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트 마일 밀리언셀러 클럽 85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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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 완결편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끝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매력적인 콤비와 개성 강한 캐릭터가 재미와 여운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것이 2010년이다. 번역이 좀 늦었다. 이 시리즈를 한참 읽을 때 매력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다음 책을 외쳤다. 이렇게 끝나길 바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납득할만한 방식으로 끝냈다는 것이다. 뭐 가끔 독자의 요청에 의해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으니 가슴 한 곳에 조그만 희망을 남겨두자.

 

이 콤비의 결혼 후 귀여운 딸 가브리엘라가 태어났다. 둘만 있는 것과 아이가 있는 것은 다르다. 더 벌어야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 높아진다. 앤지가 학교에 가면서 혼자 벌어야 하는데 불황까지 겹쳐 벌기가 쉽지 않다. 이전 사무실은 이제 사라졌고, 켄지는 거대 탐정사무소 알바를 뛴다. 실제 이 일이 그의 주업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두하멜 스탠디포드의 정규직 직원이 되는 것이다. 안정적인 직업과 휴가와 보험과 연금 등을 바란다. 그런데 그의 고용주가 쉽게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는다. 다급한 그의 위치를 노리고 부려먹는다. 트집을 하나 잡아서 뒤로 미룬다. 그러다 과거의 한 사건과 다시 만난다.

 

12년 전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다룬 이야기다. 그 당시 납치되었던 아이 아만다가 다시 사라졌다. 당시 이 사건을 의뢰했던 고모가 술에 취해 연락하고 이 둘은 다시 만났다. 당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최선의 선택이 무엇일까, 그것이 정의일까 고민을 했었는데 작가는 이 시리즈 마지막 작품에서 다시 이 고민을 다룬다. 최고의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자랐던 아이가 법과 정의에 의해 더럽고 타락한 환경 속으로 다시 돌아온 불편한 현실이 다루어진다. 이 사건 때문에 이 콤비가 깨어진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시리즈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에서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이는 여전히 더럽고 나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데 아만다의 학교를 방문하니 아이에 대한 엄청난 칭찬과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아이비리그 장학금은 따 놓은 당상이고 납치 사건으로 공탁된 거액도 곧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된다. 과거와 현재의 나쁜 기억과 추억으로부터 떠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기회를 버리고 사라졌다. 왜? 덕분에 독자는 과거 사건의 기억을 되살리고, 작가가 왜 이런 상황을 다시 다루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가혹한 진실이 펼쳐질지 나타날지 걱정하게 된다.

 

사실이 드러난 곳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다시 과거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현재는 다른 방식으로 변해 이어지고 한 개인의 노력은 너무나도 손쉽게 사라져버린다. 구조와 시스템과 현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다시 보여주는 현실은 가혹하고 참혹하다. 전작에서 현실의 한 자락을 파헤치고 풀어내었지만 실제 바뀐 것은 없다. 어떻게 보면 무력감에 빠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콤비는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자신들이 부딪힐 수 있는 상황에 과감하게 다가간다. 적들은 이제 러시아 마피아로 변했고, 더 강한 광기와 공포로 다가온다. 이제 딸까지 적의 표적이 된다.

 

전작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시리즈 마지막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조금 약해진 액션과 구성이다. 언제나 시리즈에 힘을 실어주었던 부바의 활약이 거의 없는 것도 조금 불만이다. 뭐 개비에게 쩔쩔매는 모습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지만 너무 단역이다. 그리고 켄지의 날카로운 분석과 수사력은 힘을 발휘하지만 전작에 비해 무력해졌다. 알바 뛰면서 경험했던 불편하고 불쾌한 사실들이 그를 조금 바꿔 놓은 것 같다. 거기에 딸 바보 아빠까지.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새롭게 부각된 역할들이 있다. 그 첫째는 아만다고, 그 다음은 러시아 마피아 예핌이다. 예핌이 주인공으로 활약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아만다라면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이 될 만한 능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뭐 최고는 다시 이 콤비가 탐정으로 돌아오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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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으로 걷다
브라이언 토머스 스윔 외 지음, 조상호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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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광활한 우주란 단어를 사용했다. 우주의 크기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광활한 이란 단어로 우주를 표현하기엔 너무 작고 우주가 무한대의 크기라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인식의 크기를 넘어선 숫자가 나오면 우린 경험의 한계에 부딪힌다. 우주물리학으로 옮겨가면 이런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현실 속에서 억 단위는 너무 흔한 것이지만 실제 억까지 세워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수천 개라니. 아! 여기서 억을 구성하는 것 중 하나가 지구를 포함한 은하다. 태양계가 아니라 은하다. 감이 잡히지 않는 크기다.

