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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의 아이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해설을 읽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1990년 4월 고분샤에서 처음 나왔을 때 제목이 <도쿄(워터프런트) 살인 만경>이었고, 1994년 10월 문고로 나오면서 <도쿄 시타마치 살인 만경>으로 개제되었다. 지금 같은 제목은 2011년 9월에 바뀌어졌다. 한 권의 책 제목이 세 번이나 바뀐 것이다. 가끔 번역본이 이렇게 여러 번 바뀌어 나오는 것을 보았지만 단행본이 세 번씩이 바뀐 것은 처음 본다. 더 찾아보면 적지 않을 수 있지만 미야베 미유키를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물론 이 책이 나올 당시 그녀의 지명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듯하다. 세 번째 장편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그녀의 이름을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듯하지만.
구성이 그렇게 복잡한 소설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고, 사건을 복잡하게 꼬거나 비틀지 않는다. 제목처럼 형사의 아들 준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지도 않는다. 만약 준이 살인 사건을 해결했다면 소년 명탐정류의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용의선상에 올라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등장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약간 어린 티가 나지만 준과 신고의 등장은 무거울 수 있는 연쇄살인사건에 조금은 무게를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소설의 소재 중 가장 중요한 도고 씨의 <화염>을 통해 2차 대전 끝 무렵에 있었던 참상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아이와 함께 사타마치 강을 구경하던 한 엄마가 토막 시체 일부를 발견한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혼한 아버지 야키사와 미치오와 함께 도쿄 서민 동네 사타마치로 이사 온 준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아주 좋은 가정부 할머니 하나와 만난다. 이 조용한 동네에 나쁜 소문 하나가 돈다. 어느 집에서 살인이 벌어졌다, 젊은 아가씨가 살해됐다는 소문이다. 그 대상은 고급 2층집이다. 이곳이 바로 유명한 화가인 도고 씨의 집이자 아틀리에다. 준과 신고는 도고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 그러던 어느 날 준은 도고의 집에 들어가 진짜 <화염>을 본다. 엄청난 작품이다. 이 작품에 엮인 사연을 듣게 된다.
준의 아버지 미치오는 형사다. 토막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탐문 수사 결과를 가지고 단서를 하나씩 모은다. 형사의 감이 발동한 탓인지 토막 시체의 일부를 발견한다. 아직 시체의 정체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범인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온다. 사체의 다른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 것이다. 한 명인줄 알았던 시체가 두 구가 된다. 사체가 더 나오고, 단서가 더 모이지만 범인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단기간에 해결될 사건이 아니다. 처음에는 자극적인 사건 탓에 언론도 난리였지만 이제는 시들해졌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는 아직도 계속 중이다.
토막 살인사건이란 소재를 다루고, 2차 대전 끝 무렵의 무시무시한 폭격도 하나의 중요한 소재지만 전체적으로 그렇게 무겁지 않다. 각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살아있어 간략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형사의 아들 준이 보여준 직관과 관찰은 아버지의 영향인지 또래에 비해 탁월하다. 하지만 가장 정확하게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인물은 역시 미치오다. 수사의 진행 방향을 따라가면서도 다른 방향을 돌아본다. 여기에 하나 할머니도 멋진 역할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통찰력은 미스 마플의 향기가 살짝 풍긴다. 준과 하나 할머니 콤비로 시리즈가 나왔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
토막 살인사건에 가려져 있지만 또 하나 중요한 사회적 논쟁거리를 담고 있다. 바로 미성년자들의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폭력과 살인의 강도 문제다. 미치오가 하나의 사건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 성인과 미성년자의 살인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미성년자의 경우 끔찍하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주제 중 하나가 미성년자 살인과 폭력이다. 한때는 가해자의 시선을 따라갔는데 이제는 피해자 가족의 시선을 더 많이 비춰준다. 물론 이 소설은 이 시선과는 상관없다. 하지만 그 한 면을 잘 보여준다. 준이 살고 있는 마을이 무대인 작품은 많은 듯한데 준이 다시 등장하는 소설은 없는 것 같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