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괴담 안전가옥 FIC-PICK 8
범유진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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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FIC-PICK 8권이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낯익은 공간인 직장을 소재로 했다.

하루 중 집을 제외하면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곳.

한때는, 누군가에게는 집보다 더 오랜 시간 머무는 곳.

다섯 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직장과 괴담을 다양하게 엮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경험에 따라 공감하는 바가 나누어질 것이다.

읽으면서 혹시 나도 소설 속 누군가처럼 문제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경계를 했다.

그리고 각각의 서늘하고 무섭고 무엇보다 현실적인 이야기에 놀란다.


범유진의 <오버타임 크리스마스>는 이런 회사가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계약직과 정규직을 극단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존재할까?

현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더 잔혹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의 경험 부족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직장내 왕따를 엮었다.

노골적인 왕따와 괴롭힘, 어떻게 해서라도 이력서에 넣을 한 줄이 필요한 계약직.

그리고 바뀌지 않는 메신저와 대나무숲처럼 풀어놓는 불만들.

누군가에게는 장난일지 모르지만 그 피해자에겐 너무나도 잔혹한 폭력들.

찝찝함과 함께 마지막에 살짝 통쾌함이 남는다.


최주안의 <명주고택>은 마지막이 어렵다.

덴마크 여왕의 방한과 외교부의 의전 행사를 위해 선택된 경북의 고택 방문 행사.

도청과 시청의 담당자 사이에 벌어지는 작은 알력.

명주고택의 풍수지리적 위치와 개미와 개미귀신 구덩이 에피소드의 결합.

행사업체 선정에 사고로 늦어진다고 말한 업체.

그 업체의 뛰어난 프레젠테이션과 시청 담당자가 미는 업체 사이에 생긴 선정 문제.

그리고 이상하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이상한 전화 한 통.

헛제삿밥과 뒤틀리는 시간과 공간. 서늘하고 무섭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 상황에 대해 쉽게 결말을 내리지 못한다.


김진영의 <행복을 드립니다>는 계약직에 대한 갑질 이야기다.

코로나 19로 남편과 사별하고 죽은 환자 때문에 병원에서 일하지 못하게 된 간호사 출신 윤미.

싱글맘이자 가구 회사 보안팀 계약직 직원이다.

계약 갱신을 바라며 열심히 일하지만 팀장은 그녀의 사소한 실수를 코투리잡는다.

12월 31일 아이와 함께 여행을 준비하지만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은 동료 때문에 출근한다.

이때 폐가구 소각장에서 두 아이를 발견하고 전시장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경찰에 이 두 아이에 대해 신고하지만 출동한 경찰들은 어디에서도 그 아이들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뛰어 놀던 침대를 산 진상 손님이 이상한 말을 한다.

약간 뻔한 진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윤미의 행동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다.


김혜영의 <오피스 파파>는 오피스 와이프의 변형이다.

가정 폭력범 아버지에게서 달아나기 위해 취직한 광고 기획사.

고졸인 그녀를 직접 뽑아 친절하게 민정을 아껴 준 직속 상사 강성필 팀장.

수습 기간이 끝난 후 그의 본색은 드러나고, 민정은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전락한다.

점점 쌓여가는 분노와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진 생각과 말.

이런 현실에 갑자기 나타난 고액의 이상한 쓰레기통.

쓰레기통 주인이 쓰레기라고 생각한 것을 담으면 사라지는 신기한 쓰레기통.

그리고 그 존재에 대한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기묘한 쓰레기통.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쓰레기통에 담아버리는데 문제가 생긴다.

후반부의 폭주와 잔혹한 장면은 그 범위를 알 수 없는 공간과 더불어 머릿속에서 맴돈다.


전혜진의 <컨베이어 리바이어던>은 무서운 현실을 보여준다.

한때 기분 좋은 알바 자리였던 곳이 잃어버린 아이패드 때문에 무거운 현실이 된다.

자신은 단지 아이패드를 살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만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일한다.

2시간 배송을 자랑하는 딜리원 물류센터에서 새내기 소민은 알바를 한다.

학기 중에 경험한 하루 알바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함께 팀을 짠 윤주는 그녀에게 이 일이 얼마나 절실한지 말한다.

하지만 아직 그 절실함을 경험하지 못한 소민은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이해하지 못한다.

