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 카페
오정은 지음 / 디아망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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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누구나 겪는 주변의 물건이 사라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즉 살다가 양말 한 짝, 볼펜 한 자루 잃어버리는 일을 소재로 글을 썼다는 점이다. 여기에 전직이 의심스러운 78세의 할머니 김춘분 여사에 대한 설정이 아주 흥미로웠다. 물건이 사라지는 일과 그 물건이 나타나는 곳에 살고 있는 김춘분 할머니의 조합은 어릴 때 즐겨 읽었던 버뮤다 삼각지대의 미스터리를 떠올려주었다. 이런 설정들이 먼저 다가온 후 가볍고 경쾌한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빠르고 부담 없이 책을 넘기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SF, 판타지적인 설정을 제외하면 로맨스 소설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진지하고 무겁게 진행하는 것이 아닌 로맨틱코미디에 더 가깝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여주인공 기연이 있고, 주변에는 그녀와 연결된 부자집 아들이자 동창생인 우완과 붉은귀거북의 인연으로 그녀를 매혹시킨 카페의 주인이자 일명 미시시피로 불리는 남자가 있다. 여기에 감초처럼 등장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하는 김춘분 할머니가 있다. 이들은 기연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사라짐 때문에 연결된다. 아니 우완은 사라짐이 아니라 그녀의 생각이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와 그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남자들 생각이 나면서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닌가 하는 확신을 가질 정도다.

 

기연과 우완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앞부분에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면 중반에는 납치와 살인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이 결코 무겁게 진행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엉성하다. 코믹영화에 가끔 나오는 약간 떨어지는 악당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기연 주변에 모여 뭔가를 찾는데 그 비밀이 조금 황당하다. 아니 많이 황당하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이 사람에게 생겼고, 이것이 물건을 한동안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블랙홀은 당연히 기연이고, 화이트홀은 우완이다. 우완이 느낀 남자에 대한 감정들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알려주는 설정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설정을 아주 다양하게 사용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읽으면 상당히 재미있다.

 

라디오와 시나리오 작가를 한 이력 때문인지 문장은 경쾌하고, 장면전환은 빠르다. 곳곳에 유머 코드를 집어넣어 지루함을 막으려고 했다. 덕분에 좋아하는 장르가 아님에도 빠르게 읽었다. 엄청난 일들을 너무나도 쉽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 이 소설이 얼마나 판타지적인지 알 수 있다. 기연이 자신이 일시적으로 얻은 능력을 통해 벌이는 일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그리고 우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몇 가지 사건들은 노골적으로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20대의 사장도 놀랍지만 그 대신 대표이사로 추대된 인물은 더 놀랍다. 작가 자신도 이 사건을 두고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을 말하는데 의도적인 패러디라고 말하는 듯하다.

 

