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속도 -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리칭즈 글.사진, 강은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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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에 혹한 책이다. 저자가 건축학자인 것도 한몫했다. 여행의 속도를 인생에 비유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책은 안도 다다오의 “여행은 사람을 만든다”는 문장으로 문을 연다. 과연 여행이 사람을 만들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름대로 해석하면 맞는 말이다. 내 삶을 구성하는 것 중 많은 것들이 여행으로 채워져 있다. 더 많은 것은 친구들과의 생활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일이 중심을 차지하면서 친구들과의 생활이 멀어졌다. 이때 가끔 함께 만난 친구들과의 이야기에는 항상 여행이 들어있다. 과거의 추억과 기억들이 서로를 연결해준다.

 

여행의 속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빠르게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도로가 더 많이 뚫리고, 비행기를 쉽게 타게 되면서 정체는 불안감과 짜증을 불러왔다. 여유와 느긋함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가 든 때문만은 아니다. 정체 없는 삶에 익숙해지고, 이 때문에 날려 보낼지도 모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현재를 즐기기보다 앞으로 할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나보다 훨씬 어린 직원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면 청춘을 붙잡고 싶은 중년의 집착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책은 빠른 속도에서 영의 속도로 내려가는 구성이다. 고속열차에서 묘지까지 이어지는 이 일련의 여행은 건축학자답게 건축물들이 우선이다. 그가 세계 곳곳을 다닌 것도 건축물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다. 이 여정에 탈 것들과 걷는 것이 하나의 도구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도구들과 도시과 연결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낯익은 이름과 건물도 가끔 나오지만 낯선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건축학에 대해서는 대학 때 강의 하나 들은 것이 전부니.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딘가에서 들은 듯한 이름이라고 느꼈다면 이 수업과 다른 책에서 본 것이 잠시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대만인 저자가 이 책 속에 가장 많이 다룬 나라는 일본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유학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가가 안도 다다오인 것과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다. 고속열차와 기차와 전차와 여객선과 도보로 하는 여행의 대부분이 일본이다. 가끔 프랑스나 스페인이 하나둘 그 자리 끼어들기도 한다. 이제 겨우 한 번 일본을 다녀온 내가 그것을 알기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와 만화와 소설에서 간접 경험한 것들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연상 작용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저자의 이런 일부 지역 편중은 아쉬운 대목이다. 비록 저자가 비행기보다 기차로 여행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해도 말이다.

 

여행은 다양한 속도를 경험하게 만든다. 가장 빠른 비행기에서 기차나 승용차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도 있고, 두 발로 걸으면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봐야 하는 순간도 있다. 속도의 변화는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다.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나 고속열차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고 정확하게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반면에 두 발로 걸어다니면 좀더 많이 좀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여행을 갔을 때 가장 많은 것을 얻고 오는 것도 바로 이런 도보 여행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걸은 만큼 얻는 것도 많다. 하지만 여기에 빠지면 한 지역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런 순간에는 탈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미국을 자동차로 여행한 저자의 경험은 상당히 부럽다. 미국에 조금 산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차로 여행한 이야기할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저자가 건축가다보니 이 책은 건물들에 대한 단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단상들 중 “타이완은 지역개발을 우선으로 여겨 무조건 영리를 목적으로 한 상업적인 건물들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라고 한 대목을 읽었을 때 ‘한국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의뢰인들에게 소송을 당했다는 정보는 놀라웠다. 그가 멋지다고 말한 리옹의 오렌지 큐브의 어떤 부분은 욱일승천기 느낌이 나서 거부감이 들었다. 한입 베어 먹은 오렌지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렇게 다가왔다. 이 책 속에 나온 건축물들 대부분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이 건축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학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상당히 현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건축물을 조금 더 좋아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 건물의 효용성이나 지역과의 조화 등은 과연 어떨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더불어 둘러보고 싶은 곳도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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