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손홍규 장편소설
손홍규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낯설다. 그리고 어렵다.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명확한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아 계속 뭐지? 하고 묻게 된다. 사람이 아닌 존재가 왜 생겼는지, 그들은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짐승과는 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등. 어떻게 보면 종말론적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한 형제의 처절한 모습이 부각되는 듯하지만 읽다 보면 모호함에 나도 모르게 빠진다.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세계 속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과거는 소년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변한다. 이 변화가 나의 착각인지 아니면 작가가 의도한 연출인지 지금은 살짝 궁금하다.

 

한 형제가 서울을 떠난다. 이 도시는 이제 알 수 없는 존재로 가득하다. 이 알 수 없는 존재를 작가는 명확하게 규정짓지 않는다. 좀비라고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좀비와 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작가에게 이 존재의 명확한 실체는 중요하지 않은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자신도 모를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소년은 서울을 벗어나 남쪽으로 간다. 동생의 머리는 헬멧으로 씌워져 있다. 처음에는 안전 때문인 줄 알았다. 계속 읽다 보니 이 동생이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형에게는 여전히 동생이고 사람이지만.

 

서울을 벗어나 남으로 가는 과정이나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은 현재 시간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사이사이를 채우는 것은 기억이고 추억이다. 좋은 기억은 거의 없다. 아버지가 이 두 형제를 옥상에서 떨어트려 죽이려고 했던 것이나 엄마가 목매어 자살한 것 같은 끔찍한 기억들이 먼저 나온다. 아버지가 중단한 것은 고모가 빌린 돈 3백만 원을 갚겠다는 전화 때문이고, 엄마가 왜 목을 매었는지는 나중에 나온다. 작가는 이 기억을 명확하게 처음부터 흘려보내지 않는다. 동생의 정체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내보내면서 이 알 수 없는 세계의 모습을 아주 살짝 노출할 뿐이다. 그래서 읽기가 생각보가 힘들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명확한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형제가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한 노인과 모녀를 만난다. 이들과 함께 잠시 생활하는데 이 과정에 변수가 생긴다. 바로 한 마리의 개다. 이 세계의 개들은 성대가 제거되어 울지 못한다. 그런데 동생은 듣는다. 나중에 드러나는 동생의 정체는 이것을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을 주지만 그것도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인간들이 점점 사라지고 죽는 세계지만 곳곳에 생존해 있다. 이런 설정은 기존의 종말론 세계를 다룬 소설이나 좀비 소설에서 자주 보는 설정이다. 바뀐 것이 있다면 낮을 지배하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 이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뒤바뀐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의문과 질문을 계속 던질 수밖에 없는 설정과 전개다. 이 형제가 서울을 떠나려는 것이 단순히 살기 위해서라고만 할 수 없는 상황을 모녀가 알려준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울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서울과 더불어 살면서 맺었던 관계와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이 과거의 혈연으로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은 양쪽으로부터 배척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형이 동생을 돌보지만 그가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동생이 일단의 사람들에게 납치되었을 때 보여준 행동과 심리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관계와 기억이다. 사람들 사이에 맺은 관계와 그 기억이 이들을 함께 있게 만든다. 동생이 떠난 후, 모녀 중 딸이 사라진 후 여자와 노인과 소년이 서울로 힘들게 돌아오게 된 것도 바로 이런 관계의 기억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을 작가는 세밀한 지역 설명으로 보여준다. 어느 순간에는 관계나 상황보다 이 설명이 더 많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지옥 같은 풍경이다. 작가는 말한다. “아무리 유서 깊은 종교라 해도 인간을 구원해 줄 수는 없었다.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실패한 종교만이 유서 깊을 수 있었다.”(267쪽) 어쩌면 이 알 수 없는 존재들이 구원을 받는 새로운 지구의 지배자들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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