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부터 일하러 갑니다! - 15년 만의 재취업 코믹 에세이
노하라 히로코 지음, 조찬희 옮김 / 꼼지락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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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0년 전만 해도 한국 기업의 대부분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퇴사했다. IMF 이후 삶이 힘들어지면서,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가족을 꾸릴 수 없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을 맡기고 직장으로 나가는 엄마들이 늘어났다. 몇 십명 되지 않는 현재 직장에도 직장맘들이 몇 명이나 있고, 또 몇 명은 임신을 하고 있다. 이들의 경우 아이를 낳고 출산 휴가 3개월을 사용하면 회사로 복귀한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아이들을 시댁이나 친정에서 돌봐준다. 그렇지 않으면 육아휴직을 사용해야만 한다. 인원이 많지 않은 회사에서 이런 경우가 생기면 그 인원을 보충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이를 거부하는 것도 현실이다. 이 만화 에세이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주변에서 일하는 직장맘들이다.

 

이 만화의 도입부는 두 아이를 누가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남편의 호기로 시작한다. 전업주부로 계속 살아온 그녀가 점점 자라는 아이들과 늘지 않는 혹은 줄어드는 남편의 급여 걱정을 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뀐다. 현실의 불만족과 미래의 불안감이 아르바이트라도 구하라고 말한다. 어릴 때 아이들은 엄마들의 손길과 관심이 필요했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서 그것이 필요 없어졌다. 직장 구하는 것을 막던 남편도 이제는 은근히 바란다. 이 변화가 그녀로 하여금 구직활동하게 만든다. 이때부터 쉽게 생각했던 일들이 높은 벽이 되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만화를 보면서 많은 부분 공감했다. 어린 아이들을 둔 엄마의 전업주부화와 이 아이들이 성장한 후 재취업의 어려움 등이 대표적이다. 15년 만의 재취업인 것도 쉽지 않은데 이전의 경력도 특별한 것이 없다. 전문직이었다고 해도 빠르게 변화는 시대에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은데 어떤 경력도 특별한 능력도 없다. 당연히 쉽지 않다. 그리고 이 만화에서 핵심을 짚어주는 것 중 하나가 있다. 엄마가 원하는 직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젊고 아이가 없는 엄마를 더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비록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없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매번 면접에서 떨어진다. 그래서 요구 조건을 조금 바꾼다. 재취업에 성공한다.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바로 행복 시작이 아니다. 첫 직장은 그녀의 적성도 능력도 맞지 않는 회사였다. 남들이 볼 때 너무 쉽게 선택했다고 할 수 있지만 수없이 면접에서 떨어진 그녀에게는 한줄기 빛과도 같은 일이다. 나름 열심히 노력해보지만 현실을 인정한다. 그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다른 직장을 알아본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료칸의 청소부다. 이전 직장이 자판을 두드리면서 책 편집하는 회사였다면 이번에는 몸을 빨리 놀려야 하는 일이다. 이 두 직장에서 모두 열심히 일하지만 그 스트레스 강도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전 직장이 온갖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이번 직장은 육체적인 힘은 들지만 자신의 삶을 계획하는 즐거움이 있다. 놀라운 변화다.

 

이런 변화가 화자의 관점이라면 부록에 나오는 딸의 관점은 또 새롭다. 일상이 가정에 한정되었을 때 엄마와 밖에 나가서 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다르다. 말이 더 많아졌고 내용도 다르다. 이전에는 엄마에게 집안 일 모두를 맡겼다면 이제는 가족들이 조금씩 분담해야 한다. 그리고 보너스 컷에서 보여주는 문장은 관점의 차이가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이런 것들이 많은 부분 공감하게 만들었다면 현실 속에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직원을 보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많은 부분 개인의 열정과 노력을 요구하는 부분도 약간 눈에 거슬린다. 그래서인지 료칸의 할머니 청소부들이 일을 빠르게 끝내고 칼퇴근하는 모습이 아주 멋지게 보인다. 하지만 경력단절 문제나 양질의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현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다. 어떻게 보면 현실 만족을 다룬 판타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구하기 전이나 구하는 과정이 아주 현실적이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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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X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박현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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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묵직한 소설 한 권을 읽었다. 한 종교 단체를 통해 인간의 극단적인 모습과 사회의 부조리를 아주 날카롭게 보여준다. 읽다 보면 너무 자극적인 묘사에 놀라기도 하지만 이 또한 우리 삶의 한 모습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묘사가 불편하다면 그것은 나의 아픈 부분을 찔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난잡해 보이는 성교 장면은 한편의 포르노를 보는 것 같다. 사랑이나 애정이 사라진 그 장면은 아주 불편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우리의 삶이 들어있고, 그 삶이 우리의 일상을 구성한다.

