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븐스 섀도우
데이비드 S. 고이어.마이클 캐섯 지음, 김혜연 옮김 / 청조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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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극장에 자주 가지 않고 있다. 그런데 몇 편의 영화는 극장에서 보았다. 그 몇 편의 영화의 원작자가 쓴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다. 그러니 관심이 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거기에 SF 장르라고 하니 더 좋다. 이런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대는 솔직히 너무 과했다. 영상으로 표현된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야기 속으로 빨아 당기는 힘이 약했다. 이미 다른 영화에서 본 이미지나 다른 SF 소설에서 읽은 이미지들이 겹치면서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두 공저자가 역할을 어떻게 나누었는지 모르겠지만 NASA와 키아누라는 행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나 과학 지식들이 상당히 정교하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미국과 러시아, 인도, 중국 연합의 대결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조금은 의외다. 특히 이 연합의 우주센터가 인도에 있다는 설정은 이쪽 분야의 문외한인 나에게는 의외의 설정이다. 몇 년 사이 엄청나게 발전한 중국을 생각하면 더더욱. 하지만 현실에서 우주선이나 우주공학이나 지식에서 가장 앞선 것은 역시 NASA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이들의 비중이 약하게 나오는 것은 조금 아쉽다.

 

일명 키아누는 태양계 밖에서 날아온 지구 근접 천체(NEO)다.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어 NASA와 연합에서 이 천체에 각각 우주선을 보낸다. NASA는 데스티니 7호고, 연합은 브라마 호다. 두 세력 사이에 경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우주선의 선장들은 모두 NASA에서 교육을 받았다. 데스티니 7호의 선장 잭은 이전에 발사된 우주선의 선장으로 뽑혔다가 아내의 죽음으로 몇 년간 기회가 없었고, 브라마 호의 선장은 여러 번 대기권을 다녀온 우주인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지원이나 특별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은 NASA가 월등히 뛰어나다. 이것을 기본으로 깔아놓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지구 근접 천제로의 착륙을 먼저 과학적으로 보여주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이 천체에서 수증기를 품어내는 베수비오 분출구 때문에 생기는 사고와 이 분출구를 탐험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사고가 중요한 것은 사고를 당한 인물이 선장 몰래 가져온 물건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이 분출구를 통해 들어간 내부의 환경과 앞으로 일어날 놀라운 현상들이다. 그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역시 내부에서 만난 죽은 자들의 재생이다. 잭의 경우는 아내 메건이고, 브라마 호의 우주인 루카TM의 경우는 조카 카밀라다. 나탈리아의 경우 자신을 겁탈하고 괴롭혔던 인물이 재생되는 것을 보고 공포에 질려 죽여버린다. 이 재생을 보고 들은 백악관의 판단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즉 파괴다.

 

이 재생인들을 NASA에서는 레버넌트라고 부른다. 불어로 보이는 유령, 살아 있는 시체란 의미다. 이 소설에서 가장 놀라운 설정인 레버넌트는 자신이 죽은 시점과 그 이후 일정 부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외모는 똑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에 대한 설명은 당연히 없다. 이 소설이 3부작이라고 하는데 다른 이야기에서 나올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내부에 같이 들어온 포고가 보초처럼 보이는 물체에 의해 살해당한 후 재생되어 벌이는 사건은 조금 더 철학적으로 풀어내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잭의 아내인 메건의 행동과 너무 대조되기 때문이다.

 

키아누에서 지구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지구의 NASA는 이 상황과 이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 때문에 공포에 질린다. 이 공포는 쉽게 전염되고, 만약을 위해 준비한 것이 최악의 상황으로 번진다. 그리고 몇 초 차이로 전해지는 소식과 정보 때문에 가족 및 관계자들의 희비가 교차한다. 작가들은 이것을 잭의 딸 레이철과 메건과 같이 사고가 난 할리를 통해 보여주는데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다. 지구와 키아누 사이에 비슷한 긴장감이 형성되면서 이야기에 몰입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한 느낌이다.