깊이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지만 소소한 정보와 지식들은 곳곳에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커피다. 제목부터 벌써 카페가 들어가 있지 않은가. 카페 주인 미시시피의 외가가 커피 농장을 경영하고, 그도 관심이 많다. 당연히 커피에 관한 정보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과 가공의 비율을 적절하게 조절해서 상황을 만들고, 이것을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독자가 고민할 거리를 원초적으로 제거했다. 아마 이런 내용과 구성들은 라디오 작가를 하면서 닦은 실력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주인공의 나이가 스물아홉 살로 정하고, 외로움을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만든 것을 보면서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살짝 떠올랐다. 상관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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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련
미셸 뷔시 지음, 최성웅 옮김 / 달콤한책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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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한 마을에 세 명의 여자가 살고 있다.”는 나에게 선입견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그 세 여자를 심술쟁이, 거짓말쟁이, 이기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것 단 하나를 말한다. 바로 지베르니 마을을 떠나는 것이다. 그들은 여든이 넘었거나 서른여섯 살이거나 곧 열한 살이 되는 나이다. 곧 열한 살이 되는 아이 파네트 모렐은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중간은 스테파니 뒤팽으로 가장 영악했으며 첫 번째 여자는 가장 단호했지만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 도입부는 읽는 내내 몇 번이나 뒤적이게 되었는데 하나의 이야기 속에 계속해서 이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정원 지베르니. 이곳은 모네의 수련 시리즈를 탄생시킨 마을이다. 이 마을이 바로 연쇄살인의 무대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중요한 소재는 바로 인상주의 화가 모네와 그의 작품 수련이다. 책을 읽기 전 모네가 현대 회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가 수련 시리즈만 30년 동안 그렸다는 것은 몰랐다. 한 명의 위대한 화가가 한 마을에서 30년 동안 같은 시리즈를 그렸다면 많은 사람들이 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관광객일 뿐이다. 실제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세 여자는 그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새벽에 한 남자가 살해당한다. 그의 이름은 제롬 모르발이다. 안과 의사이자 바람둥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지베르니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살인사건이 아니다. 새롭게 그 마을 경찰서장이 된 로랑스 셀레낙과 그의 비서격인 실비오가 이 사건을 조사한다. 기본적으로 이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을 다루는데 이 사이사이에 세 명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그림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파트네,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여선생 스테파니,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없는 노파가 이 경찰들의 수사와 뒤섞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읽으면서 뭔가 이상한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점의 변화가 갑자기 바뀐다. 경계가 모호한 부분이 자주 두드러진다.

 

제롬의 몸에서 발견된 엽서에 쓰인 글은 아라공의 시다. 제롬이 모네의 그림에 광적인 관심을 보였던 것이 드러난다. 하지만 고가의 모네 그림을 겨우 안과 의사가 살 수는 없다. 그리고 형사 앞으로 전달된 제롬의 정부인 듯한 여자들 사진이 의문을 더한다. 누가 그를 죽였을까? 사진 뒤에 적힌 숫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새벽에 넵튠이라 불리는 개와 돌아다니는 노파의 정체는 무엇일까? 혹시 그 노파가 범인일까? 파네트의 아버지는 누굴까? 스테파니는 제롬과 어떤 관계일까? 수많은 의문들이 교차하고 엮인다. 눈앞에 보이는 관계 속에서 범인과 이유를 찾으려고 눈을 부라린다. 그 답은 작가의 트릭 속에 꼭꼭 숨어있다.

 

세 여자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면 경찰서장 로랑스의 수사는 그 흐름의 중심에 있다. 그는 제롬의 엽서 때문에 학교에 왔다가 스테파니의 미모에 반한다. 그의 마음과 눈은 이제 스테파니를 향한다. 실비오가 단서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수사를 한다면 로랑스는 직관에 의한 수사를 한다. 이 둘의 조합이 생각보다 유기적이고 잘 어울린다. 형사들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수사를 할 때면 새로운 증거물이 나온다. 이 증거물은 파네트의 친구와 관계가 있다. 하루의 이야기 속에 이들이 모두 등장하여 하루의 일과를 마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 계속해서 모네와 그의 그림들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이 소설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새로운 의문을 던져준다. 모네의 숨겨진 그림이 또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사실 이 작품은 구성 자체가 하나의 트릭이다. 한 번 읽고 그 구성이나 숨겨진 설정을 파악하기는 무리다. 읽으면서 느꼈던 이상한 점들이나 전혀 느끼지 못한 어색함들이 잘 어우러져 한 편의 미스터리와 사랑이야기를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사랑의 열정과 광기에 대한 소설이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이 거대한 트릭에 대한 호불호가 떠오른다. 이전에 일본 미스터리에서 처음 이런 설정을 만났을 때 욕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것은 공정한 대결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었다. 이런 설정에 많이 관대해졌지만 미스터리로서는 점수를 그렇게 놓게 줄 수 없다. 하지만 마지막 쪽에서 품어져 나오는 사랑의 떨림과 기대와 흥분이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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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수업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판미동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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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녀의 소설이 많이 나왔던 시절이 있었다. 한창 인기 있을 때였을 것이다. 그 당시 나에게 그녀의 소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후 겨우 한 권 정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예상한 것 보다 좋았다. 절판된 책들을 헌책방에서 몇 권 더 구해놓고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 이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혹시 재간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출간연도를 확인하니 2011년이다.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한때 인기 있었던 작가의 신작을 십 수 년이 지난 후 만날 때면 가끔 이런 마음이 생긴다. 왜일까?

