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꼬리의 전설
배상민 지음 / 북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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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 픽션>을 재밌게 읽었다.

그때의 강렬한 기억이 이 작가 이름을 기억하게 했다.

다른 책을 사 놓고 묵혀 두는 것은 나의 당연한 일상이니 그냥 넘어가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구미호와 관련된 이야기다.

구미호를 떠올리면 바로 연상되는 판타지의 설정을 작가는 지워내었다.

이 소설의 재밌는 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 등을 그 시대와 엮어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쇠를 먹는다는 불가살이에 대한 것이다.

이 전설의 괴물이 사실은 고려 후기 수탈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괴물이란 것이다.

관의 쇠붙이 수탈이 만들어낸 환상이 실체 없는 불가살이란 것이다.


이야기. 구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전설과 엮었다.

불가살이처럼 처녀 귀신 이야기도 좀더 과학적으로 풀어내었다.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늦은 밤 찾아오는 처녀 귀신.

이 처녀 귀신을 보고 죽은 감무들과 살아남은 감무들.

시체에 살인의 흔적이 없기에 귀신을 보고 놀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은 부패와 탐욕의 결합이자 권력의 유지에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시신들이 발견된다.

여우가 찢어놓은 시신이란 소문은 아홉 꼬리 여우 전설과 엮인다.

그리고 새로운 시신이 드러날 때마다 여우가 불린다.


혼란과 환란의 시기였던 고려 말.

흉흉한 소문괴 기이한 이야기를 쫓는 사대부 덕문.

그는 이런 이야기들에 매혹되어 이야기를 쫓아다닌다.

그러다 만난 불가살이 이야기와 가왜와 무사 금행.

전설을 현실의 소문으로 만들고, 그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 덕문과 금행은 친구를 맺고 가끔 서신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이번 구미호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은 덕문의 고향이다.

새롭게 감무가 부임해 이 여우를 잡아야 한다.

덕문은 금행이 오기를 바랐는데 실제 그가 온다.


사대부이지만 과거를 보지 않고 이야기를 쫓는 덕문.

무관으로 전쟁터를 전전하다 공적을 쌓아 감무로 발령난 금행.

이 둘이 만나 고을의 괴이한 소문과 사건을 쫓는다.

첫 번째 사건이 바로 처녀 귀신이다.

그런데 처녀 귀신의 정체는 너무 쉽게 밝혀진다.

문제는 처녀 귀신을 만난 감무들의 죽은 이유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중앙권력과 토호의 대결로 변한다.

이 지역의 권력을 쥐고 있는 호장가.

그들은 사병을 거느리고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위해 사사로이 움직인다.

중앙에서 파견한 감무와 호장가의 대립은 예견된 일이다.


작가는 이야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면서 민의를 말한다.

아홉 꼬리 여우 이야기가 덕문의 이야기와 엮여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한다.

이 과정 속에 탐욕과 살의와 생각하지 못한 비밀이 꼬인다.

전쟁터를 전전한 금행의 칼질에서 그 시대의 흉흉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면 또 다른 사건이 생기고, 악의는 살짝 꼬리를 감춘다.

어쩌면 문덕과 금행이 하나씩 해결한 것들이 여우의 아홉 꼬리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현대극과 다른 분위기와 속도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덕문과 정도전의 대화는 새로운 시대의 전환과 연결되어 읽힌다.

이 한 편의 소설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수많은 전설이나 민담 등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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