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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진의 종횡무진 미술 오디세이 - 만화로 들려주는 진짜 미술 이야기
장우진 글.그림 / 궁리 / 2015년 3월
평점 :
아주 가끔 미술 관련 책들을 읽는다. 그 책들을 읽을 때면 뭔가 알 듯하다가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금방 잊는다. 학창 시절 교양 과목으로 한 번 수업을 들었지만 역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나에게 미술은 늘 이런 식이었다. 아마 이 책도 그런 책 중 한 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책들과 차별화되는 것이 있다. 바로 만화로 미술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덕분에 활자에 의한 강박은 사라졌다. 많은 자료 사진과 이것을 패러디한 그림과 만화가 상대적으로 더 쉽게 접근하게 만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재미난 만화나 그림들이 상당히 많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다.
모두 다섯 장으로 쓰여 있다. 미술의 정의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묻는다. 미술의 정의가 과연 가능한가? 라고. 사실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하여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다. 다음부터 나오는 이야기들은 미술을 정의하기 위한 수많은 방식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미술의 좁은 개념을 넘어 현재까지 다루어지고 있는 미술이론으로 그 폭을 넓혔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하여 현대의 포스터모더니즘까지 말이다. 그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혹은 본 미술이론과 미술품들이 나온다. 일반적인 미술 서적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그 개념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하지만 가끔은 나의 이해 부족 때문인지 명확한 실체가 보이지 않은 경우도 있다.
미술과 건축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낸 대목은 흥미로웠다. 멋진 건축물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많은 현실에서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하지만 만화로 가볍게 풀어낸 미술 이야기라는 한계 속에서 간단하고 표면적인 이야기만 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논쟁거리를 깊게 다루지 않고 스쳐지나가듯 다룬다. 이것은 분명 이 책의 한계지만 이런 분야까지 미술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 범위를 충분히 확장시킨 것이다. 행위 예술이나 설치 미술 등에만 머무르고 있던 예술의 한계가 더 커졌다. 거시적인 미술의 범위 확장은 곧바로 인식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시적으로는 선, 면, 명암, 색, 구성, 착시 등을 다룬다. 각 소재의 설명은 미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냥 무심코 보고 지나가거나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던 것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회화에서 가능한 것이 실제 건축물에서 불가능한 것도 있는데 이런 그림은 그냥 봐서는 알 수 없다. 좀더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여기에 해석이 끼어들 경우 하나의 그림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해석에 매달리면 그림 자체가 지니고 있는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마음이 사라진 곳에는 이성만 남는다. 미술 감상이 이제 기호의 해석으로 바뀐다. 나무는 보지만 숲을 놓칠 수도 있다.
작가는 말한다. ‘미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다’라고. 자연의 모방에서 시작한 미술은 이제 그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미래의 미술이 어떤 모습일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래를 더 잘 보기 위해서는 언제나 우리의 과거를 함께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미술 서적이 나와 고대부터 현재까지 미술이론을 보여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에 갇힌 미술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액자도 마찬가지다. 미술이, 예술이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미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런 것들이 어쩌면 미술을 더 멀리하게 만드는 요인일지도 모른다. 인종과 성별에 대한 문제 제기 또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곱씹어야 할 내용이 많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