단순히 잃어버린 물건을 살 돈을 벌기 위한 학생과 생존에 몸부림치는 노동자의 괴리.

작가는 비인간적으로 운영되는 물류센터의 풍경과 함께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가족을 같이 보여준다.

이 과정에 드러나는 인간의 부품화와 조직의 협박은 씁쓸하고 현실적이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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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을 걷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110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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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콜렉터 110권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이후 여섯 번째 이야기다.

이 시리즈 왠지 모르게 띄엄띄엄 읽고 있다. 아직 두 권 읽지 않았다.

이번 이야기를 읽으면서 잭 리처 시리즈 중 하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두 소설 모두 미군의 과거와 연결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잭 리처가 우연히 사건에 휘말렸다면 데커는 아니다.

늑대 사냥꾼 할이 우연히 발견한 시체 때문에 데커와 재미슨이 노스타코타주로 온 것이다.

가상도시 런던은 석유와 가스로 흥한 작은 도시다.


미국 중서부의 작은 도시 런던.

석유 때문에 도시는 활기로 가득하고, 인구가 계속 유입된다.

단순히 잔혹하게 살해된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고 FBI 요원들이 올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죽은 여성이 가지고 있는 과거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것이다.

데커와 재미슨은 죽은 여성 아이린의 과거를 쫓기 시작한다.

그의 일을 돕는 현지 경찰 켈리는 이 도시 토박이이자 한때 미식축구 쿼터백이었다.

켈리와 함께 부검보고서를 받아 보고, 그녀가 일한 곳을 둘러본다.

켈리에 의하면 그녀는 매춘을 한 것처럼 보이고, 그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혹시 잔혹한 연쇄살인마가 나타난 것일까?


이 도시는 두 재벌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석유와 부동산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매클렐런 가문과 도슨 가문이다.

석유 시추로 매클렐런이 돈을 벌게 되면 노동자들이 거주할 집 등으로 도슨도 돈을 번다.

이 두 가문의 후계자들은 각각 한 명씩 있는데 한때 둘은 켈리와 함께 절친한 친구였다.

이 도시 주변에 위압적인 모양의 공준기지가 하나 있고, 그 기지 옆에는 종교 공동체가 있다.

아이린은 이 종교 공동체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이린의 과거를 쫓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흘러나온다.

그러다 검시보고서에서 수상한 부분을 발견한다.

그리고 시체를 처음 발견한 할의 집에서 두 번째 시체를 발견한다.


데커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그의 관심은 여러 곳으로 나아간다.

수상한 공군 기지의 매각과 아이린이 한 말들이 그의 수사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매형을 만나 누나의 이혼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이야기는 그에게 충격을 주고, 메마른 그의 감정에 파문을 일으킨다.

이런 와중에 그를 향한 총알이 날아온다.

다행히 로비가 그를 밀쳐 구해주면서 무사할 수 있었다.

단순한 살인 사건 같았는데 특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등장해 총격전이 일어난다.

도대체 아이린의 죽음에 어떤 인물이 엮여 있는 것일까?

그녀가 알아낸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소설에서 가장 이질적이지만 가장 강력한 인물이 로비다.

그가 보여주는 액션과 활약은 데커와 재미슨을 몇 번이나 구해주었다.

로비의 활약과 함께 나타난 인물은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한다.

이들과 데커는 같지만 다른 일을 하는 중이다.

데커의 수사는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쌓아가고, 이런 도중에도 시체는 점점 더 쌓여간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살인과 자살로 포장된 살인.

과거의 불행했던 이야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

액션이 펼쳐지고, 그 사이에 발생한 살인 사건은 혼란스럽게 뒤섞여 쉽게 실체를 발견하기 어렵다.

마지막까지 쉼 없이 달리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장면을 마주한다.

늘 그렇듯이 마지막 장을 덮으면 읽지 않은 발다치의 소설들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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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인치의 세계에서 사랑을 했다 - JM북스
키나 치렌 지음, 주승현 옮김 / 제우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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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인치. 스마트폰의 화면 크기다.

하나코는 인간 관계 트라우마로 집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이런 그녀에게 현실과 소통하는 방법은 스마트폰 게임 속 플레이어뿐이다.

우연히 웹에서 만나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관계를 쌓아간다.

그와의 대화는 공감과 행복의 시간이다.

집밖으로 겨우 나가는 그녀에게 그가 보낸 메시지 하나. “만나고 싶어.”

