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데이
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서창렬 옮김 / 민음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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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있다. 그 혹은 그녀는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난다. 단 하루도 예외가 없다. 이렇게 5993일을 살았다. 5994일이 되는 날 스스로 A라고 하는 사람은 한 여자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리애넌이다. 그녀는 5994일째 몸 주인인 저스틴의 여자 친구다. 이 둘의 관계는 열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리애넌이 더 매달린다. A는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리애넌과 함께 바다로 간다. 이 짧은 여행은 이 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바로 A와 리애넌의 사랑 이야기다. 단순히 사랑 이야기라고 말하기에는 하루하루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 많은 의미와 삶을 담고 있다.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것이 일상이 된 A. 리애넌을 만난 후 변한다. A는 그녀를 보고 싶다. 다행이라면 A가 깨어난 동네에서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까지 거리는 길어도 1~2시간이면 충분하다. 몰래 그녀에게 접근한다. 어떤 때는 여자의 모습으로, 어떤 순간은 남자로 그녀 앞에 나타난다. 외모도 모두 다르다. 어느 날은 엄청난 뚱보로, 때로는 아주 멋진 몸매를 가진 채. A에게 성은 큰 의미가 없다. 외모도 의미가 없다.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삶을 살았기에 하나의 성이나 외모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자연스럽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의 시각 속에 갇혀 있었는지 깨닫는다.

 

사랑은 위험한 감정이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열정이 삶과 세상을 변하시킨다. 자신을 깨닫게 한다. A도 이 감정 때문에 실수를 한다. 먼 거리에 있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가 제 시간에 집에 도착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면서 남긴 흔적 때문에 그가 하루 동안 머물렀던 네이선이 그의 존재를 알게 된다. 물론 정확한 정체는 모른다. 이것은 A도 마찬가지다. 이 일이 A와 A가 머물렀던 네이선 모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네이선은 A를 악마로 부르고, A는 이에 변명한다. 리애넌에 대한 사랑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A의 정체는 무엇일까? A와 같은 존재들이 또 있는 것일까?

 

자신의 선택이 아닌 알 수 없는 방식으로 A는 매일 아침 다른 사람 몸에서 깨어난다. 선택하기 따라서는 몸 주인의 일상이나 중요성과 상관없이 하루 동안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이런 삶이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태어나면서 이렇게 적응하지 않은 존재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일 어디, 누구의 몸에서 깨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A에게 갑자기 나타난 사랑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A가 일상으로 삼았던 일들이 흐트러지는 계기가 된다. A의 영혼에 새겨진 사랑이 일상과 관계의 반복을 깨트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백미는 A가 리애넌의 몸에서 깨어난 하루다. 이때 하루 동안 그녀의 몸안에서 살면서 느낀 감각과 감정들은 평범하지만 그 사랑의 깊이를 아주 잘 표현해준다. 그녀가 보고 듣고 움직이고 만지고 부딪히는 느낌 모두가 A에게 진한 감동을 준다. 갑자기 짝사랑했던 그 옛날 기억 한 자락이 떠오른다. 그녀가 걸었던 길, 만졌던 물건, 보았던 시선, 곁을 지나면서 풍겼던 향기 등등. 평생 살면서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물론 그 당시는 이보다 더 아픈 일이 없지만. 소설 속 두 인물의 사랑은 성이나 외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전혀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둘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눈빛에 담긴 감정이다. ‘나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A의 존재를 발견하는 리애넌을 볼 때 이들의 사랑은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내일이 없는 이들의 현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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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임동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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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다. 정치지리학이란 학문을 통해 메트로폴리스 서울이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는지 돌아보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서울의 성장만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 경제, 자원 등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는지 검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 나오는 몇 가지 사실은 이때까지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바로 잡아주고, 너무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도시화와 아파트 문제 등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 순으로 서울의 변천사를 다루면서 그 당시 정책의 이유 등을 알려준다. 시간나면 한 번 제대로 깊이 있게 공부해볼만한 주제다.

