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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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극찬은 이전부터 들었다. 하루키의 책을 읽을 때 이 이름이 기억되었고, 그 후 조금씩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존 치버의 단편처럼 좀처럼 몰입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번역자 탓도 했지만 짧은 단편 속 미국 문화가 너무 낯설게 다가와 머릿속에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낯선 이름과 상황 때문에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른 채 끝까지 읽기도 한다. 좀더 여유를 가지고 다시 차분히 읽으면 그 재미를 발견할지 모르지만 나의 책읽기 습관이 이것을 방해한 것이다. 그것은 이번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잠시 멈춘 후 다시 집중하지 못한 부분을 읽을 때면 한 문장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도 생긴다.

 

모두 열두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등으로 어느 정도 미국 문화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단편을 읽으면서 다시 그 착각이 깨졌다. 첫 작품 <깃털들>을 읽으면서 이 두 부부의 저녁이 거짓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사회관계를 위한 식사였기 때문이다. 지극히 소시민적인 풍경인데 여기에 갑자기 공작새가 끼어든다. 이 틈입과 아기의 존재는 너무 낯설어 강한 여운을 남긴다. <셰프의 집>도 낯설다.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한 부부의 순간이 전혀 절박하지 않다. 한국의 현실과 너무 대비되는 모습이다. <보존>은 실직 남편과 냉장고 고장으로 인한 이야기다. 환멸이나 경멸 대신 추억으로 들어가는 설정이 재밌다.

 

<칸막이 객실>은 마지막 장면이 반전 같다. 그가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들의 결과가 뒤바뀔 때 잃었던 여유를 찾는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생일날 뺑소니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아이를 둔 부부 이야기다. 아이가 무사히 깨어나길 바라는 그들의 간절한 마음과 행동, 의사들의 무책임한 발언, 그리고 생일 케익 때문에 화가 난 제빵사가 만들어내는 삶의 모습은 분노와 안식을 안겨준다. <비타민>은 종합 비타민을 방문 판매하는 아내를 둔 남자의 흑인 바에서 벌어진 사건이 시선을 끈다. 그 당시가 베트남 전쟁시기였던 모양인데 그 참혹한 전쟁의 여파가 어떻게 미국 사회에 스며드는지 잘 보여준다.

 

<신경써서>는 귀지 때문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남자 이야기다. 중의적이고 함축적인 설정과 문장이 있다는데 아직 나의 내공이 부족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전화를 거는 곳>은 금주 시설에서 벌어지는 간단한 이야기다.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서 괜히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혹시 그녀가 음주 운전으로 사고 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기차>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괴리가 너무 심하다. 설명이 생략된 공간들을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넣어야 한다. 이것은 그 기차를 탄 승객들도 마찬가지다.

 

<열>은 아내가 직장 동료와 달아난 남자가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집착을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아이를 돌보고, 수업도 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 좋은 베이비시터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첫 번째 소녀가 실패한 후 만난 웹스터 부인은 최고다.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현실은 늘 최상일 수 없다. 열이 가라앉은 후 이전까지의 인생은 지나가고 있다. 은행에 농장을 빼앗긴 농부 일가를 보는 임대 주택 관리자의 시선을 다룬 소설이 <굴레>다. 여기서 굴레는 말굴레다. 몇 가지 에피소드가 삶의 단면들을 잘 보여준다.

 

표제작 <대성당>은 마지막 장면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화자가 맹인 손을 잡고 대성당 프로그램을 듣고 본 후 그림을 그리면서 만들어내는 과정은 정말 대단하다.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낯선 경험을 하게 한다. 화자가 맹인에 대해 가졌던 편견과 오해가 깨어지고 그 자리를 또 다른 자신으로 채운다. 이 단편집에서 어쩌면 가장 낯선 장면을 보여주는지 모르겠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다. 앞에 나온 열한 편이 낯설지만 친숙한 우리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살짝 일상을 벗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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