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괜찮겠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이사카 코타로가 10년 동안 쓴 에세이를 모아 놓은 책이다. 원제도 10년은 일 단위로 표시한 <3652>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표되었는데 이 책 끝에 그 출처가 하나씩 표시되어 있다. 최근에 이렇게 출처를 표시한 책을 본 것도 참 오랜만이다.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탓인지 분량이 일정하지 않다. 짧은 것도 한 쪽짜리도 있다. 그림은 별도지만. 이렇게 일상을 소재로 한 에세이는 다양한 분량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장르 소설가로만 알고 있던 이사카 코타로의 새로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실 생활이 소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떤 순간에는 낯선 모습에 살짝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한 편 한 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황당한 상식 부족이 가끔 보인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손오공이 타고 다니는 구름을 근두운이 아닌 근두 구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처음 읽을 때 일본에서는 이렇게 표기하는구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능청스럽게 이런 실수를 12지 중 원숭이 해의 에피소드로 이 이야기를 그냥 쓰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가 읽으면서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즐기게 되었다. 뭐 이런 것 모른다고 재미있는 소설을 못 쓰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것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설 한 편 쓸 능력도 없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수많은 에세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족은 아버지다. 건강요법 마니아에 동네 개들에게 먹이를 주는 이상한 아저씨에 묘한 설득력을 지닌 말을 하는 아버지 역할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작가는 개인적으로 놀랍게도 오에 겐자부로다. 대학 시절 그의 소설 <외치는 소리>를 읽고 반해 하루에 한 권씩 10일 동안 읽었다는 에피소드가 반복해서 나온다. 이 에피소드를 읽을 때면 나에게는 왜 그렇게 힘들게 읽혔던 작가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다룬 소재는 책과 12간지의 동물들 이야기다. 12간지 동물은 책 출간(2010년) 당시 5마리가 남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몇 편이 남았을까 궁금하다.

 

작가의 일상을 엿보는 즐거움도 주지만 그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글은 또 다른 재미다. 아예 대놓고 작가와 대표작을 쓴 글도 있지만 곳곳에서 작가와 작품명이 나온다. 이때마다 읽지 않는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위시리스트에 추가할 목록이 늘어난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라면 정말 아쉬운 일이지만 생각보다 출간된 책이 많았다. 그리고 자신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줄 때는 읽었던 작품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뚫고 반가움이 먼저 다가왔다. 한 에피소드는 책이 바로 앞에 있어 목차를 뒤져 그 제목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 에세이에 나온 책들의 출간 여부를 알려주었다면 좀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 책의 기획 중 재미난 것은 각 에세이의 끝에 작가의 간략한 감상이 사족처럼 달려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당시의 상황이나 기분 등이 적혀 있는데 어떤 에세이에서는 이것이 더 흥미진진했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생각한 모습과 일상이 너무 다른 것도 놀랍지만 짧은 글 속에 녹여낸 사연들과 마무리가 왠지 모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들을 연상시키는 순간이 많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만의 착각일까? 엄청나게 소심한 그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와 뜨거운 팬심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몇 가지는 묘하게 교차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 재미있는 책에 한 가지 아쉬운 것을 하나 더 더한다면 문화, 풍속, 유행, 언어의 차이 등을 고려하여 삭제한 에세이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 목록을 보니 읽고 싶은 마음이 부쩍 생기는 글도 적지 않다. 언젠가 모든 글이 다 나오는 완전판이 출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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