 

정치지리학은 정치가 어떤 식으로 자원 배분을 관리하면서 사회를 바꾸어가는 가를 보여주는 학문이라고 저자는 간단히 말한다. 이 학문의 체계화는 독일의 지리학자인 프리드리히 라첼이 하였다고 한다. 최근에 와서야 이 학문이 중요해졌다고 하는데 이런 세부적인 사실이 일반 독자에게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몇 가지 단어가 있다. 정치와 자원 배분과 사회라는 단어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단순화한 것이다. 실제 다루어야 할 것은 더 많다. 임동근이 주장하는 바를 따라가면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과 충돌하는 것도 나온다.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도 있지만 대체로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이 책이 재밌고 흥미로운 것이다.

 

이 책은 2013년 10월부터 12월까지 팟캐스트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에 방송한 것을 수정, 보완해 출간한 것이다. 진행자 김종배가 질문하고, 감탄하는 역할을 맡고, 임동근이 학문적 사실을 알려주고 답하는 대화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과정에 진행자 김종배의 경험담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주고 그 시대를 일반 사람의 시선으로 보게 한다. 그러면 임동근이 사실은 인정하고 왜곡된 정보는 수정하면서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기억의 한자락을 붙잡고 있던 것은 다가구주택이다. 오래전 한 선배가 다가주주택을 투자용으로 사서 살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잘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팟캐스트 방송이라는 한계 속에서 풀어놓은 이야기라 깊이 있게 파고들거나 현실적인 예를 많이 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가구주택과 다세대주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거시적인 부분에서 다루다 보니 내 주변에서 경험한 것과 약간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가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주택들이 그 시대주택의 수급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부분은, 특히 아파트 공급 부족 등과 연관시켜 풀어내는 이야기는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나 자신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특히 아파트와 관련된 기억의 몇 가지는 현재의 사실을 가지고 과거의 기억을 왜곡하여 기억하는 부분도 몇 가지 있다. 특히 래미안과 관련된 이미지가 그렇다.

 

김종배도 말했지만 나도 지금까지 박정희 최고의 공적 중 하나로 그린벨트를 꼽았다. 그런데 이 그린벨트가 환경보호 목적에서 지정된 것이 아니라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한다. 또 개발과 관련하여 반드시 알아야 하는 단어가 하나 등장하는데 바로 체비지다. 사전적 의미는 도시의 체계적인 개발을 위한 방안으로 일정지역을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로 선정 후 공공시설의 설치 등 시행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구획정리 지구내 지역주민의 개인토지 점유 면적에 따라 감보율을 적용하여 확보한 토지를 말한다. 이 체비지가 강남의 개발과 관련하여 아주 복마전 같은 역할을 하는데 새로운 시각에서 개발사업을 들여다보게 한다.

 

서울하면 역시 아파트를 빼놓을 수 없다. 아파트하면 역시 강남과 토건재벌이 떠오른다. 김종배는 “지금까지 아파트 역사를 보면 정부의 땅 장사와 재벌의 집 장사가 서로 이익이 맞아떨어진 결과다”라고 정의하고, 임동근은 여기에 “재벌 돈이 주택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정부가 제도를 하나하나 바꿔가는 과정이었다”라고 덧붙인다. 이때도 체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주택 건설에 정권 차원에서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현실은 바로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이는데 살 곳이 없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것과 관련된 수많은 사회기초설비, 상하수도, 전기, 쓰레기 등이 갖춰져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간단하게만 볼 서울의 변천사가 아니다.

