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놈들 전성시대 - 우석훈의 대한민국 정치유산 답사기
우석훈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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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C급 경제학자라고 부르는 우석훈의 정치 에세이다. 이 에세이는 그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들을 적은 글이다. 이전에 민주노동당 당원이었고, 녹색당 창당을 위해 뛰어다녔던 그가 보수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으로 들어갔다. 이 자리는 정말 한직이고, 잠시 쉬었다가 가는 자리라고 한다. 돈을 많이 주지 않지만 정무직이라고 하는데 하는 일이 없다. 부원장이란 직함은 있지만 예산권도 인사권도 없다. 힘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도 한정적이다. 이런 자리에 그가 왜 갔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그곳에서 실제 일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은 현실 정치의 실체 중 한 면을 아주 잘 보여준다. 왜 민주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국 경제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경제 정책은 교묘한 언론 작업으로 그 실체를 왜곡시키고 사람들을 세뇌시킨다. 얼마 전 있었던 연말정산 파동도 월급쟁이 기자들과 관련되지 않았다면 과연 그렇게 많이 언론에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어용경제학자들은 자유화를 외치지만 그것은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유화일 뿐이고, 부의 분배보다 성장이 우선이란 주장은 자본의 거대한 탐욕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작년의 세월호 사건이나 이번에 터진 성완종 리스트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사건들을 두고 벌어지는 언론의 보도 형태는 왜곡과 거짓으로 가득해서 기레기라는 단어에 딱 맞는 수준이다.

 

언론을 통해 뉴스를 볼 때면 언제나 분노하게 된다. 순간적인 분노와 미움이 자꾸 쌓여 정치 문제에서 시선을 돌리려고 한다.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할 것들, 만들고 싶은 이야기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설렘.” 등을 더 많이 생각하면서 우리가 가진 미움의 에너지를 모은 ‘잡놈들’을 몰아내자고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심한 박근혜에 집중된 미움과 다른 것들에 대한 무관심을 없애자고 한다. 실제 생활에서 그 이름을 듣고 무덤덤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 이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뉴스를 보지 않았다는 경상도 보수 어른의 그것과 닮아 있는 감정이다. 실생활 속에서 이 감정을 끊임없이 되뇌면서 몰아내려고 하지만 역시 쉽지는 않다.

 

그가 새정치민주연합에 들어가게 된 것은 전국시대 형가와 관련이 있다. 형가의 노래가 곳곳에 인용되고 그의 의지와 삶이 이 글의 중요한 요소이다. 실패한 자객이자 협객인 형가를 결혼 전 그렇게 많이 말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흥미로웠다. <삼국지> 속의 강유와 육손에 대한 글도 마찬가지다. 이문열의 <삼국지>에는 강유에 대한 부분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어릴 때 읽은 일본판 <삼국지>에는 강유의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는 이야기 속에 아주 잘 나온다. 저자가 프랑스 명재상 콜베르나 강유 등을 인용한 것은 한국에 이런 인물이 없고 나타나길 바라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런 인물이 되겠다는 야심이 그에게는 없다. 아쉬운 대목이다.

 

많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당직자에 대한 글이다. 새누리당의 당직자는 당내 선거에 개입하는 즉시 제명이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가만히 있는 당직자는 선거 후 곧바로 사라진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조직의 힘과 결집으로 대변된다. 법에서 인정되는 당직자는 99명인데 새누리당은 이들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는데 반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들을 자신들의 세력 아래 두면서 그 힘을 분산시킨다. 좋은 자원을 불안한 일자리 등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정책을 만들고 틀을 짜서 국민들의 시선을 끌고 마음을 움직이는데 새누리당에 비해 절대적인 약세다. 제대로 된 시스템 부재는 늘 안타깝고 아쉽다. 그것이 제1야당이라는 사실에서는 분노를 느낀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당원이 거의 없는 모양이다. 당비 천 원이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제대로 된 당이라면 일정수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기형적인 정치구조는 당원이 없어도, 아니 없어야 더 좋은 모양이다. “당원이 없으니 공천권이라는 말이 나오고, 그걸 둘러싸고 친소 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외부에 계파 문제로 알려진 문제의 원인으로 정상적인 당원이 별로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있는 당원들도 이미 중장년을 넘었다고 한다. 새로운 피가 당에 활력을 불어넣기보다는 기득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를 보면서 늘 답답하고 화가 났던 것에 대한 하나의 답을 얻은 느낌이다.