 

태양계 밖에서 새로운 우주선이 온다는 것과 그 우주선을 탐색하는 설정은 아서 클라크의 <라마와의 랑데부>와 닮은 꼴이다. 지구인의 기억 등을 이용해 사람을 재생해 내는 것은 어딘가에서 본 듯한데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런 설정을 바탕으로 잭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작업이 펼쳐지는데 아직은 완전하지 않다. 수면 밑에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책 소개에 나온 이야기 중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이야기는 다음 권부터 나올 듯하다. 그때가 되면 이런 설정이나 마무리가 조금은 더 이해가 되고, 더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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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처럼 서러워서 작은숲 에세이 4
김성동 지음 / 작은숲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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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제목만 보면 불교에 관련된 에세이처럼 보인다. 그런데 역사 에세이란 작은 글이 보인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에 대한 글이란 설명이 책 뒤에 나온다. 그렇다. 이 책은 저자가 한국의 역사를 기존 역사 학회의 시선과 다른 관점으로 풀어낸 역사 이야기다. 현재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는 수많은 역사를 새롭게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맛보게 한다. 물론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좀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도 많이 있지만 너무 일부 학설을 과하게 표현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역사의 이면을 이렇게 볼 수 있다는 부분은 아주 흥미로웠다.

 

내용은 분명히 흥미롭다. 하지만 저자가 순우리말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서 나의 부족한 우리말 실력이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몇몇 단어들은 충분히 알거나 짐작할 수 있지만 어떤 단어는 너무 낯설어서 사전 검색을 해야 했다. 저자의 의도적인 표현이 나처럼 일반 독자에게 오히려 힘든 책읽기로 이어진 것이다. 어쩌면 자신만의 고집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장에서 충분히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늘어지면서 우리글의 매력을 갉아먹는 부분도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무지한 순우리말에 대한 열등감을 내가 이전에 얕게 배운 것을 바탕으로 조금 트집 잡는 것일 수도 있다.

 

첫 이야기로 선택한 것은 해방 후 한국의 가장 중요하고 큰 문제를 그대로 나타내준다. 독립운동자의 후손들이 배곯고 힘든 생활로 삶을 겨우 유지하는 반면 친일파 후손들은 조상들의 엄청난 부를 현재까지도 그대로 누리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순간 잘못된 역사의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우리 후손들에게 혹은 우리 자신들에게 나라를 위해 어떤 희생도 좋은 선택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친일파의 후손들이 정권을 잡고, 떵떵거리며 살면서 국가를 위한 희생을 민초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 모순된 상황을 언론을 통해 왜곡하고, 사실을 숨기면서 호도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글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목차를 읽으면 기존에 알고 있던 많이 나온다. 대부분 역사시간에 결코 좋은 평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다. 묘청 정도가 신채호 선생에 의해 다른 평가를 얻었을 뿐이다. 신돈에 대한 평가가 최근에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출간도서의 이름을 통해 본 적이 있지만 미륵 사상과 연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신라 말기와 고려 중후기의 엄청난 부패와 부의 불균형에 대한 설명은 왜 그 시대에 궁예와 신돈이라는 인물이 나오게 되었는지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도 그렇지만 이들만으로 세상이 바뀌기는 무리다. 민중의 의식이 깨어나고, 힘을 합쳐야 하는데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민중들이 오히려 왜곡된 정보와 편가르기에 당해 흩어져 있는 상황이다. 그 당시는 이들을 뒤엎을 무력이 부족했다.

 