 

처음에 동사무소 이야기로 문을 여는데 이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흔히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일제 강점기 당시 지역의 유지 등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라고 한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권의 손발로 전락하지만 그 시작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지방자치로 인한 문제나 역대 서울시장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시장직에 임했는지 설명할 때는 이 정치지리학의 매력이 듬뿍 묻어난다.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의 현대사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면서 배우게 되는 것도 적지 않다. 책을 한 번 더 읽는 것이 좋겠지만 안 되면 팟캐스트라도 찾아서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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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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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한 환상을 무참하게 깨트리는 소설을 읽고 놀란 적이 있다. 덴도 아라타의 <가족사냥>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읽고 난 후 지금까지도 가장 잔혹한 소설로 기억한다. 오래되어 세부적인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화목한 가족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되었다. 실제 살다 보면 내가 알던 가족과 다른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이 가족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부담을 지우는 것도 가족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참 모습이 잘 드러나는 경우는 흔히 둘 있다. 하나는 결혼이고, 다른 하나는 유산 분배할 때다. 이것이 단순히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모양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고 고백한다. 바로 이어서 “ 가족 구성원 각자를 한 사람의 개인으로 간주하고 생각을 전개해나가려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단순히 개인적 경험에 의해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실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본 것을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물론 아버지의 몰락과 어머니의 집착과 오빠의 떠남 등이 어우러져 홀로 서고자 하는 삶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이것을 단순히 환경만의 문제로 돌리기에는 이와 비슷한 삶을 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물론 그녀 자신이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아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하면서 또 하나의 삶을 포기하였지만 이것 또한 자신의 살고자 하는 의지의 결과다.

 

나 자신도 버릇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혹은 콩가루 집안이네 등과 같은 말이다. 한 사람의 행동을 확대해석하거나 하나의 현상을 전체로 확장하는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 이런 말을 많이 한다. 가족의 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고, 이것이 사회문제로 발전할 경우 그 가족이 그 잘못을 짊어져야 하는 일이 생긴다. 내가 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쑥덕거린다. 누구네 아버지네, 어머니네, 아들이네, 동생이네, 오빠네 등과 같이. 저자는 이런 경우 실제 잘못한 사람의 죄가 다른 사람에게 이전되고, 당사자의 죄의식이 희석된다고 말한다. 공감하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개인과 가족을 혼동하고, 아니면 의도적으로 자기 가족과 차이를 두기 위해 이런 표현을 한다.

 

가족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 이미 그 틀이 정해져 있다. 틀 안에서 아버지, 어머니, 자식이라는 역할을 연기하는데 이 속에서 개인은 매몰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의 인격을 되찾는 것이 진정 가족이 무엇인지 아는 지름길이 아닐까 묻는다. 여기에는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이 없다. 실제 우리는 화목한 가족을 강요받으면서 자란다. 가족이라는 거대한 폭력에 휘둘리면서 혹은 그속에서 폭력을 휘두르면서 살아가고 있다. 가족 간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누구나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수없이 많은 강요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형제자매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더 좋다는 말이 있다. 실제 현실의 사소한 문제에 있어서 이런 경우는 많이 일어난다. 나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빈도수를 따지만 친구들이 더 높다. 물론 가족이 아니기에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도 많다. 요즘과 달리 이전에는 다른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빈약했다. 가족을 더 강조하면 할수록 부모, 형제자매가 아니라 부부와 자기 자식으로 그 가족을 한정시키고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대가족 사회에서는 그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졌지만 핵가족이 되면서 더욱 이기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저자도 현대 사회의 가족이 핵가족화되면서 예전의 가족과 차별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을 더 깊게 파고들어 연구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예전에 할리우드 영화 비평을 보면 가족주의를 너무 강조한다는 말이 많았다. 실제 그 영화를 보면 늘 가족이 중심에 있다.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다. 물론 결과는 좋게 끝난다.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는 글이 이 책에 있다. “국가도 나서서 가족을 예찬한다. 전시 중에 그랬던 것처럼, 가족이 화목하고 단합이 잘되면 통치하기가 쉽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 가족은 작은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족은 다른 가족에게 배타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는 모르다고 말하고, ‘자기 가족만 좋으면 된다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되는게 아닐까.’하고 묻는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나 가부장적 체계가 이것을 잘 보여준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가장의 위치나 역할이 조금 바뀌었다고 해도 그 기본 구성은 별 차이가 없다.

