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실패와 실수가 있지만 꾸준한 노력과 열정이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길을 갈 때 성공의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말하는데 공감한다. 하지만 남이 가지 않은 길은 더 힘들다. 자신이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길은 저자가 걸어왔다. 그의 곁에는 좋은 동료들이 있었고, 그의 디딤돌이 된 거인들의 어깨가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뒤적이니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집중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는데 가슴 속에 생각보다 많이 남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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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7
무라카미 하루키.오자와 세이지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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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글을 읽다보면 늘 음악이 나온다. 기억에 남는 것은 대부분 재즈에 대한 것인데 차분히 기억을 되짚어보면 클래식도 상당히 많다. 나에게 클래식이나 재즈나 모두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오랫동안 열심히 들어왔다. 그런데 이 음악 듣기가 대부분 다른 일을 할 때 배경음악용이었다. 집중해서 듣는다 해도 낯설고 어려워 길어야 10~15분 정도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몰입하지 못한다. 그 한계는 너무 분명하다. 아직 유명한 몇 곡을 제외하면 그 묘미도, 재미도, 흥분도 못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늘 음악을 글에서 다루던 하루키가 이번에는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작정하고 음악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 둘의 대화를 읽다 보면 전문가 못지않은 귀를 가진 하루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보통 소설가들이 소설 속에서 클래식을 들으면서 다양한 표현을 하는데 과연 이것이 정말 자신들이 향유한 것인지 아니면 인용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최소한 하루키의 경우는 자신의 경험인 것 같다. 지휘자에 따라 바뀌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잘 포착해서 현역 지휘자와 조금도 꿀림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이 깊이와 폭은 나 같은 문외한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노거장 오자와 세이지와의 대화는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도 몇 번의 만남이 있었다. 어떤 글은 대화가 아닌 아카데미를 경험한 후 감상 후기를 적었다. 큰 수술을 하고 연로한 세이지 씨를 위해 간식 등을 먹고 음악을 들으면서 대화를 진행한 곳도 있다. 이때 두 사람이 이 음악이 다른 지휘자의 연주와 어떻게 다른지, 다른 시기에 녹음한 것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한다. 오자와 세이지가 다른 시대에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한 같은 음악들을 두고 그 차이를 짚어낼 때는 이 두 사람의 교감이 상당히 부러웠다.

 

제목대로 음악을 이야기한다. 단순히 하나의 음악만 듣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자와 세이지의 기억과 추억을 되살려내고, 동시대의 지휘자들의 특성이나 특색도 같이 알려준다. 자신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행운이 있었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여줄 때마다 부러워하면서 감탄한다. 그 치열했던 열정과 노력이 오자와 세이지라는 인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클래식에 무지해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오자와 세이지라는 지휘자를 알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호기심이 먼저 생겼다. 그가 지휘한 음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것 말이다.

 

늘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지휘자들이 악보를 해석하면서 생긴 차이를 어떻게 평론가 등이 아는가 하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보여주는 지휘자들의 음을 구분하는 기술은 귀가 어두운 나에게는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리고 악보대로 연주하는데 왜 그 차이가 생길까 하는 것이다. 또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의 삶을 조금 더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수많은 지휘자들에 대한 에피소드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악보, 연주, 지휘, 녹음, 연주홀 등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은 낯선 지휘자와 낯선 음악 대담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아니 재밌다.

 

예전에 무릎팍도사에서 ‘장한나 편’을 봤다.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그녀가 지휘자가 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하는지 들었었다. 그런데 이 대담을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악보를 연구하고 공부한다는 것을 그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 대담을 읽으면서 상당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의 연주 일정이 얼마나 꽉 짜여 있는지도. 그냥 하루를 살아가는 나 같은 소시민은 생각도 못할 일정이었다. 이런 지휘자의 일상뿐만 아니라 음악을 듣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공부 부족을 절실하게 느꼈다. 어릴 때 유명한 곡이라서 CD를 사고, 유명한 지휘자라서 CD를 샀던 기억도 났다. 이제는 거의 듣지 않고 있지만. 언제 시간이 되면 같은 음악이지만 지휘자가 다른 음악을 비교하면서 듣고 그 차이를 느껴보고 싶다.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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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0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하루키 문학을..선호하지 않는데...음악적 취향은 괜찮다고..
그런대로 맞춰갈만 하다고..혼자 그러는 겁니다.
재즈에서 클래식...아..클래식에서 재즈..

ㅎㅎ듣다보면 알지 않을까요.. 쉽게 예를
들면 앙드레가뇽과 유키구라모토 두 사람이
한 곡을 같이 쳐도 색깔이 분명 달라요..
우린 녹음 버전을 들었을 뿐이어도..
그건 명도 와 채도 를 말하는 것 같아요.
뜬금 없이...죄송한 참견였죠?

