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겐스테른 프로젝트 프로젝트 3부작
다비드 카라 지음, 허지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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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로젝트 3부작의 완결편이다. 언제나 대단한 속도감으로 단숨에 읽게 만든다. 이번에 다루는 이야기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에이탄 모르겐스테른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과정에 에이탄의 숨겨져 있던 과거가 하나씩 밝혀진다. 물론 이전 작품에서도 에이탄의 과거가 조금씩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용소를 탈출한 후 그가 어떻게 한 명의 전사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살인기계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도 같이 받는다. 누군가를 죽일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에이탄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에이탄의 능력은 엄청나다. 체력과 힘과 지력이 모두 뛰어나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났지만 늙지 않고 있다. 이런 능력은 좀더 강한 군대를 바라는 사람들이 항상 바라는 바다. 그런데 그의 능력은 극비 사항이다. 하지만 수십 년 시간이 흐른 뒤에도 외모의 변화가 없는 그의 정체를 밝혀내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때부터 그들에게 에이탄은 한 명의 사람이 아닌 연구 대상으로 바뀐다. 그를 사로잡아 연구소에 넣은 후 온갖 실험과 조사를 해보고 싶어 한다. 문제는 어떻게 그를 잡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1편에 등장했던 재키와 제레미를 납치해 함정을 파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최악이다.

 

에이탄을 잡기 위한 미 특수부대원들과의 대결이 하나의 축이라면 수용소를 탈출한 후 폴란드 게릴라와 만난 후의 생활이 또 하나의 축이다. 이 둘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현재와 과거는 시간 차이가 있지만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에이탄 모르겐스테른을 생포하는 것이다. 당연히 에이탄은 이들의 의도를 파괴하려고 한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과감한 액션과 빠른 전개다. 그리고 조금씩 흘러나오는 에이탄의 새로운 모습이다. 새롭다고 했지만 전작들을 좀더 유심하게 읽었다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다.

 

이 시리즈 최악의 적은 그 정체가 불분명한 컨소시엄이다. 에이탄으로 하여금 방부제 외모를 갖게 만든 것도 이들이고, 현재 그의 정체를 미군에 알려 그와 친구들을 사냥하게 만든 것도 컨소시엄이다. 하지만 이 조직은 너무 방대하고 거대하고 점조직이라 그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컨소시엄과의 엄청난 대결을 기대했지만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면서 약간 기대(?)를 저버렸다. 물론 이 선택은 옳다. 만약 컨소시엄과의 대결로 시리즈를 채웠다면 에이탄이 말한 것처럼 그를 슈퍼맨으로 만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이 대결이 없는 덕분에 혹시 다음에 이 시리즈가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된다.

 

솔직히 에이탄의 존재는 매력적이다. 신체적 능력도 그렇지만 늙지 않는 외모는 요즘 같은 세상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다. 동안 외모를 줄창 외치는 현실에서 이런 약이 개발된다면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설 것이다. 이런 화학적 변화와 함께 다뤄지는 것이 있다. 바로 미 해병을 통해 실험된 정밀하게 제작된 인조팔다리다. 이 시장 가치를 말할 때 나오는 당뇨병은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어떤 병인지 조금은 알 수 있다. 여기에 에이탄의 몸에 엄청난 상처를 남길 수 있는 힘을 가졌다면 군대에서 거부할 이유가 없다. 최상의 군인이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이런 욕망이 개인의 인권 등을 무시하고 달려들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폴란드 게릴라들과의 생활이다.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줄 때 지극히 서구적인 시각에서 본 2차 대전의 이면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동유럽에서의 나치를 정면에서 만난다. 폴란드 국민과 게릴라의 협력과 이를 깨트리려는 나치의 잔혹한 학살이 잠깐이나마 나올 때면 섬뜩한 기운이 느껴진다. 참혹한 그들의 삶 속에서 살인에 빠진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변하는 그를 볼 때 현재 그가 벌이는 살인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떤 과거를 의미하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외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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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도사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2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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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편인 <사형집행인의 딸>의 평이 좋아 읽었다. 시리즈 2권인데 앞권을 읽지 않아도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몇 가지 잘못된 추측은 바로 잡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제목에서 유래한 것이다. 딸이 탐정 역을 맡아 사건을 해결한다는 섣부른 추측이다. 물론 사형집행인의 딸 막달레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번 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은 그녀의 연인인 지몬과 그녀의 아버지 야콥 퀴슬이다. 이 두 사람이 단서를 조사하고 토론하고 각각 다른 길을 가다가 결국 하나로 만나게 되는 과정은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과 재미를 주었다.

