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점
김희재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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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물음이다. 이 물음은 작가가 교묘하게 배치한 이야기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에필로그가 주는 여운은 이 물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녀 혹은 그가 범인이었다는 것이야? 뭐야? 하고. 이 부분만 놓고 보면 강한 여운을 남긴 심리스릴러의 전형 같다. 그런데 전체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 남성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다가오기도 한다. 급작스러운 감정과 행동의 변화는 어색하게 다가왔다. 물론 이에 대한 해명을 서인하의 진술을 통해서 한다. 역시 부족하다. 상당히 매끈하게 빠진 미스터리인데 너무 단서를 많이 흘린 탓인가?

 

한 여자가 2층에서 떨어진다. 목이 뒤틀린 채 온몸이 떨린다. 나체 상태다. 이런 그녀에게 섹스를 하는 남자가 있다. 당연히 여자는 죽고, 남자는 사라진다. 누구지? 하는 의문은 다음 장에서 금방 사라진다. 한국 최고의 인기 여성앵커이자 유부녀인 최선우다. 그녀는 화려한 배경을 자랑한다. 학벌은 서울대, 남편은 재벌2세이자 장래가 유망한 외교관이다. 이런 그녀의 실종은 뉴스가 될 수밖에 없다. 일주일 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그녀가 한 여중 미술교사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다.

 

권력의 최상층부에 있는 사람의 죽음은 대중뿐만 아니라 권력자들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이 사건을 맡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장래가 불투명해진다. 여중생의 발견과 일선 경찰서 형사들의 수사 덕분에 용의자 서인하는 금방 체포된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는 강주희다. 남편의 공부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홀로 한국에 남은 기러기엄마다. 그녀에게 이 사건이 배당된 것은 그녀가 실력 있는 검사이기 때문이다. 여자라서가 아니다. 하지만 작가의 선택은 다를 것이다. 여자 검사이기에 서인하가 진술하는 내용의 미묘하고 섬세한 변화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부분이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소설의 서인하의 진술과 그 진실을 파헤치는 강주희 검사의 대결로 구성되어 있다. 정숙한 이미지의 최선우에 대한 서인하의 진술은 아주 파격적이다. 사도마조히즘이 나오고, 격렬한 섹스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반전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남편에게는 더욱. 이에 대한 반대 증거로 강 검사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 그녀의 삶의 흔적들을 보여준다. 하얀 팬티 이야기는 오히려 집착과 결벽증으로 읽힌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강 검사가 조사한 자료를 통해 서인하의 진술은 변한다. 그녀를 언제 만났는지, 어떻게 만났는지 등. 순수와 열정으로 가득했던 청춘의 한때.

 

최선우의 가족들은 서인하의 사형을 원한다. 그런데 부검 결과만 놓고 보면 사형을 선고하기 쉽지 않다. 그녀 몸에서 발견된 정액이나 목에 찍힌 손의 모습 등이 직접적 사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인은 골절에 의한 죽음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다. 중간중간에 서인하의 느낌과 감상을 넣어서 잠깐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강 검사는 서인하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 대결은 한 편의 잘 짜인 대련을 보는 느낌이다. 서인하가 아주 짧게 흘린 표정이나 동작을 포착하여 새로운 단서을 발견하는데 너무 뚜렷하게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지울 수 없다. 짧은 여운으로 처리했어도 충분했을 텐데.

 

이 소설 속 검사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떡검이니 개검이니 하는 것과 상관없다. 수많은 서류에 시달리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현장은 서류로 볼 뿐이다. 이 사실이 오히려 신선했다. 영화나 다른 소설에서 현장을 뛰어다니는 검사들이 너무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전관예우를 말하지만 현실에서 이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과소평가할 부분은 아니다. 작가가 워낙 유명한 영화의 각본을 맡았던 전력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장면의 구성과 전개가 영화의 이미지가 강하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서인하와 강주희 역을 맡을 배우를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 장면에 대한 여운으로 돌아간다. 반전의 반전은 아닌지 하고. 심증은 있지만 활자로 나온 물증은 너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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