 

또 하나 불편한 설명과 묘사는 살인 장면이다. 공간을 일본에서 아프리카로 옮겼지만 이것이 시간을 달리하면 일본과 동아시아 전역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다. 불과 몇 십 년 전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학살의 장면들이 있었다. 다만 언론 통제와 그 불편한 장면을 제대로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정면으로 다루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부분에서 작가는 조금은 비겁한 방식을 사용한다. 극단으로 밀고 가는 대신 중간에서 멈춘 것이다. 다른 조직이나 존재의 의해서가 아닌 내부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내면서 극대화되고 극단적으로 표현될 문제를 살짝 봉합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부분에 동의하지만 조금 더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교단 X는 우리가 흔히 사이비종교로 부르는 단체다. 이 단체의 특징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입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일상이라는 부르는 삶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힘든 적응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자신 내부의 문제일수도 있고, 성장기에 생긴 문제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버텨내지 못한다면 마음에 강한 어둠을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교단 X의 교주 사와타리는 이 감춰진 어둠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인물이다. 이야기 초반에는 그냥 평범해 보였지만 그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날 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괴물을 마주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는 불편하고 불안하고 공포스럽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은 한 명이 아니다. 교단 X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중에서 종교단체가 아닌 단체를 이끄는 마쓰오의 강연은 신학, 종교, 물리학, 생물학 등의 최신 과학 등을 토대로 장대하게 이어진다. 어느 순간 우주의 시초인 빅뱅으로 갔다가 가장 작은 쿼크 단위로까지 내려간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장대한 연구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보다 오히려 인간들의 연대로 결론을 맺는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고민보다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조금이나마 바꾸자는 의견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파국으로 치닫는 교단 X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신의 존재와 그 의미를 묻게 만든다.

 

모든 일의 시작은 당연히 아주 작은 것이다. 나라자키가 사라진 다치바나 료코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면서부터다. 탐정은 나라자키를 마쓰오의 단체로 인도하고, 이 속에서 작가의 고민과 공부가 마쓰오의 강연을 통해 드러난다. 마쓰오와 사와타니의 관계가 처음으로 나오지만 실제 이들의 관계는 그렇게 밋밋한 것이 아니다. 동문수학했다고 표현해야 하나? 종교단체로 발전하는 사와타니에 비해 마쓰오는 자신이 통찰하고 있는 이론을 강연이란 형태로 말할 뿐이다. 반면에 교주가 된 사와타니는 자신의 추종세력을 강하게 밀어붙여 새로운 교인으로 탄생시킨다. 이때 나의 이성은 왜지? 하는 의문이 들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언제나 이성을 초월한다. 다카하라가 아프리카에서 겪은 일이 바로 그것이다.

 

작은 시작이 관계와 인연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고, 마쓰오의 강연을 통해 깊이를 더한다. 각자가 믿는 바에 따라 혹은 욕망에 이끌려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가 나타난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 사람들의 삶과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전쟁이란 극단적인 경험을 한 마쓰오의 이야기나, 아프리카에서 인질이 되어 사이비 종교의 교인이 되었던 다카하라의 이야기나, 허무와 권태와 쾌락 속에 매몰된 사와타니의 이야기는 모두 극단적이다. 보통의 우리는 평생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현대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뒤에서 다국적기업의 이익, 빈곤, 테러, 권력욕, 개인의 욕망 등이 뒤섞여 있다. 다카하라의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거나 눈감고 있던 부분들이라 더 가슴 아프다.