 

교구신부 안드레아스 코프마이어가 독이 든 도넛을 먹고 죽으면서 시작한다.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향해 열심히 기어간다. 그의 시체를 발견한 성당지기가 이발사 의사에게 연락한다. 이곳으로 오는 사람은 지몬이다. 좋지 않은 날씨에 성당까지 오려니 짜증이 난다. 단순히 과식으로 인한 복통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신부의 시체가 놓여있다. 성당지기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편법을 사용했다. 이때 가정부가 신부가 먹은 도넛의 이상한 점을 지적한다. 자신은 꿀이 없어 도넛에 바르지 못했는데 남은 도넛에 꿀이 발라져 있다는 것이다. 이제 돌연사나 과식에 의한 죽음이 살인으로 바뀐다.

 

신부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이리저리 조사하는데 한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사형집행인 야콥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이 야콥이란 존재다. 집안 대대로 사형집행인이고, 전쟁에도 참여한 적이 있으며 놀라운 지성과 지식을 겸비한 인물이다. 그의 약초에 대한 지식은 대단해서 의대를 다니다가 중퇴한 지몬이 오히려 배울 정도다. 거기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신부가 죽은 자리에서 바로 이 성당의 숨겨진 비밀을 바로 발견한다. 처음에는 그들이 발견한 유적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지몬이 템플기사단이란 사실을 곧 알게 된다.

 

이렇게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 거리인 템플기사단이 나오고, 바바리아 주를 돌아다니며 약탈하는 강도들이 등장한다. 템플기사단은 소설의 제목인 검은 수도사와 연결된다. 이 검은 수도사는 지몬과 야콥의 조사를 방해한다. 특히 지성과 거대한 힘을 가진 야콥의 존재는 그들에게 엄청난 위협이자 걸림돌이다. 독을 바른 검으로 잠재워 거대한 돌관에 넣었는데 힘으로 이것을 밀고 나왔다. 그후 그들의 작전이 바뀐다. 시의 서기에게 돈을 줘서 계속적인 조사를 못하게 막은 것이다. 서기가 선택한 것은 숀가우 주변에서 약탈을 자행하는 강도떼를 잡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것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데 단서 역할을 한다. 야콥은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지몬과 연인이자 제목의 당사자인 막달레나는 산파에게 일을 배운다. 하지만 가장 천대받는 직업을 가진 집안의 딸이다 보니 사람들의 배척을 받는다. 기분도 좋지 않은데 남자 친구인 지몬이 신부의 여동생인 베네딕타의 등장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키는 작지만 멋쟁이인 지몬에게 불어를 사용하고 아름답고 패션 감각이 있는 베네딕타의 존재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감정은 분명히 사랑이 아니다. 단지 호기심 혹은 호감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이 둘은 템플기사단의 유산을 쫓는 동지가 된다. 각각 다른 생각을 가지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단서를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지몬이 알아내는 단서의 비밀과 열병을 둘러싼 의료 행동은 학자의 모습을 가진 채 미신을 넘어 과학과 시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여준다. 마지막에 열병을 치료하는 과정은 아주 재미있었다.

 

사실 막달레나의 많은 활약을 기대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적이 조직적이고 폭력적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번 이야기만 그런지 잘 모르겠다. 반면에 그녀의 등장은 지몬과의 사랑싸움과 그 시대 사형집행인 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일반적인 의학을 아주 잘 드러내어주는 역할을 한다. 사형집행인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생기고, 현대의학 기준에서 올바른 처방이지만 미신과 잘못된 지식으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큰 줄기의 보물찾기와 액션과 미스터리를 좀더 풍성하게 만든다. 여기에 작가가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풍경과 시대와 역사 등이 곁들여지면서 더 짜임새 있고, 박진감 넘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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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 때때로 외로워지는 당신에게 보내는 따스한 공감 메시지
다츠키 하야코 지음, 김지연 옮김 / 테이크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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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 살의 독신 여성의 일상을 다룬 만화다.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다. 부모와 고양이 푸쿠다와 함께 산다. 하야코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형식은 네컷 만화다. 간단한 형식이다 보니 등장인인물이나 배경도 간단하게 그렸다. 물론 인물들은 특징으로 잡아서 차별화시켰다. 가끔 이름이 나오지 않거나 설명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누군지 헷갈리는 인물도 있다. 하지만 인물의 특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아주 소소한 일상으로 우릴 데리고 들어가서 삼십대 노처녀의 일상과 심리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제 주변에 삼십대 후반이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직원들이 상당히 있다. 애인이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삶을 살고 결혼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마음은 어떨지 모르지만 일단은 그렇게들 말한다. 이 만화를 보면서 어쩌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정확하게 아는 것은 개인마다 다르니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뭐 나 자신도 엄청난 노총각으로 살았으니 작가가 경험한 것들 중 일부는 크게 공감한다. 한일 간의 문화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들이 많아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삼십대가 되면 주변사람들로부터 결혼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는다. 이제 삼십대 중반인 하야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녀는 집에서보다 외부에서 더 많은 압박을 받는다. 친구나 직장동료나 상사로부터. 이십대의 직장동료들이 결혼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줄 때 하야코와 너무 다른 생각과 행동이라 약간 어리둥절했다. 분위기와 박력에 휩싸여 결혼상담소에 가입하는데 여기서 살짝 그녀의 성격과 속내가 드러난다. 그런데 상담소에서 소개시켜준 사람들이 그녀의 시선에서 봐서인지 상당히 특이하다. 조건 좋은 남자가 나왔을 때 상담소에서 보여준 반응은 일본의 이면을 살짝 들여다본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곧 씁쓸해졌다.