 

세례명 마테오. 그가 알 수 없는 자동차 사고로 죽은 아내에게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행복과 절망과 추악함과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맹인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의 에피소드, 학창시절의 종교 교육까지 성장기의 그는 약간 독특하지만 다른 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 노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들 다비데를 낳았다. 이때까지 그의 삶은 행복했다. 조그만 충돌이 있었지만 보통의 부부보다 적은 것이다. 아내는 또 다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이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자동차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으면서 악몽처럼 다가오고 그를 나락을 떨어트린다.

 

가장 행복했던 그를 파괴한 것은 그녀가 왜 죽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를 말한다. 자동차의 결함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자살할 이유도 없다. 타인들은 추측만 말할 뿐이다. 이 말들이 그를 더 황폐하게 만든다. 그가 무너진 것을 본 어머니도 죽어간다. 죽음이 이어지지만 그의 삶은 나락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새로운 여자를 만나도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뿌리박힌 아내와 아들의 죽음이 그녀들을 밀어낸다. 아버지의 표현에 따르면 천사 같은 여자가 나타나도 그는 의심하고 죄의식에 밀어내고 도망간다. 이 세월들을 죽은 아내에게 편지라는 수단을 통해 조용히 말한다.

 

아내의 죽음과 부모의 죽음이 이어진 후 그는 방황한다. 그러다 한 어머니의 사연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산 속 어딘가에 정착한다. 유망한 심장전문의였던 과거는 이제 사라지고 조용한 산속에서 자신의 내면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죽은 아내에게 쓴 편지들은 바로 이 여행의 산물이다. 그가 신에게,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들이다. 십오 년 동안 머물면서 그는 내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고 마음의 고요함을 찾았다. 이런 그의 삶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차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마도 나의 삶들이 조금은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내의 죽음 이후 자신이 잃은 것을 쫓아다녔다. 자신에게 없는 것에 집중했다. 중요한 것은 그 잃어버린 것이 일상의 나날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의 시간을, 부모님과의 시간을 계속해서 추억하고 복기한다. 이것은 그를 깊은 수렁으로 빠트리고 나락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방황은 이어진다. 직업도 새롭게 행운처럼 다가온 사랑도 모두 잃어버린다. 이런 사연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와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 간다. 그의 집착이 단순히 과거 속에서 그날들을 재생하는 것을 멈출 때 알 수 없던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그리고 행운의 유산이 찾아온다. 잔잔한 감동이 조금씩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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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제국
이토 게이카쿠.엔조 도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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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공저 내역을 가진 소설이다. 프롤로그만 쓰고 이토 게이카쿠는 죽었고, 그의 친구이자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엔조 도가 그 나머지를 썼다. 글을 쓴 분량만 놓고 보면 엔조 도가 거의 다 썼다. 하지만 이 소설의 거대한 얼개를 만든 것은 이토 게이카쿠다. 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세계가 이 소설 속에 그려져 있다. 대체역사소설을 기반으로 한 스팀펑크의 한 종류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굉장히 낯익다. 다른 소설들에서 빌려온 이름들이 많이 나온다. 주인공이 왓슨 박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곁에서 개인 컴퓨터 역할을 하는 죽은 자의 이름이 프라이데이다. 그 유명한 뱀파이어 헌터 반 헬싱도 나온다. 역사 속 인물과 소설 속 인물이 뒤섞여 있다.

