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 때때로 외로워지는 당신에게 보내는 따스한 공감 메시지
다츠키 하야코 지음, 김지연 옮김 / 테이크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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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 살의 독신 여성의 일상을 다룬 만화다.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다. 부모와 고양이 푸쿠다와 함께 산다. 하야코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형식은 네컷 만화다. 간단한 형식이다 보니 등장인인물이나 배경도 간단하게 그렸다. 물론 인물들은 특징으로 잡아서 차별화시켰다. 가끔 이름이 나오지 않거나 설명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누군지 헷갈리는 인물도 있다. 하지만 인물의 특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아주 소소한 일상으로 우릴 데리고 들어가서 삼십대 노처녀의 일상과 심리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제 주변에 삼십대 후반이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직원들이 상당히 있다. 애인이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삶을 살고 결혼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마음은 어떨지 모르지만 일단은 그렇게들 말한다. 이 만화를 보면서 어쩌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정확하게 아는 것은 개인마다 다르니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뭐 나 자신도 엄청난 노총각으로 살았으니 작가가 경험한 것들 중 일부는 크게 공감한다. 한일 간의 문화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들이 많아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삼십대가 되면 주변사람들로부터 결혼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는다. 이제 삼십대 중반인 하야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녀는 집에서보다 외부에서 더 많은 압박을 받는다. 친구나 직장동료나 상사로부터. 이십대의 직장동료들이 결혼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줄 때 하야코와 너무 다른 생각과 행동이라 약간 어리둥절했다. 분위기와 박력에 휩싸여 결혼상담소에 가입하는데 여기서 살짝 그녀의 성격과 속내가 드러난다. 그런데 상담소에서 소개시켜준 사람들이 그녀의 시선에서 봐서인지 상당히 특이하다. 조건 좋은 남자가 나왔을 때 상담소에서 보여준 반응은 일본의 이면을 살짝 들여다본 듯하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곧 씁쓸해졌다.

 

결혼 추진을 위해 네 명이 모이고 단체 미팅도 여러 번 한다. 그런데 이 모임의 나이 차가 크다. 이십대와 삼십대가 같이 있다. 미팅에 나오는 남자들도 나이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다. 요즘 우리나라도 그렇게 변하는 듯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낯설다. 개인적으로 이런 문화 차이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한국과 문화 차이가 아직 심하지만 비슷한 부분이 점점 많아지고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어쩌면 이런 장면들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야코가 바라는 남자는 간단하다. 외모도 키도 재산도 학벌도 아니다. 단지 이야기와 감정이 통하는 남자였으면 한다. 말은 간단하다고 했지만 현실에서는 상당히 어렵다. 그녀가 미팅이나 선을 대하는 자세와 행동을 보면 전혀 꾸밈이 없다. 그리고 재미난 것은 그녀가 만난 남자들의 특징을 잡아내어 이름 대신 별명을 붙인다는 것이다. 상당히 괴팍한 사람들인데 현실에서 이런 사람들을 연속으로 만나기도 힘들 것 같다. 마지막에 작가는 결혼에 대해 할지 안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결혼을 엄청나게 강요하는 부모도 없고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그녀가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이 시간은 더 길어질 것 같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고 나에게 묻는다면 ‘그럼요’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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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손홍규 장편소설
손홍규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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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 그리고 어렵다.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명확한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아 계속 뭐지? 하고 묻게 된다. 사람이 아닌 존재가 왜 생겼는지, 그들은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짐승과는 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등. 어떻게 보면 종말론적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한 형제의 처절한 모습이 부각되는 듯하지만 읽다 보면 모호함에 나도 모르게 빠진다.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세계 속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과거는 소년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변한다. 이 변화가 나의 착각인지 아니면 작가가 의도한 연출인지 지금은 살짝 궁금하다.

 

한 형제가 서울을 떠난다. 이 도시는 이제 알 수 없는 존재로 가득하다. 이 알 수 없는 존재를 작가는 명확하게 규정짓지 않는다. 좀비라고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좀비와 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작가에게 이 존재의 명확한 실체는 중요하지 않은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자신도 모를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소년은 서울을 벗어나 남쪽으로 간다. 동생의 머리는 헬멧으로 씌워져 있다. 처음에는 안전 때문인 줄 알았다. 계속 읽다 보니 이 동생이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형에게는 여전히 동생이고 사람이지만.