전봉준에 가려진 김개남 이야기는 동학운동을 새롭게 보게 만들었고, 만약 저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동학 운동이 실패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김백선 장군처럼 항일투쟁운동을 펼쳤지만 계급의식에 매몰된 무리에 의해 잊혀지고 왜곡된 인물도 등장한다. 저자가 이들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기위해 인용한 글들을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할 때 기록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지배계급의 변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의 기원을 항일투쟁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이 연속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재해석에 많은 동의를 하는 반면 고대사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그 시대의 국경과 지역을 둘러싼 주장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백제의 후손을 화교와 연결하는 부분이나 <환단고기>를 그대로 믿는 것은 무리가 있거나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몇 가지 용어나 표현이나 상황만 가지고 확대해석하기에는 아직 자료가 부족하다. 물론 왜곡된 역사나 친일실증사학의 현재 이론을 그대로 수용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좀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고증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들을 가끔 읽으면 기분은 좋지만 너무 허술한 이론과 허황된 주장이 많아 그 사실을 그대로 믿기 힘들다. 또 하나 더 불만을 말하면 한자를 진서라고 표현한 것이다. 주자학자들이 한글을 낮춰보기 위해 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순우리글을 이렇게 많이 쓴 에세이에 쓸 단어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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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과 짐 에디션 D(desire) 6
앙리 피에르 로셰 지음, 장소미 옮김 / 그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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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영화로 먼저 만난 경우 원작 소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잘 못할 때가 있다.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만들었다면 영화 광고에 원작 소설이 들어가겠지만 오래전에 출간된 소설이거나 대중에게 잘 알려진 소설이 아니면 그냥 조그맣게 표시될 뿐이다. 어떤 영화는 원작보다 더 유명해져서 원작 소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줄과 짐>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한때 영화를 미친 듯이 본 적이 있는데 이때도 이 영화에 원작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봤지만 솔직히 보면서 많이 졸았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영화의 장면들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줄과 짐이란 이름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인지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모르지만 앞부분에 이 둘을 헷갈려했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를 정확히 몰라 그들의 연애생활이 특이하고 낯설게 다가왔다. 짧은 문장은 읽기는 편했지만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순간적으로 방해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장체인데도. 하지만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역시 이 둘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들이다. 자유연애와 연인이 뒤바뀌는데도 둘 사이의 우정이 전혀 흔들림이 없어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초반에 줄의 연애 상대들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면서 함께 대화하는 장면이 나올 때는 ‘뭐지’하는 마음이 먼저 들 정도였다.

 

영화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서인지 처음에는 여자 주인공을 루시로 생각했다. 줄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였고, 청혼을 했다가 실패했고, 짐과 잘 되어 그녀를 늘 볼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이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줄의 경우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고, 루시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면서 둘의 관계는 평행선을 유지한다. 이때 짐이 루시와의 관계가 진전되면서 줄이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삶은 변수가 늘 생긴다. 바로 카트린의 등장이다. 독일에서 놀러 온 세 명의 여자 중 한 명인 그녀가 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둘은 독일로 돌아가 결혼한다. 그리고 제1차 대전이 벌어지면서 줄과 짐의 연락은 잠시 끊어진다.

 

전쟁 후 다시 줄과 짐이 만났을 때 짐이 사랑에 빠지는 인물은 카드린이다. 이때 이미 줄과 카트린의 관계는 단순히 두 아이의 아빠라는 것과 같은 집에 산다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접점이 없던 시기다. 줄의 엄마 때문에 그녀는 결혼 전에도 외도를 하고, 전쟁 전후에도 다양한 연애를 한다. 줄은 그냥 지켜볼 뿐이다. 왜 이런 관계를 유지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짐이 다시 카트린에게 반하고 이 둘이 연인 관계로 이어지는 과정을 옆에서 줄이 지켜본다. 오히려 이혼한 후 이 둘이 결혼하는 것을 바랄 정도다. 이 심리 상태와 이들의 관계를 이해하기에는 나의 의식이 그만큼 넓지 못하다. 그냥 지켜볼 뿐이다.

 

서로 다른 나라에 살고, 항상 같이 있지 못하고, 떨어져 있는 동안에는 그 지역에서 다른 연인을 만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이 기묘한 관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한 이들의 삶을 그냥 그대로 볼 뿐이다. 감정과 욕망이 충돌하는 순간도 있고, 현실이 이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표출하게 한다. 줄과 짐과 카트린의 삼각관계라고 하지만 어느 순간 짐과 카트린의 관계로 변하고, 카트린의 좀더 자유로운 연애가 짐을 불안하게 할 뿐이다. 어느 순간에는 카트린의 분노와 질투가 폭발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 순간의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게 간단하게 묘사한다. 자전적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작가는 74세에 이 작품을 발표했다. 첫 소설이다. 노년에 젊을 때의 욕망과 관계를 건조한 단문으로 표현했다. 바로 여기에 내가 이 소설에 깊게 빠지지 못한 이유가 있다. 노년에 과거의 관계와 욕망을 경험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먼 곳에서 지켜보는 마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감정과 욕망의 파편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하지만 섬세하고 깊게 파고들지는 않은 것이다. 아니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여운을 남길 것 같다. 영화를 다시 본다면 졸지 않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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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 - 지금 우리에게 정의, 쿨함, 선악, 양심, 죽음이란 무엇인가
아비에저 터커 지음, 박중서 옮김 / 원더박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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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를 생각하면 두 가지 명언이 떠오른다. 그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란 명언이다. 이 두 명언과 함께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은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악처도. 이런 몇 가지 흔한 기억만으로 소크라테스를 평가하기에는 그가 서양철학에 끼친 영향이 너무 크다. 실제 그가 어떠한 저서를 남기지 않았고 제자인 플라톤이 남겼다고 해도 말이다. 이 책의 원제도 ‘Plato for everyone'이다.

