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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X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박현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3월
평점 :
오랜만에 묵직한 소설 한 권을 읽었다. 한 종교 단체를 통해 인간의 극단적인 모습과 사회의 부조리를 아주 날카롭게 보여준다. 읽다 보면 너무 자극적인 묘사에 놀라기도 하지만 이 또한 우리 삶의 한 모습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묘사가 불편하다면 그것은 나의 아픈 부분을 찔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난잡해 보이는 성교 장면은 한편의 포르노를 보는 것 같다. 사랑이나 애정이 사라진 그 장면은 아주 불편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우리의 삶이 들어있고, 그 삶이 우리의 일상을 구성한다.
또 하나 불편한 설명과 묘사는 살인 장면이다. 공간을 일본에서 아프리카로 옮겼지만 이것이 시간을 달리하면 일본과 동아시아 전역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다. 불과 몇 십 년 전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학살의 장면들이 있었다. 다만 언론 통제와 그 불편한 장면을 제대로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정면으로 다루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부분에서 작가는 조금은 비겁한 방식을 사용한다. 극단으로 밀고 가는 대신 중간에서 멈춘 것이다. 다른 조직이나 존재의 의해서가 아닌 내부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내면서 극대화되고 극단적으로 표현될 문제를 살짝 봉합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부분에 동의하지만 조금 더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교단 X는 우리가 흔히 사이비종교로 부르는 단체다. 이 단체의 특징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입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일상이라는 부르는 삶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힘든 적응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자신 내부의 문제일수도 있고, 성장기에 생긴 문제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버텨내지 못한다면 마음에 강한 어둠을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교단 X의 교주 사와타리는 이 감춰진 어둠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인물이다. 이야기 초반에는 그냥 평범해 보였지만 그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날 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괴물을 마주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는 불편하고 불안하고 공포스럽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은 한 명이 아니다. 교단 X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중에서 종교단체가 아닌 단체를 이끄는 마쓰오의 강연은 신학, 종교, 물리학, 생물학 등의 최신 과학 등을 토대로 장대하게 이어진다. 어느 순간 우주의 시초인 빅뱅으로 갔다가 가장 작은 쿼크 단위로까지 내려간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장대한 연구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보다 오히려 인간들의 연대로 결론을 맺는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고민보다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조금이나마 바꾸자는 의견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파국으로 치닫는 교단 X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신의 존재와 그 의미를 묻게 만든다.
모든 일의 시작은 당연히 아주 작은 것이다. 나라자키가 사라진 다치바나 료코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면서부터다. 탐정은 나라자키를 마쓰오의 단체로 인도하고, 이 속에서 작가의 고민과 공부가 마쓰오의 강연을 통해 드러난다. 마쓰오와 사와타니의 관계가 처음으로 나오지만 실제 이들의 관계는 그렇게 밋밋한 것이 아니다. 동문수학했다고 표현해야 하나? 종교단체로 발전하는 사와타니에 비해 마쓰오는 자신이 통찰하고 있는 이론을 강연이란 형태로 말할 뿐이다. 반면에 교주가 된 사와타니는 자신의 추종세력을 강하게 밀어붙여 새로운 교인으로 탄생시킨다. 이때 나의 이성은 왜지? 하는 의문이 들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언제나 이성을 초월한다. 다카하라가 아프리카에서 겪은 일이 바로 그것이다.
작은 시작이 관계와 인연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고, 마쓰오의 강연을 통해 깊이를 더한다. 각자가 믿는 바에 따라 혹은 욕망에 이끌려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가 나타난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 사람들의 삶과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전쟁이란 극단적인 경험을 한 마쓰오의 이야기나, 아프리카에서 인질이 되어 사이비 종교의 교인이 되었던 다카하라의 이야기나, 허무와 권태와 쾌락 속에 매몰된 사와타니의 이야기는 모두 극단적이다. 보통의 우리는 평생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현대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뒤에서 다국적기업의 이익, 빈곤, 테러, 권력욕, 개인의 욕망 등이 뒤섞여 있다. 다카하라의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거나 눈감고 있던 부분들이라 더 가슴 아프다.
신과 인간, 선과 악, 삶과 죽음 등의 관념적인 주제는 이 소설에서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우주의 탄생 등과 비교하면 그렇다. 하지만 이 사소한 것들이 모여 아주 거대한 형상을 만든다. 소립자 이론이 윤회와도 연관성을 가진다. 인류와 지구 상의 모든 존재가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선을 끄는 이론이다. 결국에는 마지막에 “더불어 살아갑시다”란 말로 요약된다. 개인의 존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아주 날카롭게 지적한다.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부분은 아주 멋진 요약이자 설명이었다. 한국 소설에서 이런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 소설을 근래에 보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리고 몇 년 전 읽었던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떠올리면서 조금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