 

서울을 벗어나 남으로 가는 과정이나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은 현재 시간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사이사이를 채우는 것은 기억이고 추억이다. 좋은 기억은 거의 없다. 아버지가 이 두 형제를 옥상에서 떨어트려 죽이려고 했던 것이나 엄마가 목매어 자살한 것 같은 끔찍한 기억들이 먼저 나온다. 아버지가 중단한 것은 고모가 빌린 돈 3백만 원을 갚겠다는 전화 때문이고, 엄마가 왜 목을 매었는지는 나중에 나온다. 작가는 이 기억을 명확하게 처음부터 흘려보내지 않는다. 동생의 정체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내보내면서 이 알 수 없는 세계의 모습을 아주 살짝 노출할 뿐이다. 그래서 읽기가 생각보가 힘들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명확한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형제가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한 노인과 모녀를 만난다. 이들과 함께 잠시 생활하는데 이 과정에 변수가 생긴다. 바로 한 마리의 개다. 이 세계의 개들은 성대가 제거되어 울지 못한다. 그런데 동생은 듣는다. 나중에 드러나는 동생의 정체는 이것을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을 주지만 그것도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인간들이 점점 사라지고 죽는 세계지만 곳곳에 생존해 있다. 이런 설정은 기존의 종말론 세계를 다룬 소설이나 좀비 소설에서 자주 보는 설정이다. 바뀐 것이 있다면 낮을 지배하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 이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뒤바뀐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의문과 질문을 계속 던질 수밖에 없는 설정과 전개다. 이 형제가 서울을 떠나려는 것이 단순히 살기 위해서라고만 할 수 없는 상황을 모녀가 알려준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울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서울과 더불어 살면서 맺었던 관계와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이 과거의 혈연으로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은 양쪽으로부터 배척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형이 동생을 돌보지만 그가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동생이 일단의 사람들에게 납치되었을 때 보여준 행동과 심리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관계와 기억이다. 사람들 사이에 맺은 관계와 그 기억이 이들을 함께 있게 만든다. 동생이 떠난 후, 모녀 중 딸이 사라진 후 여자와 노인과 소년이 서울로 힘들게 돌아오게 된 것도 바로 이런 관계의 기억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을 작가는 세밀한 지역 설명으로 보여준다. 어느 순간에는 관계나 상황보다 이 설명이 더 많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지옥 같은 풍경이다. 작가는 말한다. “아무리 유서 깊은 종교라 해도 인간을 구원해 줄 수는 없었다.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실패한 종교만이 유서 깊을 수 있었다.”(267쪽) 어쩌면 이 알 수 없는 존재들이 구원을 받는 새로운 지구의 지배자들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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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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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극찬은 이전부터 들었다. 하루키의 책을 읽을 때 이 이름이 기억되었고, 그 후 조금씩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존 치버의 단편처럼 좀처럼 몰입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번역자 탓도 했지만 짧은 단편 속 미국 문화가 너무 낯설게 다가와 머릿속에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낯선 이름과 상황 때문에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른 채 끝까지 읽기도 한다. 좀더 여유를 가지고 다시 차분히 읽으면 그 재미를 발견할지 모르지만 나의 책읽기 습관이 이것을 방해한 것이다. 그것은 이번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잠시 멈춘 후 다시 집중하지 못한 부분을 읽을 때면 한 문장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도 생긴다.

 

모두 열두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등으로 어느 정도 미국 문화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단편을 읽으면서 다시 그 착각이 깨졌다. 첫 작품 <깃털들>을 읽으면서 이 두 부부의 저녁이 거짓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사회관계를 위한 식사였기 때문이다. 지극히 소시민적인 풍경인데 여기에 갑자기 공작새가 끼어든다. 이 틈입과 아기의 존재는 너무 낯설어 강한 여운을 남긴다. <셰프의 집>도 낯설다.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한 부부의 순간이 전혀 절박하지 않다. 한국의 현실과 너무 대비되는 모습이다. <보존>은 실직 남편과 냉장고 고장으로 인한 이야기다. 환멸이나 경멸 대신 추억으로 들어가는 설정이 재밌다.