 

우주물리학을 가끔 만날 때면 우주의 크기에 대한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맨인블랙>의 한 장면이나 소설 속 장면으로 그 크기를 잠시 측정해본다. 하지만 이것은 늘 그렇듯이 수천억 개 중 하나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중 하나의 그 어떤 일부가 우리의 현실에 조금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축소도 인식의 한계에 부딪혀 더 작아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이 각각의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풀려나오는 것을 읽을 때 인간에 대해 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분량이 많은 책이 아니다. 단숨에 읽었다. 전문 분야 깊숙이 다루어진 부분이 많지 않아 비교적 쉽게 읽었다. 용어가 어려워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현재 과학의 발전과 맞물려 있는 부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것도 있다. 이 책의 기본 구성은 위에서 말한 크기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무한대의 크기를 상상하다가 지구의 시작으로 돌아오고, 그 지구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만들어졌고, 인류가 발전하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돌아보게 된다.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 우주에서 인간으로 다가오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럽다.

 

저자들은 어려운 우주물리학 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비교적 쉽게 우주물리학에서 시작해 인류도 돌아온다. 이 과정을 거꾸로 올라가면 우주의 탄생이 된다. 이것은 목차로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 이 목차가 의미하는 바를 알 정도로 나의 지식이 높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은 것은 간결한 문장과 빠른 전개 때문이다. 과학으로 풀어낸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런 구성과 전개는 우주와 인간의 흐름을 하나로 이어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보통의 내공으로는 아주 힘든 일이다.

 

이 책은 우주를 다루지만 결국 인간을 말한다. 우주의 탄생 장에서 “우리가 밤하늘에 끌려 하늘을 쳐다보면서 우주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경탄할 때, 우리는 우리가 보는 우주를 반영하는 우주다.”(16쪽)란 문장으로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말한다. 아직 sf처럼 우주를 개척할 능력이 되지 않지만 지구라는 행성만 놓고 본다면 우리는 공생보다 파괴의 길을 가고 있다. 이것은 우주가 파괴와 생성이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과 다른 것이다. 이것을 다룬 장들을 읽으면 인류의 발전 과정이 어떤 식으로 흘러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단 몇 줄이나 몇 장으로 알 수도 없고 해결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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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시대 - 숲과 나무의 문화사 역사를 바꾼 물질 이야기 3
요아힘 라트카우 지음, 서정일 옮김 / 자연과생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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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너무 흔히 있어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공기와 물과 흙이다. 나무도 그렇다. 도로변에 심어진 은행나무나 학교나 집주변에 나무가 늘 보이다 보니 그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제품을 사려고 하면 그 가격에 놀란다. 원목을 이용한 것에는 더욱더. 그냥 흔해서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나무가 제품으로 그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철거된 곳에 가면 나무들이 폐기물과 함께 실리거나 조각나 장작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풍경은 우리가 나무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게 만드는데 장애가 된다. 역사 속에서 나무가 어떤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가졌는지 알게 되면서 나무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했다.

 

이 책은 나무와 관련된 광범위한 영역을 모두 다루지 않는다. 나무란 물질 자체의 영역 내 역사를 다루는 데 무게를 두면서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한다. 하나는 나무를 가공하고 사용한 기술적 과정, 두 번째는 나무의 예를 통해 환경과 자연자원이 사회사, 경제사와 어떻게 관련을 맺어왔는지 밝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목표는 조금 어려웠다. 기술적 과정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반면에 두 번째 사회와 경제 분야는 유럽의 역사 속에서 나무와 숲이 어떤 가치를 가졌고, 관련되었고, 관리되었는지 알려주었다. 사회계층 각각의 입장과 위치에 따라 숲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차이나는지 보여줄 때 단순하게만 가지고 있던 숲과 나무에 대한 인식의 틀이 깨지기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 속에 귀족들의 사냥 애호는 그 당시 농민의 생존권과 충돌한다. 귀족들이 숲을 보호한 것은 자연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사냥하는 재미를 위해서다. 단순한 오락 때문이다. 반면에 농부들에게 숲은 자신들의 삶을 위한 터전이다. 숲이 많아지면 그들이 경작할 농지가 줄거나 숲에서 나온 동물들에 의해 농산물이 훼손당한다. 귀족과 농부의 이해가 충돌한다. 이것은 요즘 우리나라에 멧돼지가 출몰하면서 농지를 파헤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 이런 귀족과의 충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분야 즉 제철소와 제염소와 유리공장 등과도 문제가 있었다. 이것은 나무의 가격이 오르고 나무 부족 문제가 나올 때마다 생긴다.