 

처음 책 소개를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네크로맨서가 나오는 판타지 소설인가 하는 것이었다. 엔조 도가 쓴 소설을 생각하면 쉽게 읽을 수 없겠지만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지향한다는 말에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원래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이토의 문장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엔도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단순히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기보다 오마주와 패러디와 풍자와 철학적 사유를 집어넣어 정신 바짝 차리고 읽게 만든다. 오락적 요소가 곳곳에 심어져 있지만 낯선 세계의 풍경이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방해한다. 거의 끝 무렵에 그 재미를 누리기 시작했으니 조금 아쉽다.

 

기본 설정은 죽은 자들을 되살려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하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첩보물이다. 사체에 네크로웨어라는 프로그램을 뇌 속에 넣어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 죽은 자들의 법칙이 있다. 그 유명한 아시모토의 로봇 3법칙을 패러디한 것이다. 죽은 자들을 군인으로 사용하거나 경비로 사용하거나 단순하거나 위험한 노동에 투입하는 모습을 보면 로봇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 읽으면서 잠시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의 기억을 살짝 더듬었지만 저질 기억력 때문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많은 로봇을 다룬 소설에서 영혼의 문제를 다룬 것처럼 여기서도 역시 다룬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죽은 자의 제국을 만들려는 존재와 하나의 책을 뒤좇는 것이다.

 

주인공 왓슨은 해부학 수업에 들어갔다가 영국 정보조직에 스카우트된다. 그리고 첫 번째 임무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견된다. 러시아에서 산 자를 죽은 자로 만들고, 죽은 자의 제국을 만들려고 하는 카라마조프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낯익은 이름이지 않은가! 이 추적에는 행동파 버나비와 죽은 자 프라이데이가 함께 한다. 러시아 측에서는 크라소트킨이 동행한다. 이들의 추적 속에서 낯익은 이름들이 많이 나와 반갑고도 당혹스러웠다. 이때 이 소설이 패러디와 풍자가 강하게 가미된 대체역사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이 추적자 집단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건을 뒤쫓기 위해 움직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낯선 설정이 몰입을 방해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와 뒤가 궁금해진다.

 

첫 무대가 아프가니스탄이었다면 다음은 일본이다. 그리고 무대는 미국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은 다시 영국이 된다. 이렇게 전 세계를 옮겨 다니면서 왓슨과 그의 동료들은 죽은 자의 제국에 대한 단서를 찾는다. 그 단서가 가리키는 것은 바로 더 원이라고 불리는 프랑켄슈타인이다. 산 자를 죽은 자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담긴 책 <빅터의 수기>다. 첫 번째 이야기가 조금 밋밋한 액션이라면 다음부터는 점점 규모가 커진다. 원래 이토가 생각했던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엔도는 의식과 영혼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놓으면서 무거움을 더했다. 물론 이것은 나의 무지이자 착각일 수도 있다. 한 번도 이토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으니까.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장면을 조금 삭제하고 스팀펑크의 오락성만 부각한다면 결코 재미없는 소설이 아니다. 대체역사를 단순히 역사 속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설 속 등장인물이나 소재도 빌려와 뒤섞어 놓았다. 단순히 빌려만 온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살짝 그 의미를 틀어놓은 것도 있다. 철학적 명제들이 소설 속 세계관에서 엮이고 충돌하고 풀어지는 과정으로 흘러가는데 이것이 명확하게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매력이 있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패러디와 열린 결말이 주는 상상할 수 있는 재미 때문이다. 묘한 공저가 되었지만 절반 이상은 만족한다. 하지만 원래 아이디어를 가졌던 이토라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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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폴인러브
박향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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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륜도 있고, 첫사랑도 있고, 죽음 앞에 불타는 사랑도 있고, 풋풋한 사랑도 있다. 사랑을 커피와 엮어서 풀어내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연예소설이다. 앞에서 말한 사랑들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들의 사랑이 불편할 수도 있는데 인물들 각각의 심리를 잘 표현해서 어느 순간은 반감을 누그러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이성이, 윤리관이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현실은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복잡하고 잔혹하고 아름답다.

