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할런 코벤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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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할런 코벤의 2013년 작품이다. 그의 이전 작품처럼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복잡한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제이크는 정치학 교수다. 제목에 나오는 6년은 그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운명의 여자 나탈리가 갑자기 그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날로부터 지나온 시간이다. 이 소설의 시작도 바로 6년 전 그녀가 결혼하던 장면부터다. 그곳에서 그녀는 제이크에게 말한다. “약속해줘요. 우리를 내버려두겠다고 약속해줘요”라고. 제이크는 약속한다. 그 약속은 6년 동안 지켜졌다. 그 약속을 깨트린 것은 학교 홈페이지에 뜬 한 명의 부고 소식이다.

 

제이크는 그날 이후 나탈리를 잊지 못하고 있다. 교수로서의 본분을 다하면서 학교생활을 충실히 수행한다. 학생들과 면담을 하던 중 학교 홈페이지에 토드 샌더슨의 부고 소식이 뜬다. 평온했던 그의 세계가 잠시 흔들린다. 겨우 자신의 업무를 마쳤지만 그의 마음은 토드의 부고에 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토드의 아내인 나탈리에게 가 있다. 6년 전 그녀와의 약속을 기억하지만 토드의 죽음이 그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란 단어였음을 상기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사랑에 따라 움직인다. 토드의 장례식장에 간다. 그가 바란 것은 나탈리를 한 번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탈리를 보지 못했다. 토드의 아내는 다른 여자였다. 그럼 나탈리와 결혼한 토드는 누구지?

 

토드의 죽음은 나탈리 찾기로 이어진다. 제이크가 원하는 것은 바로 나탈리다. 학교 교수 중 한 명이자 전직 요원인 산타에게 나탈리에 대한 최신 정보를 부탁한다. 그런데 그 어떤 정보도 나와 있지 않다고 말한다. 출입국 기록도, 세금을 낸 기록도, 신용카드를 사용한 기록도 없다. 인터넷 검색으로 다양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그녀는 6년 전 그날부터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제 제이크는 그녀를 찾기 위한 첫 단계로 그들이 처음 만난 곳으로 간다. 다시 간 버몬트 휴양소는 아무 것도 없다. 그녀를 처음 소개시켜 준 쿠키도 자신을 모른 척한다. 그 당시 그녀와 함께 한 사람들이 그녀를 모른 척한다. 이상하다. 왜 이들은 그녀를 모른 척할까?

 

어느 밤 한 남자가 그를 찾아온다. 나탈리를 찾아온 남자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나탈리가 어디 있는 가 하는 것이다. 제이크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을 그도 알고 싶어 한다. 제이크가 차에 타기를 거부하자 밥이란 남자는 총을 꺼내고 폭력을 휘두르고 협박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간다. 그런데 차 속에 있는 도구와 바닥을 보니 고문을 한 장소 같다. 거의 2미터의 키에 클럽 기도 역할을 했던 적이 있던 제이크는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한다. 그리고 이들과 싸운다. 잘못하면 총에 맞을 수도 있다. 이 격투는 오토라는 남자를 죽이고, 힘들게 달아나는 것으로 끝난다. 이제 사건은 단순히 추억 속 사랑했고 사랑하는 여자 찾기에서 폭력과 살인과 고문이 뒤섞인 사건으로 바뀐다.

 

보통의 남자라면, 보통의 연인이라면 여기서 아마도 나탈리 찾기를 멈췄을 것이다. 그도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몸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바라던 것을 향해 움직이게 만든다. 이제 그만해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얼마 가지 않는다. 밥을 만난 날 있었던 폭력 사건 때문에 휴직을 해야 하는 사태까지 생겼다. 이때 그녀를 소개시켜 주었던 쿠키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녀를 찾아간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그를 잡는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들이 제이크를 협박한다. 나탈리는 이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토드는 과연 무슨 일을 한 것일까? 의문이 점점 쌓여간다. 그 사이로 조금씩 단서가 흘러나온다.

