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놈들 전성시대 - 우석훈의 대한민국 정치유산 답사기
우석훈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스스로 C급 경제학자라고 부르는 우석훈의 정치 에세이다. 이 에세이는 그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들을 적은 글이다. 이전에 민주노동당 당원이었고, 녹색당 창당을 위해 뛰어다녔던 그가 보수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으로 들어갔다. 이 자리는 정말 한직이고, 잠시 쉬었다가 가는 자리라고 한다. 돈을 많이 주지 않지만 정무직이라고 하는데 하는 일이 없다. 부원장이란 직함은 있지만 예산권도 인사권도 없다. 힘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도 한정적이다. 이런 자리에 그가 왜 갔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그곳에서 실제 일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은 현실 정치의 실체 중 한 면을 아주 잘 보여준다. 왜 민주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국 경제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경제 정책은 교묘한 언론 작업으로 그 실체를 왜곡시키고 사람들을 세뇌시킨다. 얼마 전 있었던 연말정산 파동도 월급쟁이 기자들과 관련되지 않았다면 과연 그렇게 많이 언론에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어용경제학자들은 자유화를 외치지만 그것은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유화일 뿐이고, 부의 분배보다 성장이 우선이란 주장은 자본의 거대한 탐욕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작년의 세월호 사건이나 이번에 터진 성완종 리스트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사건들을 두고 벌어지는 언론의 보도 형태는 왜곡과 거짓으로 가득해서 기레기라는 단어에 딱 맞는 수준이다.

 

언론을 통해 뉴스를 볼 때면 언제나 분노하게 된다. 순간적인 분노와 미움이 자꾸 쌓여 정치 문제에서 시선을 돌리려고 한다.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할 것들, 만들고 싶은 이야기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설렘.” 등을 더 많이 생각하면서 우리가 가진 미움의 에너지를 모은 ‘잡놈들’을 몰아내자고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심한 박근혜에 집중된 미움과 다른 것들에 대한 무관심을 없애자고 한다. 실제 생활에서 그 이름을 듣고 무덤덤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 이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뉴스를 보지 않았다는 경상도 보수 어른의 그것과 닮아 있는 감정이다. 실생활 속에서 이 감정을 끊임없이 되뇌면서 몰아내려고 하지만 역시 쉽지는 않다.

 

그가 새정치민주연합에 들어가게 된 것은 전국시대 형가와 관련이 있다. 형가의 노래가 곳곳에 인용되고 그의 의지와 삶이 이 글의 중요한 요소이다. 실패한 자객이자 협객인 형가를 결혼 전 그렇게 많이 말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흥미로웠다. <삼국지> 속의 강유와 육손에 대한 글도 마찬가지다. 이문열의 <삼국지>에는 강유에 대한 부분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어릴 때 읽은 일본판 <삼국지>에는 강유의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는 이야기 속에 아주 잘 나온다. 저자가 프랑스 명재상 콜베르나 강유 등을 인용한 것은 한국에 이런 인물이 없고 나타나길 바라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런 인물이 되겠다는 야심이 그에게는 없다. 아쉬운 대목이다.

 

많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당직자에 대한 글이다. 새누리당의 당직자는 당내 선거에 개입하는 즉시 제명이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가만히 있는 당직자는 선거 후 곧바로 사라진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조직의 힘과 결집으로 대변된다. 법에서 인정되는 당직자는 99명인데 새누리당은 이들의 힘을 최대한 끌어내는데 반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들을 자신들의 세력 아래 두면서 그 힘을 분산시킨다. 좋은 자원을 불안한 일자리 등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정책을 만들고 틀을 짜서 국민들의 시선을 끌고 마음을 움직이는데 새누리당에 비해 절대적인 약세다. 제대로 된 시스템 부재는 늘 안타깝고 아쉽다. 그것이 제1야당이라는 사실에서는 분노를 느낀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당원이 거의 없는 모양이다. 당비 천 원이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제대로 된 당이라면 일정수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기형적인 정치구조는 당원이 없어도, 아니 없어야 더 좋은 모양이다. “당원이 없으니 공천권이라는 말이 나오고, 그걸 둘러싸고 친소 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외부에 계파 문제로 알려진 문제의 원인으로 정상적인 당원이 별로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있는 당원들도 이미 중장년을 넘었다고 한다. 새로운 피가 당에 활력을 불어넣기보다는 기득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를 보면서 늘 답답하고 화가 났던 것에 대한 하나의 답을 얻은 느낌이다.

 

국민행복시대가 국민‘항복’시대로 바뀌었다는 말은 지금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정치에 대한 혐오를 가지지만 좀더 나은 인물을 뽑기보다는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로 물타기를 하면서 새누리당이나 기존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상한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더 앞서고,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기보다는 언론이 보여주는 틀 속에 갇혀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잘 알고 있고, 그들이 정치를 잘 한다고 말한다. 아마 나도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저자가 말한 미움과 증오는 그들처럼 이성보다 감정이 더 앞서면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이것을 제대로 헤치고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 정치의 한 면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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