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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인문학 -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
다이앤 애커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천천히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책이다. 가볍게 읽을 것이란 생각으로 책을 펼치면 새벽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냥 휙~ 하고 지나갈 뿐이다. 함축적인 문장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문장이 될 뿐이다. 그래서 다시 앞으로 넘어와서 곱씹어 읽은 적도 많다. 물론 그냥 스쳐지나간 문장은 더 많을 것이다. 새벽에 대한 단상을 담은 조금은 가벼운 책 정도로 생각하고 덤벼들었던 나의 오판이 읽는 내내 혼란을 가져왔다. 아무 곳이나 가볍게 펼쳐 읽은 대목은 분명 쉬운데 연속으로 읽으니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탓에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아무 곳이나 펼치니 새롭게 다가온다.
새벽. 이제는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많지 않다. 작년 말 해돋이 보기 위해 동해에서 일어난 것이 새벽을 맞이한 가장 최근의 일이다. 지난 설에 제사 때문에 조금 일찍 일어났지만 이때는 새벽을 감상할 시간도 느낄 여유도 없었다. 졸린 눈으로 제대로 펴지지 않은 몸을 움직였을 뿐이다. 생활 방식이 점점 야행성으로 바뀌면서 새벽은 아련한 기억 속으로 사라진 듯하다. 오래전 해뜨기 전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두고 있는 나의 기억과 너무 다른 모습이다. 겨울이라 더 일어나기 싫은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분량 중 봄이 가장 많은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새벽을 사계절로 나눠 이야기한다. 봄이 가장 긴 분량이고, 그 다음이 여름이다. 다른 계절은 비슷한 분량이다. 봄이 가장 긴 것은 왜일까 하는 의문이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다. 위에 쓴 이상한 이유가 아닌 진짜 이유를 알고 싶지만 이에 대한 글은 없다. 아마 작가의 경험과 사유가 봄의 새벽과 가장 많이 맞아떨어진 것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하나의 소제목에 달린 분량도 여기가 가장 길다. ‘두루미들을 애도함’이란 장을 읽으면서는 이 책의 정체에 의문이 생겼다. 그러다 영어 원제를 보니 알 것 같았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장소다. 봄은 플로리다 팜비치, 여름은 뉴욕 이서커, 가을과 겨울은 특별히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이 장소들은 작가가 새벽을 맞이하고, 자신의 감각을 일깨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가 관찰한 동물이나 식물 등이 바로 지역, 날씨 등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이런 이유만으로 이런 글이 나오지는 않는다. 세심한 관찰과 관련 분야 연구와 깊은 성찰이 동반되어야만 가능하다. 두루미, 개미, 벌, 달팽이, 거미, 딱따구리, 찌르레기 등에 대한 글들을 보면 작가의 성찰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몇 가지 중요한 키워드가 생각난다. 모네, 호쿠사이, 세이 쇼나곤 등이다. 조금 더 많이 늘어놓을 수 있지만 이 단어들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들이다. 모네에 대한 글은 호쿠사이가 유럽 화풍에 끼친 영향을 떠올려주고, 모네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면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는지 잘 보여준다. 여기에 새벽은 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에 세이 쇼나곤은 그녀가 느꼈던 새벽의 풍경과 감각을 작가가 크게 공감하면서 몇 번 인용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문화가 곳곳에 나오는데 심미적인 문화가 작가의 성찰 등과 잘 맞는 모양이다. 서양의 일본 문화 찬미가 이 책 속에서도 가끔 보인다.
참 다양한 소재를 새벽과 연결시켰다. 문학, 예술, 종교, 역사, 언어학, 기상학, 생물학 등이 모두 나온다. 사계절과 엮이면서 더 풍성해진다. 덕분에 정신을 빠짝 챙기지 않으면 그냥 흘러갈 뿐이다. 나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잊고 있던 새벽의 아름다움과 의미다. 일회성으로 그친 일출 보기가 아닌 삶의 변화가 더 필요하다. 쉽게 고쳐질 수 있는 습관은 아니지만 조금 더 빨리 일어나려고 노력은 해야겠다. 밤과 새벽이 교차하던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 그리고 이제야 문득 왜 새벽의 인문학이란 제목이 붙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의 희미한 머릿속이 조금은 새벽빛이 들어온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