 

나탈리를 가장 찾고 싶어하는 사람은 당연히 제이크다. 하지만 나탈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이들의 정체는 마피아의 하수인이다. 잔혹한 킬러다. 그리고 경찰도 나탈리를 찾는다. 제이크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나탈리를 찾는다. 그에게 나탈리가 있는 곳을 말하라고 요구한다. 모두가 바라지만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와중에 제이크는 추억과 기억을 더듬어 단서를 하나씩 발견하고 비워져 있던 퍼즐을 하나씩 채워나간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탈리는 보이지 않는다. 믿었던, 알고 있던 사실이나 관계가 흔들리고 새로운 사실이 나온다. 어느 순간 나탈리가 과연 살아있는지, 실재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제이크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나탈리다. 하지만 그녀의 적들도 그녀를 원한다. 전형적인 미스터리 공식대로라면 제이크를 따라가서 나탈리를 찾겠지만 이 소설은 그 형식을 따라가지 않는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잘 짜인 구성은 역시 코벤이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들의 사랑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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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비용
유종일 외 지음,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엮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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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대통령 시절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단군 이래 최대 공사라는 4대강은 너무 흔한 것이었고, 가장 먼저 문을 연 것은 당연히 자원외교였다. MB 지지자들은 언론을 도배한 이 실적을 자랑스럽게 되풀이하면서 대통령을 잘 뽑았다고 자찬하기 바빴다. 4대강 공사가 한창일 때는 신문에 나온 4대강을 극찬한 교수의 사설을 오려서 놓아두기도 했다. 홍보용으로 만들어 놓은 보나 자전거 도로를 구경하신 분들은 잘 만들어놓았다고 좋아했다. 어떤 분은 이제 비가 많이 와도 물이 범람하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 말들 속에는 사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진실은 엄청난 비용이 투입되었고, 실제 효과는 더없이 많이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졸속으로 처리하면서 수많은 법을 무시하고 바꾸기까지 했다. 이 책은 바로 그 유산에 대한 끔찍한 기록을 담고 있다.

 

MB가 대통령을 하던 시절은 정말 기본이나 기준이 없었다. 누군가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이렇게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그 빤한 모습에 감탄했다. 분명하게 문제가 눈에 보이는데 이것을 그냥 무시하고 갈 수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이 소문과 사실 속에 엄청난 비리와 비용에 대한 말들이 나왔다. 하지만 단순히 말 뿐이었다. 나중에 감사를 했을 때 혹은 소송이 일어났을 때 분명하게 보여줄 구체적인 자료가 없었다. 대통령이 바뀔 때 엄청난 자료가 소각되었고, 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음모론이 득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비리와 비용에 대해 개괄적인 내용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국회 등에서 나온 자료를 바탕으로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읽으면서 받게 될 스트레스다. 수십, 수백 억이 아닌 최소 수십 조 원을 날려버린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보통의 정신 상태로 견딜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또 반드시 읽어야만 했다.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최근에 많이 나왔던 자원외교에 대한 엄청난 비리와 손실이다. 자원외교 협상은 부풀려서 요란하게 홍보했지만 성과를 냈다는 소식은 찾기 힘들었고, MB 정부가 세일즈 대상을 외국이 아닌 국민으로 정했다고 지적할 때 단순한 대국민 정치 이벤트 이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리한 투자의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자신들이 정당하게 계약을 맺었다면 국정감사에 계약서를 숨길 필요도 없을 것이고, 100년 뒤에 그 성과를 알 수 있다는 황당한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정당한 절차와 법에 따른 것이라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지만 이 과정이 수많은 의문과 비리로 점철된 이상 반드시 사실을 밝혀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 정권은 이명박근혜다. 자신들의 비리가 가득한데 과연 밝히려는 의지가 있을까? 지금까지만 봐서는 전혀 없다.

 

자원외교보다 더 문제가 많은 것은 4대강 사업이다. 공사는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지류 문제부터 보의 유지와 유속이 느려지면서 생긴 녹조 문제까지 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낙동강 오염으로 다른 곳에서 식수를 끌어와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니 엄청나다. 이 공사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턴키로 공사를 진행하면서 수많은 비용을 낭비했으며 이 공사로 얻고 있거나 얻게 될 이익보다 앞으로 들어갈 비용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나온 MB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업적들을 홍보하는 낯 두꺼운 행동을 보여주었는데 정말 대단한 철면피 신공이다.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낯을 들고 다니는 현실은 우리의 수준이기도 해서 씁쓸하기까지 하다.