 

카페 폴인러브는 경재의 아내 효정이 열심히 만든 커피 전문점이다. 흔한 프렌차이즈 커피숍이 아닌 자체 커피 전문점이다. 위치는 부산 중앙동에 있다. 이 커피숍을 열기 얼마 전 효정에서 병이 생긴다. 뇌종양이다. 그녀의 꿈이 펼쳐지기도 전에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 생긴 것이다. 이 부부는 친구 정수의 아내 세희에게 관리를 부탁한다. 세희는 속성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예정된 것보다 조금 늦게 커피숍을 오픈한다. 이제 이 공간은 이곳을 오고가는 사람들의 관계가 엮이고 꼬이고 맺어지는 장소가 된다. 그 첫 이야기는 세희부터다.

 

세희와 정수는 애정이 없는 부부다. 아이도 없다. 정수의 머릿속은 첫사랑 혜인만 있을 뿐이다. 부부관계는 소위 말하는 의무방어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카페 폴인러브에서 일하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세희에게 다가온다. 그 남자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제호다. 제호는 고등학교 시절 연애사건으로 유명하다. 그 나이의 사랑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잘 보여준다. 이 제호의 관심이 세희의 마음을 무너트린다. 일상의 반복과 애정 없는 삶에 지친 그녀에게 제호는 순간적으로 열정과 스릴을 가져다준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정이 깨어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효정은 어린 시절 집을 떠난 엄마 때문에 아버지의 억압 속에서 살아야했다. 이것이 그녀의 성의식을 왜곡시킨다. 그런데 뇌종양이 갑자기 억눌려져 있던 그녀의 성욕을 폭발시킨다. 이 욕망이 남편 경재에게는 낯설다. 아픈 아내를 생각하면 죄처럼 느껴진다. 시한부 삶을 살아야 하는 그녀에게 진짜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이 부부의 뜨거운 사랑은 약간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아름답다. 시간이 정해진 사랑은 그 폭발력이 대단하다. 더 긴 세월을 일상으로 보냈다면 이들의 사랑이 지속되었을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정수는 동아리 선배와 결혼했던 혜인의 전화에 달려간다. 늘 그녀 주변에서 지켜보았고, 세희와 살면서도 잘라내지 못한 사랑이다. 그의 순수한 사랑은 사회 윤리 속에서 문제가 된다. 이 문제는 순수함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다. 자신도 마찬가지다. 연결되지 못한 사랑은 파괴적으로 변한다. 상대를 파괴하기보다 자신을 파괴한다. 그 선택 중 하나가 이혼이다. 그의 바람이 들킨 것도 바로 순수함과 열정이 만들어낸 미숙함에서 비롯했다. 그의 아내 세희가 보여준 행동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어쩌면 이 순수한 사랑이 집착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희가 정수의 바람을 알게 되었을 때 보여준 행동은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분노와 질시의 감정에 사로잡힌다. 나의 잘못보다 남의 잘못이 더 크게 보이는 법이다. 남편의 핸드폰을 뒤지고, 속옷의 냄새도 맡으면서 확신을 가진다. 세희가 먼저 원했던 결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두 부부는 각자의 삶 속으로 떠내려갔다. 늘 바라고 기다렸던 사랑이 아니었는데 그 시간, 장소, 상황 등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지치고 애정 없는 삶 속에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중년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민주와 승재의 사랑은 아직 풋풋하다. 하지만 민주는 엄마 효정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필요로 하고, 엄마는 자주적으로 키우려고 한다. 둘의 대화가 사라진 곳은 오해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관심과 간섭, 자유와 무관심의 조그만 차이가 둘을 찢어놓았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은 그 변화가 더 심하다. 이것은 엄마가 뇌종양에 걸렸다는 것을 알기 전이다. 작위적인 마무리인데 현실은 더 심한 경우도 있다. 더 넓은 세상에 이런 모녀 사이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이렇게 이 소설을 읽으면서 혹은 읽은 후 그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도 많다. 그냥 그들의 삶을, 사랑을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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