 

하나의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이것을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 나무 가격 상승은 원목과 톱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그 조각들을 이용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나무의 특성을 이용해 합판, 파티클보드, 건축용 섬유판 등의 새로운 목재를 만들어내었다. 수백 년 전 나무 두께를 1밀리 단위로 잘랐다는 글에서 괜히 그 두께를 가늠해보기도 했다. 펄프를 통해 종이가 만들어진다는 정보는 이제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나무를 베기 위한 기술의 발전도 함께 다룬다. 그 나무를 가공하기 위한 도구의 발전도 같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구가 발전하면서 일의 속도가 빨라지고 손실이 줄었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업무 강도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계속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점은 좀더 유심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문 분야의 역사를 다룰 때면 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 책 속에도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의견이 갈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다. 활엽수, 침엽수 논쟁이나 특정 품종에 대한 호불호나 비판도 시대의 변화와 과학 발전 등으로 변한다. 이것을 보면서 과연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의 시간을 다루는 분야에서 전문가란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마저 생겼다. 뭐 이런 전문가가 다시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지만 말이다. 목재산업과 임업, 나무의 활용도 등을 경제와 환경과 각 분야의 이익과 결합시킬 때 이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런 전문가가 만들어낸 패악을 말하라면 4대강이나 교육만 가지고도 엄청나게 나올 것이다.

 

저자가 다루는 숲과 나무는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의 나무와 숲이다. 마지막 장에서 아시아의 나무를 다룬다. 그렇지만 여기서 다루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더 충실하다. 간략하게 다루고 지나가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앞에 길고 깊게 나온 정보보다 더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마 인접국가고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제대로 소화를 못시킨 책이다.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정보들만 머릿속에 맴돈다. 마지막으로 숲 관리에 대한 저자의 말을 인용한다. “역사로 눈을 돌려보면 숲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실제적 유익함을 얻은 경우는 당대에 나타나는 역사적 상황, 즉 새로운 기회의 상황에 눈을 돌려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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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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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프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나의 눈물은 왕따로 죽은 슌스케 때문이 아니다. 그의 자살 이후 삶이 바뀐 사람들 때문이다. 갑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부모와 동생, 유서에 절친이란 말이 남겨진 사나다 유, 짝사랑의 대상이었던 나카가와 사유리 등이다. 유서에는 그를 괴롭혔던 두 명의 같은 반 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이 소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왜 그가 자살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사나다를 비롯한 사유리와 가족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20년 동안 이어진다.

 

왕따와 자살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런 뉴스가 나오면 ‘또’라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감정은 ‘불쌍하다’, ‘얼마나 심했으면’, ‘나쁜 놈들’ 등과 같은 것들이다. 너무 자주 많이 일어나면서 둔감해진 것이다. 이 문제를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불러놓고 이야기해봐야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들 문제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이 사건은 불쌍하고 안된 일일 뿐이다. 하지만 가족은 다르다. 그들은 평생 가슴에 이 사건을 품고 살아야 한다. 그럼 절친과 짝사랑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그들은 어떨까? 이 소설은 바로 절친으로 낙인찍힌 유의 기록이다.

 

초등학교에서 유짱으로 불렸고 함께 놀았지만 중학교 올라간 후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사나다에게 유서에 쓰인 절친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이 단어가 슌스케 가족에게는 각각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엄마에게는 고마운 친구지만 아버지와 남동생에게는 절친이면서 그렇게 되도록 뭘 했는가 하는 원망과 증오의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낙인찍기라는 단어를 앞에서 사용했다. 절친으로 알려진 그는 방관자였고 용기 없는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가 이런 괴로움과 고통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의문을 계속해서 던지면서 답을 찾아간다.

 

사나다가 슌스케와 친구였다면 사유리는 단순히 짝사랑의 대상이다. 그녀는 같은 반도 아니다. 하지만 자살한 날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죄의식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유서에 남겨진 이름은 그녀도 낙인찍기의 대상으로 만든다. 처음 그녀가 슌스케의 집으로 찾아다닌 것은 이런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상황이다. 나중에 그녀가 이 사실을 말했을 때 동생 겐스케가 형을 살릴 수도 있었다고 원망했을 때 그녀가 그때까지 품고 있던 고통과 고뇌와 아픔이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한 소년의 자실이 그녀도 가해자로 만들고 동시에 엄청난 피해자로 만든 것이다.

 

자식의 죽음에 가장 충격을 받는 사람은 당연히 부모다. 평생 가슴에 묻는다는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경험을 한다. 그 엄마가 충격에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과거 속에서 좋았던 추억만 찾아다니는 것이나 자살한 아들을 처음 발견한 아버지가 결코 반 친구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그들의 반성문마저 언론에 흘리는 일을 저지르는 것은 이런 충격의 여파 중 일부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짱과 사유리마저 조금씩 그 일을 잊고 있을 때 그들은 매일 불단을 보면서 아들의 부재를 가슴속에 새겨 넣는다.