 

저자는 플라톤의 대화 중 다섯 편을 현대 소설처럼 각색했다. 그 다섯 편은 <크리톤>, <메논>, <에우티프론>, <변론>, <파이돈> 등이다. 이 다섯 편을 근거로 한 소설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적인 해석으로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풀어내었지만 적지 않은 분량과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으로 인해 생각보다 힘들게 읽었다.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좀더 차분하게 읽고, 문장을 음미하고, 의미를 파고든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철학의 기초가 약하다면 이것을 비판적으로 읽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내 경우 얕은 철학 지식으로 제대로 된 반론을 펼치지 못해 그 답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저자가 바란 것은 ‘질문은 어떻게 하는가, 상식이나 일상적인 믿음이며 가정은 어떻게 의심하는가, 적극적 호기심은 어떻게 갖는가, 철학자처럼 생각하기는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철학자처럼 된다는 것은 어떻게 경험하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내용을 모두 찬성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소설처럼 구성된 이 책으로 이런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 독자가 여러 번 읽고 저자가 바란 것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쓴 소크라테스라는 말이 무안해지는 것이 아닐까?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플라톤의 대화 속에서 발췌한 다섯 가지 주제는 불의한 전쟁을 하는 군대에 가야 하는지, 쿨한 것, 하느님이 선악을 결정하는지, 양심과 일자리의 선택, 죽음 등이다. 군 문제의 경우 민주주의와 법 문제로 이어지면서 가야한다고 결정이 나는데 이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정의라는 것인데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면돌파를 선택한 소크라테스의 논리가 과연 맞는지 하는 것은 의문이다. 대화법 속의 논리를 따르면 맞는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전제 조건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조건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나보다 철학적 지식이 높은 사람과 이 문제를 깊게 토론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쿨하다는 것의 정의를 놓고 토론하는 장면을 읽을 때 그 본질을 향해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대화법에 놀란다. 우리가 얼마나 두루뭉술하게 단어나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가끔 느끼기 때문에 더 그렇다. 종교를 다루는 것 같은 하느님의 선악도 결국에 다루는 것은 인간과 철학적 논증이다. 지옥을 각 종교의 지역과 함께 엮어서 설명해주는 부분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의 상상력이 어느 것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생각할 때 더욱 더. 양심과 일자리를 둘러싼 그의 논쟁의 결과를 보면서 현실은 철학자의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임을 깨닫게 된다.

 

죽음은 영혼과 신체에 대한 논쟁과 논증으로 가득하다. 논리적으로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보면서 ‘상기론’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도. 분명히 논리적으로 따라가면 그의 말이 맞는 듯하지만 곰곰이 생각하고 현실의 상황 등에 비춰보면 어딘가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을 더 공부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철학지식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가장 유명한 명언인 ‘너 자신을 알라’가 실제 델포이 신전에 새겨져 있던 경구였다는 설도 있다. 이 책 속에 그 유명한 그의 악처가 죽을 때 잠시 등장하는 것밖에 없는 것도 조금은 아쉽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소크라테스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좋은 교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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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 - 배영옥 여행 산문집
배영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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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을 계획하고 갔다가 2개월을 더 연장하고 산 쿠바 이야기다. 그런데 저자는 쿠바에서 돌아온 후 쿠바에 대한 어떤 것도 떠올리기 싫었다고 한다. 덕분에 머문 시기와 책이 나온 시점에 큰 차이가 있다. 쿠바에 머문 기간이 2011년 11월부터 2012년 7월까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책이 얼마나 늦게 나왔는지 알 수 있다. 에필로그에 따르면 쿠바와 지독한 연애를 한 후유증을 겪은 듯하다. 사랑은 독하고 힘들었다고 하는데 사실 글 속에서 그 느낌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감정이 최대한 절제되어 있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감상이 가득한 글이라 더 그렇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쿠바의 모습은 이전에 본 책들과 다른 모습이 많다. 어쩔 수 없다. 그들은 여행자고, 그녀는 거주자였기 때문이다. 이 차이가 글 곳곳에 드러날 때 쿠바라는 환상에 덧씌워져 있는 이미지들이 하나씩 깨지기 시작한다. 덧붙여 설명하면 ‘쿠바는 여행자 각자 원하는 모습을 개인에게 맞춰서 보여주는데 탁월’한 곳이다. 저자 자신도 여행자지만 오랜 시간 머물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쿠바의 현실을 만났고, 이 현실을 무조건 외면하고 싶어 했다. 여행자의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쿠바와 쿠바 사람들은 지금도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쿠바와 연애를 하고 왔다.