그녀도 만나고 싶지만 약속 당일 정신을 잃고 그날 밤 겨우 눈을 뜬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남겨진 메세시. “오늘 만나 줘서 고마워.”

 

야마시타는 편의점 알바를 살아가는 20대 청년이다.

그의 출산 과정에 엄마가 죽었고, 아버지는 아이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집을 나왔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취업이 잘 되지 않아 프리터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스마트폰 게임을 가끔 한다.

그가 하는 앱 게임은 플라워 스토리. 우연히 보낸 친구 신청.

이때 연결된 플레이어가 카코이고, 그녀는 정중하게 답변을 보냈다,

이렇게 연결된 둘은 앱으로 자신들의 일상과 삶을 이야기한다.

도쿄와 교토. 렌은 교토에 가도 될까? 하고 묻는다.

그리고 온 답장은 “나도, 만나고 싶어.”

 

여기까지 보면 평범한 온라인 만남 로맨스와 닮아 있다.

하지만 작가는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소설과 하나코의 실신으로 장르를 다시 엮는다.

야마시타와 카코가 교토에서 만나 즐겁게 시간을 보낸 것을 하나코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나의 상상력이 여러 가지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야마시타가 만나 카코의 정체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이다.

결국 마지막에 드러난 정체는 내가 생각한 것 중 하나였지만 살짝 아쉬운 점도 있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오고가는 메시지에 담긴 공감과 이해는 둘의 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한다.

마지막까지 나의 호기심 중 하나인 하나코와 하나코 인생책 작가 사이의 관계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나의 추측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놓친 것인지, 작가가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

뛰어난 가독성과 각자의 아픈 사연과 공감이 어우러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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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꼬리의 전설
배상민 지음 / 북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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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 픽션>을 재밌게 읽었다.

그때의 강렬한 기억이 이 작가 이름을 기억하게 했다.

다른 책을 사 놓고 묵혀 두는 것은 나의 당연한 일상이니 그냥 넘어가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구미호와 관련된 이야기다.

구미호를 떠올리면 바로 연상되는 판타지의 설정을 작가는 지워내었다.

이 소설의 재밌는 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 등을 그 시대와 엮어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쇠를 먹는다는 불가살이에 대한 것이다.

이 전설의 괴물이 사실은 고려 후기 수탈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괴물이란 것이다.

관의 쇠붙이 수탈이 만들어낸 환상이 실체 없는 불가살이란 것이다.


이야기. 구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전설과 엮었다.

불가살이처럼 처녀 귀신 이야기도 좀더 과학적으로 풀어내었다.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늦은 밤 찾아오는 처녀 귀신.

이 처녀 귀신을 보고 죽은 감무들과 살아남은 감무들.

시체에 살인의 흔적이 없기에 귀신을 보고 놀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은 부패와 탐욕의 결합이자 권력의 유지에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시신들이 발견된다.

여우가 찢어놓은 시신이란 소문은 아홉 꼬리 여우 전설과 엮인다.

그리고 새로운 시신이 드러날 때마다 여우가 불린다.


혼란과 환란의 시기였던 고려 말.

흉흉한 소문괴 기이한 이야기를 쫓는 사대부 덕문.

그는 이런 이야기들에 매혹되어 이야기를 쫓아다닌다.

그러다 만난 불가살이 이야기와 가왜와 무사 금행.

전설을 현실의 소문으로 만들고, 그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 덕문과 금행은 친구를 맺고 가끔 서신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이번 구미호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은 덕문의 고향이다.

새롭게 감무가 부임해 이 여우를 잡아야 한다.

덕문은 금행이 오기를 바랐는데 실제 그가 온다.


사대부이지만 과거를 보지 않고 이야기를 쫓는 덕문.

무관으로 전쟁터를 전전하다 공적을 쌓아 감무로 발령난 금행.

이 둘이 만나 고을의 괴이한 소문과 사건을 쫓는다.

첫 번째 사건이 바로 처녀 귀신이다.

그런데 처녀 귀신의 정체는 너무 쉽게 밝혀진다.

문제는 처녀 귀신을 만난 감무들의 죽은 이유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중앙권력과 토호의 대결로 변한다.

이 지역의 권력을 쥐고 있는 호장가.

그들은 사병을 거느리고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위해 사사로이 움직인다.

중앙에서 파견한 감무와 호장가의 대립은 예견된 일이다.