 

<칸막이 객실>은 마지막 장면이 반전 같다. 그가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들의 결과가 뒤바뀔 때 잃었던 여유를 찾는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생일날 뺑소니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아이를 둔 부부 이야기다. 아이가 무사히 깨어나길 바라는 그들의 간절한 마음과 행동, 의사들의 무책임한 발언, 그리고 생일 케익 때문에 화가 난 제빵사가 만들어내는 삶의 모습은 분노와 안식을 안겨준다. <비타민>은 종합 비타민을 방문 판매하는 아내를 둔 남자의 흑인 바에서 벌어진 사건이 시선을 끈다. 그 당시가 베트남 전쟁시기였던 모양인데 그 참혹한 전쟁의 여파가 어떻게 미국 사회에 스며드는지 잘 보여준다.

 

<신경써서>는 귀지 때문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남자 이야기다. 중의적이고 함축적인 설정과 문장이 있다는데 아직 나의 내공이 부족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전화를 거는 곳>은 금주 시설에서 벌어지는 간단한 이야기다.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서 괜히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혹시 그녀가 음주 운전으로 사고 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기차>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괴리가 너무 심하다. 설명이 생략된 공간들을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넣어야 한다. 이것은 그 기차를 탄 승객들도 마찬가지다.

 

<열>은 아내가 직장 동료와 달아난 남자가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집착을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아이를 돌보고, 수업도 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 좋은 베이비시터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첫 번째 소녀가 실패한 후 만난 웹스터 부인은 최고다.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현실은 늘 최상일 수 없다. 열이 가라앉은 후 이전까지의 인생은 지나가고 있다. 은행에 농장을 빼앗긴 농부 일가를 보는 임대 주택 관리자의 시선을 다룬 소설이 <굴레>다. 여기서 굴레는 말굴레다. 몇 가지 에피소드가 삶의 단면들을 잘 보여준다.

 

표제작 <대성당>은 마지막 장면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화자가 맹인 손을 잡고 대성당 프로그램을 듣고 본 후 그림을 그리면서 만들어내는 과정은 정말 대단하다.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낯선 경험을 하게 한다. 화자가 맹인에 대해 가졌던 편견과 오해가 깨어지고 그 자리를 또 다른 자신으로 채운다. 이 단편집에서 어쩌면 가장 낯선 장면을 보여주는지 모르겠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다. 앞에 나온 열한 편이 낯설지만 친숙한 우리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살짝 일상을 벗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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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 / 비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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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여름휴가를 떠나면서 세 권의 책을 챙겨 갔다. 그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이 책을 읽었다. 혼자 간 여행이라면 조금 더 시간을 내어 책을 읽을 수 있겠지만 동행이 있어 한 번에 긴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예전에 혼자 갔을 때도 사실 책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았다. 일종의 변명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에게 큰 화상을 안겨줬다. 호텔 수영장에서 한두 시간 열중하다 드러난 신체 곳곳이 빨갛게 익은 것이다. 이날 이전까지 햇볕을 잘 피했는데 말이다. 울티모의 앞날을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심하게 몰입한 모양이다.

 

책을 읽기 전과 다 읽은 후 그냥 표지를 보았을 때 이 사람들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하나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장년이 된 울티모의 한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표지를 보면서 바로 그 장면이 생각나지 않은 것은 이 소설의 구성과 이야기 방식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시간 순으로 진행되지만 몇 사람의 화자를 등장시켜 울티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울티모를 직접 보여준다기보다 그들의 삶과 울티모가 교차한 순간을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단순한 해프닝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관통하는 주요한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다. 도입부가 자동차 경주라면 다음 역사는 제1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 그중에서 카포레토 전투다.

 

울티모. 마지막 아이란 뜻이다. 이 아이는 신의 가호 속에 성장한다. 특별한 아이다. 그가 나타나면 금빛 그늘 때문에 사람들이 금방 알게 된다. 울티모의 아버지는 아직 자동차가 귀족들의 놀이기구였던 시절에 가축들을 팔아서 자동차 수리점을 열었다. 이 일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토리노의 안개 낀 밤길을 헤매는 것이다. 이 경험은 울티모에게 자신만의 서킷을 만들도록 한다. 이후 울티모 삶의 목표는 바로 이 서킷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킷이 완성된 후 삶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그가 만든 서킷을 엘리자베타가 달리면서 인생을 느낄 때 묘한 감동이 전해진다.