 

이 책에 나오는 쿠바는 여행자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니다. 물론 그런 곳도 나온다. 하지만 그곳에서 몇 개월을 살게 되면 단순히 여행자로 머물 때 몰랐거나 잠시 불편했던 것이 아닌 실제 삶의 모습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사회주의 국가가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이미지 뒤에 숨겨놓은 민낯을 만나게 된다. 단순한 물자 부족의 문제뿐만 아니라 빈부격차를 비롯한 사회 구조의 문제들이 조금씩 보인다. 그래서 어느 순간은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고 읽고 듣고 한 쿠바와 너무 달라 그들이 거짓말한 것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쿠바다. 쿠바에 대한 환상이 덧씌워져 있다고 해도.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역시 물자부족과 그 때문에 생긴 긴 줄이나 그것을 찾기 위한 방황이다. 의료와 교육이 완전 무료고, 하루에 빵 하나가 공짜로 지급되어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것일 뿐이다. 휴대폰을 개통해도 충전용 전화 카드 사기가 쉽지 않다. 파는 곳을 운 좋게 발견해도 긴 줄을 서야 한다. ‘잠깐 동안의 편리함을 얻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쿠바’라는 감상이 나온다. 이것은 다른 물건을 사는 것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항시적 물자 부족은 사재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저자와 체 게바라는 생일이 같다. 다른 공통점이라면 둘 다 쿠바 태생이 아니라는 것 정도. 그 유명한 체 게바라가 아바나를 뒤덮고 있지만 가장 많은 동상은 자유의 시인이자 혁명가이자 사상가인 호세 마르티다. 조금은 낯선 정보다. 외국인과 내국인 사이의 이중화폐 제도나 이 때문에 생긴 부의 불균형이나 자신의 부를 감추기 위한 모습들이 흘러나온다.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자본주의의 흔적과 영향은 이미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런 모습들 사이에 쿠바인들의 삶이 밖으로 표현된다. 인종차별이 없을 것 같은 이곳도 백인들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한다. 의외의 모습이다.

 

물자부족과 결핍 등에서 비롯한 에피소드가 불편하다면 쿠바 남자와 여자들의 이야기는 한두 번 정도 들은 적이 있지만 여전히 재밌다. 우리의 가치관으로 그들을 평가하면 문제가 많을 것 같지만 그것 또한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선택이자 삶이다. 쿠바 여자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쿠바 남자뿐이다(그 반대도)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그들의 삶은 우리와 다르다. 제목인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는 것도 바로 이 이야기에서 나왔다. 열정적인 혹은 습관적인 그들의 도발과 대쉬는 짧은 여행자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일 것 같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영화 장소를 현지에서 직접 본 후 나온 감상은 조금 충격적이다. 미국인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 있다는 대목에서는 특히. 한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란 노래가 일본에서 히트한 것도 바로 이런 향수 때문이란 글이 떠오른다. 여행자에게 중요한 음식을 이야기할 때 향신료나 소스의 부족이 잠시 머물다가는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쿠바인들은 혀가 없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니. 그리고 한국 제품들이 상당히 많은 것에 놀란다. TV나 에어컨이나 자동차나 버스뿐만 아니라 인조손톱까지 다양하다. 이것을 중계무역으로 수입했다고 한다. 실제 이것들을 현지에서 보게 되면 조금은 다른 감정이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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