지난번에 적어내려가다..말고..
그먕 지나갔어요.
오지랖..이다..하고.
역시...음악이 말을 걸어요..하루키가 아니고..ㅎㅎ 랍니다!
좋은 오후 되시면 좋겠습니다~!
 
거지왕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3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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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검은 수도사> 이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시작은 과거 30년 전쟁 당시의 한 약탈과 학살 장면이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을 보면 분명히 중요한 사건인데 중반까지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숀가우의 사형집행인 퀴슬이 동생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가 살고 있는 레겐스부르크로 간다. 평범한 의사보다 뛰어난 의술을 지니고 있기에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것을 그를 잡기 위한 함정이다. 성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경비들에게 잡혀 감옥에 며칠 갇히고, 풀려난 후 동생 부부가 살던 목욕탕에서 살해당한 부부를 발견하자마자 들이닥친 경비대에 의해 살인자로 몰린다. 전편에서 가장 위력적이고 매력적이었던 퀴슬이 감방에 갇힌 것이다.

 

막달레나와 지몬은 여전히 밀애를 즐기면서 산다. 신분 차이 때문에 둘의 결혼이 힘들다. 숀가우를 떠나 그들의 정체를 모르는 곳으로 가기 전까지 이 둘의 결혼은 쉽지 않다. 이때 제빵업자 베르히톨트가 막달레나를 찾는다. 하녀 레즐의 임신 때문이다. 임산부의 피부와 증상을 보고 지몬에게 뭔가 떠오르는 게 있다. 맥각 중독이다. 임신 중절을 위해 소량의 맥각을 먹으면 효력이 있지만 많이 먹을 경우 환각과 함께 죽게 된다. 그런데 이 맥각을 준 인물이 바로 지몬의 아버지다. 제대로 된 용법에 대한 설명도 없이. 임산부는 죽고, 베르히톨트는 자신이 임신시켰다는 비밀을 지키려고 거래와 협박을 시도한다. 막달레나는 이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이 거부는 사형집행인의 딸 막달레나가 숀가우를 떠나게 만드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막달레나의 고모가 살고 있는 레겐스부르크로 둘은 도망친다. 배가 도착했는데 막달레나의 가방을 도둑이 들고 달아난다. 둘이 쫓는다. 도둑을 잡는데 뗏목 마스터가 도와준다. 이 인연으로 고래라는 술집을 알려준다. 돈이 많지 않은 둘이 머물기 나쁘지 않은 곳이다. 이곳에서 베니스 대사 실비오 콘타리니를 처음 만난다. 그가 관심을 둔 사람은 당연히 막달레나지만. 사랑의 도피처를 찾아온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모부 내외가 죽었다는 것과 아버지가 살인자로 잡혔다는 소식이다. 이 소식은 아버지 구출하기로 이어진다. 하지만 연줄도 돈도 제대로 된 정보는 없는 이 둘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중 하나가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다. 소동을 일으켜 감옥에서 아버지를 만나는 동안 지몬은 광장에서 백내장 수술에 성공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 그것은 거지왕으로 이어진다.

 

감옥에서는 레겐스부르크의 사형집행인과 퀴슬이 이어지고, 밖에서는 막달레나와 지몬이 베니스 대사와 거지왕과 연결된다. 퀴슬에 대한 온갖 소문이 떠돌고, 몇 명의 창녀들이 사라지고 죽는다. 성안의 소문은 더 흉흉해진다. 그 사이사이를 음모의 그림자가 살금살금 파고든다. 단순한 살인사건처럼 보였던 것이 레겐스부르크의 정치를 둘러싼 투쟁으로 발전한다. 범인과 음모자의 그림자가 희미한 가운데 누굴까 하는 추측이 난무한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믿지 말아야 한다. 그럴수록 막달레나와 지몬은 위험해지고 음모는 더 굳건해진다. 분명 과거 사건에서 비롯한 것인데 퀴슬마저도 정확하게 기억해내지 못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잊고 싶은 기억이자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니 말이다.