 

결혼 추진을 위해 네 명이 모이고 단체 미팅도 여러 번 한다. 그런데 이 모임의 나이 차가 크다. 이십대와 삼십대가 같이 있다. 미팅에 나오는 남자들도 나이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다. 요즘 우리나라도 그렇게 변하는 듯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낯설다. 개인적으로 이런 문화 차이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한국과 문화 차이가 아직 심하지만 비슷한 부분이 점점 많아지고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어쩌면 이런 장면들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야코가 바라는 남자는 간단하다. 외모도 키도 재산도 학벌도 아니다. 단지 이야기와 감정이 통하는 남자였으면 한다. 말은 간단하다고 했지만 현실에서는 상당히 어렵다. 그녀가 미팅이나 선을 대하는 자세와 행동을 보면 전혀 꾸밈이 없다. 그리고 재미난 것은 그녀가 만난 남자들의 특징을 잡아내어 이름 대신 별명을 붙인다는 것이다. 상당히 괴팍한 사람들인데 현실에서 이런 사람들을 연속으로 만나기도 힘들 것 같다. 마지막에 작가는 결혼에 대해 할지 안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결혼을 엄청나게 강요하는 부모도 없고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그녀가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이 시간은 더 길어질 것 같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고 나에게 묻는다면 ‘그럼요’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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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손홍규 장편소설
손홍규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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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 그리고 어렵다.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명확한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아 계속 뭐지? 하고 묻게 된다. 사람이 아닌 존재가 왜 생겼는지, 그들은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짐승과는 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등. 어떻게 보면 종말론적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한 형제의 처절한 모습이 부각되는 듯하지만 읽다 보면 모호함에 나도 모르게 빠진다.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세계 속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과거는 소년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변한다. 이 변화가 나의 착각인지 아니면 작가가 의도한 연출인지 지금은 살짝 궁금하다.

 

한 형제가 서울을 떠난다. 이 도시는 이제 알 수 없는 존재로 가득하다. 이 알 수 없는 존재를 작가는 명확하게 규정짓지 않는다. 좀비라고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좀비와 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작가에게 이 존재의 명확한 실체는 중요하지 않은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자신도 모를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소년은 서울을 벗어나 남쪽으로 간다. 동생의 머리는 헬멧으로 씌워져 있다. 처음에는 안전 때문인 줄 알았다. 계속 읽다 보니 이 동생이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형에게는 여전히 동생이고 사람이지만.

 

서울을 벗어나 남으로 가는 과정이나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은 현재 시간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사이사이를 채우는 것은 기억이고 추억이다. 좋은 기억은 거의 없다. 아버지가 이 두 형제를 옥상에서 떨어트려 죽이려고 했던 것이나 엄마가 목매어 자살한 것 같은 끔찍한 기억들이 먼저 나온다. 아버지가 중단한 것은 고모가 빌린 돈 3백만 원을 갚겠다는 전화 때문이고, 엄마가 왜 목을 매었는지는 나중에 나온다. 작가는 이 기억을 명확하게 처음부터 흘려보내지 않는다. 동생의 정체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내보내면서 이 알 수 없는 세계의 모습을 아주 살짝 노출할 뿐이다. 그래서 읽기가 생각보가 힘들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명확한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형제가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한 노인과 모녀를 만난다. 이들과 함께 잠시 생활하는데 이 과정에 변수가 생긴다. 바로 한 마리의 개다. 이 세계의 개들은 성대가 제거되어 울지 못한다. 그런데 동생은 듣는다. 나중에 드러나는 동생의 정체는 이것을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을 주지만 그것도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인간들이 점점 사라지고 죽는 세계지만 곳곳에 생존해 있다. 이런 설정은 기존의 종말론 세계를 다룬 소설이나 좀비 소설에서 자주 보는 설정이다. 바뀐 것이 있다면 낮을 지배하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 이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뒤바뀐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의문과 질문을 계속 던질 수밖에 없는 설정과 전개다. 이 형제가 서울을 떠나려는 것이 단순히 살기 위해서라고만 할 수 없는 상황을 모녀가 알려준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울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서울과 더불어 살면서 맺었던 관계와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이 과거의 혈연으로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은 양쪽으로부터 배척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형이 동생을 돌보지만 그가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동생이 일단의 사람들에게 납치되었을 때 보여준 행동과 심리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관계와 기억이다. 사람들 사이에 맺은 관계와 그 기억이 이들을 함께 있게 만든다. 동생이 떠난 후, 모녀 중 딸이 사라진 후 여자와 노인과 소년이 서울로 힘들게 돌아오게 된 것도 바로 이런 관계의 기억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을 작가는 세밀한 지역 설명으로 보여준다. 어느 순간에는 관계나 상황보다 이 설명이 더 많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지옥 같은 풍경이다. 작가는 말한다. “아무리 유서 깊은 종교라 해도 인간을 구원해 줄 수는 없었다.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실패한 종교만이 유서 깊을 수 있었다.”(267쪽) 어쩌면 이 알 수 없는 존재들이 구원을 받는 새로운 지구의 지배자들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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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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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극찬은 이전부터 들었다. 하루키의 책을 읽을 때 이 이름이 기억되었고, 그 후 조금씩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존 치버의 단편처럼 좀처럼 몰입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번역자 탓도 했지만 짧은 단편 속 미국 문화가 너무 낯설게 다가와 머릿속에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낯선 이름과 상황 때문에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른 채 끝까지 읽기도 한다. 좀더 여유를 가지고 다시 차분히 읽으면 그 재미를 발견할지 모르지만 나의 책읽기 습관이 이것을 방해한 것이다. 그것은 이번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잠시 멈춘 후 다시 집중하지 못한 부분을 읽을 때면 한 문장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도 생긴다.