 

MB의 무식한 추진력의 하나가 바로 제2 롯데 월드다. 자신의 의견을 반대한다고 공군 참모총장을 바꾸는 강수를 두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는데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지면서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뭐 이 정도는 역대 정권에서 한두 번 정도는 있었던 일이니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해도 국가 안보와 교환할 정도는 아직까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영부인의 한식 세계화의 금액은 상대적으로 소액이지만 전형적인 홍보성 행사에 비용 낭비임을 보여줄 때 방향보다 과정에서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의도로 포장한 영부인 홍보 행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문화재 앞에서 벌어졌던 만찬행사가 갑자기 생각나는데 정말 법이나 규정은 이 부부 앞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분노가 엄청 자랐다가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되었다. 나의 한계를 넘어간 것이다.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한때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MB니까, MB인데 어쩔 거야,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책처럼 좀더 세부적으로 MB의 비용을 파악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문제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현재 정권에서는 더 날카롭게 혹은 더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친일이 청산되지 않았지만 기록되었던 것처럼 최소한 기록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청산할 기회를 잡아야 한다. MB 정권의 실정에 대한 대담을 담은 글은 개괄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만들었고, 그 한계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런 종류의 책들이 더 많이 나오고, 더 많이 읽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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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문이 있었다
태극문 20주년 기념위원회 엮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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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협의 시작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좌백의 <대도오>를 꼽는다. 그런데 이 <태극문>을 효시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용대운은 구무협 시대의 작가였다. 야설록이란 이름으로 몇 권의 무협을 내었고, 본인의 필명의 몇 권을 낸 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공장무협 시대의 내막을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 이것은 하나의 일상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태극문>이란 무협으로 돌아왔다. 이전처럼 만화방용이 아닌 서점용으로 말이다. 그때 많은 무협 팬들은 열광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몇 년 동안 이어진 출판사 뫼의 성공은 바로 이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때 출판사 뫼에서 나온 무협은 믿고 보는 책이었다. 기존 무협과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 당시 PC통신을 달구었다. 하이텔 무림동은 그 중에서 최고였다. 나도 이때 여기서 많은 정보를 얻었고, 이 당시 출간된 뫼의 무협을 열심히 모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뫼도 몰락했다. 작품의 질이 떨어지고, 공장무협처럼 하나의 필명으로 여러 작가들이 소설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공장무협의 대명사였던 사마달처럼 말이다. 무협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가들에게 이것은 배신과 다름없는 일이다. 그렇게 하나의 무협 대명사가 사라졌다. 이 책은 좌백의 글을 통해 그 이면의 역사를 짧고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반가운 대목이다.

 