 

국민행복시대가 국민‘항복’시대로 바뀌었다는 말은 지금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정치에 대한 혐오를 가지지만 좀더 나은 인물을 뽑기보다는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로 물타기를 하면서 새누리당이나 기존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상한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더 앞서고,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기보다는 언론이 보여주는 틀 속에 갇혀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잘 알고 있고, 그들이 정치를 잘 한다고 말한다. 아마 나도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저자가 말한 미움과 증오는 그들처럼 이성보다 감정이 더 앞서면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이것을 제대로 헤치고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 정치의 한 면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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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진의 종횡무진 미술 오디세이 - 만화로 들려주는 진짜 미술 이야기
장우진 글.그림 / 궁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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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미술 관련 책들을 읽는다. 그 책들을 읽을 때면 뭔가 알 듯하다가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금방 잊는다. 학창 시절 교양 과목으로 한 번 수업을 들었지만 역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나에게 미술은 늘 이런 식이었다. 아마 이 책도 그런 책 중 한 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책들과 차별화되는 것이 있다. 바로 만화로 미술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덕분에 활자에 의한 강박은 사라졌다. 많은 자료 사진과 이것을 패러디한 그림과 만화가 상대적으로 더 쉽게 접근하게 만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재미난 만화나 그림들이 상당히 많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다.

 

모두 다섯 장으로 쓰여 있다. 미술의 정의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묻는다. 미술의 정의가 과연 가능한가? 라고. 사실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하여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다. 다음부터 나오는 이야기들은 미술을 정의하기 위한 수많은 방식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미술의 좁은 개념을 넘어 현재까지 다루어지고 있는 미술이론으로 그 폭을 넓혔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하여 현대의 포스터모더니즘까지 말이다. 그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혹은 본 미술이론과 미술품들이 나온다. 일반적인 미술 서적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그 개념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하지만 가끔은 나의 이해 부족 때문인지 명확한 실체가 보이지 않은 경우도 있다.

 

미술과 건축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낸 대목은 흥미로웠다. 멋진 건축물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많은 현실에서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하지만 만화로 가볍게 풀어낸 미술 이야기라는 한계 속에서 간단하고 표면적인 이야기만 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논쟁거리를 깊게 다루지 않고 스쳐지나가듯 다룬다. 이것은 분명 이 책의 한계지만 이런 분야까지 미술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 범위를 충분히 확장시킨 것이다. 행위 예술이나 설치 미술 등에만 머무르고 있던 예술의 한계가 더 커졌다. 거시적인 미술의 범위 확장은 곧바로 인식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시적으로는 선, 면, 명암, 색, 구성, 착시 등을 다룬다. 각 소재의 설명은 미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냥 무심코 보고 지나가거나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던 것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회화에서 가능한 것이 실제 건축물에서 불가능한 것도 있는데 이런 그림은 그냥 봐서는 알 수 없다. 좀더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여기에 해석이 끼어들 경우 하나의 그림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해석에 매달리면 그림 자체가 지니고 있는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마음이 사라진 곳에는 이성만 남는다. 미술 감상이 이제 기호의 해석으로 바뀐다. 나무는 보지만 숲을 놓칠 수도 있다.

 

작가는 말한다. ‘미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다’라고. 자연의 모방에서 시작한 미술은 이제 그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미래의 미술이 어떤 모습일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래를 더 잘 보기 위해서는 언제나 우리의 과거를 함께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미술 서적이 나와 고대부터 현재까지 미술이론을 보여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에 갇힌 미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액자도 마찬가지다. 미술이, 예술이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미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런 것들이 어쩌면 미술을 더 멀리하게 만드는 요인일지도 모른다. 인종과 성별에 대한 문제 제기 또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곱씹어야 할 내용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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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춤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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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지만 난해한 소설집이다. 열아홉 편의 단편들이 각각 다른 분량과 분위기를 지녔는데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분량의 어떤 것은 상대적으로 많고, 어떤 것은 너무 짧아 어! 하는 순간 끝나기도 한다. 가끔은 그 결말이 명확한 실체를 보여주지 않아 그 불친절함에 화가 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열린 결말이지만 왠지 이야기를 중간에서 뚝 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 다른 단편에서 앞의 결말을 보고 연작인가?, 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이 책 끝에 나오는 ‘작가의 말’에 일부분 담겨 있다.