 

현재 일본의 점점 심해지는 우경화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글도 있다. 바로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경험이다. “패전 후에는 두 번 다시 전쟁을 하는 것도 군대에 가는 것도 싫다고 하더니, 그 후 국력이 강해지고 나라 전체가 우경화되자 과거에 교육받은 사고방식으로 돌아가는 아버지”라는 문장이다. 물론 현재 저자의 아버지가 죽었다. 하지만 이런 영향력은 이런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한국의 극우보수세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비교하면 많은 부분에서 닮을 꼴이 나올 것 같다. 한 가지 저자에 대해 오해를 풀어주자고 하면 그녀는 오래전에 결혼해서 반려 혹은 파트너와 잘 살고 있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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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우 헌터스 4 : 추락천사의 도시
카산드라 클레어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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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고편으로 먼저 만났던 소설이다. 영화와 동시에 3권까지 한꺼번에 출간되었다. 하지만 그 후속편들이 나오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이번에 나온 두 권도 마지막 6권 한 권을 남겨두었다. 개인적으로 6권까지 나와서 한 번에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바로 나오지 않는 한 나의 기억력이 5권까지의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몇몇 에피소드들은 잘 기억에 났지만 몇 가지 관계나 설정 등을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가 한 편 한 편 완결성을 가지고 있고, 출간 연도도 1~2년의 격차가 있음을 생각하면 문제는 나에게 있기는 하다.

 

이 시리즈를 읽다 보면 하나의 사건이 끝난다고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는다. 3권에서 가장 큰 사건 하나를 해결했지만 겨우 6주의 시간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사건들이 벌어진다. 이 시리즈를 나눌 때 앞의 세 권을 前 삼부작, 뒤의 세 권을 後 삼부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구분은 모든 사건의 주체가 되는 인물이 누구냐에 따른 것이지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 삼부작이 발렌타인이 구상하는 세계에 대항하는 섀도우 헌터들의 이야기라면 후 삼부작은 그의 아들인 세바스찬이 모든 음모의 주재자다. 이번 시리즈는 3권에서 죽었다고 생각한 세바스찬의 부활과 그를 부활시킨 악마의 계획에 의해 사라진 제이스를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

 

판타지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를 그 중심에 놓고 있다. 선과 악의 대결처럼 보이는 그 이면에는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십대들의 열정과 무모함이 놓여 있다. 십대들의 미숙함이 불러오는 몇 가지 사건들과 자신이 가장 바라는 바를 위해 무작정 달려나가는 열정에 따라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자신의 사랑을 현재가 아닌 먼 미래에 두고 고민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알렉의 모습은 과도한 소유욕이 만들어낸 문제들이다. 그가 카밀에 의해 휘둘리는 모습을 보면 사랑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와 현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번 책들에서 가장 많은 갈등 속에 놓여 있는 인물은 사이먼이다. 뱀파이어가 된 그가 겪는 정체성의 문제는 계속 그를 괴롭힌다. 이마에 카인의 표시를 새겨 자신을 공격하는 존재를 소멸시키는 힘을 가졌지만 피를 갈구하는 뱀파이어의 본능까지는 어쩔 수 없다. 인간의 피가 아닌 동물의 피로 그 갈증을 달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변한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죽기 전 인간을 그리워하기에 겪게 되는 과도기의 혼란이다. 이런 그의 혼란은 결국 엄마에게 발각된다. 엄마는 뱀파이어로 변한 그를 두려워한다.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물리쳐야 할 악으로 생각한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영화 등에서 이런 것들을 보아왔는가.