 

신과 인간, 선과 악, 삶과 죽음 등의 관념적인 주제는 이 소설에서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우주의 탄생 등과 비교하면 그렇다. 하지만 이 사소한 것들이 모여 아주 거대한 형상을 만든다. 소립자 이론이 윤회와도 연관성을 가진다. 인류와 지구 상의 모든 존재가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선을 끄는 이론이다. 결국에는 마지막에 “더불어 살아갑시다”란 말로 요약된다. 개인의 존재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아주 날카롭게 지적한다.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부분은 아주 멋진 요약이자 설명이었다. 한국 소설에서 이런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 소설을 근래에 보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리고 몇 년 전 읽었던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떠올리면서 조금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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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뜰
탁현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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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간송미술관 연구원이다. 간송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 많이 들었지만 한 번도 다녀온 적이 없다. 하지만 명성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는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는 드라마 때문에 약간의 왜곡된 시선도 있었지만 책소개를 읽으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특히 ‘현모양처로 알려졌던 사임당의 생애를 말하는 대신 화가이자 예술가로서 사임당이 남긴 화첩 속 그림이 전하는 생명의 메시지를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이것이 나의 머릿속에 율곡 이이의 어머니가 아닌 화가 사임당을 떠올려주었다.

 

사임당의 뜰이란 제목처럼 뜰 속에서 볼 수 있는 풀과 꽃과 벌레 등을 그린 화첩을 해석한 책이다. 저자는 “뜰은 마당으로 들어온 작은 산수이다.”란 말로 이 시대의 한계와 의미를 동시에 부여한다. 한계는 유람이 자유롭지 못했던 행동의 제약이고, 의미는 이 때문에 조선 시대의 뜰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이 없던 시절 화가가 남긴 그림 한 점은 그 시대의 풍경을 아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림 속 정보가 많을수록 관련분야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현재 잘 보이지 않아서 잘못 알고 있는 것도 가끔 생긴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사임당의 화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부수적으로 매창의 화첩과 저자의 가상 인터뷰가 덧붙여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책의 첫머리를 차지하는 그림은 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묵포도와 쏘가리를 말한다. 그리고 같이 달린 해석은 앞으로 펼쳐질 화첩에 대한 이야기 방향을 보여준다. 그림의 도상학적 의미도 같이 넣어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궐(鱖)이란 한자의 발음이 궁궐의 궐과 같아 급제하여 궁궐에 들어가는 것의 의미한다고. 이것은 나중에 다산과 풍요의 의미로 사용되는 과일 등과 이어진다.

 

사임당의 그림은 모두 세 곳에 보관되어 있다. 간송미술과, 국립중앙박물관, 오죽헌시립박물관 등이다. 저자는 보관된 곳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런데 제목을 보면 사임당초충화첩, 신사임당필초충도, 신사임당초충도병 등으로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기준으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려주는 설명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그림의 크기를 알 수 없다보니 화첩과 도병이란 말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사임당의 사후 왜란으로 많은 작품이 사라진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라도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사임당의 그림을 모사한 것을 둘러싸고 내린 저자의 해석은 깊이 생각할 바를 전한다.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나의 그림을 보여주고 이 그림 속 화초와 벌레 등을 알려주면서 그 구도와 구성과 의미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자를 우리말로 모두 풀어서 제목을 붙였는데 가끔 낯선 단어도 한둘 정도 보인다. 서양화의 기준으로 보면 정물화라고 하기도, 풍경화라고 하기도 그런 모습이지만 차분하게 들여다 보면 참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그냥 힐끔 한 번 본 것으로 부족하다. 수박의 크기나 위치나 색의 의미를 말하고, 나비의 개수와 방향이나 날개의 모습까지 다룬다. 개구리가 등장할 때는 먹이사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오이, 수박, 가지 등이 자주 다루어진 것은 이 열매들이 의미하는 바 때문이다.