 

읽으면서 짝이 되는 연작이 아닐까 생각한 작품들이 몇 편 있다. 첫 작품 <변심>과 <오해>가 약간의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면 <충고>와 <협력>은 노골적으로 이어진다. <변심>에서 치밀한 설정이 뭔가를 보여줄 듯하다가 끝나 ‘뭐지?’ 하는 황당함을 느꼈다면 <충고>는 어떤 결말일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협력>에서 반전의 재미를 만끽했다. 반면에 <오해>는 <변심>이 보여준 치밀함과 장치들을 결코 넘지 못했다. <타이베이 소야곡>과 <화성의 운하>도 짝을 이루는데 영화에 엄청난 관심을 가졌던 시절에 너무나도 유명했던 에드워드 양을 모델로 썼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그의 작품 목록을 검색해봤다. 그 유명한 <고령가 살인사건>을 제외하면 잘 모르고, 본 영화는 더 없다.

 

짝을 이루는 작품은 아니지만 SF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들도 눈에 들어온다. <주사위 7의 눈>이나 <소녀계 만다라>나 <도쿄의 일기> 등이다. 무의미한 토론을 뒤집는 <주사위 7의 눈>의 주장이 흥미로웠고, <소녀계 만다라>에서 만물이 조금씩 움직이는 세계에 사는 학생들의 모습과 일상에서 놀라운 상상력을 봤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욕이 나왔다. 이 불친절함이란... 미래의 일본을 상상하면서 쓴 글이 섬뜩하면서도 재미있었던 <도쿄의 일기>는 얼마나 지금 일본의 현실을 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둘이서 차를>이나 <나와 춤을> 같은 작품은 모델이 되는 인물이 누굴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물론 답은 작가의 글 속에 있다. 음악과 춤이 짝을 이룬다는 점과 그 속에 담긴 열정과 애정이 쉽게 몰입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변명>과 <극장에서 나와>는 이야기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었고, 그들의 변화가 순간적으로 가슴 깊이 와 닿지 않았다. <성스러운 범람>과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나>와 <꼭두서니 빛 비치는> 등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취향과 맞지 않아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유>의 황당한 이야기가 가볍게 읽혔던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양한 설정과 방식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었지만 그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그리움과 열정은 같다. 분량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쓴 듯한 느낌이다. 기억과 추억을 더듬어 새로운 향수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볼 때는 노스탤지어의 작가라는 명성이 절대 부끄럽지 않다. 인간과 동물이 정보를 나누고, 교감을 하고,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고, 갑자기 이야기가 뚝 끊긴다. 이렇게 열아홉 편은 독자의 취향을 저격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열여덟 편이다. 나머지 한 편은 표지에 있는데 조금 읽기 불편하다. 다른 단편집과 이어지는 작품들도 있는데 저질 기억력과 아직 읽지 못한 단편들로 그 재미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온다 리쿠의 작품 세계를 잘 표현해주는 작품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고? 읽으면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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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350만원 들고 떠난 141일간의 고군분투 여행기
안시내 지음 / 처음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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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만원 들고 떠난 141일간의 여행이라니 대단하다. 그녀가 다녀온 나라를 보면 이 금액으로 여행을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비행기 가격만 해도 350만원이 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책을 펼치면 그녀가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가격으로 발권했는지 보여준다. 4년 간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일정을 짜면서 자신만의 가이드북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지간한 열정과 준비가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여행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떠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부분이 더 대단한 것인지 모른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갈 수 없는 수많은 변명만 늘어놓는 것을 보면 더욱더.