미친 듯이 읽은 <태극문>이지만 이 책은 고룡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때 고룡 작품의 표절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실제 고룡의 작품을 읽었을 때 세부적인 묘사는 다르지만 기본 줄거리는 크게 변함이 없어 표절을 주장한 사람의 말에 공감했다. 그 당시 무림동에서 작가와 독자들이 다투면서 탈퇴하고 절필 등을 선언한 사건도 있었다. 그 영향인지 지금도 문피아에서는 작품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요즘은 거의 들어가지 않지만 GO무림 시절에는 이 규칙이 상당히 황당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표절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만약 표절이 아니라면 명확하게 이 부분을 집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에 글을 쓴 작가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용대운, 좌백, 이재일 등은 모두 좋아하는 작가다. 이들의 작품은 모두 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 세 작가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완성하지 않고 있는 작품들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다시 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후속작들을 내고 있지만 팬들로 하여금 절필로 인한 주화입마를 수차례 경험하게 한 전력들이 있다. 부디 글을 계속 써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주길 바란다. 최근에 다시 중간부터 읽고 있는 <군림천하>가 28권까지 나왔는데 아껴가면서 읽고 있다.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다. 이들 외에 전성기 뫼의 작가들이 판타지 등으로 전업해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도 있는 모양인데 최근 무협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신작을 잘 모른다. 언젠가 한 번 리스트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단숨에 읽으면서 가장 반가웠고 재미있었던 것은 역시 뫼의 전성기 시절 이야기다. 잘 몰랐던 이야기와 반가운 작가들의 글이다. <태극문>에 헌정한 진산의 <태극비전>은 재밌었고 반가웠다. 그녀가 얼마나 무협에서 멀어진 삶을 살았던가. 그리고 하이텔 무림동 이야기는 아련한 기억 속 추억을 불러왔다. 미친 듯이 텍스트 파일을 다운 받아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당시 게시판에 올라온 수많은 글들이다. 감상이다. 90년대 이 글들은 이전 무협에 대한 수많은 애증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무협을 읽었던 고수들의 감상과 비판이다. 만화방에서 도서대여점을 거쳐 이제 이북으로 변하고 있는 시장을 생각할 때 용대운의 대담에서 나왔듯이 좋은 글을 위해 많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작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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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의 아이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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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을 읽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1990년 4월 고분샤에서 처음 나왔을 때 제목이 <도쿄(워터프런트) 살인 만경>이었고, 1994년 10월 문고로 나오면서 <도쿄 시타마치 살인 만경>으로 개제되었다. 지금 같은 제목은 2011년 9월에 바뀌어졌다. 한 권의 책 제목이 세 번이나 바뀐 것이다. 가끔 번역본이 이렇게 여러 번 바뀌어 나오는 것을 보았지만 단행본이 세 번씩이 바뀐 것은 처음 본다. 더 찾아보면 적지 않을 수 있지만 미야베 미유키를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물론 이 책이 나올 당시 그녀의 지명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듯하다. 세 번째 장편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그녀의 이름을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듯하지만.

 

구성이 그렇게 복잡한 소설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고, 사건을 복잡하게 꼬거나 비틀지 않는다. 제목처럼 형사의 아들 준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지도 않는다. 만약 준이 살인 사건을 해결했다면 소년 명탐정류의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용의선상에 올라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등장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약간 어린 티가 나지만 준과 신고의 등장은 무거울 수 있는 연쇄살인사건에 조금은 무게를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소설의 소재 중 가장 중요한 도고 씨의 <화염>을 통해 2차 대전 끝 무렵에 있었던 참상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아이와 함께 사타마치 강을 구경하던 한 엄마가 토막 시체 일부를 발견한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혼한 아버지 야키사와 미치오와 함께 도쿄 서민 동네 사타마치로 이사 온 준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아주 좋은 가정부 할머니 하나와 만난다. 이 조용한 동네에 나쁜 소문 하나가 돈다. 어느 집에서 살인이 벌어졌다, 젊은 아가씨가 살해됐다는 소문이다. 그 대상은 고급 2층집이다. 이곳이 바로 유명한 화가인 도고 씨의 집이자 아틀리에다. 준과 신고는 도고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 그러던 어느 날 준은 도고의 집에 들어가 진짜 <화염>을 본다. 엄청난 작품이다. 이 작품에 엮인 사연을 듣게 된다.

 

준의 아버지 미치오는 형사다. 토막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탐문 수사 결과를 가지고 단서를 하나씩 모은다. 형사의 감이 발동한 탓인지 토막 시체의 일부를 발견한다. 아직 시체의 정체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범인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온다. 사체의 다른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 것이다. 한 명인줄 알았던 시체가 두 구가 된다. 사체가 더 나오고, 단서가 더 모이지만 범인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단기간에 해결될 사건이 아니다. 처음에는 자극적인 사건 탓에 언론도 난리였지만 이제는 시들해졌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는 아직도 계속 중이다.

 

토막 살인사건이란 소재를 다루고, 2차 대전 끝 무렵의 무시무시한 폭격도 하나의 중요한 소재지만 전체적으로 그렇게 무겁지 않다. 각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살아있어 간략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형사의 아들 준이 보여준 직관과 관찰은 아버지의 영향인지 또래에 비해 탁월하다. 하지만 가장 정확하게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인물은 역시 미치오다. 수사의 진행 방향을 따라가면서도 다른 방향을 돌아본다. 여기에 하나 할머니도 멋진 역할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통찰력은 미스 마플의 향기가 살짝 풍긴다. 준과 하나 할머니 콤비로 시리즈가 나왔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

 