 

복수의 그림자가 음모를 짜고, 소문은 퀴슬을 괴물로 만든다. 퀴슬을 둘러싼 음모의 답은 과거 속에 있고, 창녀들의 실종과 죽음은 또 다른 사건의 전조다. 목숨을 걸고 단서를 찾지만 적의 그림자는 뒤로 빠짝 다가온다. 밤을 지배하는 거지왕이 도움을 주지만 어느 순간 그도 믿을 수 없다. 막달레나와 실비오의 관계를 질투하는 지몬의 행동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만든다. 질투와 오해는 순간적이지만 이 순간이 어떨 때는 영원으로 바뀔 수도 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누군가를 믿어야할지 모르는 의심의 강을 건너야 하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퀴슬을 잡았다는 안도와 복수의 마음은 오히려 퀴슬 쪽에 기회가 된다. 시간은 언제나 주인공 편이니까. 17세기 독일을 무대로 그 풍경과 상황 등을 이렇게 충실하게 재현하면서 긴박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작품이 그렇게 흔하지 않다. 재밌다.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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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오사카에 가는 사람이 가장 알고 싶은 것들 First Go 첫 여행 길잡이
정해경 지음 / 원앤원스타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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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도쿄를 한 번 다녀왔다. 처음 가는 일본이지만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보던 곳을 실제 발로 걸었지만 큰 감동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느낌과 다르면서도 같은 부분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언어의 장벽이 조금 있지만 짧은 한자와 무대포 정신으로 별 무리 없이 돌아다녔다. 상대적 좋은 날씨 탓인지 걷기도 참 많이 걸었다. 음식은 늘 먹던 것이라 맛있었다. 아니 돈까스는 최고였다. 입맛에 맞는 음식은 여행의 즐거움을 높여주는데 일본이 딱 그랬다. 그런데 도쿄보다 더 맛있는 동네가 있다고 한다. 오사카다.

 

사실 오사카보다 교토에 더 관심이 많았는데 음식 때문에 살짝 방향이 바뀌었다. 오사카에서 한 시간이면 교토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을 자주 다니는 전직장 동료가 오사카를 추천한다. 그래 한 번 가보자 하고 마음을 먹었다. 비행기표는 어떻게 구하면 되는데 크리스마스 전후로 숙소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일정을 조정하니 방이 한두 개 나오는데 이번에는 비행기표가 너무 올랐다. 일정 조정이 쉽지 않은 일과 숙소가 교통수단까지 이어지고, 추위도 살짝 한 자리 차지하면서 이렇게 나의 첫 오사카 여행은 중단되었다. 그렇다고 관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준비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도쿄 여행에서도 루트를 짜고 교통패스를 사는 것이 어려워 그냥 교통 카드 충전해서 다녔다. 덕분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돈은 조금 더 들었겠지만.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교통패스가 상당히 어렵다. 개인적으로 오사카 주유패스가 가장 효율적인데 사용 불가능한 노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도쿄에서 환승이 되지 않아 한두 구역을 비싼 교통비를 지급하고 옮긴 적이 있다보니 괜히 걱정이 된다. 2일권만 나와 있는데 일정을 잘 짜지 않으면 효율적인 여행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나오는 2박 3일 일정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기본적인 숙소를 난바로 정한다면 더 쉬울 것이다. 사실 난바 지역은 동료가 추천한 숙소 지역이기도 하다.

 

여행을 가면 가장 필요한 것이 지도와 맛집 정보다. 긴 일정이라면 이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짧은 일정으로 다녀올 사람이라면 지도는 필수다. 동선을 제대로 짜지 않으면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무한정 늘어난다. 물론 이것이 추억이자 재미로 변하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도 적지 않다. 경험한 것에 따라 변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길찾기 사진은 초보자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처음 배낭을 메고 여행 갔을 때 이 사진들이 불안감 속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물론 사진이 작은 것은 단점이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블로그의 큰 사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더욱.

 

간결한 지도와 맛집 표시는 개인적으로 가장 바라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관심없는 지역도 나오지만 맛집들은 입맛을 자극하면서 이 짧은 일정 속에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한다. 어떻게 시간을 맞춰 줄서는 시간을 줄일까하는 생각도 이어진다. 한국에 들어온 제과를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정보에 눈이 번쩍 떠지고, 돈까스와 오므라이스는 언제 먹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행복한 고민이다. 솔직히 쇼핑은 나는 별관심이 없다. 집사람은 다르겠지만. 사진으로 본 것만으로 판단하면 됴쿄나 홍콩이나 한국의 쇼핑몰은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일본색이 강한 악세사리나 물건을 좋아한다면 다르겠지만.

 

이 책은 정말 짧은 일정으로 처음 오사카에 가는 사람에게 딱 맞는 것 같다. 핵심만 짚어져 비교적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다. 물론 조금 더 긴 시간을 여행하고 싶은 여행자라면 다른 책이나 인터넷 정보를 검색해야 할 것이다. 또 자신만의 일정표도 만들 필요가 있다. 적지 않은 관광지와 맛집이 나와 열심히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할 듯하다. 이전에 이런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힘들었지만 아직도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아마 올해 가게 된다면 이 일정표를 상당히 참조할 것 같다. 읽다보면 아쉬운 점도 곳곳에 눈에 들어오지만 좋았던 것만 모아 일정을 짠다면 큰 불편은 없을 것 같다. 빨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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