 

신사임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실 만들어진 것이다. 현모양처란 단어 자체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이란 설이 있다. 한국에 이 단어가 등장한 것이 1906년이라고 하니 후대에 의해 그 이미지가 고정된 것이다. 이런 그녀의 삶을 다른 방향에서 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 화가로서의 그녀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자료의 부족 등으로 상상력으로 채워야 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아쉽지만 이 그림으로 인한 변화를 알려주는 대목은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부끄러운 나의 무식함 하나를 말하면 매창을 기생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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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푸른빛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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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이야기>를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번 작품도 에로티슴이 가득할 것 같다는 추측이었다. 이전 리뷰에서도 말했듯이 이번에 출간된 책은 이전 책의 분권이었기에 이런 생각은 더 강했다. 다 읽은 지금은 나의 섣부른 예측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책의 내용에 담긴 자극적인 부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간증과 같은 증상이 나오고, 자기파괴적인 모습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전작보다 분량이 늘어났고, 조금은 현실에 가까워졌지만 결코 이해하기 쉽지는 않다. 이것은 바타유 전공자인 차지연 씨의 글을 읽을 때 아주 잘 드러난다.

 

전공자의 글은 작품 이해의 깊이를 더해주지만 일반 독자가 한 번 읽을 때 그것을 금방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의 감상은 아주 단편적이고 파편적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기대(?)와 다른 상황들이 나오면서 조금 당혹스러웠다. 어쩌면 파격이라고 할 수도 있는 1부의 분량은 ‘뭐지?’ 하는 기분을 먼저 던져주었다. 이 책이 언제 쓴 것이고, 어떤 경로를 통해 출판되었는지 알려주는 서문을 제외하고 말이다. 솔직히 말해 서장만 놓고 보면 이전 작품과 비슷한 부분이 있으나 2부로 넘어오면 이 생각이 점점 희미해진다. 오히려 세기말적 분위기에 휩싸인 듯한 느낌이 더 강하다. 술, 여자, 불안감, 자기파괴적인 모습 등이 이 이미지를 더 강화시킨다.

 

전공자의 글을 잠시 빌리면 세 여인과 세 지역과 세 개의 하늘빛이 책 속에 가득하다. 세 여인은 너무 분명하게 인식했지만 세 지역 중 한 곳은 짧게 나와 지역보다는 그곳의 풍경과 상황이 더 인상에 남았다. 그리고 하늘빛은 제목 때문인지 같은 빛깔이 나올 때만 관심이 더 갔다. 평론가가 소설을 낱낱이 해부하고 분석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 분류는 당연하다. 그래서 독일 트리어가 나왔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당시 모습은 전쟁의 전조가 분명하게 드러났고, 다가올 분명한 세계대전의 이미지가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서장에 나온 런던이 분석 대상에서 빠진 것은 조금 의외였다.

 

파리에서 주인공이 보여준 모습은 자기파괴적이고 병든 환자의 모습이었다. 런던에서 보여준 이미지의 연장선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 파리에서 두 여인을 만나는데 한 여자 라자르는 숭배와 두려움의 대상이고, 다른 한 여자 크세니는 첫 만남부터 아주 자극적이다. 이 둘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크세니의 허벅지를 포크로 찌르고 피를 먹는 모습은 흡혈귀를 떠올려주었다. 이 광기의 표출은 그의 육체적 쇄락과 맞물린다. 병든 그가 문병 온 크세니에게 하는 행동은 사디즘의 한 모습이다. 하지만 병든 육체의 한계는 너무 분명하다.

 

시대의 혼란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역시 바로셀로나다. 카탈루니아 분리독립과 혁명이 자라던 그 시절의 풍경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말해 혁명이란 내가 떨쳐버렸다고 믿었던 악몽의 일부였던 것이다.”란 말처럼 그는 참여자가 아닌 관찰자였다. 또 “절망 속에서도 한 달 동안은 행복했다.”라고 말한 후 “그래서 악몽에서 벗어나는가 했는데 다시 악몽에 사로잡히고 말았다.”고 했을 때 긴 삶 속의 일상이 어떤 의미인지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폭동의 주변에서 불안과 공포의 감정을 느끼지만 사소한 것들에 더 신경을 쓴다. 그런데 이 불안과 공포 속에서 발기불능의 그가 보여준 행동은 앞의 것들을 뒤엎는 강렬함이 있다. 이 또한 삶의 한 모습이다.