작가는 이야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면서 민의를 말한다.

아홉 꼬리 여우 이야기가 덕문의 이야기와 엮여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한다.

이 과정 속에 탐욕과 살의와 생각하지 못한 비밀이 꼬인다.

전쟁터를 전전한 금행의 칼질에서 그 시대의 흉흉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면 또 다른 사건이 생기고, 악의는 살짝 꼬리를 감춘다.

어쩌면 문덕과 금행이 하나씩 해결한 것들이 여우의 아홉 꼬리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현대극과 다른 분위기와 속도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덕문과 정도전의 대화는 새로운 시대의 전환과 연결되어 읽힌다.

이 한 편의 소설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수많은 전설이나 민담 등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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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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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르헨티나 작가다.

대실해밋상을 만장일치로 수상한 소설이다.

화려한 평가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30년 동안 홀로 범인을 추적했다는 부분이다.

어떤 사건이기에 이렇게 긴 세월 동안 범인을 쫓았을까?

여기에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연쇄살인이라는 나의 착각도 한몫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30년 전 토막나고 불에 탄 채 발견된 소녀와 그 가족과 친구 이야기다.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진행되지 않고,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나온다.

이 과정에 그 시체가 의미하는 바와 어떤 사연이 있는지 하나씩 흘러나온다.


30년 전 죽은 소녀의 이름은 아나였다.

세 자매 중 막내였고, 열일곱 살의 어린 소녀였다.

그녀의 시체가 발견된 후 둘째 언니 리아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강한 반감과 거부감으로 돌아온다.

엄마와 언니 카르멘은 열성을 넘어선 광적인 신앙심을 가지고 있다.

장례식 이후 리아는 집을 떠나 스페인에 오게 되고 그곳에서 살게 된다.

그녀가 유일하게 연락하는 사람은 아버지가 유일하다.

이 연락도 전화가 아닌 편지이고, 사서함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숨긴다.

서점을 운영하고 있던 그녀에게 언니 부부가 찾아온다.

자신은 존재조차 몰랐던 조카 마테오의 마지막 흔적이 여기였다고 말하면서.


리아가 아버지와 어떤 내용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는지 말한다.

아르헨티나와 단절된 그녀의 삶에 유일한 연결 고리인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언니를 통해 듣는다.

언니 부부는 갑자기 연락을 끊고 사라진 아들 마테오의 행방이 너무 궁금하다.

이제 이야기는 마테오로 넘어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풀어놓는다.

신의 이름으로 강압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

토막나고 불탄 채 발견된 죽은 이모에 대한 이야기.

외할아버지 알프레도와 함께 이야기하고 그렸던 유럽의 성당들.

건축학을 포기하고 정신의학으로 진로를 바꾼 선택의 이유들.

그는 할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세 통의 편지를 가지고 있다.

그 중 한 통은 이미 리아와 함께 봐야 하는 것이고, 에필로그 부분이다.


아나의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마르셀라를 통해서다.

그녀는 아나가 죽는 순간 같이 있었고, 떨어진 성상에 의해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그 이전 기억은 뚜렷하게 떠오르지만 그 이후 기억은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녀는 수많은 공책과 기록을 통해 자신의 현재를 남겨둔다.

이 병과 관련된 영화로 <메멘토>를 추천하는데 볼 때 상당히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작가는 그녀의 기록을 통해 그녀의 주장과 사실을 알려준다.

단 하나 분명하지 않은 것은 아나가 절대 말하지 못한 존재에 대한 것이다.

그 인물이 밝혀지면 살인범의 정체가 밝혀질까? 아니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사건의 꼬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한 것보다 더딘 속도로 읽었다.

묵직하고 서로 다른 목소리와 하나씩 드러나는 비밀이 시선을 끌었다.

30년 전 사건을 파헤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짧지만 강렬하고, 그 가족 등의 이야기는 무겁다.

후반부로 가면 나약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참혹한 진실이 하나씩 드러난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선택이, 그 상황이, 그 죽음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 깔린 신의 뜻이란 핑계와 거대한 동조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수많은 자기 기만과 변명에 ‘나라면’이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와 같은 잔혹한 행동은 못하겠지만 몇몇 상황에서 과연 진실할 수 있을까?

신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과 그 믿음을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내었다.

무엇보다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과 그들의 삶을 엮고 풀어낸 부분들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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