 

모두 열두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등으로 어느 정도 미국 문화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단편을 읽으면서 다시 그 착각이 깨졌다. 첫 작품 <깃털들>을 읽으면서 이 두 부부의 저녁이 거짓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사회관계를 위한 식사였기 때문이다. 지극히 소시민적인 풍경인데 여기에 갑자기 공작새가 끼어든다. 이 틈입과 아기의 존재는 너무 낯설어 강한 여운을 남긴다. <셰프의 집>도 낯설다.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한 부부의 순간이 전혀 절박하지 않다. 한국의 현실과 너무 대비되는 모습이다. <보존>은 실직 남편과 냉장고 고장으로 인한 이야기다. 환멸이나 경멸 대신 추억으로 들어가는 설정이 재밌다.

 

<칸막이 객실>은 마지막 장면이 반전 같다. 그가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들의 결과가 뒤바뀔 때 잃었던 여유를 찾는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생일날 뺑소니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아이를 둔 부부 이야기다. 아이가 무사히 깨어나길 바라는 그들의 간절한 마음과 행동, 의사들의 무책임한 발언, 그리고 생일 케익 때문에 화가 난 제빵사가 만들어내는 삶의 모습은 분노와 안식을 안겨준다. <비타민>은 종합 비타민을 방문 판매하는 아내를 둔 남자의 흑인 바에서 벌어진 사건이 시선을 끈다. 그 당시가 베트남 전쟁시기였던 모양인데 그 참혹한 전쟁의 여파가 어떻게 미국 사회에 스며드는지 잘 보여준다.

 

<신경써서>는 귀지 때문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남자 이야기다. 중의적이고 함축적인 설정과 문장이 있다는데 아직 나의 내공이 부족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전화를 거는 곳>은 금주 시설에서 벌어지는 간단한 이야기다.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서 괜히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혹시 그녀가 음주 운전으로 사고 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기차>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괴리가 너무 심하다. 설명이 생략된 공간들을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넣어야 한다. 이것은 그 기차를 탄 승객들도 마찬가지다.

 

<열>은 아내가 직장 동료와 달아난 남자가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집착을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아이를 돌보고, 수업도 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 좋은 베이비시터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첫 번째 소녀가 실패한 후 만난 웹스터 부인은 최고다.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현실은 늘 최상일 수 없다. 열이 가라앉은 후 이전까지의 인생은 지나가고 있다. 은행에 농장을 빼앗긴 농부 일가를 보는 임대 주택 관리자의 시선을 다룬 소설이 <굴레>다. 여기서 굴레는 말굴레다. 몇 가지 에피소드가 삶의 단면들을 잘 보여준다.

 

표제작 <대성당>은 마지막 장면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화자가 맹인 손을 잡고 대성당 프로그램을 듣고 본 후 그림을 그리면서 만들어내는 과정은 정말 대단하다.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낯선 경험을 하게 한다. 화자가 맹인에 대해 가졌던 편견과 오해가 깨어지고 그 자리를 또 다른 자신으로 채운다. 이 단편집에서 어쩌면 가장 낯선 장면을 보여주는지 모르겠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다. 앞에 나온 열한 편이 낯설지만 친숙한 우리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살짝 일상을 벗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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