 

적은 금액으로 가는 여행은 풍족해질 수가 없다. 숙소와 식사와 교통수단 등이 모두 최하로 갈 수밖에 없다. 인도를 떠나 모르코로 가면서 카우치서핑으로 숙박비를 줄였지만 그외 비용은 계속 지출되어야 한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것이 아마도 현지인처럼 먹고 사고 절약하는 여행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는 수많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도움이 있었다. 이 여행기를 풍족하게 만들어주고 나도 떠나고 싶다고 마음먹게 만든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이런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일 것이다. 실제 낯을 많이 가리고 적극적인 성격이 아닌 내가 이 책의 저자처럼 생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에어아시아로 도착한 말레이시아. 이곳은 인도로 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만난 인연이 없을 수는 없다. 그리고 도착한 인도. 인도 여행에 관한 방송이나 책을 읽을 때면 가고 싶은 마음보다 가지 않을 이유만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예전에 긴 시간이 생기면 꼭 가보고 싶었던 배낭여행지가 인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많은 변화다. 이곳보다 더 한 곳으로 남미를 꼽는 사람도 있다. 대충 알면서 괜히 겁만 먹은 것 같은데 계속해서 이런 책이나 방송을 듣는 것을 보면 그 바닥에는 그곳을 가고 싶은 열망이 아직 있는 모양이다. 실제 저자도 쉼 없이 인도의 나쁜 점을 말하지만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아마 그곳에서 만난 너무나도 인정 많고 좋은 사람들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가 몇 나라를 돌고 어떤 것을 보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실제 그런 내용을 그렇게 많이 다루지도 않는다. 머문 나라만 따지면 열 나라도 되지 않는다. 말레이시아, 인도, 모로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이집트, 태국 등이 전부다. 패키지로 도는 사람들이라면 10일 만에 유럽 10개국을 그냥 도는 사람도 있다. 비교되는 여행이다. 아니 그녀의 여행은 관광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돈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른다. 하루 쓸 예산을 정해놓고 싼 숙소를 구하러 다니고, 가장 저렴한 현지 식당에서 많은 이물질과 함께 식사해야 했던 일들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그것은 더 분명하다.

 

적은 금액과 긴 여행을 무사히 다녀왔지만 이것은 어쩌면 행운이 많았던 덕분이지 모른다. 저자 자신도 철저한 준비와 천운이 따랐다고 말한다. 무식하게 용감했고 무모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겁쟁이인 것 같은 자신의 간절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너무나도 넓고 깊은 강을 건너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큰돈이 아닌 여행 경비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치열하게 노력했는지 말할 때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늘어놓는 안되는 이유의 변명들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먼 곳을 과감하게 다녀오는 회사 직원들의 모습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책은 각 나라 각 도시에서 만난 친구들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풍경은 실제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 긴 여행에는 언제나 향수병이 찾아온다. 그녀도 그때의 외로움을 심하게 겪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좋은 친구들이 나타나 그 외로움을 씻어준다. 그리고 이 여행은 자신을 과시하는 목적으로 된 것도 아니고 멋진 풍경이나 문화재를 보기 위한 것도 아니다. 가장 핵심은 역시 사람들이다. 자신이다. 여행은 언제나 자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아플 때면 왜 이런 여행을 할까 하는 회의감이 들지만 낫게 되면 또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찾게 된다. 만약 여행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이 책 앞에 나오는 저자의 기록을 참고하면 된다. 물론 엄청나게 많은 다른 정보를 읽고 정리하면서 자신만의 가이드북을 만들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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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포로원정대
펠리체 베누치 지음, 윤석영 옮김 / 박하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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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높이 올라간 산은 지리산 천왕봉이다. 자주 올라간 산은 북한산이다. 한때 몇 달 동안 북한산을 자주 올라간 적이 있다. 처음 갔을 때 산 잘 타는 친구를 따라가다 쥐가 나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고생했지만 나중에 홀로 올라가면서 생각보다 쉽게 정상까지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몇 번 동안 나의 주말은 북한산, 관악산을 올라가는 것으로 아침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것은 아주 한시적이었다. 하지만 산을 올라가면서 느꼈던 그 기쁨과 즐거움은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회사에서 단체로 가까운 산을 올라가면 튀어나온 배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호흡이 엄청 가빠오지만 말이다. 이런 낮은 산의 짧은 경험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나의 경험은 이들에게 뒷동산을 가볍게 산책하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포로들은 케냐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지 않게 되면서 생명의 위험은 사라졌지만 가장 중요한 자유가 없어졌다. 이 포로수용소가 감옥 같은 밀착 감시 아래에 있는 곳은 아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의 결과를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이 수용소 생활이 축복일 수도 있었다. 많은 대문호들이 감옥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쓴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수용소에서 시험을 준비하고, 외국어를 배우고,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군의 특수성에서 비롯한 다양한 직업군 중에서 예술가도 있었다. 하지만 감옥과 달리 나갈 날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수용소 생활을 힘들게 만들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정체된 삶이 주는 무기력함에 빠져 있었다. 이런 삶에 열정과 의지를 북돋아주는 일이 생겼다. 바로 케냐 산 등반이다.

