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해변
크로켓 존슨 글.그림, 김미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책만 읽는 데는 십 분도 걸리지 않는 분량이다. 책 뒤에 나오는 옮긴이의 말이나 후기나 모리스 센닥의 추천사가 오히려 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별로 대단할 것 같지 않은 이야기와 간결한 선으로 만든 그림이 모두 읽은 후 머릿속을 맴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 책이 왜 그렇게 많은 추천을 받았고, 인기가 있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것은 다시 읽으면서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 읽은 것이 거의 2주 전이고, 이번에 다시 스쳐지나가듯이 한 번 더 읽었다. 간단한 구성이라 어려운 것도 없었다. 지난 번에도 느낀 것을 지금도 다시 느꼈을 것이지만 마지막 대사가 가슴 한 곳에 머문다. “왕은 아직 거기에 있어. 이 이야기 속에” “여전히 왕좌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거야”라고 말할 때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나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한가롭게 낚시를 하던 왕이 아닌 자신의 성을 향해 말을 달리고,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다가 혹시 반역의 무리들과 싸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마법의 해변이란 제목처럼 이 해변은 단어로 쓴 것이 현실로 나타난다. 벤이 장난처럼 쓴 첫 단어 잼이 해변에 실제 나왔을 때 그들은 그것에 어울리는 단어를 떠올리고 쓴다. 빵이다. 이 단어들은 다음 단어를 만들고, 어는 순간 이야기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왕이다. 왕은 성을 요구하고, 말을 타고, 자신의 성으로 달려간다. 이렇게 이 책은 단어와 단어가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단순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왕이 말을 타고 자신의 성으로 달려가고, 자신들은 해변이 물에 잠기면서 다시 돌아온다. 자신들이 만든 이야기는 해변의 바닷물 속에 잠긴다. 이야기와 창작자가 분리되는 순간이다. 앤이 마지막에 한 말의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작가의 놀라운 이력에 반해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 있다. 바로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이 책에 실린 작가의 그림이 아닌 다른 삽화가의 그림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런 관념적인 이야기에는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제목도 다르다. 1965년 출간된 책의 제목은 <모래 위의 성>이다. 개인적으로 원 제목이 더 어울린다. 모래 위의 성이란 한자로 사상누각이지 않은가.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절대 이것이 아니기에, 이 책의 깊이를 생각할 때 너무 안이한 작명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원 제목과 원래의 삽화가 곁들여진 책이 나온 것은 반갑고 축하할 일이다.

 

1965년 판 책의 삽화를 보지 못해 둘의 평가를 정확하게 내릴 수 없지만 이 이야기와 이 삽화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간결하지만 명확한 선으로 그려낸 삽화는 배경이 없지만 우리의 상상력으로 분명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처음 그냥 휙 읽을 때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시 읽으면서 다른 해석을 하게 되면서 이 간결한 그림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개인적으로 아직 이런 종류의 책을 거의 읽지 않았고,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처럼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뭔가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것은 내가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서평을 쓰면서 잊고 있던 것들이다. 언젠가 나도 단어와 단어를 이어서 작은 이야기 하나를 만들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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