토막 살인사건에 가려져 있지만 또 하나 중요한 사회적 논쟁거리를 담고 있다. 바로 미성년자들의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폭력과 살인의 강도 문제다. 미치오가 하나의 사건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 성인과 미성년자의 살인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미성년자의 경우 끔찍하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주제 중 하나가 미성년자 살인과 폭력이다. 한때는 가해자의 시선을 따라갔는데 이제는 피해자 가족의 시선을 더 많이 비춰준다. 물론 이 소설은 이 시선과는 상관없다. 하지만 그 한 면을 잘 보여준다. 준이 살고 있는 마을이 무대인 작품은 많은 듯한데 준이 다시 등장하는 소설은 없는 것 같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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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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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세계문학상 대상작이다.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다니 제목부터 특이하다. 낯익은 작가 이름인데 한때 판타지 소설 쪽에서 유명했던 그가 맞다. 고등학교 때 쓴 <바람의 마도사>란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고, 그 후 몇 편의 판타지 소설을 쓴 경력이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의 소설을 읽은 것은 <피리새>다. 다른 초기작을 사놓고 어딘가에 쌓아두고 있기는 하다. 이름으로 검색하니 깜빡 잊고 있던 작품들도 나온다. 제대로 그의 작품들을 읽은 적이 없어 쉽게 판타지 소설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첫 작품과 너무 다른 이야기 방식이라 놀랐던 것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학상까지 받았다. 이 변화가 놀랍다.

 

이 소설에서 이름이 제대로 나오는 것은 딱 하나 있다. 바로 오리에게 잡아먹힌 고양이 호순이다. 호순이의 복수를 하려는 노인도, 이 일을 돕는 두 명의 남녀도, 그의 아들이나 손자도 이름이 불린 적이 없다. 이 익명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단지 마지막에 서로의 이름을 알려준다고 하지만 실제로 불린 적은 없다. 우리가 너무 쉽게 통성명을 나누는 세상에 살다 보니 이런 관계가 이상하게 보인다. 하지만 실제 이름을 알려준다고 해도 그것을 가슴 속에 담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필요에 의해 이름을 기억하고 부를 뿐이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그런 관계였다.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에 의해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 말이다.

 

등장인물이 몇 명 없고, 이야기 구성도 간단하다. 위에서 말한 사람들이 등장인물 전부다. 아! 한 명 더 있다. 엑스트라처럼 오리만 열심히 찍고 있는 그들을 보고 호기심 때문에 그들의 직업을 물어본 할머니 한 분 있다. 물론 불광천 주변을 오가는 사람이나 여기저기에서 부딪히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들은 단지 배경일 뿐이다. 어쩌면 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사람들보다 불광천에 서식하는 오리들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실제 할아버지의 의뢰에 의해 호순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기 위해 매일 일당 5만 원에 오리 사진을 찍으니 말이다.

 

이야기는 말도 되지 않는 의뢰를 다룬다.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고양이 호순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는 것이다. 이 일을 하기 사전 단계로 할아버지는 불광천에 서식하는 오리들의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자신이 호순이를 잡아먹은 오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의 첫 생각은 일당 5만 원은 좋지만 과연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며칠 동안은 돈 때문에 이 일을 하지만 정상적인 생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이 일을 시킨다. 전직 장르소설 작가인 화자도 이 일을 고민하지만 꾸준히 한다. 이 일이 이어지면서 이 일에 동참한 사람들의 사연이 짧게 나오고, 이런 저런 사건도 생긴다. 이 과정을 작가는 큰 과장없이 현실적으로 다룬다. 비현실적인 것으로 꼽으라면 너무 쉽게 이 일에 대한 회의와 미안함을 가지는 것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었다. 실제로 작가가 판타지 소설가였다. 얼마나 그 경험이 현실적으로 담겨 있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장르 소설가들이 알게 모르게 사라졌다. 최소한 한국에서 판타지 소설가에서 일반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성장한 작가는 없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이 발전과 성공은 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전 경력이 그의 문학에 상상력을 더해주면서 일반 작가와 차별화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더 황당한 설정으로 더 강한 블랙 코미디를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김근우 작가의 세계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고 오랜만에 그의 소설을 읽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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