 

처음 이 책의 소개글을 읽었을 때 소설로 착각했다. 현실에서 수용소를 나와 등산을 한 후 다시 수용소로 돌아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열정과 의지라면 탈출해서 다른 곳으로 가면되지 않는가 하고. 그런데 이 놀랍고 황당한 일이 실제 발생했던 일이다. 포로수용소에 갇힌 세 명의 남자들이 케냐 산을 등반 한 후 다시 감옥으로 무사히 돌아와서 남은 기간을 보낸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 수용소를 탈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려준다. 몇 명의 탈주자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 있는데 처음에는 많이 공감했다. 하지만 이들이 케냐 산을 오르기 위해 어떤 사전 준비를 하고, 장비를 만들고, 식량을 모았는지 봤을 때 혹시 이들이 탈출을 시도했다면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물자가 제한된 포로수용소. 대규모 인원이 수용되면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탈출 외에 그들이 기획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무기력한 일상이다. 이때 저자는 눈앞에 드러난 케냐 산봉우리를 보게 된다. 그의 마음이 빼앗긴다. 황당하고 위험한 계획을 세운다. 그것이 바로 케냐 산 등반이다. 수용소에 갇힌 상태에서 그는 등반 준비를 한다. 만년설이 깔린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두툼한 옷이나 피켈이나 아이젠, 텐트 등의 등산 장비가 필요하다. 수용소가 그들의 등반을 응원할 리가 없는 상황에서 이 모든 물품을 그들이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몰래. 동시에 같이 갈 동료도 모아야 한다. 첫 동료로 의사인 귀안을 맞이했지만 세 번째 동료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의 초반부는 바로 이런 준비 과정과 수용소 풍경을 묘사하는데 그들의 열정과 의지가 얼마나 단단하고 대단한지 잘 드러난다.

 

어렵게 세 번째 동료로 엔초를 받아들였다. 이제 그들은 준비한 물품들을 들고 수용소를 벗어나 케냐 산을 향해 걸어간다. 원래 일정은 14일 정도였는데 실제는 18일 정도 걸렸다. 정상적인 체력에 풍부한 물품을 지원받았어도 성공할 확률이 그렇게 높지 않은데 그들은 용기 있게 도전했다. 이 용기의 일정 부분은 몰라서 생긴 것이다. 책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지만 그것이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잡혀 다시 수용소 감옥에 갇힐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직접 쓰레기 더미를 뒤져 힘들게 만든 장비들과 조금씩 아껴먹고 남겨둔 식량을 가지고 이들은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예상했던 낭만적인 모습은 금방 사라지고 난관들이 하나씩 등장한다. 그래도 그들의 의지와 열정은 꺾이지 않는다.

 

실제 그들이 처음 목표했던 바티안 봉은 오르지 못했다. 날씨도 준비된 물품도 그들의 체력도 모두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지원을 받은 등산가도 쉽지 않은 곳이 바로 이 바티안 봉이다. 하지만 이 바티안에 대한 그들의 도전이 무지에서 비롯했다고 해도 순수하고 위대한 일이다. 최선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차선은 달성했다. 아쉬움이 남지만 그들에게 가장 먼저 닥친 문제는 하산과 허기와 체력 저하 등이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힘겹게 걷는 것을 보면서 한때 지리산을 내려오면서 느꼈던 그 감정이 잠시 와 닿았다. 등산 용어를 잘 몰라 그 긴박감이나 상황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순간순간 드러나는 위험에는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황당하고 미친 듯한 등반이지만 ‘포로수용소의 고리타분한 삶에 대한 반항’과 ‘무기력함 속에서도 의지를 드러내 보인 행동’이었음을 나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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