 

파리의 모습을 읽을 때는 1차 대전 후 강한 허무와 절망 속에 사로잡힌 지식인의 모습이 연상되었다면 트리어에서는 또 다른 불안과 공포가 엿보였다. 당연히 이 양차 대전을 겪은 후 그 삶을 다룬 작가들의 소설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들의 행동과 생각은 다르게 설명되었고 표현되었다. 단순히 읽기에는 힘든 것이 없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눈 이야기>의 외설적 파격이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이번 작품은 조금 약하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쉽다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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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점
김희재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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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물음이다. 이 물음은 작가가 교묘하게 배치한 이야기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에필로그가 주는 여운은 이 물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녀 혹은 그가 범인이었다는 것이야? 뭐야? 하고. 이 부분만 놓고 보면 강한 여운을 남긴 심리스릴러의 전형 같다. 그런데 전체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 남성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다가오기도 한다. 급작스러운 감정과 행동의 변화는 어색하게 다가왔다. 물론 이에 대한 해명을 서인하의 진술을 통해서 한다. 역시 부족하다. 상당히 매끈하게 빠진 미스터리인데 너무 단서를 많이 흘린 탓인가?

 

한 여자가 2층에서 떨어진다. 목이 뒤틀린 채 온몸이 떨린다. 나체 상태다. 이런 그녀에게 섹스를 하는 남자가 있다. 당연히 여자는 죽고, 남자는 사라진다. 누구지? 하는 의문은 다음 장에서 금방 사라진다. 한국 최고의 인기 여성앵커이자 유부녀인 최선우다. 그녀는 화려한 배경을 자랑한다. 학벌은 서울대, 남편은 재벌2세이자 장래가 유망한 외교관이다. 이런 그녀의 실종은 뉴스가 될 수밖에 없다. 일주일 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그녀가 한 여중 미술교사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다.

 

권력의 최상층부에 있는 사람의 죽음은 대중뿐만 아니라 권력자들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이 사건을 맡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장래가 불투명해진다. 여중생의 발견과 일선 경찰서 형사들의 수사 덕분에 용의자 서인하는 금방 체포된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는 강주희다. 남편의 공부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홀로 한국에 남은 기러기엄마다. 그녀에게 이 사건이 배당된 것은 그녀가 실력 있는 검사이기 때문이다. 여자라서가 아니다. 하지만 작가의 선택은 다를 것이다. 여자 검사이기에 서인하가 진술하는 내용의 미묘하고 섬세한 변화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부분이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소설의 서인하의 진술과 그 진실을 파헤치는 강주희 검사의 대결로 구성되어 있다. 정숙한 이미지의 최선우에 대한 서인하의 진술은 아주 파격적이다. 사도마조히즘이 나오고, 격렬한 섹스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반전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남편에게는 더욱. 이에 대한 반대 증거로 강 검사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 그녀의 삶의 흔적들을 보여준다. 하얀 팬티 이야기는 오히려 집착과 결벽증으로 읽힌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강 검사가 조사한 자료를 통해 서인하의 진술은 변한다. 그녀를 언제 만났는지, 어떻게 만났는지 등. 순수와 열정으로 가득했던 청춘의 한때.

 

최선우의 가족들은 서인하의 사형을 원한다. 그런데 부검 결과만 놓고 보면 사형을 선고하기 쉽지 않다. 그녀 몸에서 발견된 정액이나 목에 찍힌 손의 모습 등이 직접적 사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인은 골절에 의한 죽음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다. 중간중간에 서인하의 느낌과 감상을 넣어서 잠깐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강 검사는 서인하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 대결은 한 편의 잘 짜인 대련을 보는 느낌이다. 서인하가 아주 짧게 흘린 표정이나 동작을 포착하여 새로운 단서을 발견하는데 너무 뚜렷하게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지울 수 없다. 짧은 여운으로 처리했어도 충분했을 텐데.

 

이 소설 속 검사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떡검이니 개검이니 하는 것과 상관없다. 수많은 서류에 시달리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현장은 서류로 볼 뿐이다. 이 사실이 오히려 신선했다. 영화나 다른 소설에서 현장을 뛰어다니는 검사들이 너무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전관예우를 말하지만 현실에서 이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과소평가할 부분은 아니다. 작가가 워낙 유명한 영화의 각본을 맡았던 전력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장면의 구성과 전개가 영화의 이미지가 강하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서인하와 강주희 역을 맡을 배우를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 장면에 대한 여운으로 돌아간다. 반전의 반전은 아닌지 하고. 심증은 있지만 활자로 나온 물증은 너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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