 

이번 시리즈에는 새로운 인물이 둘 있다. 하나는 오래된 뱀파이어 카밀이고, 다른 하나는 늑대인간 카일이다. 카밀은 인간의 피를 마시면서 무리에서 쫓겨난 흡혈귀지만 오랫동안 살면서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사이먼을 유혹하고 뒤흔드는 역할을 맡는다. 그녀는 한때 매그너스의 연인이었는데 이것이 알렉을 뒤흔드는 역할을 한다. 출연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녀가 뿌린 불신과 불안의 씨앗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카일은 초보 뱀파이어 사이먼을 돌보기 위한 늑대인간이다. 프리터 루퍼스 소속이고 마야의 전 남친이다. 새로운 조직인 프리터 루퍼스는 다운월드 신참자를 돌보는 역할을 맡는다. 뭔가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조직 같은데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기 위한 십대들의 사랑과 열정은 언제 봐도 불안하고 위험하고 화려하다. 화려함에 가려진 불안과 위험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면 아무 이야기도 되지 않겠지만 화려함에 둔다면 다르다. 그들의 열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않고 달려갈 때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주인공들의 삶에 비해 조연이나 엑스트라 역할은 언제나 희미하다. 그들이 선택한 결정에 의해 그들은 죽어나간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들의 결정을 새롭게 보게 된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 순간 그들은 성장한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자신의 변화를 인정하고,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고, 상대방을 신뢰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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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해변
크로켓 존슨 글.그림, 김미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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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만 읽는 데는 십 분도 걸리지 않는 분량이다. 책 뒤에 나오는 옮긴이의 말이나 후기나 모리스 센닥의 추천사가 오히려 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별로 대단할 것 같지 않은 이야기와 간결한 선으로 만든 그림이 모두 읽은 후 머릿속을 맴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 책이 왜 그렇게 많은 추천을 받았고, 인기가 있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것은 다시 읽으면서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 읽은 것이 거의 2주 전이고, 이번에 다시 스쳐지나가듯이 한 번 더 읽었다. 간단한 구성이라 어려운 것도 없었다. 지난 번에도 느낀 것을 지금도 다시 느꼈을 것이지만 마지막 대사가 가슴 한 곳에 머문다. “왕은 아직 거기에 있어. 이 이야기 속에” “여전히 왕좌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거야”라고 말할 때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나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한가롭게 낚시를 하던 왕이 아닌 자신의 성을 향해 말을 달리고,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다가 혹시 반역의 무리들과 싸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마법의 해변이란 제목처럼 이 해변은 단어로 쓴 것이 현실로 나타난다. 벤이 장난처럼 쓴 첫 단어 잼이 해변에 실제 나왔을 때 그들은 그것에 어울리는 단어를 떠올리고 쓴다. 빵이다. 이 단어들은 다음 단어를 만들고, 어는 순간 이야기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왕이다. 왕은 성을 요구하고, 말을 타고, 자신의 성으로 달려간다. 이렇게 이 책은 단어와 단어가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단순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왕이 말을 타고 자신의 성으로 달려가고, 자신들은 해변이 물에 잠기면서 다시 돌아온다. 자신들이 만든 이야기는 해변의 바닷물 속에 잠긴다. 이야기와 창작자가 분리되는 순간이다. 앤이 마지막에 한 말의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작가의 놀라운 이력에 반해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 있다. 바로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이 책에 실린 작가의 그림이 아닌 다른 삽화가의 그림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런 관념적인 이야기에는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제목도 다르다. 1965년 출간된 책의 제목은 <모래 위의 성>이다. 개인적으로 원 제목이 더 어울린다. 모래 위의 성이란 한자로 사상누각이지 않은가.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절대 이것이 아니기에, 이 책의 깊이를 생각할 때 너무 안이한 작명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원 제목과 원래의 삽화가 곁들여진 책이 나온 것은 반갑고 축하할 일이다.

 

1965년 판 책의 삽화를 보지 못해 둘의 평가를 정확하게 내릴 수 없지만 이 이야기와 이 삽화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간결하지만 명확한 선으로 그려낸 삽화는 배경이 없지만 우리의 상상력으로 분명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처음 그냥 휙 읽을 때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시 읽으면서 다른 해석을 하게 되면서 이 간결한 그림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개인적으로 아직 이런 종류의 책을 거의 읽지 않았고,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처럼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뭔가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것은 내가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서평을 쓰면서 잊고 있던 것들이다. 언젠가 나도 단어와 단어를 이어서 작은 이야기 하나를 만들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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