 

울티모가 주인공이지만 그가 전면에 나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 않는다. 그와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 울리모의 삶을 흘려보낸다. 바로 역사와 사람이 중심에 있고, 그 주변에서 살짝 울티모가 등장하는 방식이다. 이 전개 방식은 어느 순간에는 집중력을 떨어트리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특히 카포레토 전투는 그 역사의 현장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울티모의 미래를 결정짓는 역할을 맡는다. 엄마의 외도와 아버지의 자동차 사고로 인한 미래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넘어 운명과 꿈에 대한 자각으로 연결된다. 자신이 계획한 자동차 서킷을 건설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미국으로 넘어간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그의 삶을 알려주는 역할은 러시아 혁명 당시 몰락한 귀족의 딸 엘리자베타다. 그녀의 일기를 통해 그녀가 바라는 삶과 살고 있는 삶을 보여주고, 그 사이에 울티모를 등장시킨다. 울티모가 주인공이라기보다 오히려 조연이다. 그런데 점점 나이 든 엘리자베타가 등장하면서 울티모의 존재감 커진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이어져 있던 감정, 바로 사랑이 점점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사랑의 환상을 보여주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을 조용히 그려낼 뿐이다. 이 교차하는 순간들 속에 앞에 나온 거짓말들이 하나씩 밝혀진다. 이 설정은 당연한 듯 받아들였던 이야기를 다시 되짚어 보게 만든다.

 

울티모는 사람들이 길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길이 사람을 길들인다고 말한다. 맞다. 사람들이 길을 내지만 기본적으로 자동차는 길을 달려갈 뿐이다. 만들어진 길을 달리는 것이 경주인데 이것은 사람들의 운명이나 삶과도 이어진다. 정해진 길을 가야하고, 길 어딘가에서 언제 멈춰 설 줄 모른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차들이 이 길을 벗어나면 바로 죽음이 기다린다. 그런 점에서 이 길은 아주 중의적이다. 에필로그에서 울티모가 만든 서킷을 찾아서 재건한 후 엘리자베타가 달릴 때 그 서킷에서 울티모의 인생을 경험한다. 그가 남긴 그림의 비밀에 도달했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아주 매혹적인 장면이다. 여기서 엘리자베타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갖고자 간절히 욕망한다. 그 욕망의 끝에는 울티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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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가 점점 심해지는 요즘 같은 날씨라면 추리, 스릴러 장르 소설 등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지요.

그리고 가끔 웃기는 소설 한두 권 정도 같이 읽으면 무더위의 시간도 순식간에 사라지지 않을까요.

  1. 닥터 슬립 : 스티븐 킹

 워낙 오래 전에 읽어 이제 기억에 희미한 소설 <샤이닝>의 후속작이다. 그것도 무려 36년 만에 출간된 속편이다. 킹의 소설을 좋아하는 작가라면 더욱 더 그냥 지나갈 수 없다.

 

 

 

 

 2. 몽위 : 온다 리쿠

일본 전역의 학교에서 아이들이 집단으로 똑같은 악몽을 꾸는 일이 벌어진다니 무슨 일일까? 이 악몽이 의미하는 바는? 가끔 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 그녀의 소설도 있지만 상당수의 소설들이 묘한 울림으로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무의식 깊숙이 봉인했던 공포를 되살리는 과정과 정체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3.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 요나스 요나손

 이 작가의 첫 작품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아주 정신없이 읽었다.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풍자와 은유로 가득한 소설은 읽은 재미와 즐거움을 동시에 전해준다. 이 작품도 전작의 재미를 보여준다면 아마 또 한 명의 필독 작가가 리스트에 추가될 것 같다.

 

 

  4. 사신의 7일 : 이사카 고타로

 <사신 치바>의 후속작이다. 전작이 단편집이었다면 이번에는 장편이다. 전작을 읽을 때 짧은 이야기 속에 빠져 있던 사신 치바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이번에는 어디까지 나올지 모르겠다. 이 작가의 작품이 워낙 가독성이 좋아 한때는 커피숍에서 단숨에 읽었던 적도 있다. 지금은 살짝 무리이겠지만. 그래도 재미는 보장하는 몇 명의 작가 중 한 명이다.

 

 

 5. 그림자 소녀 : 미셸 뷔시

'강렬한 서스펜스와 교묘한 플롯, 숨 가쁜 전개와 예상치 못한 놀라운 반전' 이 문구가 너무 식상하지만 그럼에도 관심이 가는 것은 역시 전원이 사망한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3개월 된 아기만 살아남는다고 이 아기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읽으면서 예상한 결말로 흘러간다면 실망하겠지만 반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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