 

우리는 흔히 너무나도 쉽게 용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 겐스케가 용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말할 때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불가능한지 알게 된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 사회에서 잘못을 바로 잡을 힘이 있을까 의문이다. 물론 용서하지 말자는 의미는 아니다. 너무 쉽게 진솔한 참회나 반성 없이 용서를 내뱉고 바라는 것에 감정이 욱해서 그렇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의 감정과 행동은 솔직하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다 표출하지 않지만 절제된 상태에서 그 감정이 강하게 전달된다.

 

이 소설에서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친하지도 않는데 유서에 절친이란 단어를 왜 사용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의문은 사나다의 아들이 쓴 노트에서 나온다. 아내가 말해준다. 그가 모르는 친구이자 절친이라 불린 친구가 사실은 동경의 대상이라는 것을. 이 순간 사나다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통곡한다. 슌스케에게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 깨달은 것이다. 20년을 이어져온 미스터리가 풀린 것이다. 그리고 슌스케가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의 의미를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이자 가장 가슴을 아리게 만들고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부모는 자식을 잘 안다고 하지만 사실은 가장 모르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자식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만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하는 행동으로 습관이나 좋아하는 것 등을 알 수 있지만 가장 은밀하고 중요한 것들은 놓치기 십상이다. 아마 슌스케가 왕따 당하고 있는 사실을 부모에게 말했다면 그의 자살에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혹은 부모들이 이 사실을 알아주길 바랐는데 알아채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가정은 사실 무의미하다. 가장 솔직한 표현은 유가 다시 방문한 중학교에서 선생이 된 친구가 그렇게 믿고 싶다고 한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믿고 싶은 것을 깨트리고 현실을 제대로 직시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는 것에 대해 사나다 유는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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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 빠진 훈제청어의 맛 플라비아 들루스 미스터리 3
앨런 브래들리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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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비아 들루스 미스터리 시리즈 3권이다. 전작을 재미있게 읽었다. 주인공 플라비아는 귀엽고 깜찍한 소녀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그녀 외 다른 언니들에게도 눈길이 점점 많이 간다. 그녀를 끔찍하게 괴롭히는 언니들이지만 각각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재능이 플라비아의 사건 해결을 도와줄 때 빛을 발하고 다음 이야기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기대하게 만든다.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가 여전히 잘 조화를 이루면서 부드럽게 이어진다. 비록 전작에 비해 재미나 플라비아의 능력이 조금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첫 장면에서 그녀에게 점을 봐주는 집시다. 그녀는 플라비아 엄마에 대해 말한다. 당연히 이것은 언니들의 장난이다. 하지만 어리고 엄마를 기억하지 못하는 플라비아에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 때문에 그녀는 놀라 허둥대다 양초를 쓰러트린다. 집시 텐트가 불탄다. 이 인연은 둘을 엮어준다. 미안함이 플라비아를 그녀 곁에 머물게 만든 것이다. 거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곁들여졌다. 집시를 가문의 영지에 머물게 한다. 예전에 아버지가 절대 금지했던 일이다.

 

전작에서도 외부에서 온 사람에게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집시가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 빠르게 의사에게 연락해 그녀를 치료한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서 생선 비린내를 맡는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늦은 밤 자신의 집에 몰래 들어온 브루키다. 마을의 말썽쟁이다. 물론 플라비아도 평범하고 착한 소녀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의미가 좀 다르다. 그녀가 그를 용의자로 꼽고 조사를 하는데 그가 그녀의 집 분수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새로운 시체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제 사건은 두 개가 되고 플라비아는 더욱 열심히 이 사건들을 수사한다.

 

이 귀여운(?) 소녀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논리적이지만 명탐정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 나이 또래의 소녀들과 다른 취향과 행동을 보여준다. 덕분에 우린 그녀의 활약에 두 눈을 부릅뜨고 재밌게 읽지만 부모라면 결코 반길 수 없는 아이다. 어떤 부모가 독약과 화학에 관심을 가지고 밤늦게 돌아다니고 마을 사람들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바로 이런 점들이 우리를 즐겁게 만든다. 탁월한 직관과 관찰력과 분석력은 경험이란 한계 속에서 충분히 성숙해지지 못했지만 그렇게 복잡하지 않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는 충분하다. 가끔 주변에서 그녀에게 단서를 던져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욱더.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탁월한 인물로 꼽고 싶은 사람은 도거다. 전쟁 트라우마로 명확한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왠지 그에게서는 은거고수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플라비아에게 던져준 몇 마디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고 그녀가 조사한 정보들은 이것과 결합하여 사실에 한 발 더 다가간다. 열한 살 소녀의 한계 속에 그 나이를 뛰어넘는 지성은 분명 균형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과 사건과 사람들은 이 불균형을 넘어 재미를 준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가 되고 의문은 그것이 풀릴 때 다시 처음으로 연결된다. 이 고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모두 풀리는데 이때 든 생각 중 하나는 경찰들은 왜 이 사건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뭐 좀더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해결했을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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